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검은 사냥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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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아침일찍부터 모험가 길드로 떠났던 쌍둥이 자매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집으로한창 장사 중이던 로덴과 록시아에게 다시 돌아왔다
“광산마을로 가서…”
“…동료분들이랑 같이 홉고블린 무리를 잡고 오신다고요?”
“응응멤버는 평소처럼 나하고 마릴이랑 쥬노아캡틴이렇게 4인 파티.”
“왕복하는 시간이랑 사냥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아무리 빨리 해결해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걸릴 예정이라 출발하기 전에 오라버니랑 록시아에게 미리 말이라도 좀 해야겠다 싶어서 저희끼리만 잠시 들렀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도시에서 마차를 타면 서너 시간 정도 소모되는 거리에 있는 광산마을에서 수배한고블린의 상위종인 홉고블린 무리들을 토벌하는 의뢰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광산 안으로 숨어들고기어코 점거해서 거점을 틀어버린 홉고블린 무리의 규모는 모두 합해서 30마리 이상으로 추정
놈들 때문에 마을의 주 수입원인 광산 운영이 강제로 중단되어 버려서 여러모로 말썽이랜다
홉고블린은 상위종 답게 일반 고블린보다 근력이랑 체급지능 등이 뛰어나고 소규모 전술도 펼칠 수 있어서 뭉치면 은근히 위협이 되는 마물이지만…
“뭐너희들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네대부분의 홉고블린 무리가 온갖 배설물을 독으로 사용하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지?고블린이라고 너무 방심하지 말고되도록이면 공격 자체를 허용하지 마.”
모험가 사이에서는 상식 수준의 지식이었기에 쌍둥이 자매는 동시에 알겠다고 대답했고충고를 전한 로덴은 록시아에게 손짓해서 해독제와 회복 포션들을 그녀들에게 건네주게 했다
“메림 언니마릴 언니만에 하나의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 챙겨두세요!”
“아흐흐뭐 이런 걸 다…딱히 요런 목적으로 방문한 건 아니었는데.”
“…입에 침이라도 좀 바르지 그래?”
볼을 살살 긁적거린 메림은 사양하려는 듯한 말과는 달리 로덴이 내민 포션병들을 넙죽넙죽 받아서 배낭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로덴과 록시아는 피식 웃었고이윽고 쌍둥이 자매에게 서로 번갈아가며 간단한 포옹을 나누었다.
지금쯤 광산 탐색에 필요한 보급품을 다 챙긴 동료들과 성문 앞에 대기시킨 마차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했기에 이야기를 충분히 전한 쌍둥이 자매는 다시금 떠날 채비를 갖췄다
그녀들이 가게에서 떠나가기 직전로덴은 쌍둥이 자매의 손을 동시에 잡으면서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후우… 이번에 갔다 오면 너희에게 꼭 전해야 될 말이 있어.”
“뭐야?뭐야?목소리까지 평소보다 더 깔고?”
“깔긴 누가 깔아난 원래 이런 목소리야.”
“많이 중요한 이야긴가 봐요?”
로덴은 바로 옆에 나란히 서있는 소녀와 함께 눈을 마주치며 쌍둥이 자매에게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쌍둥이 자매는 그냥 지금 말해주면 안 되나 하고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당장 말해줄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갔다 와서 듣기로 했다
지금까지 타인에게 숨겨왔던 무언가를 밝히는 것이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귀족가의 집안에서 가출한 내력을 숨기고 있는 그녀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겠네요.”
“사실 그 점을 노려서 건넨 말이었지조심히 다녀와.”
“으이구~ 말은 참 잘해요그러면갔다 올게.”
“두 분 모두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아침에 떠났을 때와 같이 혀와 혀가 얽히는 진한 키스를 순서대로 나눈 쌍둥이 자매는 가게에서 미련 없이 떠나갔다
손을 마주 잡으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로덴과 록시아언니들이 돌아왔을 때를 생각할수록 점차 복잡해지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소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마족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주인님을 이성으로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도 언니들하고 지금까지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싶지만… 사람의 마음은 복잡한 거니까마냥 확신은 못하겠구나.”
긴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지금의 관계를 쌍둥이 자매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녀들이 다시 돌아올 때최대한 차분한 분위기에서.
원래는 훨씬 더 빨리 이야기할 생각이었지만 마족 살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쌍둥이 자매에게 록시아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로덴과 록시아는 표면적으로 주인과 노예가 아닌(애초에 로덴은 그녀를 노예로 여기고 있지 않지만)삼촌과 조카 사이였기에 남녀로서 비밀스러운 관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비밀로 하고 있다
‘자칫 근친상간 같은 걸로 여겨질까 봐 숨기고 있긴 했지만쌍둥이네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커다란 배신감을 느낄만한 일이지.’
록시아의 기습적인 키스를 통해 미약을 먹게 된 바람에 시작된 관계… 라는 것은 로덴 스스로 몇 번을 생각해봐도 변명이다
약기운이 돌고 있는 상태에서도 로덴의 의지는 분명하게 반영됐고그날 이후부터 록시아는'딸 같은 소녀’가 아닌 ‘여자’로 비치기만 핬다
그 결과쌍둥이 자매와 먼저 교재하고 있음에도 록시아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
‘두 사람에게 욕을 먹더라도 나 한 명만 욕을 먹게끔 최대한 잘 이야기해보는 수밖에.’
쌍둥이 자매 몰래 소위 말하는 ‘바람’을 피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거리를 지은 죄가 있는 만큼그녀들이 화를 낸다면 욕이든 따귀든 달게 받을 생각이지만…
록시아와 메림마릴이제 와서 어느 쪽도 놓칠 마음은 추호도 없다쌍둥이 자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뒤입으로든 몸으로든 설득해서 세 여자 모두 평생 동안 책임질 생각이다
로덴과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가 집으로 돌아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게 가장 최선일지 서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어느덧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후우계속 회의만 하다 보니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네… 록시아기분전환 겸 같이 도시나 좀 돌아다닐까?”
“네!주인님이랑 함께라면 뭐든 좋아요.”
“그래오늘은 밖에서 달달한 음식도 좀 먹자꾸나.”
봄에 피어나는 꽃보다도 더욱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한 록시아는 점심시간 동안 주인의 손을 잡고 바르멜라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데이트를 실컷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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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어둡고 깊은 새벽
각자 묵고 있던 방에서 다른 투숙객이나 여관 주인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밖으로 나온 검은 사냥개 4인방은 건물 옥상 위에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평소의 사냥개들은 순례자 행색을 하기 위해 무난한 여행객 차림이나 승복을 입고 있었지만…
지금만은 하나같이 검은 옷과 안면을 가리는 후드로 새벽의 어둠 속에 녹아드는 잠입 및 암살에 최적화된 복장을 하고 있다
“같이 사는 쌍둥이 자매들이 마차를 타고 도시에서 떠난 것도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전부 빠짐없이 확인했어.”
“그간 감시하느라 수고 많았소덕분에 적절한 시기에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됐구려.”
요 며칠간 바르멜라 영지에 방문한 이방인들은 사냥개들 말고도 제법 많이 있었으니 직접적인 목격담이 없는 이상 그들을 쉽사리 의심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장 보르보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아티팩트 양피지를 펼치고 마력을 불어넣어 무언가 변화가 있는지 지켜보았다
스멀스멀양피지는 동족이 있음을 나타내는 얼룩을 보여줬고위치 또한 이번에도 어김없이 로덴의 집을 향하고 있다
양피지를 회수하고 서로 말 대신 눈빛만을 주고받은 사냥개들은 그대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검은 사냥개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때가 된 것이다
ㅡ풀쩍!풀쩍!
전등을 높이 들어 새벽 순찰을 하고 있는 경비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이동은 건물의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고건물 간의 간격이 여의치 않다면 지상에서 재빠르게 움직여 다시 건물을 타고 올라간다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운 새벽이지만 마족의 특성상 밤눈이 밝은 사냥개들에게 어둠은 방해 요소가 되지못했다
그렇게 경비병들에게 발각되는 일 없이 새벽의 도시를 종횡무진한 대원들은 도시의 외곽구로덴의 가게로부터 살짝 떨어진 위치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지금까지 임무 중에 몇 번이고 반복한 작업이기에 굳이 의사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
“…….”
대원중에 체격이 가장 왜소하며 말도 적은 마법사 피넷이 조용히 주문을 읊자짧은 시간 동안 주변 반경에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방지하는 마법이 발동됐다
이제부터 약 20분간이 주변에서 다소 시끄러운 소란이 벌어지더라도 인근 시민이나 경비병들은 듣지 못하리라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같이 살고 있는 인간 둘이 깨지 않게 진입해서 동족만을 조용히 처리하고 빠져나오는 것이지만…
같이 사는 인간들에게 방해를 받는 등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모두 죽여서 강도에 의한 범죄로 꾸미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넷이서 20분이면 떡을 치고도 남지후딱 처리하고서 돌아가자고.”
“어머머☆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네가 대장인 줄 알겠어.”
눈을 가늘게 뜬 에르나가 두 자루의 곡도를 꺼내 들고 있던 라니에트에게 그간 감시한록시아와 로덴의 정보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충고했다
“저기서 코~ 자고 있을 마법사 계집은 둘째 치고로덴이라는 남자는 한가닥 하는 분위기니까 저번처럼 쥐어터지지 않게 조심해☆”
“…썅년이….”
나자리에 있는 동족율리드에 대해 조사했을 때‘은 등급 모험가 정도야’라고 말하며 혼자서 먼저 덤볐지만… 생각 이상으로 노련한 상대방과의 일대일 싸움에서 꼴사납게 깨져버린 전적이 있던 라니에트는 벌레씹은 표정을 지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대판 싸웠을 것이다
“현재 저 건물 안에 있는우리의 목표물인 동족에 대해서는 밤에만 나타나고서 아침에 떠나는 것 이외에는 정보가 없는 상황이니 다들 신중히 행동하시오.”
‘이번 상대방은 완전히 미지수니까 주인님에게 받은비술이 담긴 스크롤을 사용할 생각도 해둬야겠군….’
기도문을 모두 웅얼거린 보르보가 각오를 굳힌 표정을 지으며 발을 내딛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대원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ㅡ사삭삭!
외진 위치에 자리한 건물인 덕분에 근처에서 이렇다 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사냥개들은 재빠르게 문 앞까지 움직였다
타인의 집안에 잠입할 때는 창문으로 우회하는 방법이 보편적이지만보안장치를 뚫어낼 수단이 있다면 오히려 당당하게 정문으로 침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ㅡ우우우웅…
우선은 마법사 피넷이 건물의 표면에 새겨져 있는 보안 각인을 순식간에 분석하고해제시켰다
“끝.”
이런 변두리 영지에 지어진 마탑 마법사들이 제공하는 각인쯤이야 대마법사 멀린의 제자 중 하나인 피넷에게는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ㅡ잘그락잘그락… 철컥!
다음에는 도적인 에르나가 주머니에서 L자 모양으로 된 락픽을 꺼내어 요령 있게 가게 문을 땄다
“크~☆ 나는 자물쇠가 따지는 이 소리가 제일 좋더라.”
그렇게 해서 검은 사냥개 4인방은 새벽시간의 포션 가게에 순조롭게 들어갔다
가게 내부에 배치된 포션 진열대의 모양새라던가 손님용 테이블과 의자의 구도는 제법 보기 좋았다
허나그들의 방문 목적은 인테리어 평가가 아니라 안에 숨어있는 동족… 마족을 제거하는 것이었기에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가게 구역을 지나쳐 거실로 진입했다
안쪽의 문은 딱히 잠겨있지 않았기에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잠깐만…표식이 다시 깜빡거리고 있는데?”
“뭣?”
안을 탐색하려고 할 때발동 중인 양피지를 계속 지켜보던 피넷이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커다란 양피지를 양손으로 들고 있는 라니에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이 다시금 내용을 확인해보니 이 건물 내에 동족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점이 가리키는 방향은 맨 왼쪽에 자리한 방이다
설마 사냥개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챈 동족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걸까?
마음이 급해진 대원들은 서둘러 그 문으로 달려갔고그들이 다가가는 도중에 문이 스스로 열렸다
“한창 잘 시간에 이것들은 또 뭐야….”
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자다가 깨버린 탓에 몹시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포션 가게의 주인인, 인간 남자
그는 진작부터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챘는지한 손만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냥개들이 예상한 대로 저 남자는 싸움에 능한 전사였던 모양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목격자는 살려둘 수 없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쌍검 전사 라니에트와 여도적 에르나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양쪽 방향에서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평소에는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전투에 들어가면 서로 한 몸이 된 것처럼 손발이 착착 맞는 두 사냥개의 공격은‘피한다’와‘막는다’라는 선택지를 모두 없애버리는 완벽한 연격이다
ㅡ촤아악!
이윽고 날카로운 칼날이 피와 살을 베어내는 섬뜩한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투둑툭절단된 신체가 바닥에 떨어진다
“끄흐으으읍?!”
“커헉… 아흐윽…!”
바닥에 굴러다닌 것은… 몸에서 떨어져 버리고 나서도 무기를 꽉 쥐고 있는 두 침입자의 오른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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