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보추콘 수녀님 (18)
* * *
네크로는 요즘 이상한 일을 겪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키메라 구울' 엘레오노라만을 상대로 떡을 치고 사정을 하여 성욕을 해소시켰다. 시체에 밖에 흥분하지 않는 자신에게 있어 멀쩡한 여자를 가질 수 없었기에 그는 직.접. 흑마법사까지 되어 흑마법사 단체인 육주성… 최근, 육봉성으로 개명된 조직에 가입했다. 자신에게 오는 지원금을 육봉성의 자금으로 빼돌려 공을 세운 그는 사령술을 배워 네크로맨서가 되었고 의외로 재능이 있던 건지 실력을 인정받아 여섯 번째 기둥, 육봉(?)이 될 수 있었다.
이대로 자신은 엘레오노라와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며 삼봉의 계획을 구경하며 떡을 치면 된다.
자신에게는 엘레오노라만 있으면 뭐든지 용납이 가능했다. 자신의 평생을 바쳐도 아쉽지 않을 언데드 초미녀를 아내로 삼은 네크로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릴 마음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그런 애처(?)인 엘레오노라를 냅두고 자신이 어떤 야만족 미소녀와 사귀다가 바람을 피고서 자신 쪽에서 차버렸다는 이상한 소문이 난 것이다. 감히 자신의 순정(?)을 모욕한 걸로 모자라 누명을 씌우다니! 네크로는 친히 그 야만족 혼혈의 소녀를 찾아가 해명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림자' 출신인 하사나가 그 흔적을 다 지웠기 때문이다. 색적 전문 레인저를 고용한다면 모를까. 고작 수소문으로는 '레오나'라는 혼혈 야만족 소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뭐, 상관없겠지."
그래. 자신은 엘레오노라와 떡이나 치면서 주변의 정세를 관람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게다가 며칠 후면 완성될 키메라가 황도를 엉망으로 만들 테니 거기에 휘말려 죽을 거라고 기대해 보자.
분명 자신들의 계획대로라면 최근에 미망인이 되어버린 성녀체질의 상급 수녀인 아비게일 윌리엄스가 성배로 때려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신성력 내구성을 높혔다고 한다. 제작할 때 고명한 사제들의 뼈마저 키메라 제작에 합일시켰다 하던데 그 덕분에 신성력에도 상당히 버틸 수 있으며 교단의 이들이 모두 나서도 충분히 황도 하나 정도는 전복시킬 스펙이라고 한다.
그는 오늘도 엘레오노라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시녀복 치마 위로 엉덩이를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간다.
"야, 이 시체박이 새끼야아아아──────!!!"
◇◇◇
장인어른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나는 황성을 나와 다시 그림자 속에 숨은 하사나와 아르잔을 대동한 채 필리아 남작 저택으로 향했다. 앨리스는 오랜만에 뵙는 친부와 시간을 좀 더 가져도 된다고 말하고 황성에 냅두고 왔다. 딱 봐도 장인어른이 딸래미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같기에 점수 따려고 냅두고 온 거다.
그리고 묘지기 같은 새끼는 성화무형검을 쓰는 나와 전직 상급 수녀 호위 담당인 성기사 아르잔이면 충분하다.
다이너가 공작가의 기사답게 평균은 넘지만 말 그대로 평균만 넘는 수준의 기사여서 혹시 몰라 제외시켰고.
그래서 다짜고짜 건국제 무덤에 찾아가 욕을 박았다.
"그런데 증거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걸까요?"
"괜찮아. 정보길드한테 네크로가 아직 저택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정보를 구매했어. 증거는 그 건국제 시체로 만든 구울을 데려가면 되니까 일단 부딪히고 보면 어지간해선 될 거야. 그리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해봤자 예상 못한 변수가 하나 튀어나오면 작전을 갈아엎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끄덕끄덕.
이미 화안금정을 사용하는 상태라 그림자 속에서 하사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보인다. 타이츠 위로 출렁이는 가슴이 예술이군. 아르잔은 기사답게 갑주를 입어서 격하게 움직여도 하사나와 같은 출렁임을 볼 수 없다. ……아니, 아르잔의 가슴을 못보는 걸 왜 아쉬워하냐.
잠깐의 현타가 와 침묵하고 있는데 저택의 문이 열리며 네크로 필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와서 이게 무슨 행패시죠?"
"닥쳐 새꺄. 시체한테 비엔나 소시지만한 좆을 흔드는 새끼가 어디서 연기질이야? 네 구울도 자아가 있었다면 네 좆을 받아 주고는 속으로 실망해서 떠날걸?"
"이런 천인공노할 새끼를 봤나?! 엘레오노라는 나와의 관계에 만족하고 있다고!"
바로 발짝하는 시체박이 묘지기.
저번에 보니까 건국제한테 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던데 정말로 성벽의 문제, 이상성욕 정도가 아니라 '엘레오노라'라는 구울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내 도발에 저렇게 쉽게 낚이면서 발끈하지.
모습을 드러낸 시체박이에게 검을 겨누며 나는 장인어른께 받은 칙서를 꺼내들었다. 칙서를 펼친 나는 네크로에게 황명을 전했다.
"황명이다! 필리아 남작은 황성으로 와서 비등록 흑마법사와 관계가 없다는 조사를 받으라!"
"화, 황명이라고?"
"이거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칙서를 양아치처럼 살랑살랑 흔들며 이죽거리며 시체박이에게 경고했다. 녀석의 안색은 푸르죽죽하게 변하여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귀족. 황제인 장인어른의 칙서 한 방이면 끝장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사를 받아보기 위해 불러들이는 걸, 그것도 황도에서 거주하는 귀족이 거부한다면 그건 빼박이다.
"이거 어기면 황명을 어기게 돼서 즉결처분이 가능하다고. 네 엘레오노라라는 구울도 함께 참석했으면 하는데?"
"……큭. 크크큭. 크크크크크!"
외통수에 처한 시체박이 녀석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잡혀서 고문당할 거 생각하니까 실성한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시체한테 좆 박을 정도로 정신 나간 녀석이 고작 고문을 당할 거라는 상상에 미쳐버릴 정도로 심지가 나약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어리석었군! 황실이 그리 무능하지 않다는 걸 알고도 빤히 황도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거늘! 그러나 네놈들은 실수했다."
시체박이가 품에서 해골 문양의 수정구 지팡이를 꺼냈다.
아니, 시바 저 새끼 네크로맨서였어? 그럼 네크로 필리아라는 시체성애자가 네크로맨서라고? 저 놈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이름을 지어준 건지 모르겠지만 이름 하나는 찰지게 잘 지은 듯하다.
"내가 왜 묘지기를 그만두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네크로맨서! 시체의 주인일지니! 이곳은 나의 영역이도다!"
"가만히 지켜볼 것 같나요!"
나보다 아르잔이 먼저 출격한다. 성전환 부작용으로 상시 격세유전 모드인 아르잔이 찬란한 신성력을 일으키며 페가수스의 힘인 뇌전을 일으킨다. 성뢰(?雪)가 사방에 퍼지며 빠르게 시체박이의 기운을 부딪히는 족족 지저버렸지만 녀석에게 도달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구울 시녀가 되어버린 건국제 엘레오노라가 대검을 들고서 아르잔의 돌격을 정면에서 막았기 때문이다. 아르잔이 일으킨 성뢰의 영향을 버티는 언데드도 놀랍지만 맨검으로 저 오러가 넘실거리는 한손검을 막은 것도 신기했다. 화안금정으로 집중해서 보니까 통짜 미스릴 검이더라. 그 사실을 눈치챈 아르잔이 혀를 찼다.
"쯧! 마이트 상단의 미스릴 금광을 이곳에 낭비한 거였군요!"
"하하.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정보가 어디서 샌 건지 모르겠지만 그 고민은 일단 너희를 죽이고 나서 해야겠군. 가증스러운 성기사, 그것도 보기드문 격세유전 수인이라면 훌륭한 키메라의 재료가 될 수 있겠지."
그 사이에 시체박이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지팡이를 높이 들더니 외친다.
"일어나라."
그러자 무덤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수많은 시체들이 올라온다. 건국 이후 무덤을 관리하며 수많은 이의 장례를 치른 이 무덤가에서 황도의 사람들이 되살아난다. 그중에는 강자도 있던 건지 검을 든 스켈레톤 나이트나 지팡이를 든 스켈레톤 메이지도 간간히 있었다.
……이거 황도 경비대를 불러서 포위했으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는데.
칙서로 걔네들에게 주민 대피령을 도우라고 지시를 내리길 천만다행이다. 언데드가 대량 생산되자 엘레오노라와 검을 나누던 아르잔이 뒤로 물러나 내 곁으로 돌아왔다.
"다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네크로 필리아. 우리 조직 육봉성의 여섯 번째 기둥인 육봉(?)이 바로 나다!"
아니, 조직명이 육망성도 아니고 무슨 육봉성이야. 이름만 보면 더러워서 들어가기 싫어질 것만 같다.
나는 시체박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육봉성? 육봉(??)? 아니, 씹. 조직 이름 한 번 더럽네. 걔네들도 너처럼 이상성욕 갖고 있냐?"
"육봉(??)이 아니라 육봉(?)이다!"
발끈하는 시체박이. 나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육봉(??)아. 구울한테 얼마나 씹질을 했으면 조직에서 육봉(??)이란 이명을 받은 거냐? 남자로서 이해해 줄게. 얼마나 건국제의 보지를 따먹고 싶었으면 구울로 부활시켜서 비엔나 소시지를 처 박았겠어."
"공자. 그래도 건국제신데 그리 말해도 되는 건가요?"
"아르잔, 폐하께 이 대화 보고할 거야?"
"아뇨."
그럼 문제 없잖아.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널 믿고 있다고 신뢰를 내비치자 아르잔이 발그레 웃는다. …존나 예쁘네.
"그래서, 육봉(??)아. 포기하면 여기서 적당히 기절만 시켜서 오지 멀쩡하게 데려가 줄게."
"사지가 아니라오지요? 머리를 포함한 건가요?"
"세 번째 다리까지 포함하면 오지지."
"아."
우리끼리 콩트를 나누는 데 기어코 부들부들거리던 네크로가 급발진을 터뜨렸다. 인내심도 없는 새끼였다.
"크아아아아아아! 육봉(??)이 아니라 육봉(?)이라니까 이 새끼들아! 됐어! 그냥 모두 조져라!"
덜그럭. 덜그럭.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강아지 인기간식 1위들이 이빨을 따닥거리며 달려든다. 나는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며 아르잔에게 부탁했다.
"아르잔. 저 건국제 시체로 만든 구울을 얼마나 잡아줄 수 있어?"
"공자께서 원하신다면 팔을 내어줘서라도 당장 쓰러뜨릴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동성(?)의 사랑이 너무 무겁다. 나는 적당히 시간을 끌어주면 된다고 설명하고 쇄도해 오는 스켈레톤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네크로가 조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애송이가 제 분수도 모르는군! 이 해골 수정 지팡이는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화아아아앗!
"…………뎃?"
내 손등에서 성흔이 찬란한 광휘를 터뜨린다. 검을 놓고 성화무형검을 만든 나는 그 형태를 한손검에서 검신을 가늘고 길게 쭉 늘려 연겸으로 바꾸었다. 오러가 EX등급에 도달하면 가능한 기예였다. 말 그대로 무형검(無??)답게 형태가 없어서 내 제어대로 연검의 형태를 취한 성화무형검을 그대로 채찍처럼 다루어 손목의 스냅을 힘 주어 스켈레톤들을 베고 불사르러 정화시킨다.
그래도 나름 스스로 간부라 주장한 네크로는 내 손등의 문양을 보고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서, 성흔?! 엘레오노라! 어서 저 소년을 죽여!"
"그렇게는 안 돼죠. 공자의 신성한 작업을 방해하지 마세요. 게다가 당신의 상대는 저잖아요?"
아르잔이 방패를 들어 날 방해하려고 돌진하려던 엘레오노라를 막았다.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하자, 고 생각한 나는 휘두르는 성화무형검연검의 길이를 더욱 늘렸다.
아르잔이 시간을 벌어준 사이에 여의처럼 내 뜻대로 늘어난 불꽃의 참격이 그대로 몇 번의 칼질 끝에 무덤가의 스켈레톤 거의 전부를 쓸어버린다.
엘레오노라가 아르잔에게 붙잡혀 있는 사이에 나는 성화무형검을 해제하고 그냥 오러 둔기를 만들어 어깨에 걸치고는 시체박이에게 다가갔다. 무덤가를 뛰어다니고 뼈다귀 사이를 누비느라 먼지가 입에 조금 들어간 나는 대충 잔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녀석의 앞에서 물었다.
"유언은?"
"………허허허. 자네, 이제 보니 아주 신수가 훤한 게 여자들이 많을 것 같은 인상이구만! 사람은 본디 예전부터 소통을 하라 가르침을 받아왔지. 우리, 문명인답게 얘기로 해결하는 게 어떻겠나? 내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네."
"내게 성흔을 하사하신 주신께서 말하시니, 개새끼는 매가 약이라더라."
오러 몽둥이를 쥔 손가락이 쑤신다는 듯이 꿈틀거리자니 휘두를까 봐 겁을 먹은 시체박이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
"……."
"……헤헤."
"뭘 쪼개 새끼야."
올려다 보느라 목이 아프다. 그러면 눈높이를 내 쪽에서 친히 맞춰주는 수밖에.
빠각!
나는 시체박이의 무릎을 향해 오러 뭉둥이 찜질을 해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