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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쇼타의 변태목록-79화 (79/142)

〈 79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15)

* * *

갑작스럽게 황성으로 호출되어 불려왔다. 아르잔느에게 벌을 주는 건 미루고 일단 용서는 했는데 다음날에 바로 이렇게 끌려와서 아비 눈나와 알콩달콩 데이트도 못했다. 아르잔느랑은 했는데 정작 먼저 연인이 된 아비 누나랑은 못해서 살짝 억울했다. 그렇다고 앨리스를 만나는 일이기에 싫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황성에 도착하자 날 안내한 건 황실 제1 기사단의 단장인 렉스 경이었다.

"아, 오랜만에 뵙네요. 부상은 다 치료하셨어요?"

"그렇군요. 다 치료했습니다. 교황청이 황도에 있으니 뛰어난 사제들이 많거든요."

"과연 기사단장이라는 직책이 어울리시네요."

일개 귀족가문의 기사단장도 아니고 황실이 운영하는 기사단의 단장이다. 나이가 무색하게 뛰어난 기량을 가진 그는 내가 검의 천재라 인정한 앨리스를 상대로도 조금 더 강할 정도니까. 물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추월당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렉스 경이 안내해준 곳은 전에도 와서 대화를 나누었던 황실의 정원이었다.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장인어른께서 궁정마법사가 타는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아니, 궁정마법사님은 황제 전용 커피 셔틀이었던 건가? 진지하게 궁정마법사란 직책에 대한 고찰을 하며 티 내지 않고 귀족으로서의 예의를 차린다.

"영원한 빛을 만나 무궁한 영광이옵­"

"헛소리는 됐다. 내가 허례허식을 귀찮아 한다는 건 알 텐데. 그냥 바로 앉아라."

"넵."

괜히 장인어른이 될 분에게 밉보이기 싫어서 냉큼 맞은편에 앉았다. 장인어른의 옆에는 앨리스 또한 귀티 나는 영애스러운 느낌의 프릴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서 날 향해 포근한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의 미소에 입가가 헤벌쭉 벌어지려는 걸 장인어른 앞이라는 이유로 간신히 참는다.

그 모습이 심히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눈썹을 찌푸렸지만 마음의 수양이 뛰어나신 건지 금새 가라앉히고 표정을 다잡으신다.

귀족들이 새끼새들처럼 쉴 새 없이 지저대는 쓸모 없는 외침보다는 딸과 불만스러운 사위 놈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애송이로 보이시겠지.

"크흠. 자세한 이야기는 렉스 경에게 다 들었다. 네 놈의 무력이 그때 대련에서 보였던 것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며 사실 성흔 보유자였다는 것도 말이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하나만 묻지. 네 녀석은 본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성흔을 각성한 거냐? 아니면 우리 엘리자베스와 교제하기 전부터 있던 거냐?"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가."

무슨 의도로 전후를 나누는 질문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인어른께서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며칠 후면 연회가 벌어질 거다. 그때 백작위 이상의 귀족들과 황도 근방의 귀족들 전부 참석하는 곳이니 네 녀석도 그곳에 참여해라. 거절은 없다."

"네."

"그 연회에 본 드래곤 토벌에 함께 했던 추기경인 성룡 기사단장도 참석할 예정이라더군. 교황의 대리로 오는 것이며 성흔 보유자인 네게 줄 것이 있다 하니 빠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내 딸하고 여우 수녀를 울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네."

귀족사회에 나가지 않기 위해 가문까지 뛰쳐 나왔건만, 결국에는 돌아와 버리고 만 것인가.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때 힘을 보이고 성흔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비 누나는 본 드래곤의 손아귀에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내 연인이 죽는 결말을 맞이할 바에는 내가 평생 조금 더 귀찮게 휘말리는 게 더 훨씬 낫지.

그래도 본론이 끝난 것 같으니 곧 있으면 앨리스랑 여태까지의 회포를 풀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돌연 장인어른께서 말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포상으로 황실비고의 물건을 하나 미리 줄 생각이다."

"그런 의미라뇨?"

"귀족 떨거지 놈들이 시끄럽게 굴기 전에 내 권한으로 네게 포상을 주고 입 싹 다물 거라는 소리다."

"……."

장인어른이 너무 화끈하셔서 불을 잘 다루는 내가 하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저 말은 즉슨, 황제의 권한으로 미리 포상 줘버리고 나중에 귀족이 따진다 하더라도 이미 줬는 데 어쩔 거냐며 반박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거기서 포상을 회수하라고 하면 황제의 체면이 아니니 반대로 그 주장을 한 귀족 놈의 주둥아리를 틀 것이다.

귀족들도 눈치가 있다면 이미 줘버렸다는 장인어른의 주장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으리라. 주둥아리가 찢어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막말로 본 드래곤을 거의 혼자서 쓰러뜨린 공로라 하는 데 거기서 항의하는 놈이 있다면 본 드래곤을 직접 싸워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혼수금으로 네게 드래곤 하트를 선물로 주마. 뭐, 네 녀석이 쓰러뜨린 걸 갖고 포상이니 뭐니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니 황실 대장장이가 본 드래곤으로 검과 갑옷도 만들어 주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아버지?"

"……빌어먹을. 그렇게 잘 대해줬을 때는 아버지라 안 하고 폐하라고 꿋꿋하게 말하더니 사위 인정하고 선물을 퍼주니까 그리 불러주는 구나."

인상을 구긴 장인어른께서는 앨리스의 질문에 불만스럽다는 듯한, 그러면서도 딸이 아버지라 불러줘 좋아서인지 감정이 혼합된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 많은 포상을 주시면 귀족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요?"

"겸손 떨 필요 없다. 어차피 네 여자를 지키려는 거였겠지만 네가 활약하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전멸하고 황실과 교단은 큰 전력감소가 일어나고 여파로 혼란이 찾아왔을 테니까."

"어째서죠?"

"황실파의 전력이 귀족파보다 조금 더 우세할 뿐이니 그렇지."

여느 시대처럼 완전히 통일된 조직은 있을 수 없다. 즉, 장인어른께서 하신 말씀은 황실파와 귀족파의 파벌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게 황실파가 조금 더 우세해서 그런 건데 본 드래곤에게 황실 기사단이 당하면 힘의 우위가 역전되어 불온한 마음을 품을 녀석도 생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정말로 큰 일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 흑마법사 조직 때문에 제국에 큰 혼란이 찾아오는 이벤트 시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아아. 흑마법사들도 신경 써야 하고 나중에 일어날 그린스킨의 침공은 또 어떻게 한담.'

느낌이 쎄~한 게 또 휘말릴 거라는 직감이 든다. 이제는 거진 미래예지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저 난봉꾼 사위 놈과 시간을 가지 못하게 되어 불만이겠지만 이 아비를 이해해다오. 지금 저 녀석은 눈에 너무 띄니까 서둘러서 일처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구나."

"괜찮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해합니다."

"음? 순순히 납득해주는 구나."

나도 그건 궁금하다는 듯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분홍머리 포니테일의 여기사는 겨울을 녹일 듯한 따스한 햇살 같은 눈빛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레온에게 좋은 건데 안사람으로서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즉, 앨리스는 내가 자기 남자니까 황실비고에서 포상을 받는 걸 자신과 있는 잠깐의 순간보다 우선하겠다는 소리였다.

헌신적이기 짝이 없는 딸아이의 발언에 장인어른께서 불만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게 다 네 탓이라는마냥 이쪽을 살벌하게 노려보신다. 그러다 원망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신 건지 앨리스에게 직접 물었다.

"아니, 그건 또 누구한테 들은 헛소리냐?"

장인어른의 질문의 속내를 간파한 앨리스가 나에게 보내주던 눈빛과는 다르게 샐쭉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머님이요."

"……."

자신을 위해 홀몸으로 애를 낳아 지원만 받으며 키우신 장모님을 언급하자 장인어른께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다.…나는 나중에 저 소리 안 듣게 잘 해야지.

◇◇◇

나는 황실비고에 입장할 권리를 얻었다. 날 입구까지 안내한 렉스 경은 황실비고 입구에서 장승처럼 우뚝 서서는 내게 조언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을 가져가려 하는 순간 비고에 설치된 함정이 발동될 테니 혹여 두 개를 만지지 않도록 조심해주십시오."

"배려 감사합니다."

내가 훔칠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 렉스 기사단장의 충고. 그는 오히려 걱정하는 마음에서 내게 저리 말한 거였다.

확인하겠답시고 두 개를 들어서 이리저리 비교하려 들면 함정이 발동하니 조심하라는 걱정에서 우러러 나온 충고였기에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황실비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태창도 뭣도 없는 세계니 만큼 어떤 보물이 내게 가장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게 잘 어울리는 물건 정도는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화안금정]을 발동해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나는 비고 안을 돌아다니며 내 마력과 신성력에 잘 맞는 물건이 뭐가 있나 살펴보았다. 황실비고에 있는 만큼 성능은 하나 같이 평타 이상은 칠 테고, 그러면 나는 화안금정으로 내게 잘 맞는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삐까뻔쩍해서 적의 시야를 방해하려고 만들어진 갑옷인가 싶은 황금갑주, 너무 시뻘게서 불꽃이 아니라 피가 연상되는 듯한 마검, 미스릴 실을 통째서 짜서 만든 듯한 천옷까지.

안목이 없는 이가 봐도 귀한 보물이라는 인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었기에 이 쇼핑을 순순히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비고를 거닐며 감상을 하고 있자니 돌연 눈길을 끄는 물건이 있었다. 정확히는 내게 잘 맞아서가 아니라 외형이 너무나도 경악스러워서 눈길을 끈 물건이었다.

"아니, 시발 이게 뭐시여."

구석에 있던 건 마녀가 쓸 법한 빗자루였다. 딱 봐도 마법사가 지팡이 대신 만든 것 같았지만 문제는 빗자루의 끝자락이 취한 형태가 외설스럽고 기괴하다는 거였다.

시꺼먼 목재로 만들어진 빗자루의 끝자락은 흑형의 물건을 떠올리게 하는 크기의 딜도처럼 생겼었다. 어찌 보면 그냥 버섯 모양이 아닌가 싶었지만 첨단에 있는 균열이 요도구처럼 보이는 걸로 봐서는 정말로 딜도를 중심으로 만든 것 같았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입을 쩍 벌리며 이딴 게 왜 황실비고에 있나 싶었다.

'아니, 진짜 이딴 게 왜 이런 데에 있냐. 정순하지만 그래도 사기가 흐르는 걸 보면 흑마법사 물건인 건가? 어떤 미친 마녀가 타고 다니면서 자위하려고 만든 것 같기도.'

딜도 형태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고간을 비비적거리는 마녀.……뭔가 개꼴리는 시츄에이션이긴 하네.

듣자하니 포획한 흑마법사에게 듣기로 실험체였던 본 드래곤이 완성되면 황도를 습격해 비고를 털 생각이었다고 하더라. 거기서 태초의 마녀라는 최초의 흑마법사가 곁에 떨어뜨리지 않던 지팡이를 얻을 거라고 하던데…… 설마 이게 그 지팡이고 떨어뜨리지 않던 이유가 애착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자위할 때 썼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던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이게 아니라 다른 물건이겠지. 걔네들도 빗자루라고 하지 않고 지팡이라고 했잖아.'

아무리 쳐죽일 흑마법사 놈들이라지만 고작 자기위로에 잔뜩 쓰였을 물건을 얻기 위해 그런 무지막지한 본 드래곤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녀석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

상당히 기괴해 눈길을 끌기는 했으나 결국 나와는 일절 관계없는 물건이었기에 나는 관심을 끄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뛰어난 장인이 빚었을 듯한 아름다운 검신을 가진 명검, 뭐든지 날카롭게 베어버릴 듯한 예기의 보검, 그 외에도 수많은 보물이 있었으나 딱 이거다 싶을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건 없었다.

이러면 대충 하나 골라서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내게 그나마 어울리는 건 검이었고, 검은 이미 장인어른께서 황실 대장장이를 고용해 드래곤 본으로 하나 장만해주신다 했으니 필요가 없었다.

결국 이대로 고르지 못하는 걸까 싶었는데 천장이 높은 비고의 벽에 걸려 있던 서책 하나가 화안금정에 포착됐다.

"저거다."

나는 이 순간 직감했다. 저걸 골라야 한다고.

◇◇◇

[현대의 어느 게임 사이트 리뷰에서]

­공주기사: 야. 흑마법사 황도 침공 이벤트 왤케 그지같냐? 난이도가 아주 주옥같네 ­ . ­

­지름길 마스터: 그거 막으라고 있는 거 아님. 몰랐음?

­공주기사:???

­공주기사:ㄹㅇ?

­지름길 마스터:ㅇㅇ

­지름길 마스터:본 드래곤이 키메라라 수명이 짧음. 그래서 미리 황도 사람들 대피시키고 용가리 뒤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으면 다시 돌아오면 됌.

­공주기사:ㅁㅊ? 그거 막으라고 있는 이벤트 아니었어요?

­하렘기사단장: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름길 마스터: 황실비고 털리고 재산 피해가 개씹창나긴 하는 데 인명피해 없어서 괜찮음. 게다가 놈들이 노리던 흑마법사의 성유물도 사실 딜도라 조직의 자금이 더 낭비됐다는 게 함정ㅋㅋㅋㅋ

­지름길 마스터: (○Д○)ノ 바이바이 돈줄~!

­공주기사:엌ㅋㅋㅋㅋㅋ

­하렘기사단장:딜도 ㅅㅂ ㅋㅋㅋㅋㅋㅋ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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