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노출증 여기사 (22)
* * *
카락스를 괴롭히는 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오크들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휘말린 것부터 허공삽질을 한 희대의 변태가 된 것까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앨리스와 이프리트랑 떡을 치며 쾌감과 그녀들에 대해 더욱 깊은 애정을 갖게 되긴 했지만
찰싹.
"컥!"
그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나는 좌우가 완전히 똑같은 완벽한 대칭을 원했기에 반대편 뺨도 때려 주었다.
찰싹.
"악! 사라 사려!"
"흠. 왼쪽 뺨이 덜 부었네."
그래서 또 때려줬다.
찰싹.
"푸흡!"
이제야 양쪽 뺨이 공평하게 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본 내가 흡족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야. 이제야 좌우대칭이 똑같네. 축하한다. 더 맞을 일 없어서."
"가사하미다…! 가사하미다……."
이빨이 몇 개 나가도록 뺨이 부어 터질 때까지 싸다구를 맞은 카락스는 엎드려서는 내게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감사를 표했다. 드디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녀석은 벌벌 떨며 개처럼 기어 다녔다.
하지만 어쩌냐.
이제 시작인데.
쪼그려 앉아 카락스와 눈높이를 맞춘 나는 녀석의 턱을 움켜쥐어 양볼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하고 안에 시선을 보냈다. 옥수수가 우수수 나간 녀석의 이빨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게 절반이었다.
불길함을 직감한 건지 두 눈을 불안하게 떠는 카락스였다.
"자, 자시마안…!"
잠시만 기달려 달라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이빨이 좌우대칭이 안 맞다?"
"허어어어어업!"
꽈아악.
내 발언에 안색이 창백해진 카락스가 어떻게든 입을 다물려고 턱에 힘을 주었지만 손아귀에 힘을 더 넣어 닿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잡았다. 녀석이 발버둥을 치지만 이미 팔다리 뼈에 금이 가도록 오러로 잘근잘근 다져줘서 힘이 별로였다.
애시당초 멀쩡했었더라도 앨리스보다도 못한 신체능력이지만.
입을 향해 손을 뻗자 녀석이 기겁한다.
"아우아!"
"시끄러 새끼야."
뻐억.
역시 만고불변의 수리법은 한 대 후려치는 것인가. 옛부터 고장난 티비는 손바닥으로 두드리면 정신을 차리고 폐기물 인간은 주먹으로 후려치면 갱생을 하는 법이지. 괜히 갱생펀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근데 소리가 좀 심각하게 들렸는데 괜찮겠지?
벌써 죽으면 안 된다. 카락스가 기사의 긍지를 보이길 바라며 검지와 엄지를 녀석의 입 안에 넣었다.
"대칭을 맞추는 김에 이빨도 대칭을 맞춰 줄게."
"하, 아지 아…."
"하지 말라고 하면 다 뽑아 버린다?"
"……."
고추 달린 사내새끼의 입에 손가락을 넣는 걸 누가 하고 싶겠는가.
그래도 앨리스를 욕하고 내 어머니를 패드립의 소재로 쓴 놈을 고문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더러움 즈음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야 있지. 그렇게 녀석의 이빨을 하나 뽑았는데 생각보다 감촉이 불쾌했다. 역겹달까.
"아아아아아아아악───────!!!"
칼로 생명을 베는 느낌은 잔인하고 스스로에게 업보를 쌓는 느낌이라면 이건 그저 지저분하고 불쾌할 뿐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공연한 분풀이에 불과한 데다가 내 기분이 더욱 다운될 뿐이었지만 이건 이거, 받아야 할 대가는 받아야 할 뿐이다. 이렇게 하지 말고 옆에 머리가 굴러다니는 동료 기사처럼 죽여 버리면 되는 일이지만 나는 굳이 녀석을 고문하여 죽일 생각이었다.
인간으로써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스킬로 인해 강제로 명민하게 사고를 굴린다.
아마 나는 이 게임의 세계에 환생하면서 타 생명체에 대한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잃은 게 아닐까. 완전히 잃었다는 건 아니고 일반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npc라고 생각하는 거다.
애시당초 내가 환생한 이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VR게임에서 npc를 대하는 방식이랑 똑같았으니까.
어떤 시각에서 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롤플레잉을 거꾸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게임이 현실이 되고 정신은 게임인 것처럼 대하고 있으니까.'
불쾌함을 느끼고 있음에도 카락스를 계속 고문하는 이유는 그랬다.
뽀옥.
이빨마저 좌우대칭을 완벽하게 이룬 후에야 나는 카락스를 놓아 줬다. 녀석은 혈액에 철분이 많은 건지 철향이 묘하게 섞인 비릿한 혈향이 입에서 줄줄 새어나왔다. 아니, 아예 출혈로 피를 몇 움큼이나 내뱉으며 헛구역질을 한다.
나는 녀석을 벌레처럼 내려다 보며 손을 들었다. 그 손이 자신에게 죽음을 줄 거라 생각한 건지 카락스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심과 동시에 내게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안도가 담긴, 여러 의미가 담겨 복잡한 눈을 하고 있었다.
저 새끼 지금 속으로 나 욕하는 거 같은데.
그리고 사람 심리란 게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 방해하고 싶은 법이다.
"미안한데."
파아앗.
손등에 새겨진 [성흔]에서 빛이 쏟아진다.
비록 내가 사제 계열 스킬은 없지만 신성력 배터리라 할 수 있는 [성흔]을 지닌 이로서 저급한 신성술을 사용할 줄 알며 그 위력은 일반 사제와는 비교하지 못할 수준이다. 애시당초 성화무형검에서 성스러운 파마의 힘은 이 성흔에 보관되어 있는 신성력을 빌려 쓰는 것이기도 하고.
카락스에게 사랑의 매(주먹)가 아닌 손바닥(힐)을 내밀었다.
"힐."
화아앗.
손바닥에서 나가는 성스러운 빛이 카락스에게 닿는다.
이렇게 회복시키면 더 버틸 수 있겠지. 기사치고 너무 근골이 튼튼하지 못해 실망스러웠는데 이렇게라도 내가 회복시켜 가며 고문을 반복해야겠다.
"아아아아!"
빛을 맞은 카락스는 성실하려는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이의 표정을…… 시방 지금 이게 누구 멋대로 회개하고 지랄인 겨?
그래서 절반만 회복시켜서 다시 잘근잘근 밟아 주고자 했는 데 손을 뻗기도 전에 녀석이 숨박꼭질을 하는 타조 마냥 대가리를 바닥이 살짝 파일 정도로 강하게 박았다.
"이단심판관! 레온 공자께서는 이단심판관이셨군요!"
"……."
고개를 번쩍 든 녀석의 이마는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정작 본인은 아무런 통증도 없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레온 공자의 무력부터 왜 저를 이렇게 고문하시는 지를!"
"……."
왜냐하면 녀석의 눈에는 광기와 희망이 가득했으니까. 보통 저런 눈을 한 녀석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기에 나는 인내심을 갖고 녀석의 말을 기다려줬다.
녀석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정말로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다가 오더니 발등에 입술을 대려고 하기에 당장 뒤통수를 사뿐히 즈려밟았다.
꾸우욱.
그래도 녀석은 좋다는 듯 외쳤다.
"오오. 이단심판관이시여. 어리석은 제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이렇게 [성흔]까지 보이시다니. 저의 어리석음이 비탄스러울 지경입니다. 부디 절 사용해 주십시오. 절 이용한 뒤에 버리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들에게서 제 가족을 구해주십쇼.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카락스의 진심이 담긴 처절한 모습에 나는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니, 시방 도대체 머가 우째 돌아가는 겨.
◇◇◇
이단심판관.
흔히 나오는 이단심문관처럼 이단을 처단하는 이들이지만 심문관과는 엄연히 다른 교단의 전력이다. 이단심문관이 이단을 조사하며 싸우는 역할이라면 이단심판관은 그야말로 성전을 위해 교단에서 대기를 하며 언젠가 자신들이 신에게 신앙을 바칠 때가 올 거라며 교황과 교단의 정식 승인을 받은 성인에게만 명령을 하달받는 교단의 무력단체.
공작가의 기사단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단심판관과 비교하면 부족함이 많을 정도다. 그런데 카락스가 날 그 이단심판관이라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나눠보고…….
카락스의 사정을 다 들은 나는 황당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금 문답을 나눴다.
"그러니까 너는 상인 출신의 영지 없는 남작 가문의 직계인데."
"네."
"원래는 상단 일을 배우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기사로 강제 입단을 시켰다고."
"맞습니다."
"그 이유가 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단을 흑마법사 일파가 지배하고 있어서?"
"정확하십니다. 역시 이단심판관이시군요!"
즉, 이런 거다.
녀석의 가문은 광산을 캐 소인에게 판매하는 상단 가문인데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거금을 기부해 황가로부터 직접 영지 없는 남작위를 하사받았단다. 보통 기부 좀 했다고 귀족위를 얻는 매관매직이 가능할 리가 없지만 그때 야만족의 기습에 적절한 지원금을 보내 국방을 튼실히 했다는 점과 그들이 선조대대로 죄를 지은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이 귀족이 될 수 있도록 한 거다.
비록 영지는 없지만 귀족은 귀족.
재수없게 덜떨어진 고위 귀족과 시비가 붙는다거나 어지간히도 병신 짓거리를 하지 않는 이상 안전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되려 그런 점을 노리고 접근한 이들이 있던 거다.
네크로맨서부터 저주술사, 심지어 키메라까지 다루는 흑마법사까지 다종다양한 이들이 연관된, 이름도 알 수 없는 조직에게 찍혀버렸다. 저주술사에게 저주를 받아 주기적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광증이 도져 미치게 되는 남작은 순순히 그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상단의 주력인 광석을 캐는 인부를 전부 해고해 버리고는 네크로맨서의 스켈레톤들을 대신 채워 넣어 24시간 캔 광석들을 그 이름 모를 흑마법사 조직이 날름 먹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들키지 않도록 요즘 광석을 푸는 양을 조절하여 일부는 비싸게 팔아 먹고 말이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남작은 자신의 아들인 카락스를 비밀리에 만들어둔 옛 인맥을 통해 공작가의 기사단에 개명까지 시켜 입단시켰다고 한다.
"에라이 시발. 그럼 마침 윌리엄스 수녀도 근처에 있겠다. 그녀에게 부탁하면 교단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가만히 있는 건데."
"아쉽게도 아버지가 절 탈출시킨 걸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카락스는 암울한 표정으로 정말 불쌍한 것처럼 그리 말했다.
"하지만 절 죽이면 아버지도 궁지에 몰려 무슨 짓을 벌일 지 모르니 그들은 흑마법으로 제 기억을 손보고 지능이 저하되는 저주를 걸고 절 방치했습니다. 그러다 방금 전에 이단심판관님의 신성력이 가득한 힐을 맞고 제 안의 흑마법까지 정화되어 모든 걸 떠올렸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이단심판관님께 무례를 저지른 걸 회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녀석의 눈에서 광기가 뒤섞인 복수심으로 가득찬 불길이 일렁였다.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흑마법사 녀석들에게 벌을 내려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시발."
웬지 요즘 희귀 금속의 값이 어지간히도 비싸다 했더니 이 흑마법사 새끼들이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던 거였다. 뭐 덕분에 나도 반토막 난 통짜 미스릴 검으로 '당신의 그림자'에서 더럽게 비싼 고급 의뢰를 넣을 수 있었던 거였지만.
안 그래도 조져야 하던 놈들인데 설마 황도 근처에서 금속을 캐는 광산에서 대놓고 암약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가까울 줄 알았으면 의뢰 넣지 않는 건데.
"이단심판관이시여. 제게 명령을."
"……."
녀석은 여전히 [성흔]을 보고 날 이단심판관이라 생각하는 건지 광신도적인 희망을 갈구하고 있었다.
카락스가 앨리스를 차별하고 내게 패드립을 뒷담화했지만 이프리트의 부탁으로 잡아야 할 그 새끼들. 내 눈에 언데드 크라켄이라는 촉수 괴물을 이용해 안구테러를 감행한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라면 이런 가벼운 벌(?)로 넘어가 줄 용의가 있었다.
저주에 당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니 이마저도 플러스하면 정상참작이 되겠지.
그러니 여기서 내가 할 선택은 하나다.
"후우. 들켰네. 카락스. 네놈의 말대로 나는 자랑스러운 아가사 님을 모시는 이단심판관이다."
"아아아! 이단심판관님!"
이 새끼한테 약 쳐서 흑마법사 잡으러 가야지.
"근데 너 카락스가 가명이면 진짜 이름은 뭐냐?"
"제 이름은 다이너, 마이트 가문의 다이너 마이트라고 합니다."
"……."
광산 캐는 상단 가문이라더니 이름이 존나 잘 어울려서 벙찌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