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보추콘 수녀님 (10)
* * *
앨리스. 풀네임이 앨리스 그윈인 내 호위기사이자 연인이며 공작가를 나올 때부터 내 전속기사가 되겠다고 아버지께 간청한 충성스러운 여인. 솔직히 왜 내게 반했나 싶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든 앨리스는 내 여기사이며 연인으로 절대 내게 해가 될 일을 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다만, 앨리스가 만약 정말로 내 예상대로의 신분인 공주님이고 이번에 황제를 알현하며 그가 우리의 관계를 꿰뚫어 보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처녀까지 따먹고 여자로 여럿인 데다가 비키니 아머까지 입히고 데리고 다닌다? 만약 먼 미래에 내 딸을 그렇게 만든 녀석이 눈앞에 있다면 묵사발을 내지 않을까 싶다.
한 마디로 난 조진 것 같다.
"하아. 하사나. 앨리스랑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하니까 잠깐 복도에서 대기해 줄래?"
스르륵.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다시 잠잠해진다. 화안금정으로 보니까 정말로 비켜준 듯하다.
하사나도 없으니 여성진의 방문을 두드렸다.
"앨리스. 할 말이 있는데 지금 들어가도 돼?"
"네, 레온. 얼마든지 들어와도 됩니다."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앨리스의 정체에 묻는다는 사실에 긴장한 건지 상남자처럼 문을 열어재꼈다.
그곳에는 여느 때처럼 발키리 아머를 입은 앨리스가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친 용병들 사이에서 비키니 아머를 입은 미녀는 이목을 많이 끌고 시비나 추잡스러운 시도도 많았을 테니 그런 놈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이나 조사를 하며 진이 빠진 모양이다.
앨리스를 냅두고 아비 누나랑 고해성사실에서 떡을 친 걸 떠올리니 갑자기 미안해지네. 요즘 챙겨 주지 못 해서 남자친구로서 죄책감이 든다. 반성하자.
그래도 물어 볼 건 물어 봐야지.
"앨리스. 중요한 얘기인데 혹시 시간 돼?"
"네. 마침 지금 시간이 빕니다. 저녁에는 또 조사를 하러 주점들을 돌아다닐 예정이지만 지금은 넉넉합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손을 겹치듯 쥐었다. 손을 붙잡고 눈을 똑바로 응시하자 앨리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포니테일을 살랑인다.
"하나만 물어 볼게. 혹시 앨리스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그건……."
"앨리스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구나."
눈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앨리스의 눈은 초점이 날 향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나는 손을 꾸욱 잡아주었다.
"당황하지 않아도 돼. 질책하려거나 무슨 충격적인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저 연인이 됐는데 요즘 내가 앨리스에게 너무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야. 무심했다고 느끼고 자책하고 반성하는 김에 앨리스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해서 묻는 거야. 정 꺼려진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
내 말에 복잡한 눈을 하는 앨리스. 설마 그녀가 황제의 사생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앨리스에게서 느껴지는 품격이나 기품이 귀족 같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설마 황제 씩이나 되는 양반의 사생아겠는가~ 했었다.
아니, 사실 황족의 핏줄이 칼 잡고 휘두르면서 여기사 되고는 나 같은 금발태닝 합법쇼타의 여자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만큼 앨리스의 사정이 복잡하다는 거겠지.
나는 인내심 있게 앨리스의 결정을 기다렸다. 말해 주지 않는다면 아쉽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우리 관계에 있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없다고 믿어볼 수밖에.
"긴 이야기가 되는 데 들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즉답이었다.
◇◇◇
황제는 권태했다.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식을 황위에 올리기 위한 암중모략 속에서 말리는 것도 질리다 못해 지쳤다. 아직 아이들이 성인도 되지 못한 지금 이런 꼴인데 다 크고 머리가 굳으면 아들딸 놈들은 또 어떻게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될까. 자식 문제는 자식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한 황제는 문득 이 환경에서 일탈하고 싶다는, 황족으로써 담당해야 할 의무에 반발심이 들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호위기사만 대동한 채 변장을 하여 황성을 나가 황도 곳곳을 누벼 보았다.
시장길을 다니며 싼값에 팔리는 일반 백성의 군것질거리를 먹어 보기도 하고, 시창가에 가서 창녀를 돌려 가며 몇 시간을 주지육림으로 보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선 며칠 보내고 싶었을 정도지만 그랬다간 황성에서 난리가 나리라.
그렇기에 황제는 열심히 업무를 보아 빠르게 처리하고는 남은 여가 시간을 변장하여 황도에서 누비는 데 사용했다. 그러다 도적들 무리와 얽히기도 하고 용병과 시비가 붙어 쌈박질을 하다가 멍이 드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분을 감추고 위장한 채 황도를 거닐며 자신의 백성들은, 제국의 사람들은 이렇게 각양각색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황성에서 정치질을 하느라 머리의 피를 말려 가며 언쟁과 논쟁을 하는 귀족들과 달리 하루하루를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동하던 호위기사와 정분이 나고 말았다.
임신했다는 사실에 그는 책임지고 여기사를 후첩으로 들이겠다 선언하려 했으나 되려 그녀가 만류했다.
그저 자식을 홀몸으로 잘 돌볼 수 있도록 편의를 봐 달라는 부탁뿐이었다. 그녀 또한 황제를 호위하여 황도를 돌아보며 그가 본 것을 같이 보았던 사람이다. 여장부인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기에 자식에게 미안한 짓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홀몸으로 아이를 낳고 기사를 그만둔 그녀는 황제의 비밀스러운 지원을 받으며 키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가끔 기사였던 시절을 잊지 못해 검을 휘두를 때가 있는 데 그 모습을 본 딸은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고 옷매를 펄럭이며 속살이 조금씩 보이는 어머니는 매우 아름답고 존경스럽다고.
어머니를 동경한 아이는 그렇게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 받은 건지 소녀는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빠른 시간 내에 모친의 검을 체득하던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스킨을 사냥하려고 마을을 나섰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다.
그린스킨 중에서도 산의 폭군이라 불리는 오우거를 단칼에 베어 버리는 소년을 말이다.
◇◇◇
그러고 보니 나 예전에 스킬 사용하는 거 익숙해진답시고 오우거 같은 단신으로 활동하는 그린스킨들 무작정 사냥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의 모습을 엘리자베스가 본 모양이다.
그때는 정말로 [화기]와 [오러], 그리고 [마공]까지 사용하면서 흑염룡을 만들어 검신에 두르던 한창의 때가 아니던가. 설마 내가 그때 '흑염룡의 힘을 보여 주마!'라고 외쳤던 대사를 들은 건 아니겠지? 다른 의미로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때 도련님에게 반해서 옆에 있을 려고 공작가의 기사로 입단한 겁니다. 실력은 확실히 인정받았지만 평민에 여성이었던 제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에는 폐하의 입김이 아예 없지 않아서 가능했고요. 현재 제가 사용하는 앨리스 그윈은 가명입니다. 진짜 이름은 저도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엘리자베스 나이트킹덤입니다. 엘리자베스를 살짝 바꿔 줄여 '앨리스', 그리고 어머니의 성씨인 '그윈'을 합쳐 앨리스 그윈이 됐던 겁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며 가끔 황성에서 제 출생의 비밀을 아는 극소수의 기사분들께 지원을 받는 건 나름대로 즐거웠습니다. 나빴던 기억은 딱히 없지만 얼굴 할 번 비추러 오지 않는 무책임한 폐하에게는 좀 불만이긴 합니다만."
"결국 앨리스의 진짜 이름은 엘리자베스 나이트킹덤이란 거네?"
"네. ……혹시 제 신분 때문에 제가 꺼려지십니까?"
불안하다는 듯 이쪽을 쳐다보는 앨리스, 아니 엘리자베스. 나는 그녀의 눈빛에 고백을 거절당할까 봐 전전긍긍 고백도 못하던 여기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좆을 붙잡힌 채 고백 받아서 진짜 당황했었지.
지금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앨리스를 싫어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건 동인인물인 엘리자베스 또한 마찬가지야."
두 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분명 내 머리가 그녀의 쇄골에 파묻히는 키 차이였는데 지금은 웬지 엘리자베스가 내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자신을 꺼려 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던 거겠지.
나는 괜찮다는 듯 그녀의 탄탄한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앨리스 네가 설마 죄인의 자식이었다고 해도 내가 널 포기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아니, 이제는 내가 포기 못해."
꽈아악.
엘리자베스를 껴안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간다.
"레, 레온?"
"생각해 보니 짜증 나네."
"네, 네?"
당황하는 엘리자베스를 밀어 천천히 침대 위에 눕힌다. 그 위로 올라 탄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그냥 검술 스승 겸 호위기사였다가."
올라간 손이 엘리자베스의 뺨을 매만진다.
"나랑 마음이 잘 통하는 누나였다가."
다시 내려간 손이 발키리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커다란 젖가슴을 강하게 쥐었다.
"이제는 내게 있어 손꼽히는 소중한 인물이 됐잖아. 내 여자잖아. 그런데 왜 계속 그렇게 불안해 하는 거야. 앨리스 그윈은 가능해도 엘리자베스 나이트킹덤은 내 여자로 있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거잖아."
"그, 그게……."
엘리자베스라는 자신의 본질을 잊으려고 하지 않기에 그녀는 불안해 하는 거다. 그렇다고 나는 내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불안감의 근원인 그런 신분 같은 건 잊으라고 강제하거나 제안할 마음이 일절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말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겉으로는 황족에게 틱틱 대는 반응이지만 황제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마음 속 한 켠에서 부정(??)을 갈구하는 그 감정을 나는 변질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눈앞의 불안해 하는 여인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걸까.
"그럼 다시 한 번 알려 주는 수밖에 없지."
"네?"
갑자기 기승전야스로 넘어가려 하자 엘리자베스가 당황한다. 옷을 벗어 던진 나는 그녀를 껴안고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앨리스 그윈은 이미 내 여자지만 엘리자베스 나이트킹덤은 내 여자가 아니라서 불안한 거잖아?"
그렇다는 건, 즉!
"엘리자베스 나이트킹덤도 내 여자가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네."
결론은 섹스.
발키리 아머 끈을 당겨 음부를 들춘 나는 성이 난 불기둥을 그대로 꽂았다. 노출증이라 발키리 아머를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시 흥분 상태인 엘리자베스의 보지는 이미 흥건해서 언제든지 내 왕자지를 꽂아도 상관없었다.
찔꺽.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