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보추콘 수녀님 (2)
* * *
"흐음. 용병 셋과 그들을 호위로 고용한 여행자인가. 용병패부터 신분증까지 모두 사실이군. 통과!"
경비병의 검문을 통과한 우리는 황도에 입장했다. 여행자 신분으로 위장한 다이네가 내게 다가온다. 공작가의 기사 신분으로 이곳에 왔다간 흑마법사의 감시망에 걸릴 지도 모른다며 스스로 준비한 가짜 신분은 상단에서 직계를 위해 비밀리에 만든 도주용 신분이라고 한다.
……은밀하게 황도에 입장했다곤 쳐도 발키리 아머로 인해 훌륭한 가슴과 궁둥이를 노출하고 있는 앨리스나 등짝을 엉덩이 골까지 아슬아슬하게 판 갑옷을 입은 아르잔 때문에 이목이 끌리고 있었지만.
"레오 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여관을 잡자고. 너무 늦었잖아. 조금만 늦었으면 황도에 입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알아보자고."
"알겠습니다."
다이네가 수긍한 듯하다. 일행들도 뛰어난 청각으로 내 설명을 듣고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에 머문다니까 날개를 최대한 접고 있는 아르잔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차피 아비랑 만나야 하는데 황도 교황청에서 관리하는 고해성사실과 가까운 여관이 낫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 여관이 있는데 거기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비게일을 언제부터 아비라고 불렀어?"
"네? 이러는 게 여자애 같아서 자연스럽지 않았나요?"
"……여자애는 아니고 여인이라고 하자."
차마 여자애라기에는 나이가 있지 않은가. 이십대 초반이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사실 여자 같지 않냐는 질문부터가 위화감이 가득했지만 아르잔의 자연스러운 태도에 한해서 태클을 거는 걸 포기했다.
아르잔은 아르잔이다. 그렇게만 알자.
"안내해 봐."
"네."
그렇게 아르잔의 안내를 받은 우리는 황도에 있는 교황청 본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여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싸구려 여관도 아니고 제국의 중심부인 황도, 그것도 교황청 옆에 자리한 여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박비가 엄청나게 쌌다.
아르잔의 말에 의하면 교황청이 관리하는 교회에서 거두어진 고아 중 한 명이 독립하여 이렇게 여관을 차리고는 최저비용만 받으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가끔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신도들이 기부금을 모아 적선하는 거로 평범하게 먹고 산다고 하던가.
방을 세 개 빌렸다.
앨리스랑 아르잔 방, 내 방, 그리고 다이너의 방이다. 앨리스랑 같은 방을 쓸까 했지만 방음은 그리 좋지 않을 거라는 아르잔의 조언에 방을 따로 했다.
아무리 앨리스의 노출증을 내가 허락해 준다고 해도 그 이상의 것들, 섹스로 인한 신음이나 교성을 다른 녀석들에게 공유할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형수님이랑 형님 앞에서 한 건 형님에게 굴복감을 준다는 카타르시스가 그 불쾌감을 넘어섰기에 가능했지만.
'내일이면 고해성사실에 가서 아비게일을 만나는 건가?'
삼 주 만에 재회하는 폭유 수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기대감을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려고 했다.
똑똑.
그러기 전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눈을 떴지만 말이다.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직감]과 [화안금정]으로 바깥의 인물이 내게 적의가 있는 지, 없는 지부터 확인하고 무기의 소유를 보고 대처할 방법을 빠른 시간 내에 강구한 다음에야 창문을 열어주었다. 창문을 열자 특유의 보법을 쓴 건지 소리도 내지 않고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와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 타이츠의 암살자.
한쪽 무릎과 주먹이 바닥에 닿은 자세. 아이언맨 식 착지법을 본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암살자가 아니라 중장갑 기사였다면 존나 멋있는 착지였겠는데?'
팔꿈치나 어깨 같은 관절을 지키는 보호대와 성냥팔이 소녀처럼 얼굴을 가리기 위한, 어깨 언저리까지만 내려오는 검정 로브. 그리고 전신은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츠를 입고 있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타이츠가 엉덩이를 반이나 깐 하이레그 형식의 수영복 같은 형태랄까.
발키리 아머의 앨리스가 대놓고 꼴려서 시선을 돌리기 힘들다면 눈앞의 암살자는 망상을 자극하는 듯한 은밀한 꼴림이 있어서 다른 의미로 고혹적인 존재였다.
암살자 미소녀가 날 올려다 보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젖꼭지부터 보지의 도끼자국이 그대로 내비치는 검정 타이츠. 상의는 목과 손목까지 전부 가리는 주제에 허리 아래부터는 하의실종 패션인 건지 맨다리를 드러내며 사타구니마저 하이레그 형식으로 노출이 심각한 타이츠였다. 솔직히 암살자치고 개꼴렸다.
그녀는 내게 손에 들고 있던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고객님. 의뢰하신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아, 맞다."
나…… '당신의 그림자'에 의뢰했었지.
카락취와의 싸움부터 서바이벌 체험을 하게 된 것과 고추에서 조개로 종족초월을 한 아르잔과의 동행, 거기에다가 폭탄스러운 이름을 가진 기사 다이너의 광신으로 인한 황도 흑마법사 발견까지. 최근에 너무 굵직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그림자 소속인 암살자 소녀가 내민 서류더미를 받았다.
'나처럼 키가 작은 주제에 가슴은 큼직하네.'
처음으로 보는 로리거유에 흥미가 돋았지만 미성년에게까지 손을 대는 나쁜 버릇은 없었기에 금방 관심을 거뒀다. 그나저나 당신의 그림자에서는 미성년을 암살자로 키우는 걸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려나. 교단도 그러고 있잖아.'
교단도 각 지역의 교회나 성당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신앙을 품게 하지 않는가. 다만, 교단이 그들에게 정말로 베품을 나누고 있다면 당신의 그림자는 어릴 때부터 혹독한 조기교육을 하며 암살자로 키운다는 점이 다른 거지만.
하지만 둘 다 빈민가의 고아로 살다가 그대로 어른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리 생각하며 [가속사고]를 키고는 서류더미를 빠르게 훑는다.
사락. 사락.
종이들을 넘기는 소리가 열린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과 함께 어우러지며 조용히 방 안에 울려퍼진다. 금발에 태닝한 피부를 가진 양아치가 뭔가에 집중하면서 멋진 광경을 자아 내는 것도 굉장히 이상한 일이지만 그딴 어색한 겉멋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신의 그림자에서 의뢰로 보내준 자료를 읽을 때마다 역겨워서 아주 토가 나올 것만 같았으니까.
"후우. 시발."
마이트 가문을 장악해 광산의 광석을 빼돌리는 건 큰 일이 아니었다.
[빈민가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계속 실종 중.]
[황도 서북부 3번가에 빵집 아이가 실종.]
[광석의 매물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계속 상승 중. 그러나 은밀한 루트로 지속적으로 판매량이 보급되고 있다는 정보를 포착.]
[요정 노예가 희귀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중.]
[몬스터 사체가 비싸게 팔리는 중.]
[요정왕국과의 국경지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 훗날 요정왕국 이그드라실과 제국 나이트킹덤 간의 전쟁의 발단이 될 지도 모름.]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아마 이 정도로 사고가 터지고 있으면 황실에서도 따로 보유한 정보조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일단 내가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걸 간추려볼까.'
티타니아예게 미안한 말이지만 요정왕국과의 접전은 황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이상 막을 수 없다. 그래도 티타니아랑 협력하면 나중에 어떻게 늦어서 지각한 때에도 요정여왕을 알현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시 황도에 있는 실종자 수색부터 광성의 판매 루트까지 다 알아보는 게 좋을 듯하다. 추가로 알아보자면 요정 출신의 노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니 구매자들에 대해서 조사하는 게 좋으리라.
정령계에서 내 안구를 추잡함으로 테러했던 언데드 크라켄은 키메라지만 강제로 정령사와 패스를 연결시켜 역소환 방식으로 정령계에 처넣은 거라 했으니 말이다. 정령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요정들이 전부 정령사인 건 아니지만 이 자료를 보니 요정들을 써먹는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이거 괜히 티타니아예게 미안 하게 됐다.
결국 황성에서의 호출로 황도로 왔겠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고향이 이놈들의 이간질로 쑥대밭이 될 지도 모를 가능성을 두고도 알려주지 않는 꼴이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많은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아직 떠나지 않은 로리거유 암살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봐. 의뢰 하나만 더 해도 될까?"
"의뢰 내용은 어떻게 되는데?"
"반말?"
의뢰자료를 건넬 때랑은 다르게 말투가 확 바뀌어 자연스레 의문이 터지자 로리거유 암살자는 나를 고양이 같은 눈매로 노려보며 말했다.
"뭐 어때? 의뢰를 완수했을 때부터 비지니스 관계도 끝난 거니까 반말을 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뭐, 그렇긴 하네."
뭔가 떨떠름하긴 했지만 수긍하기로 했다. 막말로 내가 당신의 그림자를 휘하에 둔 것도 아니고 딱히 협력관계도 아닌데 꼬박꼬박 존댓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나이를 처먹은 것도 아니다.
"요정노예 구매자와 몬스터 사체 구매자를 조사해 줘. 그리고 너는 내가 황도에 있는 동안만 호위로서 있어줘. 대금은…… 극소량이긴 해도 아다만티움으로 제공할 테니까."
"아다만티움?"
로리거유 암살자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아다만티움이 그만큼 귀한 광석이긴 하지. 황성에서도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갑옷과 검이 하나 씩만 있고 그걸 제1 황실기사단의 단장만이 입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이트 가문의 비상금이나 다름없다고 다이네가 말하긴 했지만 가족을 구해주면 가문의 모든 걸 줄 수도 있다고 했으니 가문의 비상금을 꿀꺽하는 것 정도야 문제 없을 것이다. 이왕 생각 난 김에 내일 지장도 꾹 찍어서 아예 계약서를 작성해야겠다.
"아다만티움이 있어? 진짜? 진짜?"
"진짜로. 다만 조사 대상인 흑마법사 새끼가 언제 빼돌렸을 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수색해야 해. 이 의뢰, '당신의 그림자'는 받아들일 거야?"
"받아들일게! 네 호위로도 꼭 붙어다닐 거고, 그놈들 빨리 조지면 아다만티움을 받을 수 있는 거지?!"
"그래. 잘 부탁한다."
"아싸!"
방방 뛰며 좋아하는 로리거유 암살자. 내 용자지처럼 체구에 맞지 않는 과실이 격한 몸짓에 훌륭하게 출렁였지만 미성년이라 생각하니 음욕이 돋지 않았다.
발깃.
……아니, 근데 이 새끼는 왜 반응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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