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30화 (130/149)

〈 130화 〉 떠나다

* * *

수많은 시민과 상인그리고 모험가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오가는 바르멜라의 거리

ㅡ웅성웅성…

숲에서 빠져나와 그곳을 지나치고 있는 로덴과 록시아쌍둥이 자매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쏘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로덴 일행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인상이 깊은 편이기도 하며네 사람이 살고 있던 거처… 달리 말해 로덴의 포션 가게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규모의 소동이 불과 이틀 전에 벌어지기도 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그리고 일행 중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록시아확연하게 눈에 띄는 형태와 크기의 뿔이 머리 위에 솟아올라 있는 그녀다

머리에 솟은 뿔은 마족의 상징이니까

마족인 록시아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도 한다

『과거에 인간의 땅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침략자 종족』 …대다수의 인간이 마족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단이다

인마전쟁이 정전 협정으로 흐지부지 종결된 이후에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으나북부 대륙의 인간들이 마족에게 향하는 대부분의 시선과 인식은 썩 좋지 않다

마계국과 반대편에 위치한 이곳 하론 공국의 경우마족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거의 받지 않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마족의 평판이 더 나은 편이다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지만

지금까지 인간으로 알고 지냈던 록시아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곱지 않은 눈빛과 소곤거리는 등의 분위기가 그녀를 찌르고 있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은은하게 위압감을 내비치고 있는 로덴이 없었다면 더욱 노골적으로 쏘아보거나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고 건드리는 경우까지 있을 것이다

“하루 사이에 도시 내에 소문이 퍼져서 그런지어제보다 더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네요…저기록시아불편하다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지나가는 게 어떠니?”

이러한 경험이 록시아에게 안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은 않을까내심 걱정하던 마릴은 마족 소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건넸다.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마릴 언니저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하지만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의 부정적인 눈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라고 말하듯이

애써 괜찮은 모습을 연기하거나 인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진심으로 주변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록시아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가족과 다름없는 주인님과 언니들이다

그 이외에… 주변의 인간들 따위는 관심도흥미도 없다그들이 나를 좋아하든싫어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아~! 배고파배고파다들 한가로이 떠들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자고.”

지금의 상황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기에 록시아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하게끔 평소보다 과장된 행동을 보인 메림이 앞장서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덴 일행은 사람이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적당히 몰려있는 식당에 도착하여 맨 구석켠의 자리에 앉아 각자 원하는 음식을 골라서 주문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로덴은 내일부로 시작될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너희가 숲에서 나눈 이야기 덕분에 만나봐야 하는 인물이 떠올랐어일단은 그 녀석이 살고 있는 옆 나라크로이브 공국으로 향하려고 해.”

“크로이브 공국으로 간다고? 만나려는 사람이 마법사야?”

“아니면 수인인가요?”

마법사들과 수인들이 공존하는 특수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크로이브 공국에 대해 아는 바가 있던 쌍둥이 자매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로덴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마법사… 조금 더 정확히는 마녀옛날에 혼자서 여행하던 시절에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된 마녀인데종종 너희한테 맡겨 두는 스크롤도 그 여자가 제작했어.”

크로이브 공국의 마녀를 만나러 갈 계획이라는 로덴의 말에 록시아는 옆에서 별 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고쌍둥이 자매는 얼굴이 살짝 굳어져 버렸다

흑마법도 능히 다룰 수 있는 마녀들은 가마솥에 사람을 푹 고아서 잡아먹을 정도로 사악하다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그것 때문일까? 일단 로덴은 말을 이었다

“마녀인 만큼 다방면으로 아는 게 많은 편이라 마왕의 힘에 관해서도 유용한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조금 전에 언급한 폴리모프도 그 여자라면 가르쳐 줄 수 있을 거야…당연히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변신 마법인 폴리모프를 배우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전체적으로 마법에 대해서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겠지록시아 만이 아니라 메림에게도…

딱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주문한 음식들이 식탁 위에 차례대로 놓이기 시작했다잠시 이야기를 중단한 일행은 식사를 먼저 즐기기로 한다

“……….”

“……….”

각자의 접시를 절반 이상 비워내는 동안 내내 고심하는 분위기를 드러내던 쌍둥이 자매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는 마주 앉은 두 사람에게 순서대로 말을 꺼내 들었다

“로덴 오빠록시아크로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꺼내는 말인데실은 우리….”

“크로이브 공국의 사람이에요이곳에 정착한 지 제법 오래돼서 요즘 실정은 영 모르는 상황이지만요.”

“그리고 말이지두 사람에게 괜히 부담주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나름 잘 나가는 마법사 귀족 가문 출신이야뭐지금은 보기 좋게 가출해서 모험가 일로 입에 풀칠하고 있고.”

감춰온 비밀을 털어놓으며 후련한 얼굴이 된 쌍둥이 자매가 쿡쿡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후후로덴 오라버니 하고 록시아의 정체를 생각하면 저희가 귀족 출신이라는 사실쯤은 별거 아닌 시시한 이야기네요.”

“메림 언니랑 마릴 언니가 귀족이었다고요…?”

“응아가씨 소리 듣고 자란 귀한 몸이란 말씀이쥥~”

순간적으로 메림의 콧대가 한층 높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가를 가리고 있는 록시아와는 달리로덴은 그간 쌍둥이 자매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몰락한 귀족가 혹은 가출한 아가씨 비슷한 게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다만 귀족 가문의 영애였다는 쌍둥이 자매가 어쩌다가 집에서 가출하고이런 변두리 영지에서 모험가를 하게 됐을지…상당히 궁금해지긴 한다

쌍둥이 자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로덴이 자세한 사연을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그녀들은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로덴 오빠랑 록시아도 남에게 말하기 힘든 비밀을 말해줬으니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역시 지금 당장 모두 다 말하는 건 부담스럽네.”

“자세한 사연은 나중에 마음이 편해지면 그때 이야기해도 괜찮아너희에 대해서 말해줘서 고마워.”

“아무튼로덴 오빠여기서 크로이브 공국까지 어떻게 갈 예정인지 우리한테 지도 좀 보여줘 봐.”

“저희가 나고자란 고향인 만큼 지리는 제법 잘 알고 있으니까 여행길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알았어잠깐만….”

식탁 위에 대륙 지도를 펼친 로덴은 쌍둥이 자매와 함께 머리를 맞대며 크로이브 공국으로 넘어가는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온 이후에는 조금 전에 완성한 루트에 맞춰서 마차를 미리 알아보거나 보급품과 옷을 추가로 구비하는 등온종일 도심지를 돌아다녔다

* * *

다시 하루가 지나바르멜라 영지를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지난 이틀간 준비를 끝마친 로덴 일행은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습격사건에 관한 일로 그들을 부른 영주와 다시 한번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어차피 떠나가는 입장이라 그냥 무시해도 여행에 큰 지장은 없겠지만모든 걸 해결한 이후에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으니 영주에게는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는 게 더 현명하다

일전에 로덴 일행이 점심때쯤에 불려 갔던 것과 달리 오늘은 아침부터 영주관에 들어서서 내부의 손님방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포션 가게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영주는 로덴과 간단한 인사말을 먼저 나누다가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그의 왼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흠자네… 왼팔을 잃어버렸다고 알고 있었는데버헴의 보고하고는 조금 다르군.”

“왼팔을 크게 다친 건 사실입니다영주님불필요한 주목을 받는 걸 피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있던 거죠.”

자리에서 일어나 영주가 보는 앞에서 가죽장갑을 천천히 벗어낸 로덴은 팔꿈치 아래서부터 차가운 은색의 빛을 발하는 의수를 보여줬고영주가 그것에 대해 물어보기도 전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왼손에 차고 있는 이건 과거에 운 좋게 습득했던 물건입니다보시다시피 훼손된 신체를 대체하는 아티팩트고요.”

“단순히 운이 좋아서 습득한 모양새는 아닌 거 같은데…뭐 됐어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다시 앉도록.”

“네.”

로덴 일행을 정면에서 마주 보는 모양새로 잠시 턱수염을 여러 번 쓰다듬던 영주는 이 영지의 총책임자로서 해야 할 말을 먼저 전하기로 했다

“비록 아티팩트 덕분에 왼손을 대체했다고는 하나내가 관리하는 도시 안에서 영락없이 습격을 당해서 집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왼손을 잃어버리는 중상까지 입어버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야…영지민을 지키지 못한 영주로서 미안하게 됐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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