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노출증 여기사 (1)
* * *
당신의 그림자에 의뢰를 넣고 복귀하여 여느 때처럼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티타니아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한 뒤에 자유시간을 갖다가 정오가 되어 점심을 먹은 뒤에는 스승이자 호위기사인 앨리스와 함께 셋이서 검을 나눈다.
그런데 검을 나누면 나눌수록 티타니아에 대한 재능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얘는 검도 소질이 있는 데 활이 더 소질이 있을 것 같네.'
보면 안다. 여러 마안 계열의 스킬로 고위요정의 근육부터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간파하니 검술을 오랫동안 단련해서 쌓은 게 있지만 그보다는 궁술에 더 적합한 움직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용병 중에 요정이 있었는데 그도 궁수였으며 그의 근육의 움직임과 티타니아보다 못했지만 근본 자체는 흡사했으니까.
즉, 티타니아는 궁술의 묘리를 검술에 적용시켜 자신이 펼쳤다는 거다.
…천잰가? 나처럼 스킬도 다중다양한 것도 아니면서 오백 년 만에 궁술의 묘리를 적용시킨 검술을 창안하다니.
대련이 끝나고 검을 거둔 우리는 준비해 놓은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정비할 시간을 가졌다. 나는 얼른 땀을 치워 버리고는 티타니아에게 다가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러고 보니 티타니아는 궁술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왜 그런 거야? 보통 요정은 정령술과 궁술에 적합한 신체를 타고 나잖아."
"……."
"아. 네가 검술이 딱히 불만이거나 부족하다는 건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안색이 어두워지기에 냉큼 덧붙이자 그제야 안도한다는 표정의 티타니아를 보고 말을 바꾸길 잘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내 질문을 듣고 똑같이 호기심이 돋은 건지 옆에 있던 앨리스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티타니아. 저도 궁금하던 찰나였습니다. 항상 자세에 궁수처럼 묘한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 그랬나요. 전혀 몰랐어요."
뻘쭘하다는 표정을 지은 티타니아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날 보더니 이내 좀 수치스럽다는 기색으로 우리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기 시작했다.
"그게… 요정들은 원래 궁술보다는 정령술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 호신용으로 검술을 배워요. 몸 쓰는 법을 배운 다음에 궁술을 배우는 거죠."
"그렇지. 요정들의 궁술은 난이도가 있으니까."
숲을 뛰어다니면서 화살을 쏘는 요정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영역에서 암살자나 마찬가지라던가.
덕분에 요정 사냥꾼들도 숲에 들어가면 결코 방심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인 티타니아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정령술과 호신술을 배우고 다음으로 궁술을 배우는 도중에…… 설녀라는 체질이 완전히 개화됐거든요."
"아."
궁술은 검술보다도 난이도가 높다.
한계를 돌파하기가 지극히 어려우며 기량을 키우는 것마저 쉽지가 않다. 그러니 당연히 선조 때부터 내려온 요정의 궁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신체접촉이 이뤄지며 자세를 잡아 주거나 해야 하는데 설녀라는 체질 때문에 그 누구도 티타니아를 만질 수 없었던 거다.
나랑 앨리스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자 귀가 살짝 처진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궁술을 어중간하게 배운 바람에 검술보다 성장세가 늦더라고요. 결국 활을 손에서 놓고 세검을 잡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고위요정인데 불의 정령과 계약한 고위요정이 도와주지 않은 거야?"
"주인님. 고위요정은 수가 매우 적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인간처럼 성욕이 많아지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자주 낳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요정은 평생을 사는 동안 임신하는 기간이 매우 짧게 찾아온다. 그렇기에 음마처럼 장수하는 종족이면서도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하물며 평범한 요정도 그러는데 그 두 배의 수명을 살아 가는 고위요정이라면 그 수가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납득했다.
"게다가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돌이키기 힘들죠. 제 고모님과 아버님도 몬스터인 그린스킨과의 싸움에도 돌아가시고 제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저 말고는 고위요정이 없으니 국가를 운영하느라 절 가르칠 시간이 없으셨던 거죠."
"그렇구만. 그럼 궁술을 배우고 싶다 이거지?"
"물론이죠. 요정으로써 궁술의 재능이 있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건 수치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주인님이요?"
"응."
무협 계열 스킬 중에는 궁술(??)이라기보다는 궁법(??)이 있다. 뭐가 다르냐면 단전에 있는 내공, 즉 이곳의 [오러]와 운용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달까.
익숙하지 않겠지만 티타니아라면 금방 익혀서 뛰어난 궁법을 펼칠 수 있을 거다.
요정들이 펼치는 효율적이면서도 기교의 면모가 강한 기량 넘치는 궁술을 알려 주는 건 나로서는 무리니 나중에 따로 요정을 만나면 내가 배워서 알려줘야 하겠지만.
"가장 잘 쓰는 무기야 검이지만 그 외의 무기도 못 다루는 게 없다시피 하거든."
"사실이다. 도련님은 굳이 검이 아니어도 날 이기실 정도로 강하니까."
호위기사이자 헛된 말은 쉽게 하지 않는 앨리스의 보증까지 추가되자 티타니아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네.
"……주인님, 혹시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이세요?"
"드래곤은 아니지만 재능이 그에 꿇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네."
초능력 계열 스킬 중에는 [용인화]라고 드래고니안처럼 변신하여 신체를 강화하는 스킬도 있었다. 그것만 있다면 모를까 수많은 아바타의 스킬들이 내제된 나는 이 게임에서도 전설로 취급되는 용신(?)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뭐, 애시당초 유일신이자 용신인 아가사를 상대로 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도들을 분노케 하는 행위밖에 안 되서 절대 안 하겠지만.'
드래곤 빠돌이들인 광신도들을 상대하는 건 지극히 싫었다.
"그런데 티타니아. 너는 나한테 활 쓰는 법만 배우는 게 아니야."
"네? 그럼… 뭘 같이 배우는 거죠."
"각법이라고 다리로 싸우는 격투술이지."
"그게 될까요?"
"돼."
나는 단언했다.
그야 스킬로 분석한 티타니아의 잠재성은 궁법과 각법을 섞으면 크게 될 거라고 확신하니까. 화살로 쏘면서 다가오는 적이 있다면 다리로 후려 패는 고위요정을 상상해 보면 존나 셀 텐데 동시에 존나 섹시할 것 같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런 멋진 고위요정을 헐떡이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컷이라는 충족감을 느끼고 싶달까.
'티타니아에게 궁법과 각법을 잘 조화시켜 가르친다면 앨리스랑 동수를 이룰 정도인 것 같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거다.
그게 정말인지는 까 봐야 알게 되리라.
"그럼 교육은 언제부터 하나요?"
나는 싱긋 웃었다.
"지금 당장."
◇◇◇
초반에는 각법이 아닌 궁법을 알려줬다.
단순히 기량으로 펼치는 궁술이랑 다르게 궁법은 마력까지 운용을 겸하는 기술이기에 난이도가 훨씬 심했다. 그에 반해 파괴력만 더 높지 기술 자체는 요정들이 사용하는 궁술보다 뒤떨어지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타니아는 군말 없이 내 지시에 따라 궁법을 배우고 빠르게 익히더라.
그녀가 궁법을 터득하는 속도를 보고는 과연 고위요정이구나 싶었다.
저 멀리 있는, 나도 마안을 발동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거리에 있는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다 못해 아예 파괴시켰으니까.
아니 미친. 저 과녁 통짜 철제로 만든 거라 쉽게 파괴되지 않는 건데 저게 화살 한 방에 나가리가 나네.
나도 가능하긴 하지만 티타니아는 내게 궁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사흘조차 안 됐다는 걸 고려하면 말도 안 돼는 성장속도였다. 역시 요정 중에서도 티타니아는 재능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 뛰어난 궁사의 자질을 지닌 게 틀림없다.
어제부터는 각법까지 함께 응용하는 수련을 시작했으니 장차 미래가 기대되는 요정이다.
과연 내 요정답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알려 준 궁법은 어때?"
"대단해요."
티타니아는 단언했다.
"단순히 기량이 아닌 마력의 운용을 곁들어 이렇게 파괴적인 위력의 화살을 날리는 건 생각치도 못했어요. 아니, 저희 요정들도 이런 걸 배우기는 하지만 파괴력이나 사정거리의 수준이 남달라요. 기교가 더 못하는 정도지 그 외에는 모든 게 월등하네요. 주인님은 이런 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천재니까."
"그렇군요!"
"……."
직접 말하고도 뭐 하기는 한데 티타니아 얘를 이렇게 냅둬도 되는 걸까.
장담컨대 만약 이 자리에 있던 게 앨리스였다면 내게 짜게 식은 눈빛을 보내 왔을 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섬기기에 모멸하는 건 아니겠지만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겠지.
그래도 나를 이렇게 믿고 순종적으로 따라 주는 요정이 있다는 건 수컷으로써 쓸데없이 충족감이 차올라 기분은 좋았다.
"뭐, 열심히 배워 봐. 그럼 굳이 엘라임이 아니어도 앨리스랑 해볼 만한 승부가 나올 테니까."
"정말인가요?"
"나는 내 여자한테 거짓말 안 해."
양허리에 손을 얹은 내가 단언하자 티타니아가 눈을 가늘게 뜬다.
"왜? 못 미더워?"
"네."
"……우째서?"
"도련님의 외형을 생각하시면 그리 당당히 말하셔도……."
내가 쇼타라는 사실을 망각한 모양이다.
그래. 시바 키가 150cm도 못 되는 쇼타 꼬맹이가 단언하면서 포즈를 잡아도 위풍당당은커녕 허세만 존나 부리는 광경이 될 테니까.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네.
솔직히 합법로리인 이프리트가 위엄보다는 귀엽다는 생각부터 품고 있고.
"그런데 아까는 왜 믿어?"
"도련님이 저랑 앨리스 씨가 합격을 넣어도 상처 하나 내기 힘든 천재인 건 맞으니까요."
"아."
이미 입증이 된 건 솔직하게 인정한 거였구나. 티타니아가 순진해 빠진 요정이라 그런 게 아니었어.
참으로 다행이긴 한데 어떤 의미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똥 누러 들어갈 때랑, 누고 나왔을 때 화장실을 취급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그건가. 들어가기 전에는 똥칸이 존나 절실한데 싸고 난 뒤에는 똥칸이 냄새 나고 더럽다며 회피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때, 앨리스가 오러를 일으키며 산에 있는 나무를 쓸어 버리며 등장했다.
아니…… 티타니아 궁법 수련하려고 산 빌려서 멀리다 철제 과녁 설치하고 하는 건데 나무를 왜 썰어 버리는 건데. 우리 거 아니라고. 그리고 나가는 건 내 용돈이고.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아니면 스승이 큰일 날 거야."
큰일 아니기만 해 봐.
월급 깎일 줄 알아.
"하르트 공작령을 향해 오크 웨이브가 일어났습니다! 이미 자작령이 점령되고 공작령 옆에 있는 백작령에서 전투 중이랍니다!"
"……옴마나, 씨발?"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큰일이었다.
그것도 보통 큰일이 아니라 존나게 커다란 대형사건.
내 용돈 끊기게 생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