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착정마(馬)왕 성기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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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이 발버둥을 치지 못하도록 손가락을 싸잡아 부러뜨리고 무릎을 분질러 준 후에 기절시켜 황성으로 배달했다. 장인어른께서는 원정을 떠올리는 준비를 은밀하게 하는 마법사들과 기사단을 만족스럽게 응시하다가 내가 데리고 온 시체박이를 보고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필리아 남작을 몸 성히 데려올 수는 없었나?"
"죄송합니다, 폐하. 이 놈보다 건국제의 시체를 제압하는 데 신경 쓰느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건국제를 키메아 연금술로 강화시켰을 뿐더러 통짜 미스릴 검을 손에 쥐어준 바람에 오러까지 견디더군요."
"…통짜 미스릴 검? 그걸 데스 나이트도 아니고 그냥 구울한테 줬다고?"
"네."
"미친 놈인가?"
장인어른께서는 팔다리가 성치 않은 시체박이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원래 미친놈을 이해하는 건 같은 미친놈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반응은 당연한 거였다. 데스 나이트라면 오러라도 쓸 텐데 그냥 구울은 생전에 육체가 가지던 순수 기량만 가질 뿐이지 오러를 사용하거나 심리전을 보이지는 못하니까. 한 마디로 돈낭비 지랄도 풍년이란 거다.
"아니지. 미친 놈이 아니었다면 감히 황실 선조의 시체에 좆대가리를 박으려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한 제국의 황제답지 않게 길거리 양아치처럼 구수한 욕지거리를 내뱉은 장인어른께서는 못마땅하게 시체박이를 응시하다가 이내 아르잔이 신성력을 부여한 밧줄로 포박한 구울, 건국제 엘레오노라를 눈길을 보내더니 눈가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암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구울이…… 건국제시군. 황실 기록고에 있던 얼굴과 아주 똑같아. 쯧. 그 분의 유해도 같이 두고 가라. 교단의 추기경을 불러 비밀리에 위령제라도 치뤄야겠군. 그때까지는 궁정마법사가 비밀리에 보관하도록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저는 기사단 분들과 황실마법사들과 함께 광산으로 가면 되는 겁니까?"
"그래. 교단에 있는 네 연인을 콕 지정한 지원 요청도 넣었으니 걱정 마라. 흑마법사가 활개친다 하니 교황이 바로 협력을 승인하더군. 아마 그 상급 수녀 말고도 꽤 많은 전력이 나올 거다."
그들이 도움이 될까 싶었다. 네크로맨서인 시체박이가 여기 잡혔으니 전력보충이 불가능할 테고 그럼 진짜배기 실력자만 남았을 텐데 성녀체질인 아비 누나 이상으로 도움이 될 이들이 있을까?
아니, 그들이 합심해서 신성력을 때려 박으면 일격만큼은 아비 누나 이상으로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네. 고기방패는 많을 수록 좋은 게 아니겠는가.
"렉스 기사단장의 제1 황실기사단과 함께 하면 될 걸세. 그대들은 용병으로써 이번 토벌에 참여하게 되는 거니까 딱히 걱정은 말게나. 그리고 그들의 후방지원으로 수많은 사제들과 함께 할 성기사들이 있으니 그대는 공이나 냠냠 주워 먹으면 된다."
"예, 폐하!"
공을 세우라고 팍팍 밀어 주시는 장인어른. 이게 바로 낙하산의 기분인 걸까. 웬지 모르게 존나 좋았다.
대놓고 밀어 주는 낙하산 대우에 기분이 불쾌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내가 그리 노력하지 않고 적당히 시늉만 보여도 꿀빨 수 있는 일인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꿀빨기를 싫어하는 이는 자존심이 아주 강해서 굽힐 줄 모르는 이들밖에 없다. 그리고 내 자존심은 제법 우선순위가 낮고.
그렇게 곧 준비될 텔레포트 게이트에 준비된 황실기사단과 황성에 입성한 교단의 제1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성룡기사단과 무려 추기경이 이끄는 사제단이 도착했다. 숫자만 합치면 이동할 이들은 대충 300명인 듯했다. 광산 근처에도 소수지만 교단의 사제들이나 병사들이 있고 황성에서의 지시라면 무조건 협력할 테니 포위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주전력을 치는 건 당연히 이쪽이 되겠지만.
나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준비될 때까지 잠깐의 여유가 있는 걸 궁정마법사에게 확인받고는 잠시 아비 누나가 있는 사제단에 다가갔다.
누나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급 수녀인 데다가 성녀체질은 아비 누나는 흑마법사를 상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강한 존재이며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오크의 뚝배기를 성배로 깨부수는 소 수인의 근력을 타고난 아비 누나는 사제단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번에 호위조차 없는 건 오크 샤먼킹이 일으킨 오크 웨이브보다 숫자가 훨씬 적으며 상대는 상성 상 이쪽이 유리한 흑마법사니 그런 듯했다. 뭐, 저중 태반이 전투사제인 것도 한 몫 하는 듯했지만.
일행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발견한 누나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알현에 동행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금방 만났네, 레온. 그보다 깜짝 놀랐어. 폐하께 보고 드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당일에 바로 협력을 요청해서 급습할 줄은 몰랐거든."
"건국제의 시체를 건드렸으니 어쩔 수 없으셨겠죠."
물론, 앨리스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멋진 모습을 보여 주려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황제의 품격을 보인 것도 없잖아 있으리라. 분명 장인어른께서 위엄을 다잡고 토벌하겠다고 선언한 순간 앨리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거든.
"우리 쪽은 교황님께서 노발대발 하셨어. 교단 본부인 교황청이 있는 황도 근처에 이렇게 악이 스며든 것도 몰랐냐면서 추기경님들을 갈구더라."
"오우……."
그럼 저기 성룡기사단의 단장이자 추기경으로 추정되는 이의 얼굴이 핼쑥한 이유는 교황에게 갈굼을 받아서 그렇단 말인가. 솔직히 추기경들의 잘못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아랫물이 탁하면 위쪽에서 바로 아래 계급의 사람들을 갈구는 법이다. CEO가 대리가 큰 실수를 했다고 해도 직접 갈구면 체면이 떨어지니까 과장을 갈구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저 추기경은 안 보일 때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흑마법사를 조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실력이 황실기사단 단장인 렉스 경과 비슷해 보였다. 과연 추기경이라는 걸까.
"그보다 이번에는 함께 할 수가 없겠네. 몇몇 실력이 좋은 용병이 참여할 거라고 폐하께서 확언해 주셔서 너희들이 참여하는 거지 사실은 거의 별동대 아니니? 우리는 황실기사단과 역할을 확실히 나뉘어 배분된 상태라서 말이야."
"네. 사실 그게 저한테도 좋아요. 아르잔의 신성력을 교단의 이들에게 대놓고 보여 주는 것도 좀 그렇고 제 힘도 그리 알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내 백수 라이프를 위해서라도.
장인어른께서는 날 어떻게 황실의 전력으로 꼬드기고 싶으신 듯한데 앨리스한테 부탁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다.……그래야 한다.
"어쨌든, 위험한 상황이 된다면 누나를 불러. 레온의 실력이야 오크 웨이브 때 봤지만 흑마법사를 상대로는 누나가 더 쎄다고!"
누나.미안한데, 나 [성흔] 보유자야……. 그런데 자랑스럽게 알통도 없는 팔을 들어 보이며 자신감 있게 말하는 누나를 무안하게 만들 수가 없었기에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
아비 누나랑 얘기를 좀 더 나누다가 텔레포트 게이트가 완성되기 직전에 기사단장 렉스 경에게 광산의 지도를 넘길 수 있었다. 까먹고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이트 가문 소유의 광산인 만큼 그 후계인 다이너는 광산의 길을 제법 속속히 기억하고 있더라. 그래도 2년 전 지도였다고 하니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도 했다. 기사단장은 고맙다고 말하고는 지도를 살피더니 우리한테는 지진에 대비해 도망칠 지도 모르는 경로를 가리키며 이쪽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
해봤자 잔당처리에 불과한 작업이 되겠지만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꿀 빨면서 적당히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흑마법사 조직 도망자 처리' 같은 공적으로 기록될 수 있으면서도 위험도는 낮다.
그렇게 완성된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이동한 나는 아르잔과 둘이서 비상용 통로를 두고 길을 점거했다. 제법 넓기는 했지만 내 불꽃의 오러라면 전부 커버가 가능하니 딱히 문제는 없었다.
내 성화(?火)는 흑마법사에게 천적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나저나 기사단과 교단이 흑마법사들을 칠 때까지 아무도 이곳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아르잔뿐이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아비 누나랑 시시덕거린 내가 아르잔과 있기에는 좀 어색하고 미안했다.
일단, 나는 아르잔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대놓고 말하는 걸 전에 남자였단 이유로 꼬셔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직접 말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계속 내 곁을 호위하며 어필을 감행했다.
그런데 무시하고 아르잔의 전처(?)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한 셈이 아닌가.
그런 내 기색을 읽은 건지 아르잔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공자. 저 때문에 그렇게 어색해 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이미 '아르잔느'고 아비랑은 그저 소꿉친구에 불과하니까요. 그저 서로 사랑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한 위장결혼이었고 동성친구처럼 지냈었을 뿐이니까요. 공자가 오히려 아비를 받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여장을 극도로 부정했다면 아비도 그 속이 탈 때까지 꾸욱 참느라 괴로웠을 테니 오히려 저는 공자에게 감사할 나름이라고요."
"쩝.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네."
"후훗. 그렇게 미안하시면 나중에 일일 데이트 같은 걸 해 주셔도 상관없고요."
"아니, 그건 좀."
그러다 문득 주변을 경계하느라 이리저리 둘러 보는 아르잔의 등허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날개의 물리적인 구조 때문에 등이 훤히 파인 갑옷을 입고 있는 아르잔은 가슴도 앨리스만 해서 시야를 끌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건 등허리 라인과 앨리스보다 포동한 말벅지라고 생각됐다.
말 하면 튼실한 다리에 의한 하체 근육이고 등허리는 저렇게 훤히 드러난 옷을 입고 다니니 눈에 자주 띄어서 그런 것 같고.
말보지를 따먹고 페가수스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주신 아가사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랬던 걸까.
"그런데 아르잔. 하나 궁금한 게 있는 데 물어도 돼?"
"공자는 얼마든지 제게 궁금한 걸 물어도 돼요."
"…그럼 염치 불구하고 하나만 묻겠는데귀족 중에서도 동성애자가 제법 되는 것 같던데 왜 독신이었던 거야?"
"공자."
아르잔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뒷목이 살짝 서늘해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동성이 좋아도 저도 안목이 있는 수인입니다. 저를 아무 남자만 보면 뒤를 내어줄 수 있는 걸레로 보지 말아 주셨으면 하네요."
"아, 응."
그런데, 그거…….
한 마디로 걔네들이 너무 못생겨서 싫었다는 소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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