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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109화 (109/149)

〈 109화 〉 검은 사냥개 (10) [수정]

* * *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장인일수록 그 누구보다도 좋은 도구를 써야만 한다이것은 전투에도 통용된다

신체와 무기에 마나나 오러를 두를 수 있는일정 수준 이상의 검사가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량에 걸맞은 명검을 휘둘러야만 한다

명검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

적을 베어 넘기기 위한 예리함

강렬한 충돌을 능히 버텨낼 수 있는 내구도

마지막으로 마나 전도율이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육체를 금강석보다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는 에너지원인 마나는 기본적으로 체내에 가장 잘 흐르는 형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마나를 본인의 몸이 아닌 무구에까지 깃들게 하기 위해서는 해당 무구를 자기 몸처럼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다뤄봤거나집중력이 뛰어나거나마나가 잘 흐르는 소재로 무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족들의 마나의 근원지인 뿔을 갈아낸 뒤다양한 종류의 레어 메탈과 혼합정제하는 과정을 장인의 손으로 수십수백 번을 반복해서 제련한 끝에 만들어진 칠흑의 검이하 흑검은 명검 중의 명검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다

예리함은 칼날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저절로 잘려나갈 정도며 내구도는 마왕과의 혈투에서도 자잘한 흠집만이 전부일 지경

“…….”

실로 오래간만에 흑검을 줄어들고 자세를 잡게 되자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익숙한 감각을 느낀 로덴은 그리운 기분에 빠질 틈도 없이 흑검에 자신의 오러를 자연스럽게 흘러 넣었다

ㅡ즈으응…!

막힌 혈관을 억지로 뚫어내는 기분으로 표면에만 오러를 둘렀던 바스타드 소드와는 달리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로덴의 오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흑검이 푸른 오러에 휩싸였다

“이 개새끼들… 오밤중에 불법침입을 하고집주인한테 문답 무용으로 칼 하고 주먹을 휘두른 것도 모자라서 기어코 살림살이랑 벽까지 박살 내?”

…덤으로 집주인으로서의 분노가 튀어나오니 폭풍 같은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로덴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가서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록시아를 무방비로 만들 수는 없으니 놈들이 다시 덤벼들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적을 응시하며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던 검은 사냥개 4인방은 뱀을 눈앞에 둔 개구리처럼 몸이 굳어졌다

조금 전에 저 남자가 보여준 무력도 엄청났지만지금 함부로 다가가다간 순식간에 당해버리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정도군일단은 물러나는 게 상책이려나?

검은 사냥개의 대장이자최고참인 보르보는 흑검을 쥐고 있는 로덴이 내뿜는 기백을 느끼며 너무 늦기 전에 후퇴 명령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슬쩍… 로덴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소녀록시아를 응시하며 의문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벽이 파괴되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로덴의 방을 쓱 훑어본다사람이 숨을만한 공간이나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흔적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조금 전까지 이 방에 있던 사람은 오직 저 인간 남녀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양피지의 표식은 분명히 이 방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다면 여기에 동족이 있어야 할 텐데정작 안에 숨어 있던 건 인간 남자와 인간 소녀이 둘 밖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마법사 피넷이 대원들에게 은밀하게 시전 한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텔레파시가 울려 퍼졌다그가 보내준 메시지는 가려운 부분을 정확하게 긁어줬다

ㅡ뒤에서 양피지로 다시 확인해봤어눈앞의 남자는 인간그 옆의 계집이 동족표식이 많이 흐릿해졌지만 확실해저 계집도 우리처럼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 거야

ㅡ어째서 표식이 나타났다 말았다 하는지 의아했는데그런 이유였구만

ㅡ대장어떡할 거야? 계집을 처리하는 건 쉽겠지만우리의 전력만으로 저 남자까지 같이 처리하기는 영 힘들 거 같은데

ㅡ저런 강자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동족이라면 주인님께서 말살하라고 명한 마왕의 그릇일 가능성이 매우 크오이 기회를 놓쳤다간 행방을 감출 가능성이 있으니 이제부터 저 소녀만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시오.

그렇게 의견을 모은 검은 사냥개 대원들은 다시 로덴을정확히는 그의 옆에 있는 소녀를 처리하기 위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선두는 대원중에서 유일하게 단신으로 로덴과 공방을 벌일 수 있었던 대장몽크 보르보

“후우웁…!크하아압!!바르마후!”

우레와 같은 기합을 입으로 토해내며 전신에서 오라를 내뿜은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신체를 폭발적으로 강화시키는 비술바르마후를 발동했다

보르보가 입고 있던 검은 옷이 그대로 찢어질 정도로 팽창한 근육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대로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불안감을 느낄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본래는 몸의 안전을 위해 억제되어 있을 리미트마저 풀어내어 극한의 힘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이 비술은 지속시간이 끝나면 못해도 일주일 이상 전신의 근육에 반동이 크게 오기에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감이 외치고 있어눈앞의 남자는 위험하다! 처음부터 전력을 가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순식간에 당해버릴 거야그전에 저 소녀를 제거하고 자리를 떠야 해.

로덴이 흑검을 꺼내 든 순간부터 느끼게 된 위협감에 작전상의 후퇴를 고심했던 만큼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서 그를 견제하고다른 대원들의 공격이 소녀에게 닿을 틈을 만들 심산이다

ㅡ콰드드득! 후우웅!!!

나무 바닥이 푹 꺼질 기세로 발을 내디딘 보르보가 로덴에게 가한 공격은 한없이 단순한 스트레이트 펀치지만 그 주먹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할만한 가공할 위력과 속도를 담고 있다

“아이 새끼… 또 집 바닥을 부수고 지랄이야.”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낸 로덴은 자신의 머리통을 노리고 있는 주먹을 똑바로 응시하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려베기를 가했다

조금 전검과 주먹을 맞부딪혔을 때의 로덴의 검은 보르보의 주먹에 약간의 생체기를 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ㅡ촤아아아!!!

사용자의 오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흑검을 쥐게 된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무쇠보다도 더욱 단단한 경도를 가지게 된 보르보의 정권을 막힘없이 베어낸 로덴의 흑검이 상대방의 주먹을 말끔하게 세로로 베어냈다마치 묵을 갈라내듯이 말이다

“그읍!!”

생살이 갈라고 있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보르보가 남은 왼손을 휘둘렀다그러자오른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갈라낸 흑검을 뽑은 로덴이 재빠르게 내지른 검격이 그 왼손을 말끔하게 분리시켜버렸다

“그 와중에 다시 주먹을 내지를 생각을 하다니몽크답게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군분위기를 보아하니 대빵인 모양인데…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나직이 말한 로덴은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연달아 흑검을 아래로 휘둘러 오래된 거목처럼 굵직한 보르보의 두 다리를 동강내어 녀석의 몸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성녀나 교황급이 되지 않는 이상 스스로 회복은 못하겠지

온몸이 흉기인 몽크를 확실히 제압하고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사지를 불구로 만들어야 한다

ㅡ타타탓!

한편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라니에트와 에르나 콤비는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있는 대장의 모습을 생생히 봤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보르보가 저렇게 순식간에 당해버린 것은 예상외였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대장이 정면에서 짧게나마 시간을 번 사이 로덴의 사각에 도달한 두 자객은 그대로 양측에서 달려들어 적에게정확히는 로덴의 옆에 있는 록시아에게 칼끝을 향했다

확실히저만한 경지의 검사가 호위하는 마족이라면 이번 임무의 최종 목표물인 마왕 후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그렇다면 주인님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말살해야만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록시아에게 근접한 라니에트의 곡도와 에르나의 단검이 양쪽에서 소녀를 노린다

곡도가 닿는다면 그대로 목이 떨어지고단검이 닿는다면 치사성 맹독으로 죽을 것이다.

둘 중 한 명이 당하더라도 나머지가 성공한다면 그만이다주인을 향한 끝없는 충성심과 수없이 임무를 수행하며 쌓아온 담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동이리라

록시아의 몸에 시퍼런 칼이 닿기 직전의 찰나의 순간

“후.”

호흡을 짧게 가다듬은 로덴의 흑검이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있을 수 없는 속도로 두 자객을 스쳐갔다검이 휘둘러진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녀석들은 무기를 휘두르고 있던 자세 그대로 목이 떨어졌다

머리와 함께 의지를 잃은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고절단면에서 피가 솟구친다

너무나도 빠른 일격이라 죽음을 느낄 새도 없었다

짧은 순간에 허공을 회전하고 있는 두 남녀의 머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서로의 죽음을 뒤늦게 인지한다

“…!!…!!!”

“……!!”

라니에트와 에르나는 서로 머리만 남은 꼴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뒤룩뒤룩 움직이고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그대로 절명했다

스르륵목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두 남녀에게 걸려있던 주인의 마법폴리모프가 해제되었고내내 감춰져 있던 마족의 상징인 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족?

로덴은 눈을 크게 떴다갑자기 록시아를 노리길래 주저 없이 목을 벴는데놈들의 정체가 마족이었다니…

처음부터 록시아를 노리고 이 집에 침입한 건가?

그녀가 마왕의 힘을 갖고 있어서?

어째서 마족이 충성의 대상인 마왕을 해하려고 하는 거지?

이외에도 여러 개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로덴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간다

“애시드 미스트!”

ㅡ부아아악!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후방의 마법사피넷이 만들어낸 녹색 안개가 넓게 펼쳐지며 록시아와 로덴을 동시에 덮쳤다.

산성액으로 구성된 덩어리를 광범위에 분사하는 강력한 살상 마법으로가까운 동료까지 휘말릴 수 있다는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대장이 전투불능이 돼버리고 나머지 둘이 당해버린 이상목적을 위해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

치이익!산성 안개가 지나가는 길의 가구와 벽이 불에 닿은 양초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버린다

오라로 보호하면 저걸 맞아도 끄떡없는 나랑 달리 록시아한테는 위험하다창문을 열어서 빠져나갈 여유는 없고….

ㅡ콰지직! 우직!

서둘러 소녀를 끌어안은 로덴은 산성 안개가 다가오는 반대방향즉자기 방의 바깥쪽 벽면에 몸통을 부딪혀서 벽을 부수고 밖으로 탈출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추후에 엉망이 된 집안을 수리할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나오는 기분이다로덴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소녀를 내려놓았다

주변에 느껴지는 적대적인 기척도 달리 없고 하니 집안에 쳐들어온 저놈들이 끝이라고 판단한 로덴은 록시아의 머리를 매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개가 여기까지 닿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바람 계열 마법으로 이 방향에 날아오지 않게 조치하렴금방 돌아올게.”

그리 말하고 등을 돌린 로덴은 서둘러 마법사를 처리하기 위해서 안개를 향해 걸어가려 했지만… 소녀가 그를 꼭 붙들었다

산성 안개에 닿은 모든 물건이 녹는 광경을 봐버린 록시아가 저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안개로 걸어가려는 로덴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님… 자칫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이대로 빠져나가서 경비대분들을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몸의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이성적이면서도 현명한 의견이다

하지만 습격자들의 정체가 마족이고그들이 노리는 대상이 록시아라는 것을 알아버린 로덴은 이대로 끝장을 볼 생각이다

자칫 저놈들의 신변이 경비병에게 넘어가버리면 록시아의 정체까지 탄로날 가능성이 있어서 여러모로 곤란하기도 하고자신이 직접 이번 일의 배후를 알아내야 하니까

“앞으로도 우리가 이 가게에서 별 탈없이 지내기 위해서라도 저 녀석들은 내 손으로만 처리해야 해나는 괜찮으니까 놔주렴.”

“……네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세요주인님.”

주인의 단호한 눈빛과 말에 설득된 록시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로덴의 바짓가랑이를 놓았다.

쏜살같이 달려간 로덴은 산성 안개를 정면으로 뚫고안쪽에 보이는 실루엣을 향해 거세게 발길질을 했다그러자 다음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피넷은 지팡이가 부러지는 것과 동시에 복부를 가격 당하고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복부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에 피넷이 토약질을 할 틈새도 없이 바로 옆에 쪼그려 앉은 로덴이 곧게 세운 검지 손가락이 그대로 허벅지를 송곳처럼 깊숙하게 찔렀다

ㅡ푹!

“끄흐으으읍?!!”

“짱구만 굴리는 마법사라서 그런지 근육이 물컹하네운동 좀 해야겠는데? 힘 좀 팍팍 써보라고.”

ㅡ푹!푹!푹!

“~~~~~!!”

연달아서 마법사의 허벅지를 파고든 로덴의 검지 손가락은 정확히 같은 부분만을 연속해서 찌르고찌를 때마다 조금 더 깊숙이 손가락을 쑤셔서 말로 형용하지 못할 고통을 줬다

피넷이 고통으로 부릅뜬 눈의 실핏줄이 터지면서 토끼처럼 빨개진다

“이대로 한 군데만 계속 찌른다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테니까 내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라어째서 우리를그 아이를 노렸지?”

ㅡ푹푸푹푸푹!

로덴은 질문을 던지자마자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연달아 쑤시고 나서야 놈이 대답할 틈을 줬다하지만 피넷은 게거품을 물며 헥헥거리기만 할 뿐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이 방법을 썼다 하면 대부분은 있는 말 없는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서 모두 불었는데꽤나 독한 녀석이다고문을 견디는 훈련이라도 받은 걸까?

이런 부류의 적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고문이 필요한 법하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록시아의 곁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피넷을 빠르게 죽여야 할지 로덴이 고민하던 순간,

“끄르르르릅!”

피넷이 고통 때문에 물고 있던 게거품에서 붉은색이피거품이 뒤섞여 나왔다

눈을 크게 뜬 로덴이 놈의 아가리를 벌리고 확인해본 결과독약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 자식 적에게 중요한 정보를 누설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이빨에 독약을… 딱 봐도 치명독이다해독하기는 늦었어

이윽고 입뿐만이 아니라 눈구멍콧구멍귓구멍에서도 피를 콸콸 쏟아낸 피넷이 스스로 삼킨 독에 의해 죽게 되자 녀석의 마법이 해제되었다건물 내부에 드넒게 퍼져있던 산성 안개가 걷혔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와 산성 안개의 영향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집안의 모습과 녹아내리다 말은 두 남녀 마족의 끔찍한 시체와 ‘아직은’숨이 붙어 있는 보르보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흐으허어어…쿨럭! 쿨럭!!”

보르보는 반으로 갈라진 오른팔을 제외한 사지가 잘리고산성 안개의 영향으로 표면의 피부가 모조리 녹아버린 상태

아직은 어느 정도 마나가 남아있는 보르보가 마음만 먹는다면 스스로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서 연명할 수 있겠지만 녀석은 이대로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앞으로 23분만 지나면 보르보는 과다출혈로 숨이 끊어진다녀석의 목을 향해 검을 겨눈 로덴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그쪽한테도 질문을 던져봐야 딱히 의미는 없겠군몽크검을 겨눈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으로서 이걸로 단번에 끝내주겠다.”

“흐흐… 무사의 인정이라는 건가? 고맙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소검사여.”

정보를 얻어내지 못할 적과 주고받을 대화는 단 한마디로 충분했다

ㅡ스걱

희미한 잔상이 보르보의 목을 순식간에 스쳐갔다.

표면의 가죽은 그대로 남기고 안에 있는 내용물만을 베어내는 신기를 발휘한 로덴의 흑검에 의해 보르보의 목에 희미한 실선이 그어진다

머리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보르보의 폴리모프가 풀리고 마족의 뿔이 드러나면서 그의 죽음을 반증했다

끝내 이 마족들의 정체가 뭔지는 파악하지 못했구만…

흑검을 인벤토리에 도로 회수한 로덴은 집안에 나뒹구는 마족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록시아의 곁으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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