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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16화 (116/149)

〈 116화 〉 대적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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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시간상으로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것만 같은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춘다면 사지가 찢기는 수준의 공방이 오고 가며 서로의 무기에서 무수한 불꽃이 튀었다

로덴과 에스카로스가 밟고 있던 주변의 땅은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움푹움푹 파였으며해당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포션 가게 또한 예외는 없었기에 원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폐허를 연상캐하는 처참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ㅡ후욱후우욱…!

몇 차례 검을 주고받은 것 만으로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현장을 만들어낸 두 사람은 충분한 거리를 벌린 채아주 잠깐이나마 전투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식히는 시간을 가졌다

“크흐흐… 지금까지 이 내가 상대한 마물들이나 고위 마족들과는 비교 조차 되지 않는 실력이로구나! 상대방과 검을 이렇게 주고받으며 싸울 수 있게 된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난적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서 맞선다! 역시 싸움은 이런 것이야!

유쾌해하는 목소리를 낸 에스카로스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스쳐간 참격의 영향으로 갑주의 여기저기에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처럼 금이 쩍쩍 갈라지거나 깊게 베여 있었다

한편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된 로덴은 건물의 잔해만이 남아버린 집의 상태를 뒤늦게나마 확인하게 되면서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아아아………씨이발철저하게도 부서졌네.”

싸우고 있으면서도 만약에 대비해서 록시아 쪽에 의식을 분산하고 있느라 집까지는 차마 신경 못 썼는데 말이지

이건 뭐…집을 수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건물을 다시 지어내야 하는 수준이다위가 몹시 쓰라린다

집이 부서져버린 것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정신없이 싸우던 로덴은 딱 한번미처 받아치지 못한 전격에 적중당한 바람에 상의는 홀라당 타버리고 몸은 살며시 그슬려져 있었다

ㅡ저릿저릿

뿐만 아니라 온몸이 찌릿거리는 느낌 또한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 항마력을 뚫어내서 적지 않은 위력을 전달시킬 정도의 전격 마법이라… 검을 다루면서도 주문을 완성시키는 속도와 집중력도 그렇고마법사로서의 자질 또한 수준급이야그야말로 마검사의 이상향이로군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마검사

이렇게 듣기만 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만능 전투 클래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겠지만… 본디 마법 하고 검술은 서로 간에 깨달음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법이다

마검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검이나 마법둘 중에 한쪽을 몹시 미숙하게 다루거나 양쪽 모두 전부 어중간하기 짝이 없기 마련

하지만에스카로스는 일반적인 상식을 정면에서 당당하게 무시하는 것처럼과거에 용사였던 로덴에게 그의 검과 마법이 충분히 먹혀들을 정도의 속도와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흣차!”

몸을 세차게 풀어서 저리는 느낌을 떨쳐낸 로덴이 다시 에스카로스와의 전투를 재개하려는 순간

ㅡ웅성웅성웅성…

건물 하나가 쑥대밭이 되어버릴 정도의 심상치 않은 소란을 알게 된근처에 거주하거나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순찰 중인 경비병들이 삼삼오오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싸움이 무르익고 있거늘주변이 슬슬 시끄러워지는구나…멀린.”

“알겠습니다.”

나직이 중얼거린 에스카로스가 뒤편에 있는 멀린에게 시선을 주자고개를 끄덕거린 멀린은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상공에 떠오른 멀린은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쓱 훑어보더니 사전에 준비해둔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이스 월”

멀린의 의지에 따라 약 10미터 가량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빙벽들이 일제히 솟구치며 오각형 모양의 얼음 결투장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ㅡ쩌저정! 우르르르르!

“으허엇?!”

“가갑자기 얼음덩어리가…!”

난데없이 코 앞에서 솟아오른 얼음벽에 깜짝 놀라버린 몇몇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고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있는 힘껏 창과 검을 휘둘러서 벽을 깨뜨리려고 애썼지만 긁힌 자국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여태껏 평화로웠던 변두리 영지에서 난데없이 이런 규모의 소란이라니…적국이나 사교도 세력이 도시 내부에서부터 테러라도 벌이고 있는 걸까? 얼음벽을 빙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추측이 오고 갔다

“이걸로 잔챙이들에게서 방해가 들어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무운을 빌지요에스카로스 님.”

“그래수고했다.”

“…….”

어지간한 성벽들 보다도 훨씬 견고한 얼음벽들을 순식간에 만들어낸 대마법사에게 건네는 말이 겨우 수고했다는 한 마디로 끝이라니…

칭찬이 매우 짠 녀석이라고 에스카로스를 평가한 로덴은 지금의 싸움에서 괜스레 휘말리는 사람이 없게 된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그러면 다시 싸우도록 할까? 용사여.”

로덴은 입을 여는 대신흑검을 바로 세워서 오러를 끌어모으는 것으로 대답했고이윽고 두 남자는…

ㅡ츠파앗!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를 향해 검을 향하며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그 무렵

모험가 길드에서의 볼일을 모두 끝마치고 동료들과 헤어진 쌍둥이 자매는 본래는 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와야 할 포션 가게 대신거대한 얼음 방벽과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허억… 허억!”

“헉! 허어억…! 이게 무슨….”

가슴이 터질 듯이 빠르게 달려간 쌍둥이 자매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얼음 방벽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다가도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근처에서 얼음 방벽을 깨뜨리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다가갔다

“겨경비 아저씨! 이 얼음덩어리는 대체 뭐예요?”

“앗… 너희들바깥에 있었던 모양이구나? …로덴 선생의 가게에서 굉음이 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는데보시다시피 저것 때문에 발이 묶여있는 상황이야.”

“굉음이라고요?”

두 번째로 꺼낸 질문은 경비병들 대신얼음 방벽 너머에서부터 울려 퍼지는귀를 찢으려는 듯한 날카로운 파공음이 대신 답변해주었다

ㅡ카앙! 카카각!! 콰아아앙!!!!

“…너희도 똑똑히 들었지? 아까부터 저 얼음덩어리 너머에서부터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더구나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확인하려 해 봐도 보시다시피….”

ㅡ퍼어억!

경비병은 쌍둥이 자매에게 보란 듯이 얼음 방벽에 큼지막한 돌멩이를 던져보았다돌덩이에 맞은 방벽은 약간 갈라져 버렸지만 몇 초 뒤갈라진 틈새가 천천히 메워졌다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지금처럼 단순히 돌멩이를 던지는 게 아니라 창이나 검을 휘두르거나 해봐도 별다른 소용이 없었어.”

얼음 방벽을 깨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경비병들은 차선책으로 저것을 뛰어넘기 위한 커다란 사다리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여기서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물건이라 도착하려면 앞으로 30분 이상은 걸리는 상황이다

ㅡ우르르릉! 카아앙! 쿠와아아!!!

쌍둥이 자매가 경비병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얼음 방벽 너머의 굉음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로덴 오빠랑 록시아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서 저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상황인데아무것도 못한 채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

분하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메림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얼음 방벽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며 동생과 함께 얼음 방벽을 빙 돌다가 반대편에 도달하게 됐다

“마릴굳이 이야기할 것도 없겠지만… 이건 마법으로 만들어진 얼음 방벽이거든? 그리고 지금우리의 앞에 있는 이 방벽에서 그나마 가장 적은 마력이 느껴지고 있어.”

“다섯 개 중에는 이게 가장 내구성이 약하다는 얘기구나.”

“맞아어중간한 공격은 별 의미가 없는 모양이니까 한 번에 구멍을 뻥 뚫어버릴 수 있을만한 위력의 마법을 쓸 거야만약에 뚫는 데 성공하면…”

“얼음 방벽이 다시 메꿔지기 전에 안으로 재빨리 들어가라는 소리지? 알았어.”

쌍둥이 동생이라 그런지 척하면 척이었다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메림은 두 손으로 스태프를 쥐어 잡은 채 최대한 많은 마나를 끌어모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점차 완성이 되어가는 주문과 함께 스태프의 정면에 붉은 마법진이 생성되며바람이 일었다주문을 외고 있는 메림의 분위기는 평소의 장난기 많은 그녀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플레어!!!”

주문이 모두 완성됨과 함께 메림의 스태프에서 일직선으로 쏘아진초고온의 화염빔이 거대한 얼음 방벽과 충돌했다

ㅡ치이이이익…! 퍼어엉!!!!

용접기로 철판을 지질 때 들릴법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마어마한 양의 수증기가 사방팔방에 피어올랐다이윽고 수증기가 완전히 걷히자어마어마한 열기로 인해 시원하게 뚫려버린 구멍이 드러났다

ㅡ타타탓!

그 결과물을 보며 기뻐할 틈도 없이마릴은 언니의 몸을 둘러업고 안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녀들을 뒤따라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얼음 방벽이 순식간에 메워졌기에 불가능했다

성공적으로 안으로 진입한 쌍둥이 자매는 얼음 방벽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방이 초토화된 대지와완전히 무너져 버린 집

멀찍이서 지팡이를 짚고 있는 마족 노인과중간 거리에서 양손을 끌어 모은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마족 소녀

ㅡ채앵카아앙콰아앙!!!

검은 갑주를 끼고 있는 채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전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로덴의 모습

“저 사람… 아까 전에 헤어진 용병 아저씨 아냐?”

“아무래도 맞는 거 같은데어째서 저 사람이 로덴 오라버니랑 싸우고 있는 거지….”

쌍둥이 자매는 로덴과 에스카로스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수준의 강자가 싸우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게 되면서 심혈을 기울인 오페라를 직관하는 것만 같은 경이로운 감정을 느껴버렸다

그 싸움을 홀린 듯이 직관하고 있던 쌍둥이 자매는 로덴의 손에 쥐어져 있는 흑검 또한 확실하게 눈에 새기게 되었고어떤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메림 언니… 지금 로덴 오라버니가 들고 있는 저 검….”

“아아나도 생각났어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는 거 같아.”

그녀들이 어렸을 때 몇 번이고 읽어보았던동화책에서 서술된용사의 애검이라는 칠흑의 검과 모든 특징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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