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보추콘 수녀님 (8)
* * *
"이런 샹. 얘네들은 무슨 창조경제라도 하나? 돈의 흐름이 이건 말이 안 되는 데?"
나는 하사나가 내게 내민 의뢰 자료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대금이 후불이긴 해도 아다만티움인 만큼 당신의 그림자는 필사적으로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줬고 나는 정보를 조합하며 고해성사실에서 아비 누나와 정보를 공유하며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의뢰 자료를 읽다 보면 요정 노예를 싼 값에 구매하긴 해도 비싼 노예마저 대금을 턱턱 내놓으며 구매하는 이 녀석들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트 가문에서 빼돌린 돈으로도 부족해 보였다.
내가 그렇게까지 똑똑한 건 아니지만 전생에 사무직을 했던 경험과 동시에 이번 생에서 귀족의 자제로서 배우는 기본적인 특유의 계산법으로 대충 머리 속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녀석들은 어디서 돈을 자급자족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림자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하사나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추리 계열 만화에 나오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나올 거면 완전히 나와주면 좋겠다. 그런데 아비 누나랑 고해성사실에서 떡 치다가 누가 오나 싶어 화안금정을 켰는 데 하사나가 딜도를 항문에 꽂으며 자위하는 게 보여서 공적인 일 외에는 대화를 나누지 않게 돼서 말하기가 좀 그랬다. 그래도 사무적인 일에 대한 대화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하사나. 이건 돈의 흐름이 말이 안 돼. 분명 녀석들한테 돈을 대주는 이가 있을 거야. 최근에 돈의 흐름이 이상한 귀족이나 상단 같은 곳은 없었어?"
"두 명 있어요. 묘지기를 자처하는 필리아 남작가의 네크로 필리아 남작이랑 라헬 상단의 후계자인 팍스 라헬이 요즘 돈의 흐름이 이상해요."
"……."
뭐냐. 전자는 시체에다 좆 박을 것 같은 이름에 후자는 중요한 국면에 뒤통수 싸게 후려갈길 것만 같은 이름일세. 어느 쪽을 의심하든 이상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그들에 대해서 조사해 줄 수 없을까?"
"장난하세요?"
반개한 하사나의 눈이 날 째려보았다.
"흑마법사를 조사하느라 이 근방의 조직원들은 다 투입되고 있다고요. 여기서 일을 더 늘리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정보의 질이 떨어지게 될 걸요. 다들 요즘 야근하느라 다크 서클이 생기는 중이거든요. 정말로 그걸 바라시나요?"
"크흠."
솔직히 최근 들어 이것저것 부탁하긴 했지. 나는 찔리는 게 있었기에 헛기침을 하며 양심은 있냐는 듯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역시 내가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정보 수집은 전투랑은 확연히 다른 분야인데 직접 조사하시게요? 어려우실 텐데. 게다가 며칠 후에 황성에 입성하셔야 하는 데 시간이 되시겠어요?"
"정보를 터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
"?"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사나를 무시하며 나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
찰싹.
상단 후계자인 눈앞의 뚱땡이는 때리는 맛이 있었다. 땀이 묻는 건 기분이 나빴지만 출렁이는 살결이 주먹을 부르게 하는 불쾌감을 주어서 더욱 때리고 싶어지게 만들더라.
찰싹.
그래서 싸다구를 한 대 더 때려줬다.
"끄아악! 이 사악한 놈! 내가 뭘 했다고 납치해서 다짜고짜 때리는 거냐?"
"닥치고 좀 더 맞아라."
철썩.
"아아아아악! 신성한 황도의 뒷골목에서 대놓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황도 경비병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 새끼야!"
"글쎄."
녀석의 말대로 여긴 상자로 조금 가려졌을 뿐이지 50m만 걸어도 황도의 대로가 나오는 뒷골목이다. 누가 관심을 갖고 들어오면 금방 들키고 난리가 벌어지겠지만 순찰을 돌기도 바쁜 경비병들이 이 뒷골목을 살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진작에 기막을 쳐서 소리를 차단했거든.
형수님과 불륜 임신 섹스를 하느라 스스로 깨달았던 [기막]은 정말로 유용했다. 이렇게 뒷골목에서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누군가를 팰 수도 있게 환경을 조성해 주다니. 내가 이걸 왜 삭제했나 몰라.
기둥에 묶힌 채 주저앉아 아무것도 못하는 상단의 후계자 팍스 라헬. 녀석은 오러고 마법이고 일절 배우지 않은 데다가 건방진 성격 때문에 호위까지 없는 녀석이었다. 이런 놈이라면 흑마법사들이 세뇌한 여자들로 보지 좀 대주면서 상단의 자금을 쪽쪽 빨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상단의 자금에 요즘 이상한 기류가 돌더군. 대부분이 네가 썼다는 결론이 나오던데 그 사용처가 불분명하단 말이지."
"그, 그건……."
찔리는 게 있는 건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식은땀을 흘리는 배불뚝이 상단 후계.
적어도 이 새끼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건 잘 알겠더라.
복면을 쓴 나는 쭈그려 앉아 내려다 보며 일부러 기운으로 녀석을 짓눌러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말했다.
"빨리 불지 않으면 아주 끔직한 경험을 갖게 될 거야. 심각하면 트라우마로 평생 고생할 지도 모르지."
내 진심이 듬뿍 담긴 협박에 배불뚝이 상단 후계자는 움찔했으나 결국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는 지 당당하게 외쳤다.
"내가 그런 협박에 넘어갈 것 같나? 나는 대 라헬 상단의 후계자란 말이다!"
"그 자존심이 언제까지 버틸 지 기대할게."
"뭐, 뭐라?"
보통 한국인이라면 한 번은 더 물어보듯 녀석도 그럴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거절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 보고 벌벌 떠는 팍스. 나는 발을 무릎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발바닥이 향하는 곳부터 내 시선은 녀석의 고간이었다.
"?!"
시선과 발의 방향을 눈치챈 팍스는 자신의 고간과 내 시선을 번갈아 보며 이내 진짜 밟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는 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포박을 풀고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남성의 의지가 그에게 더 큰 힘을 일으키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만화랑 다르단다. 열정 소년물처럼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당장 이 환생인지 빙의인지 모를 사건에 휘말리고 아바타가 습득해 놓은 스킬이 아니었다면 아주 주옥이 되어서 진작에 시체가 됐을 지도 모를 정도로 험난한 세계니까.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위해 녀석의 고간을 있는 힘껏 밟았다.
꽈직. 푸석.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살이 터지는 소리. 계란 하나와 소시지 하나가 터졌다.
"꺼어어어어어어어…………………………………."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덮친 것인지 그는 입을 쩍 벌리고 비명을 지르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아들이 사망한 광경을 보고 눈빛이 곧 죽을 사람처럼 빛이 꺼지려고 했다. 미안하지만 단순한 상처라면 나는 되돌릴 수 있다.
아가사 신이시여. 이 빵빵한 배터리 좀 쓰겠습니다.
"힐."
[성흔]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팍스의 고간에 내려앉는다. 막대한 신성력으로 신성술에 재능도 없는 나는 막무가내 식으로 팍스의 죽은 아들을 치료했다. 회복되면서 생존본능이 발휘된 건지 발기까지 하며 바지를 부풀리는 팍스의 아들. ……존나 작았다.
자신의 아들이 부활한 걸 본 팍스가 두 눈을 부릅 떴다. 설마 부서진 걸 재생시킬 줄은 몰랐겠지.
"당신! 신성력을 보아하니 교단의 고명한 위치에 있는 것 같은데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사람 살려!"
"미안하지만 난 이단심판관이다."
"헙!"
이단심판관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고 경악하는 팍스. 내 그림자가 일렁이며 그런 거짓말을 해도 되냐는 듯 의사를 묻지만 괜찮다. 이미 다이너 경이 날 이단심판관이라며 추종하는 데 뭘 인제 와서.
이왕 쓸 거면 팍팍 쓰면서 뽕을 제대로 뽑아야지.
귀족이 아닌 이상 이단심판관이 누구 하나를 잘못 조져도 형벌은 가볍다. 그들은 광신도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수사를 하고 공정하게 판별하여 죄인과 이단을 가리기 때문이다. 잘못 걸려서 조지면 그건 진짜 불상한 놈이지만.
팍스가 떨리는 눈을 하고서 내게 물었다.
"이, 이단심판관이셨습니까?"
"그렇다. 최근에 흑마법사가 암약한다는 정보가 들어와 황도에서 자금의 기류가 이상한 이들을 추적 중이다. 그 중에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게 네놈이지. 왜 경비병이 네 비명에도 안 찾아오는 지 아나? 이단심판관의 직위로 경비병에게 이 인근에 사람들을 물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지."
"아닙니다! 저는 절대 아니에요!"
이제는 정말 뒤져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떨어진 건지 핏기가 가신 새하얘진 얼굴로 팍스가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다. [화안금정]으로 보는 심장의 박동부터 동공의 떨림까지, 그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지. 이 새끼가 정말로 흑마법사의 세뇌에 당해 이중인격인 걸지도.
"그럼 자금이 어디로 빠져 나갔는지 어서 밝혀라."
"저, 저는 게이입니다!"
"……."
"……."
뒷골목에 울려퍼진 팍스의 외침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아니,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팍스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저, 저는 사실 게이라서 남자가 좋습니다. 그래서 최근 암시장에서 입수했다는 오크 샤먼킹의 주술집 중에 성전환의 주술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구매하기 위해 비상금을 모으고 있었던 거란 말입니다. ……흐윽."
진짜로 눈물을 질질 짜며 콧물눈물, 심지어 오줌까지 방출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싸고 있었다. 고문을 당하다 자신의 극비사항이나 다름없는 비밀까지 들켰으니 오죽 자괴감이 심할까.
이러니 돈이 사라진 출처를 당연히 당신의 그림자에서도 찾지 못했을 거다. 그야 모으느라 쓰질 않고 있었으니까. 빼돌린 흔적은 있는 데 쓴 흔적이 없으니 착각한 것이다.
아니, 누가 파오후 같은 뱃살을 출렁이는 배불뚝이가 게이라고 예상했겠냐고.
"어……. 음……."
시바 아르잔에게서 이상성욕에 대한 고백을 들었을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놈이 가해자면 모를까 내가 가해자고 이놈은 피해자였으니 말이다.
그림자 속에서 힐난하는 시선을 보내는 하사나를 무시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던 나는 뒤통수를 긁적일 뿐이었다.
"미안?"
"흐허허허헝!!"
"아니, 진짜 미안."
"꺼어어어이어─────!!!"
울며불며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하려는 팍스 라헬. 얘를 대체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이대로 풀어 주기에는 알아서는 안 될 정보를 알고 말았는데.
잠시 고민한 나는 손날을 휘둘렀다.
"기억삭제술(물리)!"
빡!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