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구멍동서 형수님 (9)
* * *
팔이 아프다. 대체 몇 시간을 석상처럼 굳건히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팔을 귀에 바짝 붙인 건지 모르겠다. 은근슬쩍 어깨를 낮추는 걸로 손을 살며시 내리려는 순간,
따악.
"…아야."
"어허.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손 드세요."
앨리스의 검집이 내 정수리를 따악 소리가 나도록 때린다. 일반인이었다면 아프다며 꼴사납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 지도 모르겠다. 나도 무심코 손을 갖다댈 정도로 아팠으니까.
앨리스만이 아니라 단검을 암살자처럼 손 위에 놀리면서 티타니아가 이쪽을 불만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내 두 여자 모두 뿔이 난 거다.
결국 형수님과 바람을 피다 걸렸기에 이렇게 된 거다.
자기들과 섹스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자 의문을 느낀 연인들은 날 스토킹했다. 정확히는 티타니아가 엘라임을 시켜 내 기운을 스토킹했고 그로 인해 내가 형수님과 떡을 치는 관계라는 걸 들키고 말았다.
반응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앨리스는 형수님을 빼앗을 정도로 성욕에 미친 거냐며 불 같이 화를 내면서도 싸늘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노려봤고 티타니아는 자기한테 질린 거냐며 역시 설녀라서 그런 거냐며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솔직하게 사정에 대해 밝혔고 그로 인해 이런 커다란 비밀을 혼자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벌을 받고 있었다.
"저희는 주인님이 어떤 여자를 들여도 받아들일 자신이 있어요. 신분만 보면 저도 요정왕국 이그드라실의 왕족이고 앨리스도 공작가마저 건들기 힘든 고위 핏줄의 사생아라면서요. 크게 꿇릴 일은 없으니 주인님의 여자가 되면 순수하게 기뻐하며 받아들이자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하지만 레온이 저희를 두고…… 숏다운 영애와, 이복형제의 약혼자를 빼앗고 저희를 독수공방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식은땀이 뒷목을 타고 흐른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연인들에게 못할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지른 거 아닌가. 아니, 쓰레기는 맞지만.
"독수공방까지 시킨 적은 없는 거 같은데……."
그 말을 꺼내서는 안 됐다.
티타니아와 앨리스가 샐쭉한 눈으로 날 노려봤으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냐는 것처럼.
"저희랑 돌아가면서 일주일 내내 거사를 치르던 남자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 씩 정도만 관계를 맺으면 그게 독수공방이지 뭡니까."
"주인님. 저희들 화나게 하지 마세요. 진짜로 슬퍼질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르니까요."
"……."
'슬퍼질 일이 뭔데?!'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영역이라는 걸 직감으로 깨닫는다.
차마 물을 용기가 없는 나였다.
그보다 내 연인들도 나와 시시때때로 관계를 가지며 성욕이 만만치 않게 높아진 모양이다. 애당초 티타니아는 존재 자체가 애정과 성욕을 갈구하는 오백 년 먹은 요정이라 나와 하는 것 자체를 무슨 환경이든지 좋아하고 앨리스는 노출증이 있어서 기막을 펼치고 시끄럽게 교성을 질러대거나 창문에 가슴을 대고 노출하며 뒷치기를 당하는 취향이 생겼을 정도로 음란해졌다.
그렇게 개발을 한 게 나라는 사실이 만족스러우면서도 지금은 되려 내 발목을 붙잡게 되어버렸다. 수컷으로써 흡족스러우면서도 서운하구만.
덕분에 용서를 빌었더니 이 꼴이다.
"레온은 벌을 좀 받아야 합니다. 형수님을 자기 여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뻐꾸기처럼 애만 갖게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저희보다 먼저 임신시킬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비밀로 하면 안 됐다는 겁니다. 어허! 손 내려갑니다!"
"……큿."
이제 나도 슬슬 팔과 어깨가 아프거늘, 뿔이 난 내 연인들은 용서란 게 없었다. 그녀들도 내 외형에 비해 스펙이 얼마나 괴랄한지 잘 알기에 그런 듯했다.
그런 날 빤히 쳐다보던 티타니아가 문득 뭔가를 떠올렸는 지 앨리스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뭐라 속삭이는 건지 들으려고 마력으로 청각을 강화했지만 내게서 [기막]을 배운 앨리스가 엿들으려는 걸 차단했다.
이런 대단한 여자 같으니. 가르쳐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써먹는 건지 모르겠다.
티타니아와 무언가 대화를 나눈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기막을 해제한 그녀가 날 내려다 보며 말했다.
"레온. 손들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남은 벌로 공작가에 복귀할 때까지 섹스는 금지입니다. 그리고 숏다운 영애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이제 금지입니다. 공작가에 복귀하자마자 보고만 하고 바로 황도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
내 애인은 그녀들만이 아니다.
정령계에서 이라 불리는 이프리트 또한 내 여자이며 그녀의 부탁으로 인해 나는 흑마법사를 잡을 필요가 있었고 그놈들이 황도 근처에 있는 마이트 가문의 광산을 착취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니까.
정말 의외이게도 녀석이 그냥 쓰레기인 게 아니라 저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다이너란 이름의 기사는 [성흔]의 신성력을 쬐고는 정화되어서 날 이단심판관이라 착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녀석의 도움을 받으면 마이트 남작 상단에 침투한 흑마법사 녀석들을 손쉽게 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닌 [성흔]으로 인해 압도적인 상성 차이를 지녔으며, 황도에서 만나기로 한 아비게일한테 조력을 요청하면 되는 거니 말이다.
솔직히 오크 웨이브 때는 워낙에 물량전이어서 결사대가 밀린 거였지 실제로 그 전력이라면 어지간한 기사단 한둘은 박살을 낼 수준이니 흑마법사들이 상단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극소수로도 밀어붙일 수 있을 거다. 심지어 상성 차이까지 뚜렷한 관계니 충분하겠지.
"씁! 손 내려갑니다!"
"……미안."
그 이후에 두 시간을 더 손을 든 채 감시를 받았다.
◇◇◇
엔티알 백작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백작령을 떠났다. 중간중간 앨리스와 티타니아가 날 유혹해 놓고는 벌 받는 시간이라며 섹스는 금지시켜 날 괴롭혔고 그 대신 자기는 어떻냐며 들이대는 아르잔 때문에 골치 아픈 며칠이 이어졌다. 형수님과 눈을 마주할 때마다 나랑 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내 연인들에게 바람 핀 벌로 섹스 금지를 당했다니 냉큼 물러나더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여기서 더 불화를 일으켜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야동 매체도 없는 세계에서 히토미에 뇌를 절인 우리 형수님은 의외로 전략을 잘 짜는 이답게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물러난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공작가에서 자기랑 더 불륜을 저지를 거라는 걸 간파하고 그런 걸까.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간신히 도착한 일행은 공작가에서 편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색을 밝혔다. 나 또한 드디어 섹스 금지가 풀렸다는 사실에 기뻐서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공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느 때처럼 집사장 세바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앨리스를 대동하고, 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호위도 없이 세바스의 뒤를 따라 가주실로 이동했다.
도착한 우리는 심각하게 미간을 좁히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기사 앨리스가 공작님을 뵙니다."
형식은 다르고 가벼운 식의 인사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공작이자 가주인 아버지에게 예의를 차리며 인사했다. 내 가벼운 인사에 잠씨 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쉰 아버지는 근엄한 눈을 하고서 우리의 고생을 치하했다.
"모두 수고했다. 휘하 가신의 영지를 도와 오크 웨이브를 막은 건 결사대로 활약한 너희의 공이 크다고 들었다. 이 일로 황성에서도 우리 공작가에 적절한 보상을 줄 테지. 다만…… 레온 너는 출가외인 취급이라 결사대에 참여한 포상을 따로 황실에서 내린다고 한다더구나."
"황실의 호출인가요? 저를요? 왜요?"
"……교단의 상급 수녀인 아비게일 수녀가 네 공이 컸다고 교단과 황성에 보고했다. 정작 결사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남편인 아르잔 경뿐인데 그가 죽어버리고 최대 피해자인 그녀가 네 공이 크다 주장하니 황실에서도, 교단에서도 네 공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더구나. 내 요청에 네가 지원을 나선 건 맞지만 엄연히 출가외인이니 말이다."
"그렇군요."
마침 황도에 볼일이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교단이나 황실에서는 아마 출가외인인 날 꼬드겨서 품에 안고 싶은 계획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내가 꼬드겨질 일은 전혀 없었기에 문제 없었고 적절하게 보상이나 받고 마이트 가문의 흑마법사들을 족치면 되리라.
"그리고 한 가지 할 얘기가 더 있구나."
이번에는 레콘 형님을 쳐다보시는 아버지.
"그래. 네가 고… 크흠. 발기부전이 됐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허어."
아버지는 비탄스러운 얼굴이 되셨다.
"좀 멀쩡한 녀석은 고자가 되고 하나 남은 아들이 저런 식이니. 조상님들을 어찌 뵈야 할지."
아니, 이 양반이? 내가 어때서 저런 식이냐고 말하는 건데.
그런 아버지를 향해 형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
"응? 왜?"
"혹여 제가 잘못될까 봐 결사대에 참여하기 전에 미리 제 정자 상당량을 마법으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백작령에 상존하던 사제에게 부탁해 신성력까지 부여하여 활성화시켜 제 약혼녀가 회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희보로구나!"
너무나 밝아지며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되려 내가 뻘줌해졌다.
어, 미안 아버지. 그거 내 핏줄이야.
"하하하! 공작가의 후계는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아무래도 이 사실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만약 이 사실을 아셨다간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실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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