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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쇼타의 변태목록-14화 (14/142)

〈 14화 〉 촉수성애 정령 (5)

* * *

[정령 계약]

정령과 인간의 계약에 있어 인간을 '갑', 정령을 '을'이라 한다. 갑과 을은 아래의 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1. '갑'은 '을'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한 시간 이상 소환해야 하며 이때 섹스를 무조건 해준다.

2. '갑'은 '을'을 연인으로써 대우한다.

3. '갑'은 '을'에게 하는 부탁에 비례해 마력을 1.1 배율로 바친다.

4. '을'은 '갑'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 조력한다.

5. '갑'과 '을'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쁘지 않은 조건의 정령 계약이네.'

보통 계약하는 정령과 친하게 지내는 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예스. 그러니 2번은 당연한 거고 1번과 4번, 그리고 5번은 연인 관계가 되었으니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이혼하면 그때는 계약의 파기지만 나는 이프리트를 홀대할 생각이 없으니 괜찮다.

심지어 정령이 당연히 받아야 할 3번 조항조차 굉장히 혜자다.

정령이 제한을 받는 중간계에서 힘을 써 주는데 그게 온전히 중간계에 오고 싶어서 계약까지 해 주는 게 아니다.

그들도 성장을 위해서다. 몇십 년을 공들여 계약자와의 관계에서 마력을 조금씩 쌓고 그게 축적되어 나중에 더 상위의 정령으로 진화하기 위한 준비의 발판이다. 즉, 저 1.1배율의 마력 조공이란 건 정령이 사용하는 힘의 1.1배의 마력을 가져간다는 건데 1은 힘을 발현하는 데에 쓰려는 거고 남은 0.1이 조공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0.1, 즉 1할만 마력을 조공으로 받는다는 건 굉장히 날 배려해주는 거다. 이프리트는 이미 더 진화할 수가 없는 정령의 최고봉인 정령왕이었으며 그저 나랑 알콩달콩 섹스하는 것과 흥미위주로 중간계에 가 보려는 것이었기에 그리 높은 배율의 마력을 조공으로 필요치 않는 것이었다.

'티타니아가 엘라임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보통 1.5~2.0배의 마력을 받아 간다던가.'

마력의 소비가 장난이 아니지만 마법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힘을 시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그리 손해는 아니다.

"굉장히 배려해 줬네."

"흥. 내 계약자가 힘이 딸린다고 어디 가서 얻어 맞는 건 못 참아."

입술을 비쭉인 이프리트가 검지로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정령왕의 힘을 빌린다는 건 그만큼 커다란 힘을 낭비한다는 것과도 같아. 그러니까 괜히 내가 마력 많이 가져가서 네가 어디서 맞으면 면목이 없다고."

까칠한 말투를 구사하지만 역시 배려가 기본으로 장착된 친절한 성격이었다. 섹스하기 전부터 계속 생각했던 거지만 이프리트는 역시 순수하고 착한 녀석이다.

"그런데 계약은 이대로 돌아가면 끝나는 건가?"

"그래. 이대로 중간계로 돌아가서 날 부르기만 하면 알아서 소환될 거야."

실제로 나와 이프리트 사이에 연결된 마력이 보이는 데 이게 계약의 증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티타니아와 엘라임 사이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나랑 이프리트 사이에서는 보이네.'

아마 내 계약이라서 보는 게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계약자. 현실로 돌아가면 부탁할게 있어."

"언데드 크라켄을 이쪽으로 보낸 녀석을 잡아달라는 부탁이야?"

"맞아."

이프리트는 괜히 신경질을 부리듯 방금 전까지 먼지만 남은 언데드 크라켄의 잔재마저 손가락을 튕기는 걸로 불꽃을 일으켜 흔적을 아예 없어버렸다. 덤으로 계약 전에 섹스하느라 여기 저기 튄 방사의 흔적까지 말이다.

그녀는 눈매를 일그러뜨린 채 사라진 언데드 크라켄이 사라진 곳을 아쉬움 삼 할, 짜증 칠 할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쉬바. 아무리 촉수성애라고 해도 그게 아쉬워 할 일인가.

이상성욕의 영역은 역시 내게 너무나 먼 이야기 같다.

"나야 정령왕이니 괜찮았지만 중급 정령들이 저런 거랑 만났으면 좀 골치 아팠을 거야. 이미 한 마리 성공사례가 생겼으니 그 미친 놈들이 또 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또 보내기 전에 중간계에서 막아달라는 거네."

"응. 계약자에게 바로 일거리를 줘서 미안한 말이지만 아쉽게도 정령계에서 저게 오는 걸 막을 방법은 없을 거 같거든."

영체가 되어 중간계에서 정령계로 건너 오는 건 세상의 법칙이나 다름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스틱스 강에 맹세하면 어길 수 없는 것처럼 정령왕 또한 세계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아예 중간계에서 보내는 놈들부터 조져달라는 게 이프리트의 주장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딴 귀찮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프리트가 내 연인이 되고 이미 매일같이 몸을 섞는 티타니아의 고독을 버티게 해 준 엘라임마저 정령이니까.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떠올릴 수조차 없다는 소리다.

"본격적으로 찾아나선다 해도 증거가 없으니 아예 못 찾을 수도 있어. 흑마법사는 중간계에서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으니까."

이종족인 음마(??)족은 나쁘지 않게 보면서 흑마법사는 나쁘게 본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흑마법사는 취급이 안 좋고 감시의 시선이 여기저기 붙기에 찾기는 쉽지만 반대로 말하면 작정하고 숨은 놈들은 찾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리고 정령사의 육체를 갖고 저딴 촉수 괴물을 보낼 정도로 장난질이 심한 녀석들이라면 당연히 후자의 경우일 테고.

공작가의 정보망을 쓴다 하더라도 찾기가 요원하겠지.

'그럼 역시 '당신의 그림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나.'

당신의 그림자.

이름 짓는 센스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정보망으로 치자면 뒷세계에서 가장 알아 주는 정보력을 가진 암살자 길드다. 암살자 길드라고 했지만 정작 암살보다는 정보를 다루는 경우가 더 많다던가.

'당신의 그림자' 살수들의 암살 기술이 너무 뛰어나서 다들 암암리에 서로 그들을 암살에 고용하지 말자고 무언의 약조를 맺었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반즈음 정보집단이 돼 버린 녀석들에게 비등록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좀 요청해야겠다.

이번 주는 돈 좀 깨지겠군.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 시원하게 지르자고 속으로 결정을 내린 나를 향해 이프리트가 이해한다는 눈빛을 자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부탁할게. 계약자 정도의 강자면 중간계에서도 제법 이름 좀 날렸을 테니 인맥이 있을 거 아니야. 그렇다고 부담은 갖지 않아도 돼. 음침한 흑마법사들의 숨는 능력이야 잘 알고 있으니 못 찾는다고 해도 크게 불만은 없어."

"……."

미안한데 공작이 되기 귀찮아서 일부러 명성을 쌓지도 않은 인맥제로 귀족 자제란 말씀.

스스로도 훌륭한 추측이라며 말하는 이프리트의 면전에다 대고 그리 말할 수는 없었기에 말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앨리스는 어디 인맥 없으려나. 티타니아가 고령의 요정이긴 하지만 사백 년을 홀로 살았다고 하니 큰 인맥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역시 당신의 그림자에게 맡기는 게 최선의 방법일 것 같다.

"일단 아는 이들에게 최대한 조사해달라고 부탁은 해 볼게."

"응. 그거면 돼."

"그럼 계약도 끝났으니 나는 이제 그만 슬슬 가 본다."

"……벌써 가는 거냐."

이프리트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티타니아처럼 달달한 건 아니었지만 떡정으로 쌓인 애정이 담겨져 있어서 아쉽다는 감정을 스킬도 없이 간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헤어지는 것에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백년만년 정령계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게 아쉬워 하지 마라. 자주자주 소환해 줄 테니까."

"그렇게 티 났어…?"

"응."

"쩝. 나도 첫 계약자라고 들뜬 모양이야."

정령왕이 되기 전에는 정령 중에서 수위를 다투는 실력이었을 테니 계약을 한 번 즈음은 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요정족과도 계약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럼 내가 정령왕의 첫 경험과 첫 계약을 모두 따낸 건가.

절로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거 같다.

◇◇◇

정신이 든 난 정령계에서 겪었던 일을 앨리스와 티타니아에게 설명했다. 둘은 촉수 괴물인 언데드 크라켄이 정령계에 있었다는 사실에 질색을 하다가 그때 도와주게 된 게 불의 정령왕이며 그녀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정령왕하고 떡 쳐서 계약 성사시키고 왔다고 설명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내가 알려준 것만 해도 작은 일은 아니었기에 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불의 정령왕하고 계약하셨다고요?"

"도련님은 항상 제 예상을 벗어나시는군요."

어벙한 표정을 짓는 둘에게 콧방귀를 껴줬다.

"흥. 그것보다 정령계에 언데드가 유입됐다는 사실에 더 놀라야 하는 거 아니야?"

"확실히…… 그건 심각한 문제네요."

티타니아가 고개를 주억이며 내 질문에 수긍했다. 정령사의 자질이 뛰어난 요정답게 정령계에 언데드가 유입됐다는 사실이 자뭇 불쾌한 모양이다.

정령계에 언데드를 유입시킬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이라면 최소한 요정 정도의 재능이 필요한데 그렇다는 건 결국 흑마법사 무리가 요정을 잡아다 실험을 했다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거다.

비록 쫓겨난 몸이지만 고위요정으로써 요정을 아끼는 마음이 어디 갔을 리는 없다.

'반드시 잡아야겠네.'

이프리트만 그랬을 때는 그래도 노력은 해 보려는 정도였지만 티타니아까지 저렇게 대놓고 불쾌해 하니 나로서는 연인들을 위해 그 빌어먹을 자식들을 때려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연인이 이제 둘인데 둘 다 그놈들 싫다잖아.

그런데 당신의 그림자에 의뢰를 넣어도 그놈들을 잡을 수 있을 지가 의문인데 최근 본가에서 온 편지에 오크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바빠질 건 거의 확정이다 싶으니 걱정이다.

'빌어먹을 오크 놈들. 좀만 늦게 발아하지.'

안 그래도 흑마법사 찾아서 조져야 하는데 이놈들이 본가의 영지를 공격할 낌새라 얼마 안 있으면 본가로 복귀하라는 편지가 올 것만 같았다.

그때가 되면 앨리스랑 티타니아만 데리고 본가로 복귀할 생각이다.

여기는 별장이라 집사나 메이드가 힘을 숨김 같은 전개는 없어서 데리고 돌아갈 만한 이들이 이 둘뿐이다.

"걱정 마. 티타니아."

나보다 키가 컸기에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면서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 보며 안도하라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어줬다.

"본가에 돌아가기 전에 암… 정보 길드에 가서 돈 내고 정식으로 의뢰할 거야. 비등록 흑마법사가 어디 나타나지 않았는지 정보를 모아달라는 식으로 말이지. 적어도 그럴 법한 정보가 모일 거야. 그럼 그때 같이 흑마법사 놈들을 잡으러 가자."

"네!"

뭉클.

제법 기분이 좋아졌는지 티타니아가 내 뒤로 다가와 살포시 껴안는다. 저택 안이라 검은 차고 있어도 보호대인 경갑은 입고 있지 않았기에 부드러운 폭유가 내 머리를 포근하게 받쳐 주는 데 기분이 존나 좋다.

이러고 있으면 무협에 나오는 우화등선을 할 것만 같다. 농담이 아니라 리얼루.

그녀가 홍조를 띤 얼굴로 내 귀에다 속삭였다.

"사랑해요, 주인님. 쪽."

그리고 이어지는 볼 키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데 옆에서 앨리스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 도련님. 스승이 옆에 있는데 염장질은 적당히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안, 스승."

앨리스도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녀도 사실 상 내 스트라이크 존에 있기는 한데 옛날부터 내게 검술을 친절하게 알려 주고 성실히 날 모시는 모습을 보면 뭔가 친누나 같아서 대놓고 꼬시기가 거시기 했다. 그래서 딱히 건드리지 않고 느긋히 같이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티타니아랑 바로 옆에서 염장질을 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하지만 어떡해.

'우헤헤.'

가슴은 좋은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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