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검은 사냥개 (7)
* * *
“모두 합해서 은화 3닢대동화 9닢입니다.”
“옛다확인해보렴아가씨.”
체력 포션과 해독약을 포함한 약품 몇 개를 집어 들은 모험가 일행의 대표에게 은화 4닢을 건네받은 록시아는 잔돈 주머니에서 꺼낸 대동화를 내밀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내고서 주머니에 넣은 모험가와 동료들은 귀여운 종업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그녀와 로덴에게 짤막한 인사를 건네며 포션 가게에서 천천히 떠나갔다
“하아아아….”
가게문이 닫히고창문 너머로 손님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던 록시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ㅡ문질문질
그리고는 아직도 얼얼한 감각이 남아있는손님들이 오기 전까지 주인의 손바닥에 의해 잔뜩 혹사당한 엉덩이를 양손으로 살살 매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록시아와 나란히 창가에 서서 모험가들의 뒷모습을 바라본 로덴은 소녀가 문지르고 있는 둔부를 가볍게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렇게나 순진해 보이는 종업원이 사실은 엉덩이를 맞으면서 가버리는 변태였다라… 저 친구들은 상상조차 못 할 거야.”
“으읏… 벌은 충분히 받았으니까 짓궂은 말씀은 더 이상 하지 말아 주세요.”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록시아의 나이 때에 걸맞은새침하면서도 귀여운 표정이다피식 웃은 로덴은 아직까지도 자기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소녀를 위해 약병과 면봉을 꺼내왔다
“록시아이거라도 좀 발라줄까?”
“…네.”
체벌은 즐겼으나엉덩이가 얼얼한 후유증은 썩 달갑지 않았는지 록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덴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차피 사람이 오면 방울소리가 울려 퍼져서 집안까지 들리는 구조로 되어있으니 가게 구역을 잠시 비우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지않아 주인의 함께 자기 방에 들어온 록시아는 밖에서 훔쳐보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커튼을 닫은 뒤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 치마와 팬티를 벗어 내려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드러냈다
‘너무 분위기를 타버렸네.’
조금 전에 로덴이 신나게 내려쳤던 볼기짝은 선명한 손자국이 여러 겹으로 새겨져 있어서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중간부터 너무 열중해버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록시아에게 일방적으로 변태라고 매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변태의 길에 들어서 버린 게 아닐까라며 잠시 고뇌하던 로덴은 연고 형태의 약을 면봉에 듬뿍 발라냈다그리고는 히죽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이제부터 바를 건데의료행위로도 느껴버리면 안 된다?”
“안 느껴요!!!”
아화났다
역정을 내버린 록시아를 살살 달래준 로덴은 수치심으로 달아오른 얼굴보다도 더욱 벌게져 있던 소녀의 엉덩이에 연고 약을 골고루 펴 바르기 시작했다
“으… 흥흐응….”
면봉에 묻은 약이 손자국에 발라질 때마다 몸을 흠칫흠칫 한 록시아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얌전히 치료를 받았다
약을 바르는 것보다는 회복 포션을 섭취하는 게 훨씬 간편하긴 하다
허나이 정도로 포션을 쓰는 것은 닭 잡자고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고찰과상이나 화상으로 인한 흉이 생기는걸 말끔하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연고 형태의 약이 더더욱 좋다
여담으로 이 약은 포션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보는 건 아니지만 흔히들 말하는 가성비가 좋아서 초보 모험가나 농민들에게 포션의 대체품으로 제법 잘 팔리는 편이다
『병 주고 약 준다』가 딱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약을 한창 발라주고 있을 때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낸 록시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주인님과 처음으로 만나고이 집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날의 일이 떠오르네요그때도 주인님은 제 상처를 봐주셨죠.”
“아아그러고 보니당시의 너는 여러모로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예방 주사도 놓고온몸에 약도 바르고밥도 실컷 먹이고 했었는데….”
처음 봤을 당시의 록시아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간이 경매장에서 노예로 팔리고 있던 마족 소녀.
모든 것을 포기한 공허한 눈동자
주눅 들어 있는 표정
떨림이 가득한 목소리
거칠고 푸석푸석한 머리
뼈의 윤곽마저 보일 정도로 깡마른 몸에 곳곳이 새겨져 있는 흉터들
…현재 로덴의 눈앞에 있는 소녀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주인님이 저를 치료해주는 것도 모르고 있던 상태라 막연히 겁에 질려 있었는데 말이죠.”
“약을 다 바르고 나서 네가‘주인님고문은 이제 끝난 건가요?’라고 물어봤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크흐흐… 덕분에 얼마나 웃어버렸는지.”
“……그건 제발 잊어주세요….”
ㅡ크흠큼!
들춰지려는 흑역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헛기침을 여러 번 하여 분위기를 바꾼 록시아는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주인님과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모든 게 마법 같았어요보잘것없는 노예에 불과했던 저를 기꺼이 데려와주시고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고애정을 베풀어주셨죠지금까지 주인님께 받은 은혜는 평생 동안 제 모든 것을 바쳐도 모자랄 거예요.”
“…….”
저렇게나 소중한 기억을엉덩이를 드러내며 침대에 엎어져 있는 상태로 떠올리고 있는 이 구도는 뭔가 많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로덴은 일단 그것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록시아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니…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았어이걸로 끝피곤해 보이는데 이대로 누워있으렴낮잠도 좀 자고 해야지.”
“…네.”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를 끝낸 주인은 소녀에게 얕은 이불을 덮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체벌을 받으면서 몇 번 가버린 바람에 제법 나른했던 록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후로 혼자서 가게를 보기 시작한 로덴은 의뢰를 끝마치고 방문하는 모험가들을 상대하다가…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온 쌍둥이 자매를 맞이했다
“다녀왔습니닷~!”
“어라? 록시아는요?”
“걔는 낮잠 때리고 있어그런데너희 차림새가 좀 많이 달라졌다?”
“일전에 주문 제작을 부탁한 장비들인데 각각 마탑 하고 대장간에서 오늘날 동시에 완성 됐거든자자마릴미리 약속한 자세 잡아야지.”
두 사람은 아침에 집을 떠났을 때 보다 장비가 더 좋아져 있었는데그것을 자랑하듯이 로덴의 눈앞에서 손가락으로 V를 치켜세운 포즈를 잡았다… 라기보다는 메림에게 휘말린 바람에 마릴도 덩달아 팔짱을 껴버렸다는 게 더욱 정확하리라
“저기 메림굳이 이런 자세를 잡아야 돼…?”
“얘는 나보다 더 가리고 있는 주제에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람? 좀 더 자연스럽게 웃어봐! 모처럼인데이런 투샷을 보여줘야지로덴 오빠우리가 새로 맞춘 이 장비들 어때? 딱 봐도 어울리지?”
모험가들은 직업 특성상 기초적인 신체능력도 중요하지만몸을 보호할 방어구도 상당히 중요하다그런 의미에서 마릴이 장비하고 있는 견갑이 포함된 가슴 보호대와 팔 보호대는 상당히 든든해 보인다
그리고 메림이 입고 있는 로브는 마법사의 주문식을 보조하는 고급 소재로 만들어진가슴 일부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옷이었고테두리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색과 일치하는 주황색을 띠고 있었다
덩달아서 메림의 줄 목걸이가 가슴골을 통과한 채 살랑거리고 있으니 자석에 이끌린 것 마냥 시선이 계속 쏠려버린다
“둘 다 어울리긴 하는데메림은 좀 많이 대담한 옷이네….”
“후후칭찬으로 해석할게아무튼오늘은 새 장비를 맞춘 기념으로 우리가 팍팍 쏠 테니까 다 같이 밖에서 외식하자로덴 오빠.”
“실은 저희가 미리 예약도 잡아놨어요.”
“알았어록시아 좀 깨우고 올게.”
록시아와 함께 차리는 집밥도 좋지만 가끔은 밖에서 별 다른 준비 과정 없이 즐기는 외식도 나쁘진 않다
곧장 록시아에게 다가가 살살 깨운 로덴은 가게문을 잠그고소녀와 쌍둥이 자매 이렇게 넷이서 식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 *
외식을 끝마친 로덴과 록시아쌍둥이 자매가 집으로 막 돌아올 무렵
도시 내에서 순례자 행세를 하면서도 포션 가게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한 검은 사냥개 4인방은 로덴의 집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여관에 방을 잡은 채 각자 알아낸 정보를 천천히 나열하고 있었다
1바르멜라 영지의 유일한 포션 가게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사람은 삼촌과 조카 관계인 로덴과 록시아쌍둥이 자매인 메림과 마릴모두 인간이다
2쌍둥이 자매는 최근에 은 등급으로 승급했다
3스스로 밝히진 않지만 로덴도 은 등급의 모험가였으며휴업하는 날마다 얼굴을 가리고 조카하고 애인들과 함께 인근 마물들을 사냥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게 되겠소.”
“가장 중요한 동족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구먼지하에 숨기고 있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야기를 얼추 정리한 사냥개들은 다시금 양피지를 펼쳐서 마력을 불어넣어 봤다
허나어제와 달리 아무런 반응도 없다
“흠위치는 분명 이곳이 맞을 텐데이상하구려….”
“헛다리?”
“아냐아냐! 여기에 분명 뭔가가 있어내가 감시하고 있었을 때 로덴인지 뭔지 하는 이 녀석이 심상치 않은 기척을 내뿜어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고!”
오후 내내 포션 가게를 직접 감시했던 에르나가 열렬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대원들은 감시체제를 살짝 바꾸기로 했다
사냥개들은 두 팀으로 갈라져서 한쪽은 로덴의 가게에 새로 들어가는 사람이 오는지 감시를다른 쪽은 여관에서 양피지에 표식이 생기는지 지켜봤다.
그렇게 밤이 지나 새벽이 다가올 무렵다시금 양피지에서 동족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얼룩이 나타났고그곳은 여전히 로덴의 가게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게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낌새는 전혀 없었어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벽마다 우리 동족이 저 집에서 드나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이런 기묘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인간들이 사는 집안에서 새벽 시간에만 나타나는 표적을 어떻게 사냥해야 할까… 대원들은 한동안 회의를 펼쳤고의견을 종합한 결과가 나왔다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쌍둥이 자매의 경우는 모험가 의뢰를 수행하다가 종종 밖에서 자고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 승급했다고는 하지만 은 등급의 전력 둘이 집에서 빠져나가는 그때가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절호의 기회다
검은 사냥개들은 쌍둥이 자매가 없는 날의 새벽에 포션 가게를 습격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폭풍 전의 고요함과도 같이 평온한 이틀이 지나가고길드에 출근한 쌍둥이 자매는 새로 맞춘 장비의 성능을 마음껏 시험하기 위해 못해도 하루 이상이 걸리는 의뢰를 수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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