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노출증 여기사 (21)
* * *
'이런 시벌. 존나 쪽팔려.'
타인의 시선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적은 처음이다.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애!'
기사단이 여분으로 챙긴 헐렁한 옷을 입은 나는 허공삽질이라는 희대의 자위 선구자로서 기사들이 수근거리는 대상이 되었다. 아마 영지에 도착하고 나중에 술을 마시다 보면 허공에 좆질을 하는 변태 도련님이 있었다며 술안주 삼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존나게 억울했다.
엄연히 정령과 정령사 간의 계약을 지키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을 뿐인데.
……아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령과 섹스를 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부터가 상당히 외설스럽긴 하네. 대부분 정령사들은 중간계에 호기심이 가득한 정령을 위해 놀아 주거나 관광가이드처럼 이곳저곳 데려다 주기도 하니까.
"도련님의 물건이 그렇게 클 줄이야."
"시벌. 내 건 번데기였어."
"야만족이 물건이 크다고 하더니."
"그거 실화냐. 다음 생에는 나도 야만족 혼혈로 태어나고 싶다."
"시바. 거기가 크면 뭐해. 천한 야만인 핏줄인데."
마지막 새끼. 너 딱 기억했다.
수근댈 거면 내가 듣지 못하게 아예 뒤로 가 주든가.
저 빌어먹을 기사들은 내 물건 크기에 좌절하거나 경외심을 품으며 수다의 주제로 삼았다. 그래도 딴에는 조그맣게 수근거린다고 기사단장이 듣지 못하더라.
그가 듣지도 못하는 데 내가 나서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냥 걸었다. 그런 내 옆에 앨리스가 달라붙어 나란히 걷자 더욱 남성들의 이목을 끌게 됐다.
평소대로 앨리스랑 붙어서 커플인 걸 티 내며 걷는데 왜 이목을 끄냐면 그건 앨리스의 복장 때문이었다.
그녀는 로브를 걸치긴 했으나 여성의복 여유분이 없었기에 그대로 내가 선물한 발키리 아머를 그대로 로브 안에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초미녀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로브 한장 어깨에 걸친 채 걷고 있다 보면 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순간 엉덩밑살과 등이 훤히 보이게 되는 거다.
이런 고추밭 같은 기사단 사이에서 앨리스 같은 미녀의 맨살은 남성호르몬을 무척이나 자극하겠지.
나는 그런 앨리스의 옆에 딱 달라 붙어서는 그녀만이 들을 수 있게 작게 속삭였다.
"앨리스. 기사들이 네 반나체를 보고 있어서 흥분했어?"
"……."
"남자친구한테는 솔직하게 말해 줘."
"……네. 흥분했습니다."
얼굴을 잔뜩 붉힌 앨리스가 긍정했다.
아마 저 홍조는 맨살을 내비친다는 사실에 수치스러워 생긴 게 아니라 이만한 노출을 남들 앞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그런 거겠지. 발키리 아머에 [방수] 기능을 추가해서 정말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흥분한 나머지 애액이 다리를 타고 흐르는 걸 기사들이 전부 보게 됐을 테니까.
"히잉."
옆에서 티타니아가 울상을 짓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녀의 특징을 버틸 수 없는 앨리스가 옆에 달라 붙어 있는데 티타니아가 닿기라도 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걸 알기에 티타니아는 알면서도 내게 달라 붙지 않는 거였고 기사단들과도 거리를 좀 벌려서 선두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앨리스. 흥분해서 내 옆에 있고 싶은 건 알겠는데 잠깐만 떨어져 있어 주면 안 될까?"
"어째서죠?"
"내가 볼일이 있거든. 꼭 해야 하는."
"알겠습니다. 레온의 의사를 저는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해야 하실 일이라면 끝낼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오. 비키니 아머 복장의 충성스러운 여기사. 존나 꼴린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기사단장들. 나 잠깐 볼일이 마려운데 잠깐 멈추면 안 될까요?"
"레온 공자. 아직 그린스킨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속도라면 한 시간이면 되니 조금만 더 참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럼 호위 둘만 붙여 줘요. 금방 끝내고 돌아올게."
여기서 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선을 긋는다.
마력을 풍기며 기사단장을 압박하자 눈쌀을 찌푸린 그가 이내 내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한 건지 폐 속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호위를."
난 그의 말을 끊고서 기사 둘을 지적했다.
"저기 둘로 할게."
"……카락스 경과 히벨 경과 아시는 사이십니까?"
나는 싱긋 웃었다.
"아주 친해질 예정인 사이지. 아주, 아주 말이야."
"……."
기사단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 내가 흘린 살기를 느끼고 같이 보내야 하는 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거겠지. 아마 고자가 된 형님 때문에 내가 공작위를 잇게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러지 않기 위해 형님과 거래를 할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고민하는 기사단장을 위해 나는 그에게 슬쩍 정보를 흘렸다.
"기사단장님. 아버지가 허락한 거예요."
"흠!"
"데려가도 되죠?"
"……얼마든지 됩니다."
그러면서 내게 슬쩍 묻는 기사단장.
"친해질 이는 저 둘로 끝인 겁니까?"
"물론이죠. 저도 이유 없이 친해지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공작인 아버지가 허락했다면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 판단을 내린 건지 기사단장은 한 발 물러섰다. 다른 기사들까지 건드리지 않는다니 딱히 간섭하지 않기로 한 그는 뒤돌아 내가 원하는 둘을 불렀다.
"카락스 경. 히벨 경. 도련님이 잠시 볼일을 봐야 한다니 호위로 따라 가라."
"넵!"
"알겠습니다."
이제 보니 카락스란 평기사는 방금 전에 나더러 천한 야만인 핏줄이라며 질투할 필요가 없다고 자위한 녀석이었다. 나더러 천하다고 했으니 어머니도 천한 핏줄이라고 욕을 한 거나 진배 없는 것이니 이 새끼는 절대 쉽게 보내 주지 말아야겠다.
넌 특별히 신경 써서 더 잘근잘근 밟아주기 예약이다.
속으로 그런 흉흉한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말했다.
"잘 부탁해. 카락스 경. 히벨 경."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기사다운 발언을 하며 충성심 가득한 이처럼 보이는 발언을 하는 둘. 그러나 눈빛 속에서 옅게나마 날 향한 혐오, 배척, 원망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티타니아와 앨리스도 두 기사의 감정을 얼추 읽어 낸 건지 염려의 시선을 보내기에 전음으로 괜찮을 거라고 대답해 주고는 두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일행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저벅저벅 걷다 보니 두 놈은 위화감을 느꼈는지 긴장한 기색이었다.
소변을 보는 거라면 육안에 닿을 정도의 거리도 가능하고 대변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거리를 벌리지 않을 테니까.
'아직은 일행과 더 멀어져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나.'
잠시 고민한 뒤, 그냥 힘으로 처리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단숨에 오러를 일으켜 신체를 극한까지 강화시키고 두 기사의 목덜미를 붙잡아 낚아채고는 궁신탄영의 발돋음으로 단숨에 거리를 껑충 벌린다.
"으아아아악!"
"공자! 이게 무슨 지이이잇! 악!"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허공을 날다시피 도약하며 거리가 벌어져서야 현 상황을 파악한 두 놈이 바둥거렸지만 내 손아귀의 힘을 떨쳐 낼 녀석들이었다면 진작에 내가 붙잡을 때 반응했을 거다.
아쉽게도 무협 계열 스킬 중 배울 수 있었던 [기막]은 배우지 않았다……라기 보다는 막바지에 스킬칸 차지한다고 지웠던 바람에 쓸 수 없었지만 [오러]로 그보다는 못한 비슷한 기술을 펼칠 수 있었기에 일행과 거리가 벌어진 지금 두 녀석의 비명을 누군가가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 티타니아처럼 청각이 좋은 요정이라면 또 모르겠네.
그리 생각하며 이동하니 어느 새에 일행으로부터 상당히 거리가 벌어졌다. 여기서 떡방아를 찧어 인원수를 늘리든, 고문으로 비명의 오케스트라를 만들든 일행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결론이 나자마자 두 놈을 당장 바닥에 패대기쳤다.
바닥에 쌀포대기 마냥 내쳐진 두 놈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레온 공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쉽게 당해 주지 않겠습니다."
"빌어먹을 야만인 녀석! 역시 어미가 천한 핏줄은!"
서걱.
히벨이란 녀석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검이 없었지만 내 경지에 그게 뭐 대순가.
손날에 오러를 씌워 빠르게 휘둘러 오러 블레이드 흉내를 낸 거다.
잘려진 목의 단면으로부터 피분수가 뿜어지더니 옆에 있던 카락스를 적신다.
……이런 젠장. 내 로브에도 좀 튀었다.
방금 전까지 전우였던 녀석의 머리통이 자신의 발치로 굴러 오자 카락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가 본인들에게 딱히 원하는 게 없으니 바로 죽일 거라고 생각한 걸까.
"패드립은 선 넘었지. 안 그런가, 카락스 경?"
"네, 네?"
"이런. 난 멍청한 친구는 더 싫어하는데."
불 속성 오러를 방사하는 식으로 열기를 일으켜 묻은 피를 증발시키고는 손으로 털듯이 로브를 두들기고는 그리 물었다. 딱 봐도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듯 하더니 그는 냅다 검을 버리고 대가리를 바닥에 박으며 내게 절을 했다.
쿵.
"죄송합니다! 주제도 모르고 공자님을 천하다는 둥 야만인이라는 둥 욕을 했습니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테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지. 머리가 아주 폐기처리할 수준은 아니네."
머리회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인성이 빻았을 뿐.
내 욕만 했다면 적당히 즈려밟는 걸로 끝났겠지만 앨리스를 괴롭히고 내 모친을 천박한 야만인이라고 패드립까지 친 놈이다. 손수 어루만져야 하는 녀석이란 소리다.
그에게 다가가 뒤통수에 발을 올리고서 지긋이 즈려밟았다.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이 대사 귀족으로써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