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애정결핍 요정 (2)
* * *
장담컨대 이 세계에 환생하고 나서 귀족 영애 등 아름다운 귀부인들이나 이종족을 보았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요정(??)은 처음 봤다. 입은 옷은 단촐한 원피스였지만 그래서 더욱 티타니아의 미모가 부각되는 면이 있었다.
이걸 노리고 한 거라면 입힌 녀석은 센스가 있는 놈이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불량품 요정이라고?"
"네. 저는 하자가 있는 노예이기에 여태까지 구입해주시는 주인님이 없었습니다."
"도련님. 스스로도 저렇게 말하는데 반품하시죠."
"스승은 좀 조용히 있어 봐."
대화에 참견을 불허하자 앨리스의 입술이 대빨 튀어나온 게 명백히 삐진 반응이었다.
그래도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여기사는 모시는 도련님의 지시에 순순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여기사의 배려로 대화를 할 준비가 갖춰지자 충성스런 여기사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스스로 불량품이라 소개했던 눈꽃의 요정을 다시 바라보았다.
티타니아의 표정은 무기질적이었으나 눈빛만큼은 그 깊은 속에서부터 무언가를 격렬하게 갈망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 눈치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전생에 아바타가 습득한 스킬인 [직감]이 그녀의 감정을 읽은 거다.
"흠. 일단 들어가서 얘기를 나눠 볼까. 들어 와."
"네."
일단 문앞에서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티타니아를 데리고 저택에 들이고 방으로 안내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만 무슨 짓을 당할 수도 있기에 호위인 앨리스를 동반했다.
'내가 지켜드려야 해.'
자신이 모시는 이의 실력이 훌륭하다는 걸 아는 앨리스였지만 상대방은 주인을 해하는 건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노예 인장을 찍었다고 해도 요정이다.
최소가 몇십 년, 최대 백 년 단위의 나이를 먹었을 경험 많은 노장(??)을 상대로 여기사는 방심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자. 그럼 다시 대화를 해볼까."
손님을 접대할 때나 가끔 사용하는 의자에 앉아 맞은편 소파에 앉은 티타니아를 응시했다. 무릎 위에 두 손을 다소곳이 올려놓은 모습이 마치 아가씨 같아 매력적이라고 감상했다.
'나이는 결코 아가씨가 아니겠지만.'
"너는 왜 스스로 불량품이라고 한 거지?"
직구로 묻자 머뭇거리는 기색이 명료했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반응이 격렬한 게 이유가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데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호기심에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나는 매우 담백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네가 뭘 하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한 기백마저 있었기에 각오를 다진 티타니아는 점차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긋나긋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저는…… 설녀(雪?)입니다."
요정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설녀(雪?).
이 세계의 사전적 의미를 나타내자면 마력이 순수 냉(?), 혹은 정도에 따라 빙() 속성인 여성을 뜻한다. 전생의 지구에서는 그저 여성 눈 요괴를 뜻하는 단어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는 정말로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설녀들은 하나같이 빙 속성 마력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마법사를 하면 얼음 마법사로 대성하고 기사가 되면 빙 속성 오러를 띄우며 오러에 부가적인 냉기 효과를 일으키는 성가신 적이 된다.
여기까지는 그저 장점뿐이라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단점이 있다는 거다.
'아이를 갖기가 힘들지.'
전신에 감도는 마력이 차갑기에 아이를 잉태하기가 힘들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도 전에 추워서 뒤져버린다는 게 마탑의 학설이다.
게다가 단명까지 한다.
마력의 냉기가 항상 육체를 좀 먹어 수명을 깎아먹기에 이른 나이에 졸도하는 거다.
그걸 감수하고도 사귈 정도로 설녀는 미녀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인 건 여성의 성기인 질 내마저 냉기가 감돌아서 설녀랑 섹스하는 남자는 대부분 자지가 동상에 걸리기 때문이다.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대륙의 역사에서 어떤 왕이 자지가 동사에 걸렸는데 전체가 얼어붙기 전에 아들을 죽이는 마음으로 잘라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들이 일촌남근(一?男?)이 되어 살아갈 목적을 잃은 왕은 마음의 병을 시름시름 앓다가 평균 수명보다 일찍 죽어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나였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전설의 치료제인 엘릭서를 구하려고 여행을 떠났을 거다. 불로불사를 쥐어주는 불로초를 찾겠다고 수은을 먹는 둥 지랄발광을 떨었던 진시황처럼 말이다.
앨리스의 시선이 험악해지자 설녀의 특징을 타고 난 요정은 더욱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요정 왕국의 역사에 의하면 저는 역대 설녀 중에서도 손꼽히는 자질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정령사로서도, 검사로서도 물의 정령과만 계약이 가능했으며 오러 또한 빙 속성이 되었죠. 문제는 그게 너무 심했다는 겁니다."
위쪽으로 손바닥을 펼친 티타니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령술을 쓰나 경계한 앨리스가 검파를 은근슬쩍 쥐었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차라랑.
대신 냉기가 서리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일어나며 티타니아의 손바닥 위로 냉기의 구슬이 생겨 난 거다. 그 모습에 레온과 앨리스가 두 눈을 부릅 떴다.
마법이나 정령의 기척은 일절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녀의 순수한 마력이 얼음 결정을 형성했다는 소리였다. 이 정도로 빙기가 강력한 설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놀라는 우리를 보며 그녀는 씁쓸한 눈빛을 했다.
"말했잖습니까. 저는 역대급 설녀라고. 덕분에 제 몸에 닿기만 해도 이렇게 얼어 붙고 근처에만 있어도 서리가 생깁니다. 이 냉기 때문에 일반인은 제게 직접 닿기만 해도 얼어버리고 제가 신경 써서 제어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강자들조차 추위를 격하게 타게 됩니다. 지금도 제어 일부 제어를 풀자마자 얼음 결정이 생긴 것처럼요."
"그렇군. 그런데 왜 노예를 자처하게 된 거야? 요정들에게 쫓겨 난 거면 그냥 산 속에 가서 혼자 살면 되는 거 아냐?"
"그, 그건……."
금발 태닝 미소년 쇼타의 질문에 요정은 어쩔 줄 몰라하며 다리를 안쪽으로 모으고는 살살 비볐다.
그런 티타니아의 행동거지에 순간 생리현상이 급한 건가 했지만 대답은 나의 예상을 초월했다.
"하아. 하아. 너무 혼자 살았더니 외로워져서 그만…… 같은 요정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타인의 손길에 만져지고 싶어져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절 만지려 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노예를 자처하게 됐, 습니다. 하아……. 의도는 상관없으니까 누가 절 좀 만져줬으면… 해서……."
"……."
"들으셨죠? 이래서 다들 노예 요정을 구매하지 않는 겁니다."
설마 만져지고 싶어서 노예가 됐을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기에 언어기능을 순간 상실해 입을 다물고 있자 뒤에서 앨리스가 역시 요정들과는 상종을 못한다며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한 것도 잠시, 앨리스가 사나운 눈빛을 자아내며 티티니아를 노려봤다.
"그럼 도련님이 얼어붙을 수도 있는데 노예로서 온 건가?"
"저, 주인님은 추위에 강하시다고 노예 상단에서 알려줬습니다. 그럼 혹시나 절 만질 수 없을까 싶어서……."
"사사로운 욕정(??)으로 주인 된 자를 얼려 죽일 지도 모를 시도를 하겠다니. 네놈을 도련님 곁에 둘 수는 없다."
스릉.
앨리스가 검을 뽑아들었다. 말리지 않으면 당장에 자신의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가며 싸울 미래가 뻔했기에 급히 내 검술 스승 겸 기사를 만류했다.
"스승? 진정 좀 하자! 여기 내 방이야?!"
제자의 필사적인 만류에 앨리스는 검파를 손에서 놓았다. 티타니아를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했지만 당장 검을 뽑아 휘두르지 않는 게 어디인가.
그래도 말은 들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 만져지길 원한다고 대놓고 말한 요정을 바라보았다.
'뭔가 착잡한 기분이네.'
사정은 잘 알겠고 다 이해했다. 그런데 저렇게 설산 위에 한 떨기 꽃과도 같은 외모와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직구로 타인의 손길을 바란다고 말하는 건 좀 깼다.
"일단 내가 추위에 강한 건 사실이야. 뭐라 설명하기 뭐 하지만 설녀가 얼음 속성의 마력체질이라면 나는 극양(??)의 체질이니까."
"극양이요?"
무협 게임 아바타의 스킬이었던 [극양지체]였다.
레온의 스킬은 판타지부터 초능력, 무협까지 각양각색이었으며 다양했다. 컨셉 제대로 잡는답시고 이 게임, 저 게임 다 같은 컨셉으로 아바타를 커스터마이징했었으니까.
티타니아가 이해를 못한 표정을 짓자 예시를 들어주기 위해 손바닥을 펼쳤다.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열기라고 봐도 좋지. 그래서 네가 방금 전에 한 걸 내가 따라하고자 하면……."
화르륵.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지."
티타니아를 기술을 흉내낸 내 손바닥 위로 뜨거운 열기의 불구슬이 생겨났다.
앨리스는 검을 가르친 스승으로써 화 속성의 오러를 띄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담담했지만 처음 보는 요정은 달아오르는 환희를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기뻐했다.
"아아아."
"그래서 나는 추위에 강하다기보다는 냉기를 무시할 정도로 몸이 따뜻하다는 거야. 설녀랑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 기운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일까. 그런 의미에서 널 만질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손을 내밀어 봐."
"손을 말인가요?"
"악수를 해서 내가 널 만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거지."
그리 말한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한없이 진중해졌다.
"미리 말하지만 내가 네 손을 잡고도 문제가 없다면 약속대로 널 노예로 받아들일 거야. 하지만 만약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떨어지면 널 반품시켜서 다시 상단으로 돌려보낼 거다."
"그, 그건…!"
"잊었나 본데. 나는 네 주인이야, 티타니아. 노예는 주인의 말을 거스르면 안 되지. 명령을 거스르는 노예라면 주인에게는 필요 없다. 싫다면 지금 당장 강제로 떠나게 해줄 수도 있어. 네 선택은 내 허가를 받거나, 아니면 이 저택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뿐이야."
이것만큼은 나로서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극음의 냉기를 지닌 여인이다.
심지어 요정이라 마력친화력조차 높아 정령사와 오러를 사용하는 검사이기도 했으니 내가 아니라면 닿는 것만으로도, 사용인들이 실수로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를 볼 테니까.
그런 폭탄이 자신에게까지 해를 끼친다면 아무리 예뻐도 나로서는 받아들일 이유가 일절 없었다.
현실을 깨달은 티타니아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실렸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는 않고 싶었는 지 조심스럽게 손을 뻗다가 멈칫하며 망설이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이 유독 내 눈에 띠었다.
'마음씨는 상냥한 것 같네.'
만약 자기 욕망만을 중심으로 행동했다면 그녀는 자신의 손이 다칠 걸 걱정하지 않고 곧장 붙잡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너무 어기적거리는 건 전생에 김치맨의 피가 흐르던 사내로서 인내하기 귀찮았기에 자기 쪽에서 손을 뻗어 티타니아의 손을 꽉 잡았다.
"에잇. 귀찮게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이렇게 콱 잡으면…!"
손을 잡자마자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이 티타니아로부터 튀어나왔다.
푸슈웃! 푸츄츗. 푸츄. 푸츄우우우웃!
"흐앙! 앙. 하아아아아아앙………!!"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인데, 물이 뿜어지는 소리와 함께 티타니아가 입고 있는 옷의 고간이 젖어 얼룩이 크게 졌다.
그렇게 절정에 달하며 눈을 까 뒤집고 접객용 소파에 널브러진 요정을 보며 우리 주종은 어처구니 없는 걸 본 표정을 지었다.
"……."
"……."
우리는 언어를 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