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옛 인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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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인 역참에 도착했다이곳은 도시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차 판매장임과 동시에 외지인이 타고 온 마차를 관리 및 수리, 교체하는 장소인 만큼 부지도 상당히 넓고, 장사도 잘 되고 있다
시선을 돌리는 곳곳에 조금씩 다른 크기와 모양새의 마차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푸르릉 거리는 말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단은 마차 먼저 살펴보자고.”
우리는 지체할 것 없이 마차들이 진열되어 있는 구간으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물품들을 보면 짐 운반용 수레부터 시작해서 2인용 마차, 지붕이 개방된 마차, 상업용 마차 등등이 보기 좋게 주차되어 있었고, 끝 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크고 널찍한 것들을 배치하고 있는 형태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4~5인승 정도의 중형 마차다안에 짐짝들 싣고 나랑 내 여자들 다 태울 수 있는 크기의 마차 말이다
마차들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가던 나는 딱 적당한 크기의 마차가 세워져 있는 중간지점에서 멈춰 섰다
“여기, 마차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양해를 구하자 직원은 흔쾌히 수락했고, 우리는 네모나게 생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잡동사니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라 그런지 제법 넓게 느껴졌다이 정도면 성인 여섯 명 까지도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정도 넓이면 저희끼리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흐으음~ 앉는 느낌도 제법 괜찮은데.”
록시아와 메림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그리고 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옆에 창문과 커튼도 달려 있어서 이동 중에 갑갑한 느낌은 덜 받을 것이고, 짐 문제는 전부 평평한 지붕 위에 올려 밧줄로 고정시킨 뒤에 방수포 따위를 덮어 씌우면 해결이다
“어디 한번 누워보실까?”
나와 마찬가지로 마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메림은 신발을 벗으며 자세를 잡더니 마차석에 풀썩 드러누웠다
“아흐흐좋다, 좋아베개랑 이불까지 있으면 꿀잠 잘 수 있겠는데? 록시아도 서있지 말고 한번 누워봐.”
메림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인 록시아는 그녀의 반대편에 살포시 누워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침대 못지않네요.”
“흠, 이 상태에서 나머지 두 사람은 깔개를 덮어두고 바닥 쪽에 눕는다면… 네 명 모두 마차 안에 누워서 잘 수 있겠군.”
요즘 들어 날씨가 점차 쌀쌀해지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노숙하는 대신 마차를 취침 공간으로 활용하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마차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주변에 있는 다른 마차들을 추가적으로 살펴보며 비교해 봤다
“전 처음에 들어갔던 마차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주인님하고 메림 언니는 어떤가요?”
“다른 마차들도 나쁘진 않았는데, 맨 처음에 구경했던 녀석이 느낌이 좋더라.”
“나도 마찬가지야모양도 깔끔하고 넓이도 우리 일행한테 딱 적당했거든.”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의 여행에 사용할 마차를 결정, 아직은 체류기간이 남아있으니 마지막 날에 이 마차를 구매하며 이걸 타고 떠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음으로는 마차를 끌어줄 말들을 살펴볼 차례, 축사 구역으로 이동했다
“주인님, 저쪽에 기르고 있는 건 마물 아닌가요?”
“…허, 저것들을 용캐도 포획해왔군.”
한창 걸어가던 중 록시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던전에서 본 기억이 있는 초식공룡들이 주변에 있는 것들보다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건축된 축사 안에서 여물을 으적거리고 있었다
ㅡ그륵
ㅡ그르르릉…
중형 이상의 마물중에서 힘과 지구력이 좋으면서도 공격성이 옅은 마물은 포획한 뒤에 탑승 및 운반용 가축으로 길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는데, 저 녀석들이 그 조건에 딱 맞는 모양이다
“오오오… 요 녀석들로 마차를 몰게 하면 겁나 든든할 거 같은데?”
“확실히 힘은 좋아 보이긴 하네.”
메림은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자 공룡 축사로 다가가려 했으나,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제지받았다
“허가받은 인원 이외에는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물러나 주시죠마법사님.”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갔네요죄송, 죄송그런데… 얘네들 팔고 있는 중인가요?”
가볍게 사과한 그녀는 직원에게 공룡들의 판매 여부를 물어봤다기대심으로 가득한 저 눈빛을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관심 있는 듯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팔기야 하지만… 저 드레이크들에게 뭔가 시키는 건 많이 힘들 겁니다아직은 담당 조련사의 지시만 겨우 따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뭐, 수집용이나 관상용으로 사려는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요.”
하긴 야생의 마물을 가축화시킨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겠지보아하니 일단은 그나마 온순한 놈들을 기르고, 세대를 거친 마물 개량화를 시도하려는 모양이다
“들었지?”
“에잉, 아쉽네.”
실망한 기색이 영력해 보이는 메림을 적당히 달래면서 자리를 떠나려고 하니, 낯선 여성의 새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마법사 아가씨, 마족 아가씨!”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면 이쪽을 향해…조금 더 정확히는 록시아와 메림을 향해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푸른 머리를 양쪽으로 길게 땋은 여자가 있었다
말끔한 학자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두꺼운 뱅글이 안경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어제 올라가는 길에 마주쳤던 옆방 여자야.”
“그러고 보니 저런 차림새의 여자하고 마주쳤다고 했던가.”
우리끼리 떠들고 있는 사이에 이쪽으로 바짝 다가온 안경녀는 나를 빤히 올려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못 보던 분이네요? 이 숙녀분들의 일행이시려나?”
뭐랄까, 부담스러운 눈빛을 가진 여자다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이런 곳에서 옆방 사람들과 마주치니까 무척 반갑네요! 저는 마나, 마물학자인 마나라고 해요.”
자신을 소개한 마나는 뒤편에서 따라붙고 있는 양복차림의 남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 헐레벌떡 따라오고 있는 버섯 머리는 제 조수겸, 호위겸, 머슴인 다니르죠.”
“에고고, 마나 님예고도 없이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다가가시면 제 입장이 곤란하다니까요….”
“다니르는 걱정도 많다니까! 아무튼, 괜찮다면 이웃분들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마나의 정중한 요구에 우리는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순서대로 자신을 소개했다
“흐으음~ 다들 좋은 이름이네요! 얼핏 보아하니 메림 씨는 저 마물들한테 관심이 많아 보이시던데?”
“포획한 드레이크를 보는 건 오랜만이라 궁금했거든요.”
“후후,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은 좋아하는 편이랍니다저도 한창 구경하고 있었거든요.”
살갑게 웃은 마나는 축사 안에 있는 드레이크를 바라보며 기대 어린 목소리를 냈다
“신종 드레이크…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저런 귀염둥이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을 던전으로 들어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네요.”
“아, 그쪽도 던전으로 들어가려고요?”
“예! 와일드 던전에서 서식한다는 신종 드레이크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연구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그나저나 ‘그쪽도’라는 말은… 여러분, 던전에 가보셨나 보군요?!”
“지난번에 다 같이 갔다 왔었죠.”
대답을 듣자마자 들뜬 표정을 보인 그녀는 메림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오오오,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여러분이 그곳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들려줄 순 없을까요?”
“안될 건 없지만 지금 막 말들을 보려던 참이었는데….”
말끝을 흐린 메림은 대신 결정해 달라는 표정으로 이쪽을 흘긋거렸다
마차를 미리 살펴본다는 주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말의 경우는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를 테니 떠나기 직전에 고르는 게 더욱 효율적이겠지
더군다나 이 여자…옆방을 쓰고 있다면 방을 공유하고 있는 세라스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인물일터, 이번 기회를 통해 대략적으로 나마 알아보고자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것도 나름대로 인연이고 하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겠죠그럽시다.”
“와아~! 고마워요! 로덴 씨, 고마워요! 친절도 하시지…정말 고마워요!”
아이처럼 기뻐하는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남발한 마나는 내 손을 덥썩 잡아 방방 흔들었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게 아니라… 아, 때마침 오는군요!”
ㅡ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고개를 돌린 마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힘찬 발굽소리와 절제된 화려함을 간직한 쌍두 마차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부석에는 전신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세라스가 말들을 몰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하고 록시아의 모습을 보더니 몸을 크게 흠칫거렸다
투구에 가려져 있어서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한눈에 파악된다
“실은 여기에 맡겨둔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 싶었는데 딱 맞춰서 와줬네요참고로, 저 사람도 제 호위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앞에 세워진 마차의 문을 벌컥 열어젖힌 마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우리에게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자, 자~! 들어오시죠안에 맛있는 과자도 잔뜩 마련되 있으니 이야기하는 동안 입이 심심하진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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