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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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느와의 애널 섹스 이후 기절했던 나는 이틀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일어나니 옆에는 아비 누나가 휴가를 얻어서 놀러왔다가 미라가 되어 죽어 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기겁하며 간호에 집중했다고 한다. 정말로 죽을 뻔한 걸 격세유전 모드로 신성술까지 써 가며 겨우겨우 목숨줄을 붙이고 영양분 많은 식재료로 죽을 끓여 먹이는 걸로 회복시켰다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복상사를 당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오소소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본능적으로 날 똥구멍 착정으로 죽일 뻔한 연인이 어디에 있는 지부터 확인하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방을 훑어도 아르잔느가 없었기에 의문을 품자 귀신 같이 눈치를 챈 아비 누나가 내게 뾰루퉁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입술을 대빨 내민 채 설명해줬다.
"지금 자기 방에서 벌 서도록 시켰어. 걔는 진짜 자위도 안 한 30년 짜리 성욕을 레온한테 풀면 어쩌자는 건지."
"네? 30년 자리 성욕이요? 자위도 안 한?"
사람이 자위를 안 하고 사는 것이 가능한 걸까. 자위를 안 하다 보면 가끔 몽정을 하게 될 텐데 그 쾌감을 느끼면 자위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게 한 달, 두 달이라면 모를까 30년이라는 게 말이 되나.
아비 누나가 내 반사적인 질문에 팔짱을 끼고 가슴을 양팔로 받친다. 뽐내는 듯한 웅장함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래 보여도 성기사로서는 훌륭한 인재니까. 자기 절제에 뛰어나면서 동시에 항문으로 단련만 했지 스스로의 의지로 절정에 오른 적도 없어. 얘기를 들어 보니까 성전환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여성기는 둔감하고 원래 있던 부위들은 전보다 민감해졌다더라."
아니, 원래 있던 신체의 말초신경이 쓰일 곳이 없다면서 성전환 도중에 항문으로 집중되기라도 했나?
확실히 기억이 반 이상 날아가 잘 생각이 나질 않지만 뇌리 속에 박힌 아르잔느의 항문착정은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내 부랄이 부르르 떨고 있지 않은가.
부르르르.
허리 아래로 이불을 덮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오늘만큼 심하게 폭주하는 일은 이제 없을 거라는 거야."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데 폭주로 그렇게까지 착정이 가능해요?"
"차, 착정… 예상은 했지만 무시무시했나 보네."
망상을 하는 건지 침을 꿀떡 삼키는 아비 누나. 성대가 울렁이며 침을 삼키는 모습이 귀여워서 껴안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수인의 발정기는 보통이 아니야. 원래 제어가 가능하고 의지에 따라 참을 수도 있지만 쌓이면 쌓일수록 위험해지는 건 매한가지거든."
"그렇긴 하죠. 아비 누나도 신성한 고해성사가 이뤄지는 곳에서 절 덮친 걸 보면읍."
"멈춰! 그만 말해! 나한테도 흑역사라는 게 있거든?!"
숟가락으로 죽을 떠 먹여주다가 꼬리를 뻗어 냉큼 내 입가를 막는 아비 누나. 손을 쓸 수 없으니까 꼬리로 막는 건가.
핥아 볼까 싶었지만 털이 입 안에 들어가는 건 사양인지라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 자기 위로로 어떻게 해소는 했었는데,아르잔느의 폭주는 태어난 이후로 30년 동안 누적되기만 한 거거든. 레온이랑 떡 칠 때까지 버티다가도 그리 동경하던 항문에 양물이 꽂히니까 쌓였던 게 한꺼번에 터졌던 것 같아."
"그럼 다음부터는 그 정도로 빨리지 않는다는 거네요. 어쨌거나 살려주셔서 고마워요, 아비 누나.……진짜 그대로 눈 감으면 한이 남아서 언데드가 됐을지도 몰랐거든요."
"떽!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말은 떽이면서 환자라는 점을 고려해 때리지 않고 죽을 푼 숟가락을 뻗어 먹여주는 눈나.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것만 같은 상황이라고 느껴져서 눈나가 아니라 마망이라고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이 들 정도였다. 아니면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을 돌본다는 느낌으로 간호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연인이 먹여주는 음식이 연금술로 만들어진 석탄이라 할지라도 맛있게 먹어줘야 하는 것이 남자친구의 도리 아니던가. 게다가 아비 누나는 요리 실력이 좋은 건지 죽도 아주 맛이 좋았다.
몇 번 씹으니까 해물 느낌이 나는 게 해물죽인가 싶었다. 식감 죽이네.
"누나. 이거 무슨 죽이에요?"
"장어죽."
"……."
"내가 손수 공수해서 만든 특제 장어죽이야."
설마 우리 눈나가 정력을 회복시켜서 따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기를 빈다.
그렇게 아비 누나의 특제 장어죽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뭔가 적당히 먹고 싶었지만 눈나가 손수 만들었다는 죽을 어떻게 남길 수 있냐고.
배가 부른 걸 넘어서 다 먹었다 싶었을 즈음에 마력을 돌려 신체를 확인하니까 확실히 무리한 원기가 어느 정도 다시 차올라 복구되어 있었다.
'아니, 미친. 장어가 무슨 장어길래 내 스펙의 피로를 이렇게 회복시키는 거냐?'
이거 결코 평범한 장어가 아니다. 애당초 '특제' 장어죽이라고 누나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건 자세히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는 [직감]의 주장에 수긍하고는 넘어가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비 누나가 요리한 장어가 사실 교황이 비밀리에 정력보충을 위해 신성력까지 먹여가며 키우던 연못의 물고기였다는 걸 말이다.
◇◇◇
일단 어느 정도 회복을 마친 나는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전투는 본 실력의 절반도 안 나오겠지만 이게 어딘가. 그리고 이 정도 스펙으로도 어지간한 평기사 한 명은 가볍게 씹어먹을 수 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래서 날 착정하며 물리적으로 천국으로 보낼 뻔한 장본인을 부르자 아르잔느는 넙쭉 엎드리고서는 눈물을 질질 짜며 내 허리에 매달려 애원했다.
"죄송해요, 공자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어요. 제발 저 버리지 말아주세요!"
"……누나, 얘 왜 이래요?"
"에휴. 일단 좀 떨어져 봐!"
내게 찰싹 달라붙은 소꿉친구를 억지로 떼어 내고는 여관방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 정좌를 시켰다.
'에휴. 얘가 어쩌다 이리 망가졌담.'
전에는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믿음직스럽던 모습은 얻다 팔아먹고서 소원성취를 하자마자 술주정으로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처럼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아니, 어쩌면 자신의 작은 남자친구가 그녀의 본모습을 이끌어 낸 걸지도.
그녀는 아르잔느의 머리를 꾹 눌러 강제로 숙이게 했다.
"아르잔느는 지금 레온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강하게 받고 있어서 그런 거야. 본인도 그렇게까지 성욕이 쌓였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으니 본의 아니게 레온을… 외설스러운 방식으로해칠 뻔했는 데 보자마자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들어서 긴장이 풀려 이렇게 눈물콧물 다 짜는 거야."
"너무해요, 아비. 그런 아비도 공자님이 죽을 뻔했을 때는 눈물 질질 짜면서 다시 독수공방 시킬 거냐고 울고불고 했읍! 읍읍!"
아비 누나의 뒤태에서 꼬리가 여럿 등장한다. 격세유전을 일으켜 스펙을 아홉 배로 껑충 증폭시킨 누나는 여우 수인이 아니라 소 수인의 근력을 활용해 아르잔느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고서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자 아르잔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여기서 최강자는 아비 누나인 건가.
그나저나 눈나가 내 위기에 그렇게 울고불고 질질 짰다니. 어쩐지 머리 속에서 선명하게 상상이 그려져서 무심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아르잔느?"
"네, 공자님."
"이번에는 나라도 굉장히 위험했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건 아마 아르잔느가 더 잘 알겠지?"
"……네."
죄인마냥 고개를 팍 숙이고 저조해진 목소리로 수긍하니까 자꾸 넘어가 주고 싶은 욕망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만약 저랬다가 나중에 또 폭주했는데 그때 곁에 아비 누나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쭉쭉 먹물을 짜인 문어마냥 마라 비틀어져서는 사망하겠지.
이건 게임이 아니다. 복상사라는 배드 엔딩을 맞이했다고 리스타트나 리트라이가 불가능한, 이곳에서 진짜로 뒤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현실이란 게 원래 그렇게 불공평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그걸 조절하며 오래오래 잘 살아남는 게 의무인 법이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연인이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게 있다는 거다.
"나도 너무 황당하게 느껴질 정도의 사건이라…… 벌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걸 정하고 내리는 건 내가 나중에 적당한 게 생각이 나면 그때 줄 거야. 납득했어?"
"네. 저는…… 공자님을 죽일 뻔했으니까요."
똥구멍으로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거 존나 무서운 게 아닐까. 구미호인 아비 누나의 짐승 뷰지보다 강력한 암말착정똥꼬로 사람을 죽일 뻔한 거 아닌가. 아니, 이런 잡생각 따위를 할 때가 아닌데.
아직 정좌세를 하고 겁 먹은 타조마냥 머리를 숙인 아르잔느에게 다가가 그녀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손길이 닿자 움찔하는 아르잔느였지만 상대가 나란 걸 알기에 전혀 대응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뿔 때문에 머리 쓰다듬기 힘드네.
뿔은 역시 러브순애를 위한 관계보다는 뿔잡펠뿔 잡고 펠라치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마주했다.
"아르잔느. 여기서 벌이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을 하자면 네가 잘못을 한 건 맞는데 그렇게까지 죄인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째서요? 공자님을 죽일 뻔했는데 제가 밉지 않으세요?"
"밉지는 않지. 자기 여자가 미운 거면 그건 이미 연인 관계가 아니란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아르잔느를 미워하지 않으니 내칠 생각도 없고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봐."
"진짜요? 진짜 절 아직 좋아하세요?"
"응. 진짜 진짜 좋아해."
뿔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자 아르잔느가 매달려온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게 눈물을 질질 짜는 모양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말 수인 성기사의 흐느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즈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님, 사랑해요. 진짜 진짜 사랑해요."
품 안에서 고개를 젖힌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퉁퉁 부운 눈으로 활짝 만개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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