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야생 (5)
* * *
로덴 일행이 게이트를 통해 넘어간, 와일드 던전의 두 번째 구역은 조금 전까지 그들이 머물던 장소와 딱히 다를 것이 없는 울창한 정글지대.
이 구역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은 하나같이 평균치보다 몇 배 이상은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ㅡ푸다다다닥!!
“흐갸갹?!”
“꺄아앗!”
한창 탐색을 이어가던 도중 뒤에서 들려오는 메림의 비명소리에 덩달아서 크게 움찔거린 마릴이 언니를 쏘아봤다.
“아, 언니!! 이걸로 몇 번째야?! 제발 뒤에서 소리 좀 지르지 말아 봐. …나까지 놀라버린다고….”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평소처럼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닌, 언니라고 불렀다.
‘가만 보면 마릴은 깜짝 놀라거나 급한 상황에서는 메림을 그냥 언니라고 불러버리는 경향이 있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로덴이 한가롭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동생의 꾸짖음을 들은 메림은 그녀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여줬다.
“하하, 미안~ 여기 사는 벌레들은 무슨 덩치가 저따구인지…. 다른 건 몰라도 대형 벌레만은 무리, 무리. 완전 무리야. 차라리 드레이크나 좀 튀어나와 주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은데.”
허리까지 솟아난 수풀을 지나치며 큼지막한 벌레들과 마주하게 될 때마다 쌍둥이 자매는 저절로 몸을 흠칫흠칫 거리기 바빴다.
두 사람은 적지 않은 시간을 모험가로서 지내온 만큼 담력과 비위는 제법 좋은 편이긴 했으나, 주먹만 한 크기의 벌레가 코앞을 스쳐가는 광경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을 만큼의 강심장은 되지 못한 모양인가 보다.
놀란 가슴을 금세 진정시킨 쌍둥이 자매는 자기들과는 달리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로덴과 록시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두 사람은 저만한 벌레가 날아들어도 아무렇지 않나 보네. 로덴 오빠야 뭐… 왕년에 산전수전 다 겪은 용사님이셨다니 그렇다 치는데.”
“록시아까지 눈도 꿈쩍 안 하고 있는 게 상당히 의외야.”
“주인님 하고 만나기 이전에는 먹을 게 없을 때 간간히 쥐라던가 벌레들을 구워 먹으면서 버틸 때가 자주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벌레를 봐도 딱히 징그럽다는 기분은 안 느끼게 된 거 같아요.”
““앗…….””
뭐라 반응하기 힘든 경험담이었다.
쌍둥이 자매가 대답을 고민하던 사이. 세 여자끼리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으면서도 전방을 주시하며 나아가고 있던 로덴은 다수의 기척을 감지, 그녀들에게 떠들 시간은 끝났다고 말하며 잡담을 마무리시켰다.
…싸움이 벌어지려는 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열기가 저편에서부터 느껴지고 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보니 마물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ㅡ제길, 한 번에 두 놈이 나타나다니…!
ㅡ다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
‘모험가들하고 마물들이 지금 막 서로 마주쳤나 보군.’
저 너머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파악한 일행은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싸움의 현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구역에 서식하는 마물의 대략적인 특징을 두 눈으로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놓칠 이유는 없다.
머지않아 로덴 일행이 보게 된 것은 모두 합쳐서 5명으로 구성된 모험가 파티가 대형 마물 두 마리에게 둘러싸인 채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주인님, 저 사람들을 도우실 생각이신가요?”
“…표정을 보아하니까 그렇게까지 위급해 보이는 눈치는 아니야. 일단은 정보나 수집할 겸, 이대로 한번 지켜보자고.”
“네.”
원래 남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걸 객관적으로 구경하는 게 가장 재밌는 법이다.
네 사람은 모험가와 마물의 싸움을 안정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몸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수풀이 적절히 솟아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모험가 파티의 경우는 각각, 검방패, 창, 장검을 주무장으로 다루는 근접 전사 세 명과 궁수, 마법사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험가 파티를 양 방향에서 노려보고 있는 두 마리의 마물은 역시나 공룡이다. 다만, 이전층에 주로 서식하고 있던 랩터들과 달리 제법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한 마리는 머리 위가 돔 모양으로 불룩 솟은, 박치기에 특화된 형태의 두개골을 소유하고 있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와 상당히 유사했으며, 다른 한쪽은 중갑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은 두터운 비늘과 꼬리 끝이 철퇴처럼 묵직한 모양으로 발달한 안킬로사우루스와 유사한 공룡이다.
‘공룡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다랗군.’
로덴 일행이 두 무리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모험가 측의 궁수가 박치기 공룡의 몸통에 날쌘 화살을 날리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모험가 파티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는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모범적인 연계를 보여주며 거대한 공룡에게서 서서히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겠네요.”
“…앞으로도 스승님이라고 부를 생각이야?”
“어제 몇 번 불러보니까 상당히 괜찮은 울림이었거든요. 저희끼리 있을 때는 스승님이라 불러보려 하는데… 괜찮죠? 스승님."
“괜찮아, 편할 대로 해.”
마릴에게 스승님 소리를 듣는 느낌이 내심 좋았던 로덴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들의 전투를 계속 관전한 로덴 일행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사이좋게 건량을 깨작거렸다. 마치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찾는 그 느낌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투 끝에서 다소의 부상은 입었지만 성공적으로 사냥을 끝마친 모험가 파티는 쓰러트린 두 마리의 공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들 덕분에 여기에 있는 드레이크들에 대해서 나름 유용한 정보를 몇 개 파악할 수 있었어. 우리도 슬슬 다시 움직이자.”
저들과 접촉하여 이 구역과 마물의 정보를 더 수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전투를 막 끝낸 상황에서 모르는 이가 접근하면 과도한 경계심을 사기 십상이다.
번거로운 일을 굳이 겪을 필요는 없다. 자리에서 소리 없이 일어난 로덴 일행은 전리품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모험가 파티를 살짝 우회하는 길로 앞을 나아갔다.
던전 탐사를 쭉 이어나간 로덴 일행이 추가로 알게 된 것은 이곳은 첫 번째 구역과 달리 육식만이 아니라 초식 공룡까지도 상당히 호전적이라는 사실이다.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하면 거의 무조건 덤벼들 정도다.
이후에 드문드문 발견한 동식물을 조사, 덤벼드는 다양한 종류의 공룡과 전투를 벌이는 등의 경험을 축적해가며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인가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고개를 높이 들어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메림은 바르멜라에서 열렸던, 마스티 던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일전에 우리가 탐사했던 던전은 건물 내부 같은 느낌이라서 날씨 개념이 아예 없었지만, 여기는 밤낮 구분이 확실한 모양이네.”
“스승님, 저희가 던전에 들어간 지 여서, 일곱 시간 정도는 흘러갔죠?”
“체감상 그쯤 됐지. …오늘 탐사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고, 쉴 곳을 찾아봐야겠는데?”
처음 탐사하는 던전인 만큼, 너무 조급하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일단은 정석대로 날이 어두울 때는 휴식을 취하고 밝을 때 다시 움직이는 게 무난할 터다.
…잠시 후, 쉼터로 쓰기에 적절한 깊이의 동굴을 찾아낸 로덴 일행은 동굴 내부에 다른 생물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돌무더기를 동그랗게 쌓아서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는 등,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간단한 밑 작업을 했다.
휴식처를 마련했으니 이제 허기를 채울 시간이다.
‘공룡 고기는 대체 무슨 맛이 나려나….’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인벤토리를 뒤적거린 로덴은 여러 가지 종류의 야채와 던전에서 쓰러트린 공룡들의 고기를 꺼내 들었다.
참고로 고기들은 모두 메림과 록시아의 마법 덕분에 냉동 보관하고 있던 상태. 다시금 두 사람의 힘을 빌려서 얼린 고기를 다시 녹인 로덴은 공룡 고기와 야채를 큐브 모양으로 보기 좋게 썰었다.
네 사람은 사전에 준비한 쇠꼬챙이에 고기와 야채를 기호대로 꿰어냈고, 모닥불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아 각자 만들어낸 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룡 꼬치구이다. 티가 나지 않게 코를 살짝 벌름거린 록시아는 꼬치에서 느껴지는 향을 짤막하게 평가했다.
“생각과는 달리 냄새는 보통 고기랑 크게 다르지 않네요. …오히려 같이 끼워놓은 야채 냄새가 더 강한 거 같은 느낌도 들어요.”
“흐, 꼬챙이에 야채를 절반이나 끼워버리니까 그렇지. 자고로 꼬치요리는 고기하고 야채를 2:1 비율로 해야 하는 법이라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잖아. 메림.”
세 여자가 가볍게 떠들고 있던 사이, 공룡 꼬치에서 풍기는 노릇노릇한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슬슬 다 구워졌다는 생각에 로덴은 꼬챙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온종일 던전을 돌아다니고, 마물들이랑 싸우느라 다들 고생했어. 고기든, 야채든 썰어둔 재료는 잔뜩 남아있으니까 취향대로 만들어서 실컷 먹어.”
꼬챙이 끝을 가볍게 부딪힌 네 사람은 각자의 기호대로 소금과 향신료를 가미한 뒤, 공룡 꼬치를 한 덩이씩 베어 물었다.
불맛과 소금맛이 알맞게 버무려진 육즙이 온몸에 스며들면서 미각을 사로잡았다.
공룡고기의 맛은… 본능에 호소하는 맛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제법 맛있다.
여담으로 육식 공룡의 고기보다는 초식 공룡의 고기가 더욱 부드러워서 식감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로덴 일행은 느긋하게 저녁시간을 보냈고, 야영 도구를 꺼내어 잠자리를 준비했다.
일반적으로 던전을 포함한 외부 공간에서 잠을 취하면 불침번이 필수지만, 적의에 예민한 로덴이 주의를 조금 더 기울이기만 하면 취침 중에 기습을 당할 걱정은 전혀 없었기에 딱히 필요 없었다.
내일 보자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을 마지막으로 네 사람은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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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어김없이 탐사를 진행한 로덴 일행은 던전에서의 귀환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남겼을 무렵. 세 번째 구역으로 진입하는 게이트를 열게 됐고, 짧은 회의 끝에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사냥보다는 다음번에 다시금 이 던전에 진입할 때, 세 번째 구역을 조금 더 수월하게 진행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환경 조건은 여전하며 여기서부터는 하늘을 자유로히 날아다니는 익룡들이 출현한다.
참고로 육지 공룡들이 외견적 특징 덕분에드레이크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익룡들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와이번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시험 삼아 사냥해본 결과, 날아다닌다는 특이점을 포함하여 난이도 자체는 두 번째 구역의 공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앗…?! 주인님, 저희들의 몸이 점점 흐려지고 있어요!!”
“시간이 다 된 거뿐이니까 당황하지 않아도 돼. 록시아.”
“저번이랑 비슷한 감각이네~ 전혀 다른 느낌의 던전이었지만 규칙만은 그대로 적용되나 봐.”
사냥한 익룡의 시체를 갈무리하며 한창 조사하고 있었을 때, 로덴 일행의 몸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던전에 있을 수 있는 24시간이 다 채워진 것이다.
이윽고 시야가 일그러진다. 전날 이 시간에 진입했던 입구, 폐광촌에 무사히 귀환한 네 사람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콜라드에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수도에 도착한 일행이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 마탑에서 맡겨 두었다는 편지를 여관 주인에게 건네받았다.
상당히 깔끔한 글씨체와 정중한 말투로 써져 있었는데, 일전에 마탑에 신청서를 건넨 록시아와 그녀의 스승인 메림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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