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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40화 (140/149)

〈 140화 〉 야생 (7)

* * *

“……뭐, 그렇게 돼서 지금은 나랑 마릴, 로덴 오빠랑 록시아. 요렇게 넷이서 여행을 다니게 된 거야.”

콜라드 지부의 마탑주, 메림은 그간의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아르테라의 요구에 따라 동생과 함께 지난 3년간 겪었던 일들을 간결하게 이야기해줬다.

물론, 로덴과 록시아에 대해서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전직 모험가를 겸한 연금술사와 그가 보호하고 있던 피난자 출신 마족이라며 적당히 각색했다.

“너희들답게 꽤나 요란스럽게 지냈구먼. 듣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으니 이번에는 내 쪽에서 약속을 지킬 차례인가? …록시아 양, 나하고 같이 걷도록 하지.”

아르테라는 록시아가 갖추고 있을 마법사로서의 소질을 확인하고자 짧은 동행을 요구했고,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문제 없이 통과할 테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나한테 배운 것들만 퍼뜩 떠올리면 돼.”

“록시아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내!”

“메림 언니, 마릴 언니. 말씀 고마워요. 금방 돌아올게요.”

그렇게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를 응접실에 남겨둔 채 아르테라의 뒤를 따라갔다.

나선형으로 설계된 계단을 찬찬히 내려가는 동안 노마법사는 마족 소녀에게 마법의 기초에 대한 질문을 틈틈이 던졌고,

“호오, 완벽해! 이론 부분은 흠잡을 곳이 없구나.”

록시아는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심화 단계의 문제까지 몇 개 섞었는데, 그것들마저 즉각 대답하다니….’

마탑주가 내심 놀라고 있는 한편, 아낌없는 칭찬에 기분이 저절로 들뜬 록시아는 그녀의 스승인 메림에게 공을 돌렸다.

“메림 언니가 마법사는 기본 바탕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말해줬거든요.”

“훌륭한 마음가짐이야. 설마 왈가닥 메림이 그런 말을 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그 아이는 의외로 교육자로서 소질이 있었나 보군.”

록시아에게 마법의 길을 알려준 메림을 향해 마탑주는 대놓고 왈가닥이라고 칭하며 은근슬쩍 뒷담을 한다.

“아하하….”

하지만 록시아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넘길 뿐이다.

평소 그녀의 행실을 생각한다면 차마 반박하기 힘든 사실이니까.

저벅저벅… 아르테라의 발길은 내려가는 계단이 아닌, 복도를 밟았다.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니 어느덧 최상층에서부터 중간층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연구소에 해당하는 중간층은 나아가는 장소마다 다방면으로 개발하고 있는 미완성 마도구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풍경을 신기하게 보면서도 꽤나 걸었다고 생각한 록시아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저기, 마탑주님. 지금까지 제법 걸은 것 같은데 아직인가요?”

“안 그래도 거의다 온 참이야. 저 문 너머에 있는 방에서 네가 마탑의 조합증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테스트를 치를 거란다.”

아르테라의 뒤를 따른 록시아가 들어선 방은 실내 농구장 마냥 사방이 탁 트인 직사각형의 공간이었으며, 줄곧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흠… 이 마족이 메림의 제자로군요.”

“그래. 말해둔 건 다 준비해놨지?”

“예, 마탑주님. 동작 확인은 문제없고, 핵의 마력도 보충해 뒀으니 본체에 끼우시기만 하면 됩니다.”

마법사 청년은 아르테라의 손에 두 개의 구슬을 건네주고는 구석편으로 이동했다.

ㅡ잘그락, 잘그락….

구슬 두 개를 가볍게 맞물린 아르테라는 록시아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보아하니 이게 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구나? 이제부터 록시아 양이 상대해야 할 골렘의 핵이란다.”

“예? 골렘을 상대한다고요?”

골렘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은 있다.

일부 마법사가 부리거나, 옛 유적에서 종종 발견된다고 알려진 마법 생명체로 창작했을 당시에 사용한 소재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는 동력원인 핵을 보호하는 단단한 몸과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상당히 강력한 마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걸 쓰러뜨려야 한다니… 아주 못할 건 없겠지만, 이 사람들에게 내 능력을 섣불리 보여주면 안 될 텐데.’

수월한 여행을 위해 주인님과 언니들 이외의 사람 앞에서 자신의 권능을 노출할 생각이 없던 록시아가 난처한 얼굴을 보이자, 그녀가 골렘이라는 단어 자체에 지레 긴장했다고 생각한 노마법사가 싱긋 웃었다.

“흐흐…. 골렘은 골렘이지만 록시아 양이 상상하고 있는 커다란 녀석은 아니란다. 저쪽을 보렴.”

그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끝에 있는 물체는 성인 남성 크기의 관절 인형.

모두 합쳐서 둘이다. 아르테라는 그것들의 등짝에 있는 소켓에 핵을 끼워 넣으면서 말을 이었다.

“옆 나라인 크로이브 공국에서 개발된 파이터 골렘이다. 시험품으로 공수해 왔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구동하기 시작한 골렘은 테스트에 앞서 몸을 푸는 것 마냥 가벼운 풋워크를 밟았다. 동작이 제법 그럴싸하다.

“거대하기만 한 골렘보다 훨씬 정밀하면서 날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는 녀석이야. 아직은 개발 단계라 동작에 이런저런 제한이 있겠지만.”

“…신기하긴 하네요. 그나저나, 이제부터 이 골렘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요?”

“그래, 골렘의 손에 안전장치도 끼워놨으니까 만에 하나 공격을 허용한다고 해도 크게 다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뭐, 기분은 조금 나빠질 게다.”

파이터 골렘들의 손에 끼워둔 푹신한 벙어리장갑을 만지작 거리며 끌끌거린 마탑주는 방의 한가운데에 록시아와 골렘들을 남겨둔 채 멀찍이 물러섰다.

“이제부터 5분 동안, 네 마법을 활용해서 파이터 골렘의 공격에서부터 버텨보거라.”

아르테라는 시간 내에 공격을 세 번 이상 허용하면 테스트 종료라는 뒷말을 덧붙인 채 골렘들에게 록시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탁탁! 일제히 움직인 파이터 골렘들은 양측에서 록시아를 포위하여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분명, 버티기만 해도 된다고 하셨죠?”

조금 전에 아르테라가 내뱉은 말을 재차 확인하며 씩 웃은 록시아는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주문을 영창 했다.

“…플라이”

마족 소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졌고, 마력의 바람이 그녀를 감싸 몸을 띄워 올렸다. 천장 때문에 뜨다가 말았지만 파이터 골렘의 공격이 닿을 수는 없을 위치다.

“오호, 복합 마법까지 숙달하고 있었나. 사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머쥐겠다라… 합리적인 선택이야. …하지만 이대로는 모처럼의 시험이 썩 재미없겠지.”

“……!”

사거리에서 벗어난 적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인 파이터 골렘들은 한쪽이 도움닫기 준비를 하더니, 옆에서 자세를 낮춘 골렘의 손바닥을 발판 삼아 펄쩍 뛰어 주먹을 내지른다.

던지는 힘과 뛰는 힘이 합해진 도약이다. 자신을 띄워 올리고 있는 바람을 조작한 록시아가 몸을 옆으로 쭉 빼자 파이터 골렘의 정권은 허공을 갈랐다.

추진력을 잃고서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간 파이터 골렘은 바닥에 착지하는 즉시 자세를 낮췄고, 밑에서 준비하고 있던 다른 녀석이 조금 전에 보여준 연계를 반복하여 도약했다.

이번 공격은 바람을 조작하는 것 만으로는 피하기 난해한 각도와 속도다.

“파이어볼!!”

록시아는 만일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화염구를 쏘아내어 적에게 역공을 가했다.

퍼어엉! 파이터 골렘은 직격 당했음에도 주춤거리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쭉 뻗었지만 화염구의 반동을 이용하여 뒤로 크게 후퇴한 덕분에 공격을 피했다.

‘숙련자용 대련인데도 잘 버티는군. 플라이를 유지한 채로 파이어볼을 사용해서 반동까지 이용한다니… 신청서에 기록된 속성 마법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어. 앞날이 창창한 소녀야.’

록시아는 여행을 하는 동안 틈틈이 전투를 치른 덕에 기본적인 기량도 상당해졌다.

즉흥적인 판단과 순발력이 필요한 전투와,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이런저런 경험을 쌓는 것만큼 마법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에 좋은 것을 없을 테니까.

아무튼, 록시아는 공중을 계속 날아다니는 중간중간 화염구를 쏘아내어 공격과 동시에 회피하는 식으로 남은 시간을 채웠다. 그러다가 실수로 어깨를 공격당하긴 했지만 그 이외에 감점 요인은 달리 없다.

권능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버텼다. 파이터 골렘에게 정지 명령을 내린 아르테라는 물개 박수를 치며 마족 소녀에게 다가갔다.

“훌륭해! 좋은 스승을 둔 덕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마법의 응용능력도 뛰어나구나. 테스트는 당연히 통과다.”

“후우우….”

가볍게 숨을 고른 록시아는 노마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신의 화염구에 여러 차례 직격 당한 탓에 적지 않게 손상된 골렘들이 신경 쓰였다.

“저런 상태로 괜찮은 건가요?”

“아아, 손상된 부위들만 교체하면 그만이니까 걱정 말거라. 핵만 무사하면 큰 문제없단다. 그나저나, 메림하고 마릴이 슬슬 지루해하고 있을 테니 위로 올라가서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예.”

최상층으로 다시 올라갈 때는 걸어서 내려왔을 때와 달리 아르테라가 시전 한 단거리 텔레포트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록시아는 기다리고 있던 쌍둥이 자매와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손가락으로 V를 그려서 승전보를 울렸다.

다시 뭉친 여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려는 찰나… 그녀들을 잠시 멈춰 세운 마탑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메림, 네 제자 록시아는 기대 이상이더군. 콜라드 지부의 8대 마탑주로서 이 아이를 공식적인 마법사로 인정하겠다.”

“흐… 록시아도 이제 좀 편하게 다닐 수 있겠네. 마법사 신분증은 언제쯤 받을 수 있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주고 싶지만… 신분증을 내려면 최소한의 절차를 거쳐야 하거든. 못해도 나흘 정도은 걸릴 게다.”

“어쩔 수 없네.”

긴 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메림과 록시아를 번갈아 보던 아르테라는 말을 이었다.

“록시아 양, 혹여나 마탑의 지식에 관심이 생겼거든 얼마든지 둘러봐도 좋아. 자격증은 아직 주지 못했지만 엄연한 마탑의 일원으로 인정했으니 내일부터 일부 제한구역도 방문할 수 있게 해 주마.”

“아… 네, 말씀 감사합니다.

이후로 노마법사와 몇 마디 더 나눈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는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마탑에서 떠나갔고,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거리를 구경하듯이 걸어가며 여관에 되돌아갔다.

방문을 열어보니 마지막으로 떠났을 때와 달리 바닥과 탁자 위에 여러 가지 약초들과 조제 도구가 널려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늦었네? 이야기는 잘 됐어?”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던 로덴은 약품 제조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그녀들을 맞이한다.

참고로, 그가 다루고 있는 약초들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들인 피임 포션의 주재료다. 거의 다 떨어지기 전에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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