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구멍동서 형수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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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락스, 아니 다이너 마이트에게 내가 이단심판관이라고 속이고 난 뒤에 일행에 복귀한 우리는 입을 맞춰 오크가 나타나 기습을 가한 나머지 히벨 경이 전사했다고 보고했다. 기사단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설마 히벨을 죽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의 상사, 공작인 아버지가 허가를 내렸다는 데 그의 위치에서 의문을 제기할 지언정 불만을 토해 낼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다시 사랑하는 연인들과 합류하고 기사단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엔티알 백작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환영해 주기 위해 마중을 나왔다.
"오오! 레온 공자! 살아 있었구료. 참으로 다행이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하는 건 엔티알 백작이었다. 발기부전의 주술에 걸려 고자가 된 형님 때문에 공작가는 난리가 날 게 뻔한데 이제 후계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핏줄인 나마저 행방불명으로 끝이 났다면 백작가는 공작가의 화를 감당해야 했을 테니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날 환영하는 그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혹연 공작가의 기사단까지 어떻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며 걱정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아무리 백작이라도 공작가의 기사단까지 잘못됐다면 황성에서 백작가에 죄를 물었을 테니까. 덕분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데도 그의 눈빛은 한층 안정되어 있었고 편안해 보였다.
"네 공자의 노력을 잊지 않았소. 백작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중에 얼마든지 이 은혜를 갚기 위해 달려가겠다고 공작님께 잘 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본래 공작인 아버지에게 저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은 후계자인 형님에게 해야 할 대사. 하지만 발기부전이 됐으니 다음 후계자를 나라고 생각하고 저리 말하는 거리라.
딱히 부정하고 설명까지 할 마음은 없었기에 대충 대답했다.
백작은 이번 오크 웨이브로 입은 피해를 황성에 보고하기 위한 자료를 정리해야 한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이번에는 아비게일이 내게 다가왔다.
"잘 돌아왔어, 레온 꼬마. 후후."
그녀는 신이 축복을 내린 건지 진지하게 의심되는 크기의 가슴에 내 머리를 파묻으며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걱정시켜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르잔을 죽게 냅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여우 꼬리마저 살랑거리며 날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게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마음 고생이 느껴졌기에 나도 그녀를 안고는 그리 말했다. 그러나 아르잔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아비게일의 표정이 묘하게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혹시 아르잔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어, 음. 그게……. 하아아. 직접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 ……………………어떤 의미로는 걔에게 딱 맞는 구원이기도 하고."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눠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리 말한 아비게일은 마치 그때가 기대된다는 듯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는 쿡쿡 웃었다.
"그래도 딱히 커다란 장애를 갖게 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아 방에서 나오지 않을 뿐이니까."
"뭐…… 알겠어요."
뒤통수를 긁적인 나는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나 눈치를 보고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나중에 비밀리에 대화를 좀 나눠도 될까요?"
"응?"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한 없이 진지한 어조로 그리 말하니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던 아비게일은 내게 말했다.
"미안. 내일 바로 황도에 있는 교단 본부에 복귀해야 해서 시간이 없어."
"괜찮아요. 저도 본가에 들렀다가 바로 다시 황도로 갈 일이 생겼거든요."
"그래? 흠."
다시금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아비게일은 이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황도의 교단에 내 이름을 대면서 고해성사를 받으러 왔다고 해. 교단 본부에 머물 때는 서비스 차원에서 사람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거든. 아마 한 달 정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혹시 돼니?"
"가능해요. 그럼 그때 보는 건가요?"
"응. 중요한 얘기는 그때 나누자. 지금 나도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아갈 준비도 하느라 바쁘니까. …………그리고 아르잔도 잘 부탁할게."
"네?"
내 의문에는 대답해 주지 않고 돌아서 환자들이 머무는 건물로 향하는 아비게일이었다. 날 환영하느라 잠신 시간을 낸 거지, 성녀라는 체질을 가진 상급 수녀인 그녀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쁜 게 당연했다.
아르잔을 왜 내게 잘 부탁한다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의문은 금방 털어 버리고 앨리스랑 티타니아의 손을 잡고 이끌며 기사단장들에게 말했다.
"기사단장님들도 수고했어요. 나중에 아버지에게 열심히 했다고 말씀 드릴 테니까 이만 보고서 준비하러 가 보세요. 형님과는 제가 차분히 대화를 나눠서 일정을 조율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공자."
"편히 쉬십시오, 공자님."
둘은 내 말대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나는 연인들과 함께 백작성에서 내게 제공되는 방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털썩.
"하아아아. 이번에는 꽤나 힘들었어."
바로 침대에 드러눕는다.
씻지 않았지만 티타니아의 엘라임이 정령술로 일행들을 깨끗하게 씻겨줬기에 더러운 게 묻는 일은 없었다.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깨끗한 건 맞으니.
그런 내 양옆으로 티타니아가 털썩 누워 오른팔을 부드러운 허벅지에 끼워 껴안는다. 앨리스도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내 왼팔을 발키리 아머로 인해 빈틈이 많은 가슴골 사이에 끼워 가슴으로 포갠다.
"고생하셨어요, 주인님.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직접 찾으러 오기까지 하고. 우리 티타니아는 정말 대견하네~"
요정특유의 말랑거리는 살결은 기분이 좋았다.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칭찬하듯 그리 말하자 티타니아가 한쪽 뺨에 공기를 넣어 부풀리는 것으로 불만을 주장한다.
"연상을 그렇게 놀리면 안 돼요."
"오백 살이 넘었으면 나이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된 거 아닐까?"
차라랑.
진짜로 화가 났는 지 냉기를 뿌리며 내 팔을 차갑게 만드는 티타니아. 그녀가 누워 있는 시트는 진작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미소를 그렸으나 그 안에 담긴 싸늘함은 나조차도 무시할 수 없었다.
"주인님. 여자의 나이를 놀리는 건 금지랍니다."
"……응."
"잘 선택하셨어요. 흐흐흥~"
나는 오래 살고 싶었다. 결국 내 마누라 중 한 명이 될 티타니아에게 나이 문제로 계속 갈굼을 당하며 버틸 자신이 없었기에 곧장 수그렸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하며 귀여운 내 어깨에 얼굴을 부비는 고위요정.
……그래도 간 보면서 놀려야지.
그런 장난끼 다분한 못된 생각을 품으며 나는 연인들에게 다이너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그런데 얘들아. 아무래도 본가에 들른 후에 바로 별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황도에 들러야 할 것만 같아."
"네?"
"어째서죠?"
솔직하게 다 밝혔다.
앨리스를 괴롭혔고 내 어머니를 패드립치며 뒷담화를 까기에 카락스를 죽이려고 했더니 사실 저주에 걸려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의 가문은 흑마법사 조직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카더라, 부터 또 다른 연인인 이프리트와 부탁으로 인해 정령계를 더럽히려고 한 흑마법사 조직을 붙잡아 족 쳐야 한다는 것까지 전부 말이다.
다행히도 여기사와 요정은 정령왕인 이프리트가 내 연인이라는 사실을 꺼려하지는 않더라.
"그런데 여러 의미로 충격이네요."
"다이너가 저주에 걸려 있었단 거?"
"아뇨. 정령왕이 섹스가 가능하고 임신까지 한다는 거요."
"……."
확실히 정령친화력이 선천적으로 높은 종족인 요정들에게 정령왕이 섹스와 임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충격이겠지.
앨리스는 인간답게(?) 다른 얘기에 더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카락스 경이…… 아니, 다이너 경이 설마 저주에 걸려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걸 또 레온이 [성흔]으로 치료까지 하시다니. 레온은 성자가 되실 생각이십니까?"
"응? 아닌데."
공작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런 걸 왜 하겠는가.
성자라고 하면 이미지가 좋아야 해서 아비게일이 상급 수녀답게 이미지 관리하듯이 상당히 바쁘게 일해야 한다. 내 꿈은 일하지 않고도 놀고 먹고 사는 부자 백수이니 성자 같은 거 필요한 상황이 오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숨길 생각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입니다. 가뜩이나 공작가의 유일한 직계신 레온이 성자가 된다면 교단에서도 간섭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그러면 귀찮아졌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 공작가도 받지 않을 생각인데?"
"공작님께서 레온을 냅둘까요?"
"그러지 않겠지. 하지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 마."
공작은 그대로 형님에게 갈 것이다. 그리고 형님이 나이를 먹고 죽으면 내가 다음 공작이 되었다가 나도 늙었다는 이유로 금방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는 자식들 중 한 명에게 물려줄 것이다.
형님이 가주에 대한 욕망을 옛날부터 정실부인에게 세뇌주입식 교육을 받았으니 고자가 되었다고 해서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결국 이프리트 님의 부탁으로 황도에 갈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황도에 가서 녀석들도 조지고 내 예쁜 애인들이랑 데이트도 좀 하고 그럴 생각이야. 녀석들이 위험해봤자 오크 샤먼킹보다 위험하겠어?"
나는 아직도 발기부전의 주술의 충격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혹녀가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존나게 끔찍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거시기 잡고 끙끙거리고 있을 형님이야 그렇다 치고 아르잔은 어떤 주술을 당했는데 등장하지 않는 거야? 아비게일도 말하기를 굉장히 꺼리던데."
"아. 그게……."
티타니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망설이는 것에 내가 의아해하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르잔 경은 지금 '공식적으로는 사망처리'가 됐어요."
"엥?"
"그래서 내일 황도에 있는 교단 본부로 복귀하는 사제들에게 합류하지 않을 예정이에요."
아니, 대체 무슨 상황에 처했기에 서류에 사망했다고 처리하는 건데. 그걸 아비게일이나 동료 성기사들이 납득할 리가 없잖아.
앨리스도 이 사실이 놀라웠던 건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주술을 맞았다 해도 격세유전의 힘을 발휘하는 수인(워비스트)은 고급 전력이다. 심지어 아가사의 핏줄이라 알려진 페가수스의 힘을 격세유전으로 불러 일으키는 아르잔은 체질이 성녀인 아비게일만큼이나 교단의 중요전력이라 그들이 인정할 리가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티타니아가 멋쩍은 얘기라는 듯 볼을 긁으며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음. 아르잔 경이………… 아르잔'느' 양이 됐다고 하네요."
"……."
아무래도 고추를 조개로 만드는 주술에 걸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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