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떠나다 (4)
* * *
ㅡ웅성웅성웅성….
명색이 수도답게 콜라드의 거리는 아침시간임에도 시끄러울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그래? 두 사람도 수도에 방문했던 내력이 있었구만.”
“응, 수도의 마탑에서 정규 마법사로 등록할 겸, 배우고 싶은 게 몇 개 있었거든.”
“물가가 비싼 편이라 오래 머무르진 못했지만요.”
그곳을 나아가며 쌍둥이 자매와 잡담을 나누던 로덴과 록시아는 그녀들이 바르멜라에 자리잡기 전에 수도에서 잠시 생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담으로 로덴 또한 혼자서 여행하던 시절, 이곳을 거쳤었다체류기간이 며칠 되지 않았기에 기억하고 있는 건물이나 인물은 딱히 없었지만….
“그렇다면 저희 중에서 이 거리를 처음으로 눈에 담은 사람은 제가 유일하겠군요.”
일행 중에 유일하게 처음으로 수도를 방문하게 된 록시아는 평상복 차림새에서 큼지막한 후드를 추가로 눌러쓴 채 로덴의 옆자리에 바짝 붙어 있었다.
후드만으로 그녀의 뿔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겠지만 이것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귀찮은 시선과 관심들을 어느 정도는 방지할 수 있는 관계로 도시에 체류하는 동안 록시아는 지금의 차림새를 유지하는 편이다
로덴 일행에게 마족이 섞여있음을 인지하여 흘끔 거리는 시선이 드문드문 느껴지지만 직접 말을 걸 정도로 한가한 행인은 없었다당장은.
이제 록시아는 더 이상 자신이 마족이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타인의 눈치를 살필 생각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귀찮은 사건을 불러일으켜서 주인님과 언니들에게 민폐를 끼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면 당분간 록시아는 가는 길목마다 놀라서 자빠지지 않을까 모르겠네.”
마족 소녀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미림의 말에 록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네이 정도 규모의 도시는 처음이라서 지금도 많이 놀랍긴 해요.”
록시아는 이전까지 쭉 생활하고 있던 바르멜라와 콜라드를 비교하면 할수록 인구 밀집도와 경제 수준이 훨씬 더 높은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지나다니는 도로마다 마차를 마주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또한 행인들은 하나같이 말끔한 옷을 차려입거나 상당히 잘 손질된 무구와 갑옷을 착용한 상태멋드러진 고깔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마법사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 거리를 한동안 이리저리 걸어 다니던 로덴 일행은 이곳에 머물렀을 때의 기억을 되짚은 쌍둥이 자매의 안내 덕분에 평판이 괜찮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띄고 있는 여관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쓸 생각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인색하게 굴 생각도 없었기에 숙식 문제에 관해서는 씀씀이를 크게 하기로 한다.
여하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사용인들이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로덴은 그중에서 주요 관리원으로 보이는 듯한 정장 차림의 중년과 잠시 대화를 나눴고,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네 명이서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방을 빌렸다.
상황에 따라 기한을 더 늘릴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일주일로 잡았다.
일주일치 숙식비의 선금을 계산한 일행은 곧장 3층까지 올라갔다로덴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은 록시아가 대표로 문을 열었다그녀는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생활하게 될 방을 마주하자마자 또다시 감탄하게 되었다.
“와아…지금까지 머물렀던 여관 중에서 가장 아늑한 방이네요저기 난간도 있어요!”
확실히방의 크기가 네 사람이서 지내기에 쾌적할 정도로 널찍함과 동시에 탁상과 의자그리고 옷장 같은 가구도 배치돼 있었고, 비싼 값 하는 숙소답게 온수가 제공되는 샤워실과 목욕실, 화장실까지 전부 다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베란다 난간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도시의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어느 세상이든 충분한 돈만 있다면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에 머물렀을 때는 돈이 넉넉지 못해서 좁은 작은 방에서만 지냈는데, 이제는 호화로운 여관에서 지내게 됐네.”
“그러게, 그때는 분명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성공한 다음에 수도에 가게를 마련해서 떵떵 지내자고 떠들었지? 그때 생각했던 그림 하고는 많이 달라져 버렸지만 지금이 더 좋은 거 같아.”
“…언니들이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어디쯤에서 머무셨나요?”
“음, 저~어~기보이는 술집 겸 여관의 단칸방에서 신세 좀 졌었지.”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는 난간에 가슴을 얹은 모양새로 나란히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로덴은 그녀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모양새가 됐다
뭐랄까, 세 여자의 뒤태와 엉덩이를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자세라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끝내 돌리지 않고 잘만 감상했지만
“~♪”
한창 떠들고 있다가 슬며시 뒤를 돌아봐서 로덴하고 눈을 마주친 메림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엉덩이를 조금 더 뒤로 빼고는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여건이 안돼서 못했었지.’
명백한 유혹의 자세저절로 성욕이 들끓어 버린 로덴의 바지가 부풀어버렸다.
“앗, 오라버니….”
“주인님….”
갑자기 조용해진 메림의 시선을 따라간 마릴과 록시아가 로덴의 아랫도리를 마주하게 되며 얼굴이 붉어지더니 은근한 기대감을 품은 눈과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로덴 일행은 전날 성문 앞에서 순수하게 수면만을 취한 탓에 약간의 욕구불만을 느끼고 있는 상태.
그리고 지금은 타인의 시선이 닿을 걱정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관… 서로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성욕을 풀어낼 수 있는 환경이다
그 모든 것을 다시금 인식하니 욕구를 먼저 해방하고 싶어졌다.
ㅡ저벅저벅.
“……일의 순서를 생각하면 저기 보이는 마탑에 먼저 방문해야겠어조금만 쉬고 나서 움직이자고.”
하지만.
하지만 로덴은 본인을 포함한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애써 태연한 얼굴로 그녀들의 옆자리에 나란히 서서 도시의 풍경을, 저편에서 드높이 솟아오른 마탑을 지목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세 여자를 놓지 못할게 뻔하다그녀들이 뻗은 뒤에 다시 일어날 시간도 계산하면 저녁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겠지.
수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그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 로덴은 몸의 대화는 할 일을 먼저 끝내고 나서 밤에 느긋이 나누기로 결심했다.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당장의 성욕을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굶주린 상태는 아니었기에 얌전히 그의 의견에 따랐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은 앞으로 최소한 일주일은 머물게 될 방을 조금 더 둘러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거리로 나왔다그리고는 지체 없이 마탑으로 향했다.
* * *
마탑의 크기와 규모 자체는 예상과 달리 보통의 도시에 세워진 마탑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애당초 소수파에 해당하는 마법사들을 위한 시설이니 만큼 수도에 자리한 마탑이라고 해서 딱히 커다랗고 화려하게 지을 필요성이 없다는 게 메림의 부가 설명이다.
“뭐, 마법사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크로이브의 마탑들은 상황이 조금 많이 다르지만….”
나직이 중얼거리며 문지기에게 마법사의 인장을 보여준 메림의 뒤를 따른 로덴 일행은 정문으로 들어가 마탑의 1층을 둘러봤다
벽면에 위치한 책장들은 무기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두터운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고, 관광객들에게 파는 게 목적인듯한 실용성 없어 보이는 장식물들이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1층 내부를 대충 둘러본 네 사람은 동그란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보아하니 마법사는 아니고 단순한 사무직원인 모양.
직원은 복장에서부터 마법사 티를 팍팍 내고 있는 메림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인사말을 건넸다.
“어서오십시오마법사님콜라드 지부 마탑에는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정식 마법사로 등록하려고 찾아왔는데요참고로, 저 말고 여기 옆에 있는 얘예요.”
“….”
메림의 시선이 록시아를 향하자 그녀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늦게 록시아의 뿔을 확인하게 된 직원은 보기 드문 마족이 마법사로서 찾아왔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지만 프로답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필요한 절차를 밟기 위해 용지와 펜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줬다.
“알겠습니다읽고 쓰기는 할 수 있으시죠? 이걸 작성해 주세요.”
이름, 성별, 연령, 종족, 머리와 눈의 색, 체격, 사용 가능한 속성 마법, 스승의 유무….
펜을 받아 들어 잉크병에 넣고 충분히 적신 록시아는 용지에 기입해야 할 사항들을 또박또박 적어냈다.
다 작성한 용지를 내밀자 세심하고도 빠르게 문자들을 훑어본 직원은 속성 마법 칸에서 대지, 바람, 불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보며 적지 않게 감탄했다.
“오… 트리플이라니 이거 상당히 귀한 인재가 찾아오셨군요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탑주 님에게 안내시켜드리고 싶지만… 일정상 다소 힘듭니다나흘 뒤에 등록비 5실버를 챙기고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알았어요수고하세요.”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다고 적는다면 그 사실을 믿을지는 둘째 치고, 불필요한 관심사와 소문이 록시아에게 집중될 것이기에 적당히 타협하여 트리플이라고 작성했다말이 적당히지 트리플도 꽤나 희귀한 경우다.
아무튼, 당장의 용무를 끝마친 일행은 마탑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다가 다시 거리를 나아갔다
이번에 향하는 장소는 모험가 길드인근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생각이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듯한 느낌으로 주변의 풍경과 행인들을 흘긋거리던 일행은 지나치고 있는 몇몇 행인들이 다소 특이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세히 보니까 특이한 가방을 들고들 다니네전에 들렀을 때는 못 보던 물건인데, 유행이라도 타고 있나?”
검고 반질반질한 재질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들은 고급 핸드백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옛날에 봤던 악어가죽 가방하고 비슷한 느낌이군….’
원래 세계에 있던 물건과 비슷한 것을 보게 되자 적지 않은 호기심이 동한 로덴은 마침 가까이 있는 청과상에게서 과일을 한 바구니 구매하면서 저것에 대해 가볍게 물어봤다
알고 보니 던전에서 사냥한 변종 드레이크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가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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