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애정결핍 요정 (3)
* * *
티타니아는 저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즉, 내 노예가 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신분이 노예인지라 일단은 뭐라도 시켜야 했기에 좀 더 기다렸다가 정신을 차린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가사는 오랜 시간을 혼자 살며 자급자족을 하느라 어느 정도 수준급은 되었으며 머리 또한 좋아 회계에도 능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능력은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보조를 받으며 세검술을 펼치는 타입이라 한다.
사실 가장 자신 있는 것도 전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시험코자 우리는 그 길로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스킬 [전음]
스승. 티타니아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가능하지?
머리속에 울리는 목소리였지만 앨리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예전에 내게서 이 스킬을 배워 습득했었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도련님. 전력을 다 해 녀석을 쳐부수겠습니다.
…아니, 부수지 말고 실력 확인만 하자. 제발.
네.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래도 거짓말을 한 적도 없고 그녀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기에 자신의 스승이 우발사고를 가장한 피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는 안심한 채 연무장에 도착했다.
"가장 자신이 있는 분야가 전투라고 했으니 그걸 한 번 확인해보고자 해. 상대는 내 호위기사이자 검술 스승인 앨리스가 되어줄 거야. 티타니아는 뭐 따로 준비가 필요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사용인을 불러서 준비하도록 할게."
"아뇨. 없습니다."
"그럼 당장 시작하도록 할까. 각자 알아서 배치된 연습용 무기를 골라서 연무장 반대편에 각각 서 줘. 대련의 심판은 내가 맡을게."
그녀들이 모시는 주인이 심판을 맡는다며 준비를 지시하니 둘 다 동시에 날이 없는 훈련용 철검을 챙겨 들었다.
각자의 자리로 이동한 둘을 보며 나는 갖고 있던 스킬들을 복합적으로 발동했다.
'스킬 [화안금정] [심안] [분석] [가속사고] [다중사고] 발동.'
눈동자가 붉어지는 흰자를 바탕으로 금빛이 되어 세상의 이치를 읽기 시작하고, 마음의 눈은 그녀들의 자세만 보고도 검로를 파악하려 하며, 가속된 여러 개의 사고가 그 과정을 분석하여 결과를 내놓을 준비를 마친다.
마력만 보면 티타니아가 압승이지만 앨리스의 검술 실력을 고려하면 잘못했다간 둘 다 심하게 다칠 수도 있기에 언제든지 끼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이다.
다만, 내 눈이 적안에 금정으로 색이 변하는 [화안금정]을 처음 본 티타니아는 깜짝 놀랐다.
"주인님. 눈이…?"
"아아. 걱정 마. 내 능력 중 하나야. 일종의 마안(??)이라고 보면 되니 걱정하지 마."
"아, 휴우. 알겠습니다."
안도한 티타니아가 다시 대련에 집중했다.
손만 잡아도 절정해서 기절하는 노예 요정을 안도시킨 주인은 두 여성에게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규칙을 전달할게. 최대한 상대방을 제압하는 선에서 전투를 치를 것. 살의를 품고 죽일 공격을 하는 건 금지. 그 외에는 어지간해선 사고로 넘어가도록 하겠어. 사제나 포션으로 치료하면 흉터도 사라지니까. 둘 다 이견 없지?"
"예."
"네."
확답을 받은 후에야 그녀들의 진심을 느끼고 안도하며 대련을 개시하는 박수를 쳤다.
"그럼 시작!"
짝.
박수 소리와 함께 시작을 알린 건 앨리스의 질주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목검을 쥐고는 궁신탄영(????)의 묘리로 도약하듯 뛰어 빠른 속도로 요정과의 거리를 줄이며 접전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티타니아의 마력이 먼저 정령을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오세요. 엘라임."
엘라임이라는 이름의 물의 정령이 소환된다. 그리스의 키톤과 같은 분위기의 복장을 한 푸른 머리의 미녀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녀는 오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계약자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앨리스를 보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엘라임. 그녀를 제압해주세요!"
[알겠다.]
엘라임이 손을 뻗자 찰나의 시간으로 수십에 달하는 고드름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난 정령이 펼치는 마력의 흐름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고속영창이 특징이라던 마법사 또한 저렇게 빠르게 마력을 제어하지는 않았거늘. 역시 자연을 다루는 정령답다며 속으로 감탄을 연달아 터뜨렸다.
무협 스킬인 [금강불괴]를 이룬 나조차도 저 고드름 하나 하나의 예기가 전부 나의 금강석 같은 피부를 뚫을 정도로 날카롭다는 걸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계약자인 티타니아가 설녀여서 그런지 고드름이 유독 강했다.
쏴아악!
이내 쏘아지는 고드름의 쇄도.
앨리스가 하나라도 찔린다면 치명상이겠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괜히 앨리스를 내 검술 스승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거든.'
장담하건대 순수하게 검술에 한정하면 스승인 앨리스의 검기(??)는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확신한다.
양손검에서 짙푸른 오러가 솟구친다.
황실 근위 기사단장과 비견되는 마력제어로 펼쳐지는 오러의 기세는 겉으로는 고요하면서도 거친 폭력이 내제되어 있었다.
자신의 사방을 노리는 고드름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펼쳐진 오러의 잔해가 [이화접목]으로 고드름의 방향을 비틀어버리고, 거기에 [사량발천근]의 묘리가 더해져 더욱 강해진 고드름들이 나머지 반절을 부수었다.
[대단하구나. '검성(??)'의 재능을 품은 이들 중에서도 역대급이야.]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상상 이상의 검기에 깜짝 놀라면서도 엘라임에게 태클을 건 티타니아는 세검의 가볍다는 장점을 적극 이용해 초고속의 찌르기를 반복한다.
한 번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세 번의 찌르기가 덮쳐드는 게 달인도 감탄할 뛰어난 실력이었지만 앨리스는 침착하게 최소한의 거동 만으로 모두 피했다.
그 실력에 티타니아는 의문을 품었다.
결코 실력이 가문에서 나온 도련님을 따를 실력이 아니었다. 적어도 어디 유명한 기사단의 단장이 되어 명성을 날릴 기량이건만.
[얼어 붙거라.]
물의 정령이 노린 건 계약자의 상대가 아닌 그 발판이었다.
마력이 수면의 파장처럼 퍼지며 연무장 바닥을 난데없이 빙판길로 만들어버렸다.
거동의 방해를 목적으로 하는 거였지만 앨리스는 당황하지 않고 바닥이 얼어 붙는 직후 발을 강하게 굴렸다. 그러자 방금 바닥을 얼린 것과 비슷한 마력유동이 일어나며 빙판을 산산조각냈다.
그것은 [진각]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순간 어벙한 표정을 내비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서워. 저거 뭐야.'
왜냐하면 진각을 보여준 적이 있어도 따로 가르친 적은 없거든.
그런데 보여준 걸 자기 나름대로 간파하여 분석해서는 따라해 사용하는 스승의 재능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검술은 앨리스가 앞서고 있었지만 티타니아 본인의 기량도 기량이더러 정령의 보조와 설녀의 냉기가 일으키는 여파가 그 차이를 매꿔줬다.
팝콘이 있으면 딱이겠다는 감상을 하면서도 슬슬 끼어들 준비를 했다. 아직 좀 남았지만 슬슬 대련의 끝이 다가올 것 같았으니까.
둘 다 더 오래 싸울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진심을 내고 둘 중 한 명은 다치게 될 것이다.
시선이 요정의 뒤에서 손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흔드는 물의 정령을 흘겼다. 솔직히 화안금정이 간파한 저 존재라면 알아서 위력을 잘 조절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예외 같은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 경우가 지금 발생했다.
캉!
"읏?!"
서리가 가득한 찌르기를 똑같은 찌르기로 극점을 노려 정확하게 파훼하다 못해 이화접목의 묘리까지 이용해 반동을 돌려 그대로 튕겨진 요정의 세검.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여기사는 찰나의 기회에 눈을 빛내며 검을 횡으로 벤다.
그저 실력을 알기 위한 대련이었지만 티타니아의 실력이 에상 이상으로 뛰어났기에 그만 전력을 다 해야 한다는 본능이 직관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무협 스킬 [축지]로 둘 사이에 끼어들고는 손바닥에 오러를 씌우고 초능력 스킬 [염동력]으로 앨리스의 검에 저항력을 강화시켜 속도를 늦춘 다음에 강화게 붙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앨리스의 살의가 진심인 걸 느끼고 그 전에 죽이기 위해 물의 정령이 쏜 초월적인 순수한 냉기를 나머지 손으로 극양의 기운을 일으키며 [음양색공]의 음양조화를 통해 상쇄시켰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둘은 깜짝 놀랐다가 방금 전에 둘 다 정말로 서로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침울해졌다.
짝.
"자. 대련은 끝."
박수를 치며 대련의 종결을 언급하자 둘은 더 이상 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보이듯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물의 정령은 물러나지 않고 여전히 가늘게 뜬 눈으로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물의 정령? 스승의 실수는 제자인 내가 대신 사과할 테니까 그 흉흉한 기세를 좀 가라앉혔으면 좋겠어. 둘이 호각이어서 흥분한 것도 있고 내가 말릴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티타니아랑 내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정령인 네가 사이에 불화를 만들면 그녀도 고달파지는 셈이잖아."
적어도 계약자를 걱정한다면 이 정도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 취지로 설득하니 물의 정령이 티타니아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계약자를 죽일 뻔한 것은 실수라 할지라도 정령에게 있어 커다란 분노를 일으킬 사건이지만 내가 대기 중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렇게 협박 비스무리하게 돌려 말하니 엘라임으로써는 그만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받아들이도록 하지.]
"양보해줘서 고마워."
……딱 봐도 자신의 계약자인 티타니아가 레온에게 헤롱헤롱 거렸으니까.
저저 봐라. 계약한 정령인 자신을 두고 자기보다 키가 작은 금발의 답답할 것만 같은 갈색 피부의 소년의 옆에서 제발 자기를 내치지 말라고 은근슬쩍 팔짱을 끼며 가슴골에 끼워두고는 끼를 부리지 않던가. 계약자 둬 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그런데 물의 정령 엘라임은 한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게 있었다.
'계약자의 취향이 쇼타였나? 불법 만큼은 아니된다, 계약자여.'
제발 성욕에 이성이 무너져 쇼타를 덮쳐 죄수자 신분이 되는 일 만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