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노출증 여기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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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후방을 담당할 저희가 결사대로 나서게 되었군요."
"그러게 말이야. 세상 일은 참 어찌 될지 모르겠다니까."
후방에서 상급 수녀인 아비게일의 호위나 하면서 꿀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뚝배기 브레이커라는 칭호가 남부럽지 않은 전투 수녀였고 그녀가 결사대로서 참여하니 호위인 우리까지 끌려가는 꼴이다.
결사대라고 할 때부터 나와 내 여자들의 실력 때문에 뽑힐까 봐 불안불안 했는데 아비게일이 거기서 확정타를 넣을 줄이야.
호위해야 할 대상이 간다는 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리는 강제참여였다. 사실 엔티알 백작에게 내 기세를 살짝 내뿜어서 위협하느라 실력을 좀 내비친 바람에 백작도 별다른 거부도 없었고.
이럴 줄 알았으면 백작에게 괜히 실력을 내비쳤나 했다.
아니, 그래도 아버지가 직접 붙인 호위라 하면 백작도 그 실력을 의심할 지언정 대놓고 지적할 수는 없었으리라. 게다가 아비게일이 알아서 결사대에 참여하니 호위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할 테고.
"스승은 그렇다 쳐도 티타니아는 특히 조심하는 게 좋아. 일단 공작가의 기사단장이나 성기사들이 협력하기는 하겠지만 위험해지는 순간 가장 먼저 버릴 우선순위를 너로 정할 테니까."
결사대가 간다 하더라도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영지를 지킬 지휘권자는 필요했기에 제2 기사단장이 남아서 군을 지휘하고 제3 기사단장은 결사대에 따라오기로 했다. 그리고 임시지만 아비게일의 호위인 우리가 가는 것처럼 정식 호위였던 성기사 셋이 이 결사대에 참여했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참가한 걸 보면 아비게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똑똑히 보였다.
교단의 뜻일지, 아니면 성기사들 본연의 뜻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거까지는 내가 알 필요 없었다.
그렇게 아비게일이 제일 중요한 성기사들과 실력만큼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제3 기사단장이라면 최악의 경우 티타니아를 미끼로 쓸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러려는 놈들이 있다면 오크 샤먼킹이 우리 수녀님 성배에 뚝배기가 깨지기 전에 내가 깨 버릴 테다.
근심이 가득한 내 시선에 자길 걱정하고 있는 걸 알아본 요정은 요사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이 담긴 눈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 마세요. 제가 버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인님은 지켜드릴게요."
"아니…… 그러니까 버려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그리고 주인인 내가 널 지켜야지 니가 왜 날 지켜."
그리 말했지만 기분은 좋더라.
그렇다고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냅둘 생각은 결코 없지만.
형님이 이런 귀여운 요정 애인을 다치게 하는 건 결코 용납 못한다.
똑똑.
"레온. 할 말이 있으니 들여 줬으면 한다."
호랑이도 제 생각하면 온다더니. 이 형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덜컥.
시바 이럴 거면 왜 물어봤냐. 존나 상남자네.
얼굴부터가 '엄근'과 '진지'가 가득한 게 딱 봐도 융통성이 없는 꼰대 같았다. 분위기는 비슷해도 내가 내거는 조건을 어느 정도 수용해 주는 아버지와는 천지차이였다.
이게 연륜의 차이라는 걸까.
형님이 이미 약혼까지 하고 이번 오크 웨이브가 끝나면 영지로 돌아가 성대한 결혼식을 형수님(예정)과 치를 거라고 한다.
그럼 나도 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공작령으로 돌아가서 결혼식까지 봐야겠지. 아버지가 이런 곳에서는 고지식한 것도 있고 사이가 안 좋다 하더라도 나 또한 가족으로써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하니까.
"형님. 내 연인하고 있는 데 함부로 방에 들어오는 건 다음부터는 삼가 줘.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니야."
"앨리스 경이 같이 있다만?"
"스승도 이제는 내 여자야. 며칠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거든."
"……그렇군."
대답히 좀 느렸다. 역시 앨리스를 짝사랑하고 있던 형님으로써는 심적인 데미지가 없잖아 있는 건가.
곧 있으면 숏다운 영애랑 결혼까지 치를 예정이면서 아직도 짝사랑을 완전히 잊지 못했다니. 어떻게 보자면 찌질한 거지만 이 세계는 엄연히 중세를 기반으로 한 야겜 속성도 있었기에 하렘이 당연한 나머지 잊지 못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앨리스가 내 호위로 따라간다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만류했던 게 형님이었지. 그때는 왜 아버지가 앨리스의 의사대로 순순히 보내줬던 건지 몰랐었지만.'
사실 앨리스가 고귀한 신분의 가문의 사생아라서 대우를 해 주는 거였었다. 그래서 그때도 후계자인 형님의 부탁을 거절하고 아버지가 앨리스를 내게 순순히 보내 준 거고.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니나 형님이나 차나 마시면서 느긋하게 사담을 나누는 친근한 관계는 아니잖아."
"그러지."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지만 그만큼 허식도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여타 귀족처럼 품위를 지켜야 하니 뭐니 하면서 귀찮게 대화를 돌려서 말하는 경향이 형님에게는 없다시피 해서 우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크 샤먼킹을 죽이는 건 내가 할 거다. 그러니 너와 네 연인들은 호위답게 윌리엄스 수녀의 안신에만 집중해라. 그 말을 하려고 왔다."
"……."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지 귀를 의심했다.
영지 하나가 박살이 나고 엔티알 백작령의 운명이 지금 결사대의 손에 걸렸는 데 이 형님이라는 새끼는 내게 공적을 주기 싫다고 지금 샤먼킹 조지는 것보다 아비게일을 호위하는 걸 더 신경 쓰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평범한 전투라면 나도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오크 웨이브를 일으키고 있는 중심인 오크 샤먼킹을 죽이기 위한 일이다. 이런 커다란 일에 사적인 감정을 넣어서 해도 되는 걸까.
당연히 안 돼지. 시바.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조별과제가 아닌 개인과제 밖에 안 해본 것인지 우리 형님이 하는 개소리는 옆집 흰둥이가 들어도 이해를 못할 수준이었다.
"왜 그러지? 너는 어차피 공적에는 관심이 없잖으냐."
나야 공적에 관심이 없기는 하지.
그런데 돈이란 건 많을수록 좋은 법인 데다가 저렇게 나대다가 형님이 뒤지면 내가 공작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점이 극혐이었다.
뭐…… 나랑 티타니아, 그리고 앨리스의 실력이라면 형님이 위기에 처해도 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긴 하니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순순히 그의 말을 들어 주는 건 불쾌했다. 안 그래도 내 어머니가 야만족 출신이라면서 경시하는 양반인데 내가 왜 배려를 해 줘야 하냐고.
"나한테 그만한 대가를 준다면 귀찮게 굴지 않을 게. 형님 말대로 수녀님의 호위에만 신경 쓰지 뭐."
"대가를 바라는 거냐? 속물적인 녀석."
"하지만 이러는 게 형님도 마음이 편할 텐데? 나는 귀찮은 것보다 물질적인 게 훨씬 더 좋아서 말이야."
"알겠다. 뭘 원하지?"
이 곰 같이 우직하면서도 계산은 똑똑이 같은 형님에게서 뭘 받아 낼 수 있을까.
공작이 되기에 앞서 주변의 가신 영주나 협력관계인 영주들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려면 공적이 필요한 그에게 있어 내가 나서지 않고 보호만 집중적으로 한다는 건 큰 이득이었다.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는 큰 손해는 아니었다. 가치라는 건 상대적인 거니까.
적당한 대가를 뭐로 받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나는 형님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렇다면 기사들이 입는 망토를 하나 구할 수 있을까?"
"망토를?"
"응. 내 여자가 된 스승에게 좋은 망토를 선물해 주고 싶어서 말이야. 근데 내가 용돈을 다 써서 쬐~끔 모자르거든. 그러니까 아예 공작가에서 좋은 망토 하나 장만해 달라는 거지."
"……."
형님의 눈썹이 움찔했다.
설마 짝사랑하던 여기사가 싫어하는 이복동생의 여자가 된 걸로도 모자라 그 선물을 자기가 직접 준비해 줘야 한다니. 이렇게까지 싫을 수가 있을까.
아무리 우직한 형님이라도 내 부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우직함 때문에 짜증이 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조건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각 속성에 대한 내성을 대폭 지녔으면서 동시에 [철벽 미니스커트] 마법과 [자동수복]이 인챈트됐고 전신을 가릴 정도로 넉넉했으면 좋겠어. 재질은 미스릴 실로 하고."
"미스릴 실? 그건 요정들만이 가공법을 아는 재료다. 소인들조차 그걸 실로 가공하는 법은 모르지. 우리 가문이라면 요정왕국에서 구입할 수도 있지만 워낙 비싼 데다가 제국에 세금도 붙지. 그걸로 해 달라기에는 수지가 안 맞아."
"그건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어요."
그때 가만히 있던 티타니아가 손을 들고 대화에 난입했다.
"노예 주제에 어딜 끼어드는 거냐? 노예면 노예답게 가만히 주인의 대화를 기다려라."
"형님. 노예지만 오래 사는 요정들이 스스로 자처해서 되는 경우도 있는 걸 알잖아.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노예지만 거의 아닌 거나 다름없지. 그리고 내 연인이니까 다시는 그런 취급 안 해 줬으면 하네."
노예 신분인 티타니아가 우리들이 대화하는 중에 난입하자 형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갈했고 그에 나는 바로 빡쳐서 반박했다.
"내가 눈 돌아가면 형님이고 뭐고 백작령이고 뭐고 나가리 되는 거니까."
"……."
형님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장 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눈빛을 하는 데 나는 어떻게 형님을 조질지 말지 고민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이어지자 오히려 불안해 하는 건 앨리스와 티타니아였다. 그녀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지. 그녀들의 눈치를 보는 척하는 모습을 형님에게 보여 준 나는 기세를 거둬들였다. 마치 그녀들을 배려해서라는 듯 말이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모친을 무시할 때 말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군. 알겠다. 네 연인들이라면 그 신분이 노예라 하더라도 무시하지 않으마."
"그럼 제 요정 여자친구 얘기 좀 들어보시죠."
"……알겠다."
정식으로 대화의 참여를 허가받은 티타니아가 설명했다.
"저는 요정왕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어요. 그런 제 이름을 사용해서 미스릴 실을 구매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미스릴 금괴 하나 정도는 원가에 가까운 값에 구매가 가능할 거예요."
"그게 사실인가? 네 신분이 어떻기에?"
"저는 이그드라실의 현 여왕의 동생이에요."
"……."
형님의 입이 다물어졌다.
눈을 몇 번 씩이나 꿈뻑이는 게 마치 지금 자신이 들은 게 맞는 건지 의심하고 재확인을 거치는 것 같았다.
다시금 침묵이 흐르다가 제정신을 차린 형님이 내게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거였다.
"레온. 타 국가의 왕족을 노예로 삼다니. 미친 거냐?"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형님이 당황하긴 했나 보네."
"아니……. 후우우.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형님은 혼란에 빠졌다.
집 나간 동생 놈이 갑자기 타 국가 왕족을 노예로 만들어서 연인이랍시고 옆에 두고 있으면 당혹스러울 만하긴 하지.
"간단해. 티타니아는 설녀라는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불꽃 속성의 오러가 아닌 이상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노예가 되면서까지 나랑 이어지겠다고 스스로 자처한 것뿐이니까."
"……설녀라. 그런 거였나."
설녀라고 하자마자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형님.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굳이 진실을 설명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설녀는 불꽃 속성의 마법사나 기사가 아니면 만지기도 힘든 이들이 수두룩하지. 너의 불꽃은 특히 강력하니 설녀인 고위요정을 만질 수 있던 거고 그로 인해 노예가 되면서 강제로 연인을 맺은 건가."
"그런 셈이지 뭐."
사실 라울이란 용병 새끼한테 낚인 건데 그게 전화위복이었다고 말하기는 싫었다.
내가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쪽팔리잖여.
"알겠다. 레온의 '연인'인 고위요정의 이름을 대며 미스릴 금괴 하나 분량의 미스릴 실을 구매하여 기사용 망토를 구매하면 되는 건가. 내가 알기로 망토 하나 만들 양은 금괴 하나의 삼분지 이라고 알고 있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거지?"
"그건 형님이 알아서 처분해. 공적으로 삼든 말든 상관없어. 제국에 세금도 내야 하는 데 그 정도는 가져야지."
"알겠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수긍한 형님이 잠시 앨리스를 보고는 복잡한 눈빛을 했다.
짝사랑했던 여기사가 동생과 사귀는 사이가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선물을 자기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처량하기 짝이 없겠지. 나라면 절대 안 한다.
"어쨌든 밤에 오크 샤먼킹을 암살하러 가야 하니 체력을 보존해라.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그래. 잘 가라고, 형님."
엔티알 백작이 이미 결사대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지금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빠져도 된다고 했다. 괜히 지금 참여했다가 야밤에 결사대로서 피로가 남는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거리도 없었으니까.
남들 다 아는 사실을 저렇게 꺼내는 건 앨리스를 향해 내비쳤던 자신의 본심을 감추기 위해서리라. 그렇다고 동정하지는 않겠지만.
형님이 가고 난 후, 나는 뒤돌아 티타니아를 와락 껴안았다. 내 키가 작아서 머리를 조금만 숙이면 폭유에 파묻히는 게 좋았다.
"고마워, 티타니아. 우리 스승 선물하는 걸 도와줘서 말이야."
"헤헤. 저랑 앨리스 씨는 이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걸요. 당연한 거죠."
이렇게 마음씨 고운 요정이 내 연인이라니. 행복하기 짝이 없구만.
그때 조심스럽게 내 뒤로 다가와 뒤통수를 지긋이 누르는 부드러운 유압이 있었다.
"저, 저도…… 레온에게 감사합니다."
내 사랑스러운 둘째 연인이 알콩달콩한 분위기에 취한 건지 날 뒤에서 껴안은 거다. 앞뒤로 얼굴을 누르는 부드러운 유압에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번 사태가 끝나고 앨리스랑 섹스하면 두 사람 가슴 사이에 성기를 넣고 파이즈리나 시켜 봐야겠다. 생각만 해도 사타구니에서 용머리가 승천할 것만 같았다.
……맞다. 앨리스는 티타니아랑 닿으면 안 돼지. 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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