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촉수성애 정령 (1)
* * *
세상에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과연 현실인 걸까.
붉은 장발의 머리카락은 불꽃과도 같았으며 몸의 곡선이 슬렌더한 몸매는 아름다웠다. 티타니아보다 앨리스보다는 확실히 키도, 가슴도 작았지만 인형 같은 이미지가 강한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래. 이 모습만 본다면 그저 아름답다며 감탄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인형 같은 이미지에 정열적이면서도 고양이처럼 도도한 분위기의 눈매는 확실히 미녀에 속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저게 대체 머선 일이고.
"시바! 정령계에 웬 촉수 괴물이 있는 건데?!"
시커먼 잡기로 이루어진 게 시체처럼 창백한 문어 괴물이 일 터인 그녀를 포박해서는 전신을 애무하고 있었다.
아. 눈 썩을 거 같네.
"아으윽. 아앙."
심지어 촉수가 기분이 좋은 건지 간드러지는 신음까지 달달하게 흘리는 불의 정령왕은 얼굴마저 홍조를 띠었다. 아니, 아무리 봐도 기분 좋을 게 아닌데 좋아하고 있다.
정령들은 설마 촉수물에 공통적인 성취향이라도 있는 걸까.
"아응……? 인간?"
그렇게 문어 괴물과 즐기던 그녀는 이제야 날 발견했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아니, 아니지! 하으윽…! 그만 좀 해, 이 무뇌 촉수야! 히잇……! 인간, 도와줘!"
"…… 씩이나 되면 알아서 빠져 나오라고."
"아흑! 너, 너무 조아…가 아니라, 너무 기분 나빠서 힘이 안 들어간다고오오오옷……?!"
아무리 봐도 좆밥 문어 괴물의 촉수질이 너무 기분 좋아서 벗어나지 못하는 변태로밖에 안 보였다. 정령왕의 기운이면 진작에 저 좆밥에 불과한 문어 괴물을 문어구이로 만들거나 태워서 숯으로 만들어 버렸을 테니까.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정령들한테도 성취향이란 게 있었어? 시발. 섹스도 가능한 건가?'
난 여태까지 정령이 무성(無?)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존나 새끈한 미소녀였다. 정령계라는 건 미소녀나 미녀가 가득한 환상향이었던 걸까. 난 여태까지 꿈을 코앞에 두고도 몰랐던 병신이었던 모양이다.
노예를 구매한다는 어중간한 행위는 하지 말고 그냥 정령술이나 존나 배워서 정령들이랑 떡이나 치는 건데.
아, 그래도 티타니아랑 만날 수 있었으니 후회하지는 않지만.
잡념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정령왕을 도와주긴 해야 한다.
취향 저격으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침을 질질 흘리는 칠칠 맞은 모습을 내비치고 있는 걸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딱 봐도 사령술의 기운이 느껴지는 불온한 존재와 저렇게 밀착하고 있으면 언젠가 악영향을 미칠 지 모르는 일이다.
"불의 정령왕인데 불꽃에 데미지를 입지는 않겠지. 그렇지?"
"으, 응…! 빨리 햇……."
"……."
시바. 빨리 구해야겠다. 이러다 내가 존나 꼴려서 덮치게 될 지도.
딱히 로리 취향은 딱히 없지만 내 체구가 쇼타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불의 정령왕이 존나 예뻐서 그런 건지 몰라도 저렇게 신음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발기탱천할 것만 같으니까.
"너 같이 부정한 새끼를 잡는 데 이것 만한 놈도 없지!"
내 [오러]의 숙련도는 가히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보통은 검에 씌우거나 그 형태를 바꾸는 것만 해도 기사들에게 있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일이지만 내게는 아주 쉬웠으며 그 이상의 제어도 가능했다.
[극양지체]로 불꽃(火) 그 자체나 다름없는 내 마력이 시뻘건 열기의 오러로서 세련되어 온전히 내 의지에 따라 제어된다. 어느새 내 손에는 오러로 이루어진 무형의 한손검이 들려 있었다. 이런 걸 아마 무협에서 무형검이라 불렀지 아마.
"와아……."
순수한 불꽃으로 이뤄진 무형검을 본 정령왕마저 감탄을 터뜨렸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혹시 처치한다 해도 저런 불쾌한 촉수를 가진 문어 괴물의 잔해나 사념이 일절 남지 않도록 여태까지 쓰지 않았던 [성흔]을 발동했다.
보통 성흔(??)이라 함은 신이 신도에게 내려준 것으로 그 신이 이 신도는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일종의 '찜'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 신을 따르는 신도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것으로 아가사 교단이 그걸 본다면 미친 듯이 발광하며 성인이 나타났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거다.
다만, 나는 이것을 그저 스킬로 얻은 것이기에 신을 믿고 있지 않아서 그저 용량이 빵빵한 신성력 배터리 정도로 취급할 뿐이다.
다른 사제들이 내 본심을 들었다면 신성모독이라며 더럽게 피를 토하면서도 그 두껍기 짝이 없는 성경책으로 내 뚝배기를 깼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성흔]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무형검에 스며들어 일렁이던 새빨간 불꽃이 순식간에 순백의 불꽃으로 바뀌었다. 나는 곧장 미소녀 정령왕을 페로페로 하고 있는 문어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성화(?火)라고 들어는 봤냐?"
물리적인 검이 있었다면 불의 정령왕도 다쳤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순수한 극양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무형검이었기에 그녀가 다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불꽃이 불꽃을 만난다고 꺼지지는 않지 않는가.
성스러운 불꽃은 불의 정령왕과 촉수물을 찍고 있던 문어 괴물을 덮쳤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역시 성화에는 쥐약인 것인지 문어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베인 곳부터 빠르게 타들어갔다.
성화무형검(?火無??)은 그대로 정령왕은 통과한 채로 문어 괴물만을 치열하게 불태우며 잡아먹는다. 사특한 존재 그 자체이기에 더더욱 배가 되는 데미지를 받으며 문어 괴물은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촉수처럼 보이는 문어 다리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불의 정령왕을 양팔과 다리를 포박한 단 세 개의 다리 만을 냅두고는 나머지 다섯 개의 촉수가 사방을 향해 무작위로 휘둘러지며 난전과도 같은 난무를 펼친다.
그래도 일단 정령왕부터 구해내자는 생각에 그 촉수들이 난무하는 곳으로 접근한다. 성화무형검으로 내리치는 촉수를 불사르고 가른다. 그러나 묵직한 일격에 물리적인 힘의 차이로 내가 밀려나 절단까지 내는 건 실패했다.
마력으로 하는 신체강화 말고도 초능력 계열 스킬인 [신체강화]를 사용해 근육을 더욱 압축식으로 강화시켰다. 그 외에도 신체를 강화하는 여러 스킬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쇼타라는 육체에 걸맞지 않는 스펙을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거라면 힘으로 꿇리지는 않겠지.
"아흑."
……저 놈의 신음 소리는 좀 안 내면 안 되는 걸까.
집중하는 데 상당히 방해된다.
안 그래도 큰 좆이 발기까지 하니까 빠르게 발을 놀리는데 심하게 덜렁거려서 힘들다.
그래도 이제는 날 때리려는 촉수를 가격해 완전히 잘라낼 수 있었다. 놈은 채찍의 원리를 알기라도 하는 건지 휘두르는 촉수의 끝자락으로만 날 때리려고 해서 막아가며 야금야금 자를 수밖에 없었다.
내 검은 하난데 저 언데드 문어 괴물 새끼의 촉수는 다섯 개나 있으니까.
…………………………시바. 나는 존나 병신인가.
'왜 성화무형검을 하나만 만든 거지? 두 개 만들어도 되잖아!'
만렙을 찍은 [검술]과 [신검합일]이라면 처음 써보는 쌍검술도 제법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내 빡대가리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던 건지 꾸준히 검 하나만 달랑 들고 저 많은 촉수 채찍질을 막으려 했던 거다.
시바. 원망한다. 오 분 전의 나.
화르륵.
당장 성화무형검을 하나 더 만들어 양손에 하나 씩 쥐었다.
"넌 이제 뒤졌어 새꺄!"
검이 원 플러스 원인 데다가 성화에 배로 데미지를 입으니 쌍검을 든 나는 녀석에게 있어 따따블의 데미지를 주는 거다. 이도류 레온 하르트. 존나 멋있는 이름 같네.
쌍검술은 처음 사용해 본다.
어지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쌍검술은 난이도가 극악해서 검 하나 드는 것만 못하는 경우가 파다한데 나의 경우에는 스킬들의 적극적인 보조로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두 손으로 균형을 잡아 휘두르는 검을 한손으로만 잡으니 힘이 배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몇 배로 들어가며 집중을 많이 해야 해서 일도류 이상으로 정신이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스킬이 커버한다.
이걸 염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검무(??)라고 해야 할까.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잘린 단면에서 붙은 불꽃이 정순한 화기를 터뜨리며 문어 괴물의 재생을 방해하는데 마치 쥐불놀이처럼 보인다. 시바. 저게 촉수 괴물이 아니라 새끈한 미녀가 하는 거였으면 존나 기분 좋게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꾸준히 촉수를 깎아내니 녀석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화안금정]으로 간파한 능력에 의하면 특별한 방법으로 만든 언데드라 그런지 재생력이 상위 음마 저리 가라 할 정도였지만 카운터인 성화에 두드려 맞느라 최대 장점이 재생력마저 무용하기에 일방적으로 내게 당했다.
문어 괴물은 이러다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포박해서 애무로 무력화시킨 정령왕을 풀어주고는 남은 촉수 다리 세 개를 동시에 내게 뻗었다.
"남자가 촉수에 당하는 건 외도(外?)야, 씨발러마!"
여자가 촉수에 당하는 건 히토미고.
서걱. 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
두 팔을 풍차 돌아가듯 쉬지 않고 휘두르며 동시에 달려든 세 개의 다리를 써 먹지도 못할 문어다리 쪼가리로 만들어 버린다. 내 검술을 뚫지 못한 녀석은 기어코 공격 수단을 전부 잃어버린 채 비명을 지른다.
끼에엑─!!
아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는 척을 하면서 몸을 들어 인간처럼 섰다.
보니까 문어답게 몸통 아래에 뾰족한 이빨들이 가득한 입구멍 겸 똥구멍이 있었다. 문어들은 입과 항문이 하나라던데 진짜인 모양이다.
줄이면 똥입이다.
그 똥입에서 녀석이 집중시킨 탁한 기운이 쏘아진다.
'씨발. 저거 침이 아니라 똥물 아니야?'
존나 구역질 난다. 사람 앞에다 침인지 똥물인지 모를 것을 뱉다니. 저 문어 괴물 언데드를 누가 제작했는지 몰라도 아주 인성이 파탄 난 녀석임에 틀림없을 거다.
"더러운 자식!"
마력을 더욱 방출해 커다란 성화로 녀석의 흑탕물 같은 침을 모조리 불사르고 강하게 발을 내딛어 지축으로 삼은 채 왼손에 들린 검을 투검한다.
푸욱. 침을 뱉느라 열려 있던 녀석의 똥입에 그대로 성화무형검이 꽂힌다.
끼에에에에에엑───────!!!
화르륵.
성화무형검이 녀석의 몸 안에 있는 핵을 찔렀다. 그러자 녀석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이며 캠프파이어의 장작마냥 타오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불길을 끄려고 저항해 보지만 언데드로서 극으로 상반된 속성인 성화를 떨쳐낼 방법이 일절 없었다. 문어 다리도 이미 다 잘려서 남은 것도 없었기에 녀석은 발버둥을 치다가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이내 정령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악(?)은 사라졌다."
나에게 있어 여자뿐이라면 모를까 남자에게까지 촉수를 뻗는 녀석은 절대적인 악이요, 외도였으니까.
성화무형검을 푼 나는 손을 털며 나체로 아직 홍조를 띠우며 주저 앉고 있는 불의 정령왕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다행히도 내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손을 마주 잡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날 힐끔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이미 박살 난 위엄을 가장했다.
"커흠. 컴. 본녀는 이프리트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구나, 계약자의 자질이 있는 소년이여."
"멋을 부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 안 해?"
"……."
이프리트의 오밀조밀한 입이 다물어졌다.
자기도 헛짓거리라는 건 잘 아는 모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