〈 86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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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간.D.프 궁정마법사의 폭주는 일단락됐다. 얘기를 듣자하니 자주 이랬던 모양이다.
진작에 쌓여왔던 스트레스 때문에 발기부전이 와서 현자타임을 얻고는 깨달음을 얻어 전대 궁정마법사 뺨치는 실력이 될 수 있었다던가. 아니, 아들을 잃고 현자가 된 분이셨구나….
얘기를 듣자하니 그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육신마저 단련했다는 데 목적이었던 아들은 그럼에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덕분에 공격마법보다 지팡이에 마력을 주입해 강화시키고 뚝배기를 깨는 게 더 위력이 세다는 황당한 힘법사가 됐다고 한다. 이제 공격 마법은 안 쓰고 텔레포트나 폴리모프 같은 비전투계 마법만 사용하면 전투에서는 직접 뚝배기를 깨러 다니신다고 한다. 나중에 잘 해드려야겠다.
그리고 내게 준다던 보상인 그래곤 본 아머는 바뀌었다. 아르잔느의 검과 방패로 말이다. 용인의 비늘이 드래곤 본과 비슷한 경도기에 검 말고는 딱히 필요 없어졌으니까. 장인어른께서는 내 용인의 비늘이 가진 경도를 확인하시고는 감탄하시며 확실히 그렇겠다고 수긍하셨다.
그 이후에는 연회가 올 때까지 황성에서 휴식을 취했다. 렉스 경과 대련을 하거나 장인어른께서 애용하는 연무장을 빌려서 언령에 대한 사용숙련도를 쌓기 위해 연습한다든가.
특히 이 연무장은 황성에 있으면 상시 느껴지던 그 은밀한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비틀어져라.]"
성화무형검을 구현해 허공에 띄워놓고 언령을 내뱉는다. 마력을 지배하는 내 말이 가진 힘은 성화무형검을 비틀기는 했으나 몇 초도 안 되어 도리어 성화무형검의 내구성을 이기지 못하고 언령이 깨진다. 성화무형검에 담긴 무학이 언령의 깨달음보다 높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령이 대단하긴 하군.
"성화무형검 하나 깨부수지도 못했는데?"
선배의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성화무형검은 멀쩡했다. 잠깐 휘어지는 듯 했으나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그런 내 투정에 선배가 황당하다는 듯 페이지를 촤라락 넘긴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후배? 네 성화무형검이 어떤 논리로 만들어 지는 건지 난 몰라. 기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마법사로서 네 언령은 규격 외라고 말할 수는 있겠네.
마도서(그리모어)가 부르르 떤다. 마치 공포스럽다는 것처럼 말이다.
성화무형검이 오러의 극의에 도달하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라고 했지?
"정확히는 극의(EX)가 아니라 그 직전(S)이지만…… 그 직전에 도달한 사람조차 대륙으로 보자면 두 손에 꼽더라고."
후배는 기사가 천직이구만. 나 참.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에게 모든 세상의 천재의 재능이 집약된 것 같은 천능이 타고난 건지.
움찔.
나름 정곡을 찌르는 선배의 정확한 지적에 떨었다. 어떻게 보자면 여러 세상에서 끝을 본 아바타의 재능을 집약시켜 환생한 존재가 나라 할 수 있으니까. 선배의 말은 그다지 틀린 건 아니다.
어쨌든, 저 언령이라는 건 마법사가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미친 고도의 진리가 담겨 있어. 너희 기사들이 이치를 깨닫고 세상에 적용시키는 거라면 마법사는 진리를 파헤쳐 세상의 섭리를 분석하는 자들이지. 기사라면 네 언령에 그저 놀라는 수준이겠지만 마법사라면 눈이 돌아가서는 후배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무슨 미친 짓을 벌일지 몰라. 마법사 앞에서 언령은 자제하는 게 좋을 거야.
마법사가 미쳤다는 소리는 그나마 많이 완화된 거다. 아직 야만족이 설산에서 이쪽을 노리고 있고 그린스킨은 언제든지 산맥에서 내려올 수 있으며 요정왕국과는 사이가 나쁘다.
덕분에 단순한 연구보다는 전투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들이 더욱 대우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구에 광기를 쏟아붓는 미친 마법사는 줄어든 시대였다. 그러나 아직도 자금이 많아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게 가끔 마법사가 치는 큰 사건사고들이 제국 신문에 올라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과거에 살며 연구에 더 집중하던 시대의 인물인 선배는 내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거였다.
선배의 걱정과 배려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언령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솔직히 이건 오러를 다루는 것과 비슷한 원리거든."
…뭐라고?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간단하게 생각해, 선배. 결국 오러란 것도 마력을 기사들이 자신의 몸에서 공정을 거쳐서 물리적인 위력을 극대화시킨 거잖아? 결국 근원은 같다고. 마법사들이 마력을 그대로 사용해서 마법을 발현하는 건 원래 규칙에 순응하며 그걸 파헤치는 거고 기사는 오러로 다듬으며 자신만의 깨달음을 사용하는 거지. 결국 시작은 같으니 단순히 제어하는 데 있어서는 오러나 마력이나 비슷할 수밖에."
…….
의외로 선배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건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작금의 궁정마법사 간.D.프 님은 힘법사인데 기사 비슷한 전투능력을 보이시지 않던가. 그거랑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비슷해 보여서 이해하기 쉽다.
"선배? 씹변태 요정아?"
…….
깨달음을 얻은 선배는 내 욕설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정말로 뭔가 깨달음을 얻으려는 건가? 마도서(그리모어)가 되기는 했어도 일단 자아가 있는 에고이며 본인이 터득했던 마법의 정수들을 담았으니 육신이 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라 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은 내가 몇 마디 했다고 이렇게 깨달음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는 건데.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깊게 고민에 빠졌을 뿐일 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부럽다.
"레온."
"응? 앨리스? 여긴 어쩐 일이야?"
요즘 황제의 호위 기사라는 명목으로 장인어른께서 끌고 다니시던 데 어떻게 여기 혼자서 온 걸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마나의 핑크머리 여기사의 등장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러나 앨리스는 내 질문에 눈가를 찡그렸다.
"제가 보고 싶어서 왔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걸 굳이 물어야겠냐는 앨리스의 질문. 아무래도 장인어른이라는 골치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심기가 첨예로운 상태인 모양이다. 완전히 까칠한 고양이 모드다.
여기서 대답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갈굼을 당하겠지. 대답이 늦으면 너 뭐하러 왔냐는 식으로 해석이 변질될 수 있으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서 전투에서밖에 안 사용하는 [사고가속]까지 쓰며 시간을 늘리고 최대한 빠르게 그녀가 만족할 수 있는 대답을 선별한다.……이렇게 하니까미연시 하는 느낌이네. 그래도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야 날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앨리스의 대답을 내가 듣고 싶으니까."
"…그렇군요."
잠깐 멈칫했으나 나는 봤다. 움찔한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시 되돌아온 앨리스의 입가를!
이 틈에 대화를 돌린다.
"그런데 폐하께서 잘도 보내주셨네."
"레온과 데이트할 시간도 안 주면 평생 미워할 거라고 말했더니 보내주셨습니다."
"……."
"저도 살짝 부끄러우니…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어, 응. 미안."
팔볼출 아빠한테 너무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쫑쫑 걸음으로 앨리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는 다른 손으로 손등을 쓸으며 능글맞게 물었다.
"그럼 나랑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만의 여기사님은, 응?"
"레온은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잘 됐습니다. 서로 원하는 걸 하나 씩 들어주면 되니까요."
"그럼 앨리스 먼저 말해 봐. 남자친구로서 먼저 들어줄 테니까."
사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앨리스가 녹초가 될 것 같았기에 먼저 부탁을 들어주려는 것이다. 앨리스는 내 말을 순진히 배려로 느낀 건지 싱긋 웃는다.
윽, 양심에 찔리네.
"그럼 오랜만에 검을 나눠봤으면 좋겠군요. 저랑 레온이 검술 대련을 못한지 꽤 됐으니까요."
"응? 아, 그렇지."
황도로 오고 제대로 된 대련을 한 적이 없었다. 티타니아까지 함께 별장에서 지낼 때만 해도 빼먹지 않는 일과 중 하나였는 데 오크 웨이브 사건 이후로 너무 바빠서 신경 써주질 못했다. 이건 확실히 내 책임이었다.
고작 일과를 챙겨주지 못해서 여자친구가 직접 부탁하러 오게 만들다니.
반성하도록 하자.
……못 챙겨준다고 하니까 갑자기 별장에 홀로 있을 티타니아가 떠오른다. 그저 흑마법사 조지고 적당히 포상 받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그 부탁 말고 다른 건 없어? 대련은 나랑 앨리스 사이에 있어서 당연한 거니까 굳이 부탁으로 할 필요 없어. 흠. 아니면 나랑 같이 하루 각 잡아서 황도를 거닐면서 데이트 하는 건 어때?"
"데이트요?"
"응. 이왕 황도에 온 김에 연인이랑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평범한 데이트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씨익 웃고서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노출 데이트지."
"!"
퍼엉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앨리스의 얼굴이 빠르게 확 달아올랐다. 이미 저번에 아르잔느랑 황도를 돌면서 여러 정보를 수집했다. 노출증이라는 이상성욕을 지닌 앨리스에게 어울리는 데이트 코스는 이미 머리 속에 구상되어 있기에 상당히 즐겁고 스릴 넘치는 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대하라고, 앨리스. 너에게 딱 맞는 데이트 코스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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