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떠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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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보이는 수도, 콜라드의 장엄한 풍경의 일부를 감상하던 로덴 일행은 현재 위치한 언덕에 그대로 자리를 잡아 휴식을 겸한 식사시간을 갖기로 했다
곧 있으면 해가 완전히 저물고 성문이 굳게 닫혀버리는 상황이지만… 거리와 시간을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제시간에 도시 안으로 들어서기는 한참 늦었다. 어차피 늦었다면 힘을 빼기보다는 차라리 느긋하게 움직여서 성문 앞에서 노숙을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각자 역할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네 사람은 떨어진 나뭇가지를 모으거나 나무를 적당하게 잘라내 땔감들을 마련하여 모닥불을 피워낸 뒤, 널찍한 냄비를 그 위에 올려놨다
다른 사람들이 냄비와 불을 준비하는 동안 당근과 양파, 감자 등의 껍질을 말끔히 벗겨낸 로덴은 그것들을 냄비 안에 썰어내며 집어넣었다
보통 요리를 할 때는 도마 위에 재료를 올려두어서 깔끔하게 조리하는 편이지만 지금 같은 야외 환경에서는 한정된 장소와 도구만으로 유연하게 조리해야 한다
각종 채소로 냄비를 채워냈으니 물을 붓기로 했다. 주변에 강이나 호수가 없었기에 록시아의 마법으로 생성한 물을 이용한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냄비에 샤브샤브 급으로 얇게 썰어낸 훈제육과 산에서 채취한 식용 버섯까지 아낌없이 부어주고 마무리로 조미료를 넣어준 뒤에 순서대로 간을 본 로덴과 록시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제 수프가 완성됐다
“…다 됐어. 먹자.”
향긋한 냄새가 물씬 풍겨지는 수프를 각자의 그릇에 원하는 만큼 담아낸 네 사람은 저녁을 즐기기 시작했다
먹기 좋게 다듬어진 고기와 채소를 맛있게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킨 쌍둥이 자매가 먼저 입을 연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보다 야외에서 오빠하고 록시아가 같이 만들어 준 요리가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더라.”
“동료 중에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행이 훨씬 쾌적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딱 맞는 말 같아요. 어떻게 매번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여행객들이 각종 건량과 빵과 같이 차갑고 딱딱한 음식으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운다는 것을 생각하면 야외에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매 끼니를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이점이다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요리인은 없다. 쌍둥이 자매가 건네주는 말에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피어난 록시아는 볼을 살살 긁었다
“아하하, 그렇게까지 말해주시니 좀 쑥스럽네요. 요리라고는 해도 대부분은 지금처럼 단순한 수프만 내놓는 정도인걸요.”
대강 그런 느낌으로 화기애애한 저녁식사가 끝난 뒤, 뒷정리는 쌍둥이 자매가 도맡았다
메림이 식기에 클린 마법을 연발하고, 말끔해진 식기를 마릴이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식이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기울어졌다.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만 해도 저녁놀의 색을 하고 있던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져 버렸다
“수도가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가 있는 위치는 마물과 산적들의 영역이야.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는 충분한 경계태세를 유지해.”
적들의 수준과는 별개로 위험 지대에서 움직일 때 경계심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습관화시키기 위해 굳이 강조한 로덴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 세 여자는 그의 뒤를 따랐다
산에서 내리고, 숲에서 빠져나오는 사이에 별다른 습격은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네.”
잠시 후, 네 사람을 반긴 것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수도 콜라드의 드높은 성문이다
‘어차피 중간에 쉬지 않았어도 제때 도착할 시간과 장소는 아니었어.’
미리 각오하고 있었으니 딱히 아쉽지는 않다
대부분 도시의 성문은 해가 지면 다음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다시는 열리지 않는 구조와 방침을 고수한다. 이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콜라드의 성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제시간에 도시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순순히 노숙을 하기로 했다
주변의 성벽을 둘러보면 로덴 일행과 마찬가지로 그 앞에서 노숙을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온몸에 달라붙어있던 잔가지와 나뭇잎, 자잘한 벌레들을 훌훌 털어낸 로덴 일행은 인적이 드문 장소를 선점해서 함께 잘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고 모닥불을 만들었다
그렇게 로덴과 록시아, 쌍둥이 자매는 서로 다닥다닥 달라붙은 채 온기를 나눔과 동시에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올려다봤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밖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응, 응. 밖에서 누울 때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낭만이라는 녀석이지.”
눈을 빛내면서 별을 바라보던 마릴의 말을 언니인 메림이 받아준다. 옆에 있는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감상하던 로덴이 나직이 목소리를 냈다
“…다들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고생들 많았어. 모처럼 수도에 도착하게 됐으니 한동안은 시설 좋은 곳에서 마음 편히 머물다 가자.”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수도였지만 딱 필요한 볼일만 보고 바로 떠나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으며 지난 한 달간의 여행을 되돌아본 메림은 늘어지는 목소리를 냈다
“하아아~ 우리가 로덴 오빠 때문에 고생 많~이 하긴 했지. 마물하고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가리지 않고 수도를 향해 막무가내로 직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조금만 더 편한 길을 골라줬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긴 했어요.”
“가리지 않고 직진한 덕분에 한 달 만에 이곳에 도착했잖아. 덤으로 실전 경험도 잔뜩 할 수 있었고.”
로덴의 경험상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은 진심으로 목숨을 노리고 있는 적들과의 싸움을, 실전을 끊임없이 겪게 하는 것 만한 게 없다
그렇기에 일부로 험한 숲과 산맥을 드나들게 하는 수고를 들였고, 정말로 위험하다 싶은 순간에만 전투를 지원했기에 눈에 띄는 성과도 볼 수 있었다
“실전 경험인가요.”
한편, 옆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록시아는 마지막으로 전투를 겪었던, 매복하던 산적들과 조우하던 순간을… 정확히는 나불거리던 남자의 몸을 권능으로 처리하던 일을 떠올렸다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면
주제도 모르고 으스대는 건방진 인간의 몸뚱이를 벌레처럼 터트렸을 때, 상당히 통쾌하고, 짜릿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적들을 처리하고 피를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오히려 그 순간이 찾아오길 원하고 있다
원래는 이런 식의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사고방식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록시아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주인님 하고 언니들은 이렇게 돼버린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마족 소녀는 나란히 누워있는 세 사람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해볼까 생각하다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난 한 달간 겪은 일들에 대해 떠들면서 대화에 참여했다
ㅡ타닥타닥
밤이 깊어졌다. 로덴 일행은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와 서로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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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앞에서 하룻밤을 맞이한 로덴 일행은 저편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혼탁한 색이 점점 더 아침 햇살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잠자리를 재빠르게 정리한 일행은 지체 없이 성문으로 향했다
문은 이미 활짝 열려있었고, 그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눈을 뜬 상단의 마차와 여행객들로 이루어진 줄이 세워져 있는 상태였다
로덴 일행은 그들의 맨 뒤에서 순번을 기다렸다. 일찍 줄을 선 덕분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일행은 모두 네 사람인가? 신분과 방문 목적을 밝혀주십시오.”
지금까지 지나친 도시에서 근무하는 이들보다 확연하게 체격과 장비가 좋은 병사가 다가와서 그리 말했다
“수도 인근에 있다는 던전을 탐사하고자 방문한 모험가들 이외다.”
요구에 순순히 응한 로덴 일행은 각자의 모험가 인식표를 보여줬다. … 록시아를 제외하고는
병사가 그녀에게 뭐라 하기도 전에 마탑의 인장이 찍힌 증표를 보인 메림이 재빠르게 말을 건넸다
“이 아이의 신분은 제가 보증할게요.”
“여행중인 마법사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마법사라는 것은 그 직업 자체만으로도 신뢰도 있고 신분 또한 보장이 되는데, 마탑에서 발급해주는 증표의 경우 어디서나 제 역할을 할 정도로 신뢰도가 높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신분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의 신분을 보증하여 도시 안으로 들이게 할 수도 있다. …만일 보증해준 사람이 도시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상당한 책임을 져야겠지만
따로 마차를 몰거나 하지 않고 몸만을 이끌고 왔기에 로덴 일행이 겪은 검문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수도로 진입한 네 사람을 반겨준 수도의 풍경은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다
여타 도시들의 건축물들 보다 더욱 높고 화려한 건물 투성이었으며, 석제로 덧칠된 평평한 바닥이 주요 길목에만 한정되지 않고온 사방에 깔려있다
“와아아….”
이만큼 규모의 도시를 처음으로 방문한 록시아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당분간 여기 머물 테니까 거리 구경은 나중에 천천히 하자. 일단은 여관부터 잡아야지?”
“앗, 네. 주인님.”
피식 웃으며 록시아의 등을 살살 두드린 로덴은 네 사람의 임시 거처가 될 여관을 천천히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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