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검은 사냥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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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말의 안장에 올라탄 상태로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긋하게 가도를 나아가던 쌍둥이 자매의 시야에 바르멜라 영지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햐아~! 드디어 보인다보여.”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살짝 길어진 여행이었어.”
“그러게지금 시간이면 로덴 오빠랑 록시아는 한창 장사하고 있겠네.”
출발 전에는 다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로 예상했지만나자리의 모험가 길드에서 시험을 치르며 은 등급으로 무사히 승급해서 인식표를 새로 받느라 나자리에 체류하는 기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어떻게 보자면 기쁜 오산이다
“너희도 슬슬 집에 돌아가야지? 이랴!”
ㅡ히이이잉!
각자 고삐를 고쳐 잡아 속도를 낸 쌍둥이 자매는 금방 성문을 통과하고우선은 마구간으로 가서 열흘간 여행의 동반자가 돼줬던 말들과 헤어지는 것과 동시에 대여비를 제외한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쌍둥이 자매는 말에게 맡겨두었던 배낭을 다시 짊어지게 됐지만곧 있으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걸음걸이는 여느 때보다 가볍다
조금은 빠른 걸음걸이로 포션 가게에 금방 도달한 그녀들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오랜만에 듣는 청량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서 오세….”
하늘하늘한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록시아가 반사적으로 인사말을 꺼내며 고개를 올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약간의 놀람과 커다란 반가움이 소녀의 얼굴에 교차한다
“생각보다 늦어지는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메림 언니마릴 언니보고 싶었어요.”
“며칠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우리도 보고 싶었어.”
“록시아내가 없는 동안에도 마법 복습은 꾸준히 하고 있었지?”
“네언니.”
가게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언니들에게 바짝 다가간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와 순서대로 포옹을 나누었다
록시아에게 있어 로덴의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쌍둥이 자매의 존재는 자신을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언니들주인님 바로 다음으로 그녀에게 소중한 가족이다.
소녀와 그간의 안부를 간단히 확인한 뒤방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은 쌍둥이 자매는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로덴의 행방을 물어봤다
“삼촌은 십 분쯤 전에 세금 문제로 외출하신 참이라서 여기 돌아오시려면 조금 걸릴 거예요.”
“까비엇갈려 버렸네.”
“타이밍도 참.”
“아하하….”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당장 보지 못해서 적지 않게 아쉬워하고 있는 언니들에게 공감하며 어색하게 웃던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의 목에서 반짝이는 인식표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앗! 언니들 모두 무사히 승급하셨네요축하해요.”
“후후고마워여행하는 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은 로덴 오라버니가 돌아오는 데로 같이 들려주는 게 더 좋을 거 같네.”
“우리는 일단 좀 씻고 와야겠다금방 돌아올게~!”
“네천천히 씻으세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급하게 굴건 없다여유로운 마음으로 배낭 안의 물건들을 꺼내어 깔끔하게 정렬한 쌍둥이 자매는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여행 중에도 목욕이 가능한 숙소를 찾아서 씻고 다니긴 했지만가장 익숙한 곳에서 편하게 씻는 게 최고다
잠시 후몸도 마음도 개운해진 얼굴을 하며 가벼운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쌍둥이 자매는 록시아랑 떠들 겸셋이서 함께 가게를 지켰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세금 관련 문제로 잠시 도심지에 들렀다온 로덴은 가게문을 열자마자 록시아랑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던 쌍둥이 자매를 마주 하게 됐다
“슬슬 올 때가 됐구나 싶었는데그 사이에 돌아온 모양이네여행하는 동안 별일 없었지?”
“네최대한 안전한 길로 다닌 덕분에 큰 사고는 없었어요.”
“걱정도 참우리도 여행 경력이 제법 있는 편이라고.”
햇살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로덴과의 거리를 좁힌 쌍둥이 자매는 조금 전에 록시아와 나누었던 그것과 겉모양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포옹을 순서대로 했다
소녀와의 포옹이 서로 가볍게 토닥거리는 느낌이라면 로덴과의 포옹은 옷 너머로 서로의 온기와 체취를 나눠 받는 느낌.
바로 옆에 록시아가 있는 상황임에도 간질거리면서 애달픈 기분을 참을 수 없던 그녀들은 혀끼리 얽히는 정열적인 키스를 쭙쭙 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도록 나누었다
“후우… 오랜만이라 그런지 너무 좋네요.”
“보고 싶었어로덴 오빠.”
“나도 그래그간 둘이서 다니느라 외로웠지?”
고개를 끄덕인 쌍둥이 자매는 당장이라도 오랜만에 그의 자지 맛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록시아의 눈앞이라 어떻게든 충동을 참아낸다그리고는 주섬주섬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은색의 인식표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짜자잔~! 우리도 이제.”
“로덴 오라버니랑 같은 은 등급이에요.”
사실 로덴의 무력이 ‘겨우’ 은 등급 모험가 수준이 아니라는 것 정도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쌍둥이 자매지만표면상으로나마 상대방과 동등해졌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다
“오? 다녀온 보람이 있네축하해오늘 저녁은 특별한 걸로 준비해야겠어.”
“메림 언니마릴 언니이제 삼촌도 오셨으니까 무슨 시험을 봤었는지 슬슬….”
“알았어알았어처음부터 끝까지 다 얘기해줄게.”
그렇게 쌍둥이 자매는 손님용 테이블에 앉은 채카운터에 앉은 로덴과 록시아에게 시험에 대한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자리에 도달한 대략적인 과정과시험관으로서 마족 모험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새벽의 숲 속에 숨은 트롤의 흔적을 추적해서 둥지를 찾아내고자고 있는 놈을 기습해서 전투를 시작한 것 등등… 자매가 번갈아가며 최대한 맛깔나게 설명해줬다
한편쌍둥이 자매가 해주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로덴과 록시아는 마족 모험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몹시 커다란 흥미를 갖게 됐다
“나자리에 마족 모험가가 있었다고?”
“응율리드라는 이름의 마족 선배야.”
“말하고 행동은 많이 거칠긴 하지만저희한테 은근히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써주시더라고요.”
로덴이 아는 이름은 아니었지만쌍둥이 자매랑 조우한 사람이 마족이라는 사실 자체가 꽤나 중요했다가까운 시일 안에 록시아의 정체가 마족이었다는 진실을 그녀들에게 밝힐 예정이니까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로덴은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건네봤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너희는 마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음? 뭐어렸을 때야 집안 교육 때문에 좀 무서워하긴 했지만.”
“둘이 같이 여행하면서 몇 번 겪어보니까 그냥 외모가 조금 개성적일 뿐인 이종족으로 인식하게 됐죠.”
로덴과 록시아는 마족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쌍둥이 자매의 대답을 듣고 안심했다인간 중에는 마족에게 적지 않은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했으니 말이다
‘다행이다….’
특히 언니들이 마족을나를 싫어한다면 어쩌지ㅡ라며 간간히 속앓이를 했던 록시아는 크게 안도했다
이후로 쌍둥이 자매는 그냥 트롤인 줄 알았던 하이 트롤과의 싸움과 그 문제로 촌장에게 강렬이 항의한 율리드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떠들 입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듣는 것 만으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오늘의 장사가 모두 끝나고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야기가 끝나려 할 때쌍둥이 자매는 나자리에서 처분한 소재에 대해 미련이 남은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잡은 트롤들의 피하고 심장결국에는 거기서 처분해 버리게 된 게 좀 아쉽더라.”
“로덴 오라버니한테 갖다 줄 생각도 하긴 했는데현실적으로 좀 힘들겠더라고요.”
중급 이상의 포션을 제조할 때 요구되는 재료 중 하나가 트롤의 피다거기서 팔지 않고 연금술사인 로덴에게 건네줬다면 판매가보다 훨씬 값어치 있게 쓰이지 않을까 하고그녀들은 생각했다
“혈액은 사전에 부패방지용 약초를 준비한 게 아니라면 단기간에 상하기 쉽기도 하고무게도 많이 나가는 편이니 어쩔 수 없겠지너무 아쉬워하지 마아무튼슬슬 배고프지 않아?”
“흐흐승급 기념으로 비싼 식당에 데려다 줄 생각이야?”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
씩 웃으며 서로 눈을 마주친 로덴과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를 거실에서 기다리게 한 뒤순식간에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길쭉한 상자를 챙기고 다시 올라왔다
“언니들이 오기 전에 삼촌이 특별히 주문해둔 재료예요!”
록시아는 언니들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내며 상자 안의 내용물을 당당히 공개했다안에 들어있는 건 마법 처리로 인해 표면에 차디찬 서리가 끼어 있는 여러 마리의 냉동 바닷가재다
현대인이라면 바닷가재를 보자마자 쪄먹을 생각에 군침을 질질 흘릴 비싼 식재료지만… 눈을 빛내고 있던 쌍둥이 자매는 안에 들어 있는 게 바닷가재임을 확인하게 되자 상당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이건 분명히….”
“바다 벌레잖아? 이런 걸 굳이 돈 주고 샀다고? 심지어 주문할 때 냉동 마법 처리까지 해놨네운송비가 재료값보다 몇 배는 더 나갔겠어.”
미리 예상했지만 역시나 싸늘한 반응이다이쪽 세상에서 바닷 가재는 해안가 인근 도시에 사는 빈민어린아이하인죄수들이 마지못해서 먹는 흔해빠진 싸구려 식재료로써 취급받는 신세다
요리법이 아직 크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현대에서야 오븐에 굽거나슬쩍 데치거나찜통으로 쪄내지만… 옛날이나 이쪽 세상은 지극히 단순하게 바닷가재를 물에 넣고 오래 삶아서 먹을 뿐
국물은 깡그리 버리고 살만을 발라 먹는다는 소린데바닷가재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아미노산이 국물에 그대로 쓸려가면 당연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뭐이제부터 제대로 된 요리를 해줄 테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우리만 믿으라고.”
“언니들이 오기 전에 삼촌하고 미리 연습해서 먹어봤는데정말 맛있었어요저희만 믿고 잠깐 기다려주세요!”
“그래…? 알았어한번 믿어보지 뭐.”
“저희가 도울 건 없나요?”
“딱히 없어우리가 손질하는 동안 식기만 간단히 준비해줘.”
진정한 맛을 모르는 두 사람을 위해 바닷가재의 참맛을 몸소 알려줄 생각이다
로덴과 록시아는 큼지막한 바닷 가재를 일단 두 마리만 꺼내고는 주방에서 본격적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모처럼이니 오늘은 이 녀석도 같이 맛봐야지.’
바닷가재를 흐르는 물에 씻겨내어 살얼음을 제거하는 동안 여유가 생긴 로덴은 인벤토리를 뒤적거려 길쭉한 술병을 꺼내 들었다
일전에 항구 도시에서 마약 조직을 소탕하며 덤으로 얻은 아샤스 꽃을 담근 술이다
랍스터 요리랑 담금주를 함께 조질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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