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여정의 준비 (4)
* * *
“…주인님을 한 명의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어요!”
자신의 주인님이자 사랑하는 남자인 로덴의 몸을 연인처럼 끌어안은 록시아의 당돌한 고백의 끝말이 한동안 지하실과 일행의 머릿속에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
단 하루조차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만에 크게 놀라워할 일을 몇 번이나 연달아서 겪은 탓일까 놀라움이라는 감각에 대해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겨버린 쌍둥이 자매는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며 록시아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마주 보면서 직감했다
치기 어린 생각에 휩쓸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닌진심 어린 마음을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록시아의 마법 선생님 역할을 수행하며 그녀와 수많은 대화와 감정시간을 나누었던 메림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로덴 오빠밖에 나가 있어 줄 수 있을까?”
“잠깐만나한테 책임이 있으니까 이대로 같이 설명을…”
“지금은 같은 여자끼리 긴밀한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어서 그래나가줘.”
“……후우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여차하면 록시아 대신 내가 두 사람에게 욕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대로 버티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겠어
평소의 장난스러운 언행과는 전혀 다른당찬 언니로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메림의 진지한 목소리와 표정에 말을 잇지 못한 로덴은 지상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쌍둥이 자매는 사건의 중심점인 로덴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다시금 록시아를 가운데에 둔 모양새로 나란히 앉았고그녀의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올린 마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였니? 록시아가 로덴 오라버니를 그… 사랑하게 된 건.”
“명확하게 언제부터 주인님께 이런 감정을 품게 되었지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잘 모르겠네요인간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신 주인님을 맨 처음에는 이성으로서 라기보다는 듬직한 삼촌 내지 아버님 같은 느낌으로 좋아했었는데주인님과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샌가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깨닫고 나니 이미 좋아하게 돼버린 경우가 딱 이거네.”
사실 쌍둥이 자매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긴 했다근래에 들어서 로덴과 록시아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차 이성을 바라보는 그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는 단순한 기분 탓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듣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서 마족 소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메림과 마릴 둘 다 깊게 고민하던 사이에도 록시아가 그녀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금 목소리를 내었다
“주인님과 언니들이 남자와 여자로서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고이미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역시 저는 주인님을 포기할 수 없어요.”
록시아가 쌍둥이 자매를 언니들로 여기며 가족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도 진심이고그녀의 주인인 로덴에게 향하고 있는 사랑 또한 진심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쌍둥이 자매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밝힌 다음에 떳떳하게 주인의 여자가 되고자 한다
마족 소녀의 진심 어린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러한 결의가 담겨 있었고그것은 록시아를 바라보던 쌍둥이 자매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우리에게 선뜻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상당히 많은 용기를 내줬구나.”
“으흠~ 그러면 혹시 록시아는 나하고 마릴을 로덴 오빠에게서 떨쳐낸 다음 독차지하고 싶은 것?”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은 메림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하자 눈을 번쩍 뜬 록시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아뇨! 언니들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전할 생각으로 꺼낸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에요!”
사실은 주인님이 나만의 남자가 되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요…
“아흐흐농담이야농담로덴 오빠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를 떨쳐낼 생각도 없는 거라면… 록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은 건지 말해주지 않으련?”
“저는 주인님을 가장 좋아하지만메림 언니랑 마릴 언니 또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어요그러니 언니들이라면 괜찮아요이대로 다 함께 있으면서도 주인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거 같아요…….”
록시아의 소망을 요약하자면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했다
이대로 넷이 함께 같이 지내면서도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뒤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난 메림과 마릴은 록시아를 향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록시아가 말하는 데로 할까?”
“엇… 두 분도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에게 재차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다미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긍정의 뜻을 밝혔으니 말이다
바로 옆에 있는 마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 메림이 싱긋 웃었다
“뭐일전에 요 지지배한테 로덴 오빠의 일로 고민 상담을 받았을 때결국에는 그냥 사이좋게 로덴 오빠랑 같이 사귀자고 결론을 내렸었거든이번에도 그때랑 똑같이 하면 돼둘에서 셋으로 늘어날 뿐이야.”
“록시아가 메림하고 나를 언니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도 록시아를 소중한 막내 동생으로 여기고 있어그러니까 우리도 너라면 괜찮아.”
“더군다나 로덴 오빠는 왕년에 용사였다니까 여자 세 명 정도는 얼마든지 책임질 수 있겠지.”
ㅡ팡팡!
말을 끝마치며 소리만 크게 울리도록 손뼉을 맞댄 메림이 앞장섰다
“좋았어미녀들의 수다는 이걸로 끝! 뒷이야기는 희대의 난봉꾼이자 행운아가 될 로덴 오빠랑 마저 나누는 걸로 하자고.”
언니의 말에 가벼운 웃음을 지은 마릴과 록시아는 그녀를 뒤따랐다
ㅡ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세 여자의 귀에 전달된 것은 말발굽이 울리는 소리다그녀들은 말을 몰고 있는경비대장 버헴을 포함한 몇몇 경비병들이 이 장소에서 막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게 됐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던 로덴은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의 인기척을 감지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이야기는 어떻게 됐어?”
“오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가 록시아랑 캣파이트라도 벌였을까 봐 그래?”
까놓고 말하자면 수많은 가능성들을 염두하고 있던 로덴은 완전한 부정을 하지 못했다메림은 농담이라면서 로덴의 등짝을 살살 두드렸다
“여자들끼리 원만하게 이야기했으니까그 문제는 숙소에서 다시 다루는 걸로 해…그나저나 지금 막 떠나고 있는 저 경비들은?”
“어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이곳에 다시 들렀더군딱 마주친 김에 전날에 미처 하지 못한 증언도 적당히 보충해줬어.”
여기서 로덴이 말하는 보충은 거짓을 정보를 적절히 뒤섞어서 가장 중요한 정보와 자신들의 비밀만은 일체 알리지 않았다는 말을 뜻하기도 하다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는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집 하나가 날아가버리고 굉음이 연달아 울리던 소란이 벌어진 만큼저희들을 따로 불러서 이것저것 조사할 줄 알았는데… 오라버니의 말만 듣고 물러가는 건가요?”
“정확히는 간단한 조사도 할 겸우리에게 말을 전하려고 온 거야저번에 방문했던 영주관 기억나지? 우리 네 사람 모두 내일모레에 거기로 다시 방문해야 돼아무래도 영주님이 직접 듣고 싶어 하는 모양새더군.”
이걸로 두 번째로 불려 가는 거다.
일반적으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부름을 받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저번에는 모기 소동의 원흉을 해결했고이번에는 멀쩡한 건물 하나가 완전히 초토화되는 규모의 소동이 벌어진 것이니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하는 심정도 납득이 가긴 했다
서로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뒤다른 이들이 지하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주변에 널브러진 잔해들로 입구를 틀어막은 로덴 일행은 도심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 * *
이후로 어두워질 때까지 도심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로덴 일행은 앞으로의 여행에서 필요할 다양한 물품들을 일차적으로 구매한 다음전날에 숙박한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로덴은 세 여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록시아와 쌍둥이 자매가 지하실에서 나누었던여자끼리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것은 쌍둥이 자매의 서늘한 눈빛
“로덴 오라버니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는 해도솔직히 이번 일만큼은 적지 않게 실망했어요록시아 하고 이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잖아요.”
“표면적으로 사촌 관계라는 신분을 하고 있어서 우리한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록시아의 첫키스를 통해 입으로 흘러들어온 미약의 영향을 받아버리고그동안 무의식 속에서 쌓아 올린 연정이 함께 터져버리며 시작하게 된 관계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에는 로덴의 의지가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었으니 그녀들의 비판은 정당했다
한동안 서로 교대하듯이 로덴을 몰아붙이던 쌍둥이 자매는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해 주세요.”
“동감이야차라리 처음부터 속 시원하게 얘기해줘.”
“…알았어그리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을게.”
일반적으로는 당장 귀싸대기 한 방씩 날리고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쌍둥이 자매는 둘 다 로덴에게 목숨을 구원받기도 했고그간 같이 지내오며 상당한 연정을 품게 되었기에 이제 와서 로덴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네 사람이 같이 잘 지내면 되니까
서운한 감정을 쏟아붓고 나서 속이 후련해진 표정을 보인 쌍둥이 자매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둘이서 함께 다시금 나갈 준비를 했다
“이 밤에 어디로 가려고?”
“지금의 기분을 풀어내기 위한,”
“자매끼리의 산책이요.”
“겸사겸사여기서 떠나기 전에 미리 인사를 나눌 사람들도 여럿 찾아갈 생각이니까 좀 오래 걸릴 거야.”
쌍둥이 자매는 여관에서 나가기 전에 은근슬쩍 윙크를 날렸다
우리 둘은 한동안 방에 돌아오지 않을 테니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사인이다
지금까지 로덴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방에서 떠나는 모습을 굳이 연출한 것은 단 둘이 있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한 쌍둥이 자매 나름의 배려였다
뭐… 반은 진심이긴 했지만
ㅡ덜컹!
이윽고 쌍둥이 자매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기로 한 로덴과 록시아는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몸을 탐하며 서로의 굶주림을 해소했다
“훙… 웁…! 주인니임….”
전날에 생명의 위기를 넘겨서 그런지아니면 쌍둥이 자매에게 당당하게 관계를 밝히고 나서인지 두 사람의 사이에서 피어오른 열기는 유난히 뜨거웠다
록시아와 입술을 겹친 채 한 손만으로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그러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탐스러운 가슴과 꽃봉오리를 천천히 깨물어 입안에 데굴데굴 굴렸다
ㅡ쭈웁쭈우웁…
“앗…! 아흐읏젖꼭지이….”
삽입이 없는 애무에 완전히 개발된 록시아를 보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푸슛푸슛! 성수를 뿜어내며 허리를 들썩거리는 록시아는 금방 가버렸다그러는 와중에도 입을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아냈다록시아는 애달픈 표정을 하며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요물론… 제가 이렇게 말해도… 주인님은 오늘도 저한테 넣어주시지 않을 작정이시겠죠? 대체 언제쯤이면 절 여자로…….”
“흐읏차!”
로덴은 대답 없이 록시아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서 침대로 인도한다그러는 와중에도 앙증맞은 새처럼 재잘재잘 거리던 입은 입으로 틀어막아냈다
“이렇게 말해도 넣어주지 않을 것 같다고?”
“당연하……”
ㅡ꿀꺽
주인의 표정을 살펴낸 록시아가 목울대를 울려서 침을 삼켜냈다
“……아니군요저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주인님의 여자가 되는군요…”
그렇다로덴은 지금 이 순간 이 소녀를 진정으로 자신의 여자로 만들 작정이다마족 소녀의 몸에 천천히 손을 뻗어갔다
창틀을 통하여 고요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로덴의 손은 그녀의 치맛자락을 서서히 들춰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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