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보추콘 수녀님 (4)
* * *
앨리스는 용병 길드에서 정보를 조금 모아보겠다고 갔고 다이너는 가문과 비밀리에 접선해 정보를 캐내겠다고 하고 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혼자 남은 아르잔에게 고해성사실에서 아비게일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전해주었다.
"아비라면 확실히 흑마법사가 싫을 거예요."
"무슨 악연이 있었나 보네."
"그렇죠. 뭐, 원수라고 봐도 무방할 거예요."
그 이상은 말하길 꺼려하는 아르잔이었다.
타인의 과거, 그것도 친구의 것을 함부로 꺼내기는 꺼려진다는 기색이 느껴졌기에 나는 납득하고 캐묻지 않기로 했다. 지인의 비밀을 캐내는 것부터 지인의 지인에게 물어본다는 사실은 극히 비매너적인 행위니 말이다.
대충 이야기를 돌리기 위해 고해성사실에서 있었던 일을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기적으로 매일 만나서 서로 정보를 주고 받기로 했다는 말을 하자 아르잔이 상당히 미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비랑 매일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고요?"
"응.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여장을 부탁할게. 교단에 갈 때만 잠깐 하는 거지만 아르잔만큼 수준 높은 변장 실력을 가진 사람은 일행 중에 없으니까 말이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레온은 아비에게 이성으로써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응? 있기야…… 하겠지?"
아비게일처럼 쭉쭉빵빵한 미인 수녀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건 남자로서 크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 형님처럼 말이다.
전신이 모성애와 풍요로움으로 무장한 듯한 몸매는 상급 수녀보다는 성녀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성녀라는 타이틀은 남성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여우 수인+폭유+성녀라는 조합은 특히나 남자에게 푹 꽂히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호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아비게일의 소꿉친구이자 전 남편(?)이었던 아르잔의 앞이라서가 아닐까. 심지어 아르잔은 내게 호감을 표출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아르잔은 내게 정색을 깠다.
"레온. 절 신경 쓴다고 아비게일을 꼬시는 걸 주춤할 필요는 없어요."
반개한 눈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레온은 이미 여자만 둘이잖아요? 앨리스 경이랑 티타니아 양이 그렇죠. 거기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가주가 되는 걸 거부하면서도 돈을 꼬박꼬박 챙기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을 테고요."
"뭐,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겠지."
내가 말하고도 어색하다. 이 세계에서는 재능만 있으면 반대편 성별로 하렘, 또는 역하렘을 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지만 현대인의 사고관을 지닌 나는 뭔가 말하고도 스스로가 쓰레기처럼 여겨졌다.
뭐, 이것도 차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아르잔은 내가 아비게일이랑 이어지면 안 불편해? 친구이자 부인이었던 사람이 먼저 내 여자가 되면 굉장히 불편하고 질투 나거나 하지 않아?"
내 전 부인이 새로운 사랑을 NTL해 버리면 나는 굉장히 불쾌할 듯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건만, 아르잔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즉답했다.
"아뇨. 오히려 좋은데요."
"헐? 왜?"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그만 반사적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아르잔이 설명했다.
"오히려 아비가 레온의 여자 중 한 명이 되었다면 절 도와줄 게 뻔하거든요. 저희들이 그 정도로 정이 없는 사이가 아니에요. 오히려 소꿉친구답게 끈끈한 우정을 갖고 있는 걸요. 그래서 제가 아르잔은 죽었고 새롭게 아르잔느가 된 삶을 살고 싶다니까 흔쾌히 도와주겠다고도 했고요."
"워메."
이게 무슨 1+1 행사도 아니고.
아비게일을 꼬시면 아르잔이 딸려 온다는 건 대체 무슨 행사인 건지 모르겠다. 아니, 시발 그러면 나는 대륙 역사상 최초로 부부(??)덮밥을 실천하는 녀석이 될 지도 모르겠네.
이게 무슨 소리요, 의사 양반. 부부덮밥이라니.
참으로 쇼킹한 장르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가 난데없이 환생하기 전에는 분명 TS장르가 웹소설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게임에서 오크 샤먼킹의 주술에 TS가 들어간 건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저도 아비가 레온이랑 잘 되도록 선물을 보내주고 있어요."
"무슨 선물?"
"아비가 아주 좋아할 만한 걸 해주고 있죠. 아마 너무 마음에 들어서 레온을 덮치려고 들지도 몰라요."
"아비게일이 그런다고? 에이, 설마. 따로 어디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고해성사실에서 절 덮칠 리가 없잖아. 쇼타콘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지?"
"네. 아비가 쇼타콘'은' 아니에요."
역시 아비게일은 쇼타콘이 아니었다.
그녀가 쇼타콘이었다면 엔티알 백작령에 가는 길에 같이 마차에 타면서까지 호위를 했을 때부터 내 정조(?)가 위험했었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밀착 호위를 해달라며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기까지 했었다. 그런 아비게일이 쇼타콘일 리가 없지.
게다가 아르잔의 선물에 꽂혀서 눈이 돌아간다고 해도 성스러운 고해성사실에서 공사를 잘 구별하는 아비게일이 날 덮칠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고 봤다.
"그럼 난 슬슬 가볼게. 졸려서 말이야."
"여기서 자고 가셔도 되는 데요."
"…못 들은 걸로 할게."
여기서 잤다간 성 정체성이 혼란이 찾아올 정도로 사고를 벌일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대답에 아르잔은 태연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쉽네요."
그렇게 여자들의 방에서 떠난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는 그림자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하사나의 보고서를 받고 또다시 정보를 조합하며 내일 아비게일과 만날 때 알려줄 소식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제 내일 아비게일과 만나 정보를 교류할 차례만 남았다.
아니, 근데 하사나 얘 존나 유능한 거 같은데.
나는 슬쩍 그림자를 [화안금정]으로 쳐다보았다. 녀석은 그림자 속에서 날 빤히 쳐다보며 과자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저 과자 고해성사실에 있던 거였는데 언제 챙긴 거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보수집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역시 본고장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빠르다 이건가.
그리 감탄하며 자주 애용하자는 생각과 대금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잠을 청했다.
◇◇◇
"오늘은 특별히 향수도 넣어 봤어요."
"향수까지는 필요 없지 않아?"
"여자에게 무기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에요."
"……."
여자가 아니라서 필요 없다만.
"그럼 난 가볼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조심할 게 뭐 있나.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아르잔에게 변장을 받고 여관을 나섰다. 아르잔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앨리스는 내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젖히고 코를 손으로 가리더니 화장실로 직행했다. 이 모습을 오래 보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다이너는 과연 이단심판관답게 변장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며 감탄할 뿐이지 그 외의 감정은 오롯이 동경과 경외뿐이더라. 이 새끼 가만히 냅두면 광신도로 진화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짝 걱정되기는 하는데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이너가 그리 중요 인물도 아니고.
그리하여 또다시 빌어먹을 레오나가 된 나는 고해성사를 신청했고 접수원의 수다가 벌어지기 전에 옆자리 접수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늦지 않게 아비게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 결국 요정족 노예를 구매한 인물과 몬스터 사체를 구매한 인물이 같다는 거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정보상에게 취한 정보에 의하면 이 구매자는 아예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생기가 없고 목소리가 찢어진다라. 레온 꼬마는 네크로맨서라고 보고 있는 거니?"
"네. 네크로맨서가 사역마를 개별 조종하면서 움직이는 거라면 위험성도 없고 들켜도 흔적만 지우고 떠나면 되잖아요. 가장 잘 도망치는 주제에 물량전은 뛰어난 게 성가시기 짝이 없는 녀석이니 이번에 놓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뇌나 저주를 사용해 타인을 인형말처럼 사용하는 흑마법사도 성가시기 짝이 없지만 네크로맨서는 더하다. 연금술사처럼 사체만 충분하다면 물량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자 겁이 많으면 잡기조차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크로맨서일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꼭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니 아비게일이 적극 공감했다.
"맞아. 네크로맨서는 꼭 족쳐야 해. 불알을 깨 버러야지."
"……워우."
그건 좀.
나마저 기겁할 법한 잔안학 고문을 계획하시는 아비게일 수녀님. 흑마법 계열을 스킬로 습득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적으로 만나게 된 폭유 수녀 아비게일의 둔기술에 내 아들이 깨졌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럼 시간도 시간이니 슬슬 일어나 볼게요."
고해성사 시간인 삼십 분이 다 끝나간다. 더 있다간 누군가에게 목격되거나 의구심을 받게 되겠지.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아비게일이 일어나려던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아비게일?"
"괜찮아. 괜찮아. 내 VIP라고 말했으니까 적어도 한 시간 반은 더 있을 수 있어."
"네? 아니, 시간이 다 된 건 둘째 치고 이야기는 끝났잖."
흠칫.
아비게일의 눈을 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그 아름다운 속눈썹 아래로는 요사스러운, 동시에 색기가 넘치는 눈동자가 날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살랑거리는 아홉 개의 꼬리가…… 아홉 개?
"누나는 아직 레온 꼬마랑 더 있고 싶은데."
꿀꺽.
침이 넘어간다. 성적으로 먹힌다는 위기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오백 살 먹은 티타니아의 요정 보지도 이길 정도로 절륜한 게 나다. 그런데 위기감을 느끼다니.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교단에 뭐라 변명하냔 말이다. 왜 도망쳤냐고 물었는데 아비게일이 구미호 눈나가 돼서 날 앙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라고 할 수도 없고. 복잡한 심정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을 하고 있자니 아비게일이 고개를 쑥 내밀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누나랑 좋은 거 하자?"
……쉬벌 나는 두뇌가 아랫도리에 달려 있는 게 틀림없다.
"헤흐응. 네, 눈나."
따먹혀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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