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13)
* * *
아비게일의 하루는 이른 아침에 시작된다. 수녀로 임명을 받았을 때부터 성실했으며 할 일은 다 하고 노는 성격이었던 그녀는 간만에 늦잠이란 걸 만끽했다.
흑마법사 조직이 장악한 마이트 상단의 광산에서 연구되고 있던 최악의 실험체. 본 드래곤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을 교단에 인정받아 황도까지 올라왔음에도 느긋한 휴가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해가 중천에 걸려서는 따뜻한 햇살을 내리쬐는 시간에 기지개를 피우며 여유롭게 침실에서 기상한 그녀는 기분 좋게 몸을 씻고는 외형을 단정하게 갖춘다. 단정하게 입는다고 가려질 착한 몸매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용병들의 복장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가다듬은 여우 수녀는 깜짝 방문을 하면 놀라게 될 자신의 작은 연인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는 내려올려고 하지 않았다.
여장남자, 그것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이에게 흥분하는 성벽을 가진 자신에게 맞춰 주기까지 하는 작고 귀여운 남자친구를 정욕이 많은 수인으로서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사실 아비게일은 성욕을 완전히 해소시킨 적이 없다. 그저 쌓인 욕구를 참을 수 있을 정도로만 레온과 관계를 맺는 걸로 해소시켜서 참았으며 그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과 수녀로서 성스러운 고해실을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작에 부정한 것으로 더럽힌 것 같지만 주신이자 용신인 아가사 또한 성욕이라는 본능을 부정적으로 칭했던 적은 기록에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배덕감에 짜릿한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양심이 찔려 죄책감이 남았기에 이번에는 여관에서 레온과 하루종일 떡을 칠 생각이었다.
그렇게 작은 몸이어도 어지간한 숫소 수인보다도 큰 음경을 보유한 데다가 절륜하기까지 한 레온이 음란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대낮부터 떡방아를 쳐도 좋아하리라.
'이대로 있으면 밀리게 되겠지.'
듣자하니 이미 연인이 둘 있는데 한 명은 요정왕국의 왕족이지만 자신의 체질이 냉기 쪽으로 바뀐 설녀체질로 매우 아름다운 이였으며 다른 한 명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하며 곁에서 보필한 여기사라고 했다. 오크 웨이브에서 만나게 된 자신과 출발선이 다른 둘이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그 차이를 좁혀야 했다.
레온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며 동등히 대한다 했고 여인들은 나이로 언니동생을 정했다 하지만 결국 그 관계 속에는 안 보이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얼마나 더 안아 주며 사랑을 속삭이냐는 그 안 보이는 차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정략이긴 해도 결혼까지 한 아비게일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관계를 가진 적은 없지만 아르잔의 성벽을 몰라 그를 짝사랑하던 수녀들이 자신에게 질투심을 내비치며 뒷담을 까던 것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침 고위요정은 먼저 복귀했고 같이 온 여기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실에서 머물며 대기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버리면 여우 수인의 수치였기에 아비게일은 자신의 작은 연인과 함께 알콩달콩한 꽁냥꽁냥 데이트부터 끈적끈적한 침대 위 데이트까지 풀로 하여금 그의 무의식에 자신에 대한 호감도를 잔뜩 쌓을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깜짝 방문을 하려고 여관을 향하는 그녀를 마주친 사내가 길가에서 인사한다. 고해성사를 받은 사내 중 한 명이었다.
"윌리엄스 수녀님, 안녕하세요.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요."
"네, 오늘 좋은 일이 있을 예정이랍니다."
"하하. 잘 되시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통이라면 가식만으로 대우했을 이에게 진심으로 웃어 주며 아비게일은 기분 좋게 황도를 걸었다.
그렇게 레온과 전 남편(?)이었던 아르잔느가 방을 잡았다는 여관에 찾아온 그녀는 방문을 열며 기습하기 위해 여관주인에게 열쇠를 잠시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연인인데 깜짝 방문을 위해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그녀는 교단의 신도가 갖는 정식 신분증까지 보여 주며 여관주인에게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납득시켰다.
그런데 여관주인의 표정이 이상하게도 묘했다.
"그 소년… 아니, 청년의 여자친구라고요?"
"네, 그렇답니다. 그래서 말인데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으음."
"?"
여관주인이 뭔가 귀찮게 됐다는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난해해 하자 아비게일도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어째서 얽히기 싫다는 기색이 저리도 역력한 걸까.
잠시 고민스러운 안색이던 여관주인이 중얼거렸다.
"에이. 그래. 어차피 내 잘못도 아닌 데 뭔 상관이람."
도대체 무슨 말인 걸까. 아비게일이 느낀 의문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여관주인은 레온이 머무는 방문 열쇠를 건네 주었다.
"여기 있수다."
"감사합니다. 아가사 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단하게 성호를 그리며 축복을 빌어 준 아비게일은 그대로 레온이 있는 방을 향했다. 여관방은 2층의 것이었기에 계단을 오르면서 아비게일은 그가 자신의 깜짝 방문에 얼마나 놀랄까 기대하면서도 남자친구와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음욕이 자극을 받는 듯 들끓기 전에 준비하는 것처럼 가열된다. 옅은 홍조가 떠오르고 눈매가 부드럽게 휜 그녀는 순수하게 기쁨과 정욕을 분출하며 그의 방 앞에 섰을 때였다.
움찔.
문 앞에 서는 순간 수인의 뛰어난 코가 아니더라도 맡아질 정도로 짍은 밤꽃 향기. 어찌나 농밀한지 방문을 열면 사람이 아니라 진득한 정액을 주식으로 먹기만 한 슬라임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짙은 냄새에 아비게일의 두뇌가 팽팽 돌아갔다.
이제야 여관주인이 곤란하다는 듯한 반응을 내비친 게 이해가 갔다.
'치정극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신 거겠지.'
하지만 레온은 뛰어난 수컷이고 여러 암컷이 꼬이는 건 이미 예상했던 데다가 이미 꼬여 있었기에 아비게일은 그 점은 개의치 않았다.
다만, 방 밖에서 맡아질 정도로 진한 밤꽃을 잔뜩 받아 낸 게 누구냐는 게 문제지.
고위요정은 본가에 있고 여기사는 황실에 대기 중이다. 세 번째 여자친구인 자신이 과도한 쾌락에 기억을 잃었다가 이곳을 다시 찾아온 것일 리는 없을 테니 그렇다는 건 역시 네 번째 연인이 생겼거나 창녀를 불러 실컷 떡을 쳤다는 건데.
그럼 기습을 하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이걸로 한몫 단단히 잡아서 레온의 죄책감을 자극한다면 다른 여자들을 추월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조금 치사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귀엽게 넘어갈 수준의 계획.
결정을 내린 아비게일은 열쇠를 꽂아 단숨에 잠금을 해제하고는 문을 벌떡 열어 침입했다.
"레온! 나 왔…히이이익?! 레온!?"
여관방에 입장하자마자 아비게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침대는 정액으로 흠뻑 적다 못해 넘친 정액이 여관방 바닥을 흥건하게 더럽혀 방을 밤꽃 냄새로 가득 채웠고 레온은 침대 위에서 피골이 상접한 걸 넘어서 반쯤 살아 있는 미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짝 말랐다. 방 하나를 흥건하게 적실 정도로 사정한 걸 보면 복상사를 당했다고 결론을 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에 정말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아비게일이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레온의 현 상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신성술을 무작정 펼치기 시작했다.
"힐! 힐! 힐! 엑스트라 힐! 엑스트라 힐!"
치유계 신성술이 뿜어내는 빛무리가 여관방을 가득 채우다 못해 대낮에 빛의 기둥을 일으킨다.
그날, 우스갯소리로 취급될 지도 모르지만 한 여관에 성녀가 강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아르잔느는 어린애처럼 양 팔을 귀에 딱 붙이고는 머리 위로 들어 무릎을 꿇은 채로 체벌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성기사가 초인이라지만 하루종일 애널로 착정 섹스를 하다가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 강제로 소꿉친구에 의해 깨워져서 체벌을 세 시간 째 서는 건 아무리 그녀라도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중력이 떨어져 양 팔이 귀에서 떨어지자 귀신 같은 눈치로 알아챈 아비게일이 회초리로 그녀의 정수리를 딱 때렸다.
"제대로 손 안 들어?"
"아비. 너무하지 않나요? 벌써 세 시간 째라고요."
전 남편(?)의 소소한 항의에 여우 수녀는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움찔한 아르잔느가 시선을 마주하기 두려워 회피한다.
"너무해? 너무하다고? 너야말로 너무하지! 이것 보라고!"
아비게일이 가리킨 건 그녀의 갖은 신성술을 때려 박아 미라에서 피골이 상접한 정도로 회복되어 침상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레온이었다.
격세유전까지 펼쳐 본 드래곤과의 사투보다 더욱 열심히 신성술을 펼쳤지만 놀랍게도 착정을 당해 정기가 손상된 그의 육신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휴식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아비게일은 부채질까지 해 가며 자신의 작은 남자친구를 돌보며 소꿉친구에게 체벌을 가하는 작업을 동시에 행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나까지 새 남편을 잃을 뻔했잖아. 양심은 있니?"
"……저도 남편을 잃을 뻔했는데요."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이 화상아!"
딱.
회초리가 또 그녀의 정수리를 가격한다.
격세유전의 아비게일이 내리친 회초리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순수 근력만으로도 아르잔느의 눈에서 물방울을 하나 만들 정도로 아찔한 위력이 있었다.
"에휴. 내 속이야. 예전부터 남자 꼬실 거라고 항문에 딜도 넣으면서 연습할 때부터 예견했어야 했는데."
여우 수녀는 서로의 성벽을 알게 됐을 때부터 '수'인 그녀가 항문으로 좆을 받을 수 있는 훈련, 정확히는 딜도나 검파를 이용한 자기단련에 힘 썼던 걸 안다. 그렇게라도 노력해 보라는 의미에서 모른 채를 했는데 설마 그때의 과정이 지금의 어린 남편의 몸을 상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꿉친구가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자 찔리는 게 있어 고개를 숙인 아르잔느가 중얼거렸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부분은 많았다. 신앙심 하나로 견디며 육체를 험하게 단련하는 성기사들은 당연하게도 호르몬 분비에 의한 성욕이 쌓이며 다른 직종의 이보다 여자를 많이 찾게 된다. 괜히 기사들이 창관을 자주 찾아가는 게 아니다.
그런데 동성애자였던 데다가 '수'이기까지 했던 아르잔느는 자위조차 안 하며 성욕을 묵묵히 쌓기만 했던 데다가 여태까지 한 번도 해소를 한 적이 없었기에 자지에 박혀 절정에 오른다는 감각을 몰랐다. 그러다 가정파괴범 사이즈를 가진 레온의 좆에 똥구멍을 꿰뚫려 첫경험을 가졌으니 쌓였던 성욕이 한꺼번에 개방되며 자기단련으로 습득한 기교가 펼쳐진 거다.
터진 성욕에 눈이 멀어 연인을 죽일 뻔한 아르잔느는 창피했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 머리를 박고 숨고 싶을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고급 여관에 쥐구멍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우리 남편 또 피골 상접하게 만들기만 해 봐? 콱 씨! 절교일 줄 알아!"
"……네."
결국 아르잔느는 그날 레온이 저녁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때까지 체벌을 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