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7)
* * *
삼봉(三?) 조루 메이든. 자신의 성기능이 토끼와 동급 수준이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흑마법사가 된 그는 저주를 집중적으로 판 흑마법사다.
성기능이 우수한 남자만 보면 잡아다 3초 사정이라는 기록이 나올 때까지 저주를 걸며 고문하는 게 취미인 그의 길은 흑마법사로서는 순탄대로였다. 저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그걸 전투에 쓰고 고문으로 얻은 정보를 실험에까지 응용해 흑마법사 조직의 간부 자리까지 올랐으니까.
"젠장. 젠장. 젠장. 제기랄!"
그런 조루는 서둘러 발을 놀리며 도주하고 있었다. 저주 계열 특화 흑마법사인 그는 직접 전투에 능하지 않다. 그래서 본 드래곤 연구에 참여한 거다. 자신과 동등한 간부라지만 직위가 낮은 사봉, 그리고 육봉과 함께 하는 것이었기에 갈굼을 당할 일도 없고 일은 순조로웠다.
마이트 남작가의 광산을 털었고 그로 인해 신성력에 내성을 갖는 본 드래곤을 제작하는 데 있어 순조로웠다. 유전자 단위의 합성을 키메라 연금술로 하고도 남은 미스릴을 팔며 자금을 보충한다. 그 자금으로 성욕이 쌓여 성노예를 자처하는 요정을 구매해서 사제의 피와 섞어 바르면 신성력에 내성을 갖는 언데드가 탄생한다.그걸 조금만 더 했다면 완전한 굴강의 언데드가 탄생했을 터인데 어쩌다 이리 됐단 말인가.
"성흔 보유자……!"
조루가 두 눈에는 원한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본 드래곤에게 저주를 직접 걸어왔던 흑마법사답게 그는 본 드래곤을 통해 레온과의 전투를 볼 수 있었고 단신으로 기사단 이상의 활약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역작인 본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걸 보게 됐다.
레온에 대한 건 오크 웨이브에서 활약해 포상을 황실에서 받을 예정으로 불렀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가 성흔 보유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나이대의 귀족 청년이라면 오히려 성흔을 뽐내듯 드러내며 교단과 가문에서 지원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허나 가문을 나온 자제에게 성흔이 있다고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뒤통수를 쎄게 맞았다고 생각한 조루는 레온에 대한 원망을 품으며 필사적으로 광산에서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요정왕국의 국경지에서 작업을 걸고 있는 오봉과 이봉에게 합류해야 한다. 장거리 이동이 되겠지만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리면 추격이 붙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사아아아───
"!"
달리던 조루는 돌연 정지하고 주변을 경계했다.
'소리가……없다.'
숲 한복판이니 소리가 없는 건 당연하지만 자연의 소리마저 끊겼다. 숲에 거주하는 벌레들의 다양한 울음 소리부터 바람에 풀잎끼리 스치는 소리까지 숲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음율 전부가 말이다.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자신을 추격했다고 믿기 힘들지만 이 현상 자체가 그보다 기이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추격자가 붙었다 판단하고 흑마법을 시전할 수 있도록 영창에 들어갔다.
"─────."
이중영창.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교를 보이는 실력은 과연 한 조직의 간부라 할 만했다. 왼손에는 슬로우 마법을 걸고 오른손에는 흑마법의 확대를 건다.
그를 중심으로 반경 50m에 슬로우 디버프가 걸린다. 속도를 10분의 1로 낮추는 저주라면 아무리 기사라 해도 자신에게 덤벼들기 전에 대응할 수 있을 거다. 그의 예상대로 디버프가 깔리자 숲의 어둠 속에서 단검이 여럿 투척됐다. 여섯 자루의 단검이 자신을 향해 노리는 걸 보며 조소를 지은 조루는 자신에게 도달할 때까지 6초나 걸릴 투척을 보며 방어 마법을 전개한다.
"실드!"
그의 실력이라면 1초면 완성돼는 방어 마법 실드가 둥글게 펼쳐지자 단검들이 부딪히고 우수수 떨어진다.
오러가 실리지도 않은 단검으로 자신의 실드를 뚫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실실 웃었다.
"내가 저주술사라고 무시한 모양인데 나는 전투능력도 일개 조직원은 뛰어넘은 지 오래다! 다크 쏜!"
양손을 바닥에 짚고 마법을 발현하자 그의 그림자가 형태를 바꾸어 원뿔로 뾰족해지더니 가시의 형태가 되어 단검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그 끝을 뻗는다. 그러나 손맛이 없다는 사실에 빗나갔다 판단한 그는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바짝 세운다.
어디에 있는 걸까. 마력을 아끼지 않고 흑마법을 숲 사방에 난사할까. 단검만 날아온 걸 보면 추격자는 한 명.
'그렇다면 무리해서라도 여기서 처리'
서걱.
'……어라?'
철푸덕.
조루는 세상이 기우는 걸 보았다. 아니, 자신이 넘어진 것이다. 어째서 멀쩡히 서 있던 자신이 넘어졌단 말인가.
그의 시선이 무심코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피가 뿜어지고 있는 '발목의 절단면'이 있었다. 머리로 부정하던 현실을 목격하여 뇌가 그 정보를 직접 받아들이자 억지로 무시했던 통증이 그의 뇌리를 강타한다.
"끄아아악! 내 발이! 내 발이…! 스, 슬로우!"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는 자신의 발목에 슬로우 마법을 걸어 출혈량을 줄였다. 응급처치에 불과한 대처였지만 당장에 과출혈에 의한 사망이란 급한 불을 껐기에 자신의 로브를 찢어 발목에 나오는 피를 줄이기 위해 꽈악 묶으며 지혈까지 하니 피가 멈춘다. 슬로우 마법과 지혈을 함께 한 결과였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자신은 적을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전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발목이 잘리고 말았으니까.
죽을 지도 모른다. 그 미래가 머리속에서 그려지자 조루는 생존본능이 울리며 공포심이 심어지는 걸 느꼈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궁지에 몰린 그의 머리회전은 비상하게 돌아갔다. 이길 가능성이 적어 보이니 전투는 포기하고 곧장 협상을 시도하고자 했다.
"도, 돈! 돈을 주겠다!"
단검이 날아온 것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기사나 마법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레인저, 혹은 암살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조루는 거래조건을 들으라는 듯 외쳤다.
"그대가 받기로 한 것의 두 배…… 아니, 세 배를 주겠다! 그러니 부디 날 모른 척하고 살려다오!"
………진짜?
"!"
그때 머리에 울리는 듯한 여성스러운 목소리.
마법은 아니다. 하지만 머리속에서 울린다. 적이 평범한 암살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조루는 기함하려는 입을 간신히 꾹 닫고 비명을 삼키며 대화에 응한 얼굴 없는 암살자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우리 육봉성의 자금력은 보통이 아니다! 광산을 잃었다지만 그건 겨우 절반에 불과하지! 게다가 비축한 자금을 간부인 내가 사용한다면 그대가 받을 보수의 세 배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다."
흐으음.
암살자가 고민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조루는 긴장감에 침이 넘어간다. 제발 자신의 제안을 받아라. 그리 비는 게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 25cm짜리 딜도를 순수 아다만티움으로 만들 수 있겠어?
"딜, 도?"
조루는 암살자가 내건 제안에 어벙한 반응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그 귀한 아다만티움으로 딜도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건가? 진짜로? 그 금속의 희귀성과 효용성을 떠올리면 미친 짓인 데다가 애당초 아다만티움은 대륙에 많지 않았다. 대륙에 있는 모든 걸 모아도 장검 하나 될까 말까인데 그걸로 25cm짜리 딜도라니.
'아니, 딜도가 왜 25cm여야 하는 건데. 그런 딜도 갖다 얻다 쓰려고. 오크한테 쓰려는 건가?'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으니 말이다.
너무 황당무게한 제안에 조루는 입을 버끔거렸다.
"아, 아다만티움은 무리다. 대신 드래곤 본을 준비해 주마. 아니, 세계수의 뿌리를 주마! 그 귀한 것들을 모두 줄 수 있다! 우리 조직에는 그만큼 귀한 물건들이 곧 들어오니까 가능하다."
……뼈랑 풀떼기는 별로.
아니, 시발. 다른 건 다 안 돼고 왜 하필 그 귀한 아다만티움으로 딜도 따위나 만들려는 건데?!
그리 외치고 싶었던 조루는 속이 말이 아니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니, 그 귀한 재료는 싫고 굳이 아다만티움으로 딜도를 만들려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다만티움을 황제에게 진상한다면 당장 자작위를 받을 정도로 귀한 금속이거늘.
그러나 더 이상 거래는 진행되지 않았다.
사악.
던져지는 소리도 안 난 단검이 그의 양 어깨에 박혔다.
"끄아아악! 이런 시바아아알!"
욕하지 마 새끼야.
푹푹!
단검이 또 뿅 하고 나타난 것처럼 피하기도 전에 그의 양 손등에 꽂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나온 작은 손이 흉악한 단검을 들고 자신의 손등을 찍는 걸 말이다.
"그림자?! 말도 안 돼! 그림자를 다루는 건 타락한 흑요정(다크엘프)밖에 없거늘!"
멍청한 소리하지 마. 그림자를 다룰 수 있는 종족이 하나 더 있잖아?
암살자의 질타로 조루의 뇌리에 한 종족이 스쳤다.
음마(서큐버스)
현대로 치면 사실상 서큐버스와 뱀파이어가 섞인 듯한 설정을 지닌 종족이다. 얼마나 종족의 피가 진하냐에 따라 그림자도, 피도, 꿈도, 환영도 다루는 타고난 탕부의 종족.
그렇기에 그는 부정했다.
"끄윽. 아무리 음마라도 네 손을 보면 어리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리 어린 나이에 종족의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지 않지. 날 조롱하는 거냐!"
조롱한 적 없어. 그저…… 내가 순혈 음마가 아니어서 그렇지.
"……뭐?"
멍을 때리는 그에게 암살자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죽일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게.
스륵.
그림자 속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슴은 체구에 맞지 않게 커다란 과실을 단 키가 작은 소녀. 최근 레온의 그림자에서 활동하는 하사나 사바흐였다.
"만나서 반가워, 삼봉 조루 메이든. 내 이름은 하사나 사바흐. 음마(서큐버스)와 소인(드워프)의 혼혈이야."
"…………그런 거였나."
의문이 풀렸다. 어째서 아다만티움은 되면서 세계수의 뿌리나 드래곤 본은 거래조건으로 안 되는 거였는지를 말이다.
'광석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소인과 음탕한 음마의 혼혈이라니. 그러니 금속 딜도를 좋아할 수밖에.'
의문이 풀린 그는 눈을 감았다. 적어도 갈 때만큼은 자신이 숱하게 고문했던 사내들처럼 추하게 가고 싶지 않았기에 곧 있을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한 거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의문점만큼은 해소하고 죽자는 생각에 그가 하사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죽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군. 어떻게 날 찾은 거지?"
"간단해. 당신의 그림자를 찾는 건 쉬운 일이지."
"?……잠깐. 그 말은! 설마 당신이?"
엉뚱한 의아해 하던 그는 돌연 떠오르는 한 가지 정보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서걱.
단검이 번쩍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