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21화 (121/149)

〈 121화 〉 마왕 록시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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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북부 대륙의 중앙부를 기준으로 최북동에 위치한 지역은 땅속에 잠재되어 있는 마력과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력의 양이 타 지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다

농후한 마력을 양분으로 삼아 태어난 동식물로 구성된 특별한 생태계가 펼쳐져 있으며 동일한 양의 황금보다도 훨씬 값어치 있는 희귀한 광석들이 곳곳에 깊숙이 잠들어있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소위 말하는 황금의 땅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겠지만… 무엇이든 장점만이 있을 수는 없는 법

너무나도 짙은 마력의 영향을 받은 마물들은 하나같이 강인한 육체와 높은 지능을 타고나게 되며일부는 마력까지도 능히 다룰 수 있다

강력한 마물이 우글거리는 땅에서 살아남아 마을과 도시를 설립마물들의 침공을 버티는 것에 성공하여 그 땅의 주인이 되고자신들의 터전을 일컬어 마계국이라고 명명한 종족들이 바로 마족이다

험난한 땅에서 나고 자란 만큼대부분의 마족들은 강자를 숭배하는 경향이 유난히 강하며 투쟁심 또한 매우 강하다

그 마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마왕은 강력한 힘의 근원인 마기를 사용함으로써 마왕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능력의 내용은 마왕의 성격과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서 전대 마왕의 능력은 마물들의 정신을 지배해서 자유롭게 조종하는 것이다

당시의 마왕은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인근 땅의 몬스터들을 군대에 편성시킨 뒤마계국 바깥에 나라를 세운 인간과의 전쟁… 인마전쟁을 벌였다

날마다 주변의 몬스터로 병력을 새롭게 보충하는 마족군이 북부 대륙에 세워진 국가 중 가장 거대한 세력인 알트마 왕국을 함락시키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돌발스럽게 나타난 세상의 특이점용사의 검에 의해 마왕이 살해당하지만 않았다면 인마전쟁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 *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족 소녀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끝내 쓰러져버린 주인님과 쌍둥이 언니들을 구하기 위해결코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증오심을 품게 된 적을 제거하기 위해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마기를 일깨우며 각성하게 된 마왕 록시아가 검게 물든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마기를 자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황홀함마저 느껴지고 있는 이 기운은 대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나를 거의 다 소모해 버려서 머리가 어지러웠는데지금은 마치 평생 동안 차고 있던 무거운 족쇄가 풀려난 것처럼 몸이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다

록시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룰 수 있게 된 기이한 힘에 적지 않은 혼란을 느끼면서도 지금 당장 이 힘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빠르게 판단하며 적을멀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났군저 잡것들 때문에 시간을 지체해 버렸어!

흉흉한 살기를 품고 있는 록시아와 눈을 마주친 노마법사는 그녀가 뿜어내고 있는 기운의 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명실상부한 마왕으로 각성해버렸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나마 아직 마기를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을 때 신속하게 처리해야 돼

“에스카로스 님! 당장 저 계집을 죽이십시오!!”

눈을 부릅뜬 멀린은 이제야 막 힘을 깨우친새로운 마왕을 말살하기 위해서 로덴을 막 쓰러트린 참인 에스카로스에게 공격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강력한 살상용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끄르으윽… 닥쳐라멀린!! 언제까지고 네 녀석의 꼭두각시가 될 것 같더냐…!!”

하지만멀린의 생각과는 달리 에스카로스는 들고 있던 대검을 땅바닥에 최대한 깊숙이 꽂아 넣은 채머리를 움켜잡으면서 강렬히 저항했다

에스카로스의 머릿속에 심어둔 수정 파편을 처음으로 사용한 상황이라 계속해서 강제로 내리는 명령을 약간이나마 거부할 수 있던 낌세다

엎친데 덮친격이었다멀린은 연달아서 벌어진 변수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법사답게 침착하게 주문을 완성시켰다.

ㅡ퍼엉! 퍼어엉!

ㅡ콰르르륵!!

폭죽처럼 공중에서 퍼져내리는 불꽃의 세례와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뾰족한 돌덩어리가 위아래에서 록시아뿐만 아니라 쓰러져있는 로덴과 쌍둥이 자매까지 함께 노린다

쏘아지고 있는 마법들을 응시하며 양손을 뻗은 록시아는 마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중간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녀의 의지만으로 당장 필요한 마법을 만들어냈다

위를 향하고 있는 오른손이 가리킨 허공에서 만들어진 거센 돌풍이 불의 비를 완전히 잠식시키고아래를 향하고 있는 왼손에서 쏘아진 한기가 땅바닥에서 솟구치려는 돌덩이와 함께 대지를 꽁꽁 얼려냈다

그러면서도 로덴과 쌍둥이 자매가 얼어붙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완벽히 조절까지 했다

“……내가 지금 뭘 봐버린 거지?”

두 눈으로 생생히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해버린 멀린은 그가 알고 있는 마법사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록시아가 보여준 행위는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멀린에게조차 결단코 허용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저런 것은 마법사라고 부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마법사는 필수적으로 정해진 절차와 계산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마나를 소모 및 변형하여 적절한 마법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얼마나 빠르고정밀하게 완성시켜서 마법을 구현화 할 수 있느냐가 뛰어난 마법사를 가리는 지표

마나의 많고 적음보다도 이러한 과정을 빠르게 넘어가는 능력이 훨씬 중요할 정도다

허나 록시아는 과정을 완전히 무시하여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 만으로 마법을 실체화시켰다

여기서 잠깐

마법사가 아닌 보통 사람도 알기 쉬운 예시를 들기 위해 마법을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보통의 마법사는 마법이라는 인물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걸고아주 예쁘게 포장한 마나를 선물로 바쳐서 환심을 얻은 뒤에 간곡하게 부탁을 청한다

반면마왕이 된 록시아는 다짜고짜 마법의 머리채를 움켜잡은 채 마기를 담은 싸대기를 여러 차례 후려갈기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말에 따르라며 윽박질렀다마치 여왕님처럼.

마법은 또 그걸 좋다고 헥헥거리면서 머리를 땅에 처박아 완벽하게 복종했다

그야말로 기존의 상식선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다

“당신… 방해되니까 잠깐 닥치고 있으세요.”

한번 마법을 부딪히고 나서지금의 상태라면 멀린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록시아가 벌레 보는 듯한 표정으로 멀린에게 한 마디 툭 던진 뒤로덴과 쌍둥이 자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노인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 사람들을 구하는 게 훨씬 더 급하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세 사람에게 차례차례 손을 뻗은 록시아가 그들을 옮기는 모습을 상상하자그것을 구현화시킨 마기가 염동력과 유사한 형태의 힘으로 세 사람을 한 곳에 모았다

“이제야 막 마왕이 됐을 뿐인 계집년이 어디서 시건방을 떠는 게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리 없는 멀린이 다시금 완성시킨 살상용 마법이 록시아에게 쏘아졌지만 그녀는 파리를 쳐내는 듯한 느낌으로 멀린의 마법을 상쇄시켰다심지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멀린을 깔끔히 무시한 록시아는 하려던 것을 계속하기 위해 쓰러져있는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주인님… 메림 언니마릴 언니… 당장 치료할 테니 제발 이대로 죽지 말아 주세요….”

소중한 사람들이 크게 다쳐버린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록시아가 기도하듯이 두 손을 경건하게 모은 자세를 취했다이윽고 황금빛 광채가 록시아의 손에 깃들었다

우선 그녀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주인님인 로덴을 먼저 시작으로 한 명 한 명의 몸에 손을 올려서 치료를 시작했다

ㅡ우우우웅­!

베어진 상처와 화상멍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고통을 표현하고 있던 찡그린 얼굴이 편안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외상이 아닌마나 고갈로 인한 내상을 입었던 메림 또한 혈색이 훨씬 좋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로덴의 왼팔만큼은 다시 자라지 않았지만지금 당장은 세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

한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록시아는 아까부터 끈질기게 마법공격을 날리고 있는 멀린에게 손을 뻗어 꽉 움켜잡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손 모양의 바윗덩이가 멀린의 몸을 꽈악 움켜잡으면서 솟구쳐 올라왔다

“…!!블링크!”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빠르게 날아오는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멀린은 블링크를 소모하여 바위 손아귀에서 긴급하게 탈출했다

“어딜도망가!!!!!”

ㅡ퍼어억!

“그허어어억?!!”

하지만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록시아는 멀린이 이동할 위치에 미리 생성한 돌주먹을 가차 없이 휘둘러 그의 몸뚱이가 저만치 날아가 버릴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으지직! 제대로 적중했는지 뼈마디 몇 군데가 아작나버리는 섬뜩한 소리마저 울려 퍼졌다

ㅡ쿨럭! 쿨럭!

예상치 못한 통한의 일격을 허용해버린 멀린은 뼈는 물론내장까지 손상당해 버린 탓에 입에서 핏물을 콸콸 쏟아내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몸이 찢어져 버릴 듯한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지금의 경험을 통해 마왕이 된 록시아의 권능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마법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힘이라니… 터무니없는 힘이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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