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촉수성애 정령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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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본가에서 복귀 요청이 올지 몰랐기에 당장 당신의 그림자에 가서 의뢰부터 하기로 했다. 취미로 용병이 되서 의뢰를 하다 보니 얕은 인맥이 조금 넓어지고 그로 인해 이 작은 영지에 있는 당신의 그림자 지부를 알게 되었다.
시바. 전생의 나는 여러 장르의 게임에 모조리 컨셉 캐릭터를 만들고 장시간 플레이로 고인물 수준까지 캐릭터들을 키웠으면서 왜 정작 그 게임에 대한 히든 피스 같은 정보는 열심히 안 모았던 걸까.
알았다면 어렵지 않게 금방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금방 찾았을 텐데.'
그렇다.
만약 내가 이 작은 영지의 당신의 그림자 지부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빈민가를 헤매며 전전긍긍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꼬마야. 가진 용돈 꺼내면 몸 성히 여길 나갈 수 있게 해 주마."
'이렇게 빈민가 양아치들이 꼬일 일도 없을 테고.'
앨리스나 티타니아를 대동했다면 호위라는 걸 눈치채고 알아서 몸을 사렸을 녀석이다. 하지만 내 검술 스승과 연인을 이런 후미진 곳으로 데려 오고 싶지는 않았기에 혼자 왔더니 쇼타의 체구만 보고서 녀석들이 시시때때로 깝친다.
전생에서 봤던 길거리 양아치 형들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요놈의 건달들을 어떻게 조져야 다른 녀석들이 날 알아 보고 시비를 걸지 않을까.
"하아아."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전생까지 합치면 나보다 어린 놈들인데 이렇게 시비 터는 모습을 보고 발끈하려 하다니. 나도 정신수양이 부족하다.
내가 손가락만 튕겨도 타노스의 핑거 스냅처럼 이 녀석들을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의 격차가 있는 거다.
그 정도의 차이라면 아기와 어른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놈들이 까분다고 내가 힘을 쓰면 아이를 학대하는 기분이 아닌가. 애시당초 빈민가는 빈민가의 법칙이 있는 법이다.
나야 열정적이고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같은 사내가 아니니 빈민가를 개선시키겠다는 마음도 없었고 여기서 이 양아치들을 굳이 조지자는 선택지는 그만두기로 했다.
"꼬맹아. 이 형님들 손에 들린 이게 장난감으로 보이냐? 어디서 한숨질이야!"
"……거치적거리네."
내 몸의 체질은 무협 스킬 [극양지체]로 인해 극양의 기운이 가득하다. 여기서 양(?)이란 단순히 불꽃의 기운이 아닌 음양의 양으로서 양에 해당하는 속성이면 뭐든지 펼칠 수 있다는 거다.
가장 적합도가 높은 건 불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기도 일으킬 수 있달까.
그래서 뇌 속성의 마력을 일으켜 녀석들이 마비될 정도로의 기운만 쏘았다.
"이게 아직도 우릴 무시브뤠르훼두레뒈랃뤠───────!?!?"
"랃뤠훼두레뒈뤠르훼─────!!"
감전되면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건가.
전류로 인해 마비되어 철푸덕 쓰러져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둘을 무시하고 빈민가를 더 돌아다녔다. 몇십 분을 더 헤매고 나서야 겨우 구석 골목길에서 예전에 용병이 알려줬던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병 길드부터 찾아가서 길잡이를 할 놈을 하나 고용하고 올 걸 그랬나.
"쩝. 괜히 혼자 왔다가 시간만 낭비했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험악하게 생긴 인상의 인물이 다수 있었다. 겉으로는 새파랗게 어린 놈으로 보일 내 외형에 그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담기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 호기심을 드러내기 위해 건드리는 놈은 박살이 날 준비를 해야겠지.
부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카운터에서 컵을 닦고 있는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블랙 와인 한 잔 반."
"한 잔 반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는 한 잔 단위로 판매하는 지라."
"그럼 아예 세 잔으로."
"……따라오십시오."
세심히 닦던 컵을 내려 놓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텐더의 뒤를 따라 갔다.
'그 놈한테 사 준 술이 아깝지 않네.'
술 마시고 나불나불 거리다가 암호문까지 까발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그림자'가 용병을 찾아 악착같이 달려들어 속옷까지 탈탈 털겠지만 그거까진 내 알 바 아니었다.
가게 안 쪽으로 들어가 미로 같은 복도를 걸었다.
그와 동시에 이 건물의 구조가 비밀리에 옆 건물과 이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에서 봤을 때의 견적이라면 도저히 이 정도 길이의 복도는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어느 고풍스러운 방문 앞까지 안내를 한 사내는 그 문을 노크했다.
"손님입니다."
"들여 보내."
"네."
사내는 옆으로 비키며 길을 터 줬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안내해 줘서 고맙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손히 물러나는 바텐더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게에서 네 번째로 강한 녀석이 고작 바텐더를 맡으며 안내를 하는 걸 보면 작은 영지의 지부여도 나름 쓸만한 정보를 취급하는 모양이다. 이 작은 지부에서 네 번째 강자라 해도 이곳의 용병들과 비교하면 상위권에 속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나는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속으로 흡족해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족제비 같은 인상의 정보상이 히죽거리며 이쪽을 쳐다봤다.
뭔가 한 대 치고 싶어지게 만드는 인상이네. 웬지 뺀질거리던 신병을 보는 느낌이다.
"정보를 사러 왔어."
"저희는 1급, 2급, 3급으로 정보를 분류해서 취급합니다. 급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심하며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어떤 정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니 그 점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정도야 당연하지. 걱정 마."
나는 스산한 눈길을 보내며 마찬가지로 히죽 웃어주었다.
"그냥 집 나온 귀공자라 생각해서 가격을 후려치려고만 안 한다면야 나도 여기서 난동을 부릴 이유가 없으니까."
"……."
말 없이 내 눈빛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정보가 무엇인지요?"
"비등록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
흑마법사는 굉장히 위험한 직업이다.
사령술의 경우에는 시체를 다수 일으켜 군단을 차리기도 하고 저주술의 경우에는 저주를 뿌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상대방을 죽이곤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제국에서는 흑마법사를 용인하긴 해도 제대로 국가에 등록을 마치고 족적이 전부 남게 해야 인정해 준다.
물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자유를 찾겠다며 비등록 흑마법사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 걸리면 바로 목을 쳐도 된다고 국법이 허락한다.
그렇기에 비등록 흑마법사는 꼭꼭 숨는 이들이 많다.
"비등록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 중에서도 어떤 걸 원하시는 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비등록 흑마법사도 많은 지라 분류가 꽤 됩니다."
"사령술을 사용하며 정령사나 요정과 관련된 녀석들로. 아니면 요정 노예를 구매하는 흑마법사도 좋아."
"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수많은 서랍이 딸린 책상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림자' 정보상이 직접 보관하고 있는 정보라는 소린데 그렇다는 건 좀 비쌀 지도 모르겠다.
내 용돈이 모자라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네.
정보상은 서랍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저희 지부가 가진 게 이것이 전부고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시고 싶다면 본부에 요청하겠습니다만, 추가 요금이 붙게 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보고 결정할게."
"그러시죠. 일단 요금은 받겠습니다."
정보상이 제시한 가격은 다행히도 내 용돈으로 커버가 가능하고도 남았다. 추가 요금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정보를 보고 나서 판단해야겠다.
서류를 받으며 살짝 노려 보며 경고를 날렸다.
"제값을 못 하면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죠. 저희는 신용으로 먹고 삽니다."
서류를 받아든 나는 곧장 내용을 읽어보았다.
펄럭. 펄럭.
[가속사고]까지 사용해 빠르게 정보를 읽어내리니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정보상은 정말로 읽고 있는 건지 의아스럽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서류에 집중했다.
[제국 동부, 요정왕국 이그드라실과의 경계선에서 실종자 수 급상승. 요정의 짓으로 보고 있지만 흑마법사가 범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있음. 제국 황도에 같은 방식으로 실종자가 발생하는 걸로 보아 소문이 사실이라면 황도에도 흑마법사가 숨어서 암약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됨.]
주의해야 할 키워드는 이랬다.
[요정왕국과의 국경지에 흑마법사.]
[황도에 흑마법사.]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흑마법사가 암수(?手)를 뻗쳐 오고 있겠지만 흔적도 아예 남기지 않으면 정보 길드라 해도 알아 낼 수는 없는 법이니 일단 이 놈들에 대해서만 기억하고 있다가 이 지역을 들르게 되면 직접 파보기로 했다.
"추가 의뢰를 할게. 국경지에서 비등록 흑마법사로 활동하는 이에 관련된 정보를 모조리 긁어 모아 줘."
"손님. 그런 의뢰는 돈이 제법 많이 듭니다. 하물며 요정들과의 국경지에서 조사하는 건 특히 추가 요금이 들고요."
떨그럭.
나는 테이블 위에 반으로 뚝 부러져 그 값어치를 잃은 검을 올려놨다.
"이건…?"
"통짜 미스릴로 만든 검. 부러지긴 했지만 재료가 미스릴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재주조하면 제법 쓸만한 도구를 만들 수 있을걸."
"……."
집을 나와 별장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의 비상금 중 몰래 하나 털었는데 이게 나와서 나도 깜짝 놀랐었지.
아무리 봐도 말하는 어조로 보아 내 용돈으로 감당이 불가능할 것 같았기에 꺼낸 비장의 수단이다. 비장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금력으로 후려 치는 방식이라 아깝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의뢰하고도 남겠지.
"손님. 미스릴은 비밀리에 유통하기가 힘듭니다. 저희가 이걸 가진다 해도 재주조를 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데 어찌 이걸로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조금 더 쓰시죠."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는 알고 있다. 이 세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보 중에는 특이하게도 암살 및 정보 집단인 '당신의 그림자'의 수장이 희귀 금속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거였다.
기사나 대장장이도 아니고 이런 금속을 왜 암살자가 좋아하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능글맞은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괜찮겠어?"
"네?"
"이거 들고 다른 정보 집단으로 가면 너희들 수장이 되게 싫어할 텐데."
"……."
내가 너희 수장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라는 식으로 넌지시 협박을 가하니 정보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반응을 보고 월척이구나 싶었다.
역시 녀석은 자신이 몸 담은 조직의 수장에게 미스릴을 놓쳤다는 정보가 들어가는 게 싫은 거겠지.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나도 뭐, 꼴에 귀족이란 말이지. 제법 높은 가문의 공자로서 가문에서 운용하는 세작의 정보를 하나둘 정도는 들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내가 이 정보를 아는 건 공작가에서 주워 들은 거다. 그러니 과한 경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라는 식의 위로였다.
정보상은 나에 대해 좀 아는 눈치였고 아마 공작가의 자제라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공작가의 정보력에 대한 경계를 한층 더 강화시켜 그들을 곤란케 하면서도 내게는 해를 끼치지 않겠지.
공작가? 집 나왔는데 그딴 양반들 내가 알 바냐.
풋풋한 첫사랑을 하는 소녀처럼 뚫어지라 이쪽을 노려보던 정보상은 이내 눈빛을 거두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항복했다.
"후우. 항복입니다. 반토막 난 미스릴 검을 의뢰금으로 받을 테니 부디 이 얘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게 하지는 말아주시죠. 수장께서 들으시면 저, 죽습니다."
"걱정 마. 나도 거래가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
공정한 거래(?)가 성사되고 나는 정보상의 방을 나섰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니 좀 거리가 떨어졌는데 안 들릴 거라 생각했는지 녀석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흠. 하르트 가문의 막내 공자는 손버릇이 나쁘다는 정보를 추가해야겠군요.
……아니,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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