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두 사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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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면접실에 입장했을 때는 마족이 시비를 거는 바람에 다소 분위기가 안 좋았으나이후에 차분하게 시작된 심사는 커다란 난관 없이 술술 진행됐다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부마스터와 쌍둥이 자매이렇게 세 사람뿐장식품처럼 구석자리에 가만히 있던 마족 모험가는 창문 너머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루한 듯 입을 쩍 벌렸다
부마스터는 그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이쯤에서 심사를 끝내고자 탁상에 손을 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전체적으로 대답도 잘해줬고증명서에 기록된 내역에서도 어비스를 탐사할 때 사고로 파티원 한 명을 잃었던 특이사항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었구먼.’
“수고했네모험가 길드 나자리 지부부마스터의 권한으로 메림 양과 마릴 양이 우리 길드에서 은 등급 실기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도록 하지시험비는 준비해 왔나?”
짤그랑…
나란히 고개를 끄덕거린 쌍둥이 자매가 지갑을 꺼내 은화를 세었다
하나둘셋… 다섯 닢을 꺼내들 때메림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저기 저기부마스터 오빠둘이서 동시에 보는 건데원플러스 원 행사로 깎아줄 수는 없어요…?”
부마스터의 외견은 오빠라고 불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메림은 조금이나마 깎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굳이 그런 칭호를 내밀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보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오빠 소리를 들으면 제법 유쾌하다부마스터는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 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허허돈을 받는 이유가 다 있어서 그러는 거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게.”
“네에.”
‘…쳇.’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비를 온전히 거둔 그는 뒷짐을 지면서 두 사람이 이번에 봐야 하는 시험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잡아야 하는 목표물은 나자리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마을에 출몰하고 있다는 두 마리의 트롤
“공수 밸런스가 좋은 전사와 마법사의 조합을 시험하기에 뭐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적절한 토벌 의뢰를 받게 됐지비록 시험이지만 엄연한 의뢰의 형태로 가는 거니까 성공한다면 보수금인 은화 30닢도 확실히 챙길 수 있어.”
이야기를 계속 듣자 하니 본래 은 등급 이상의 모험가만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의뢰라고 한다난이도가 높아진 만큼 보수금도 상당히 많이 준다
“더군다나 트롤의 부산물까지 챙겨서 판매한다면 상당히 짭짤할 걸세.”
“오오… 갑자기 의욕이 팍팍 솟는데요.”
“거 다행이군남쪽 성문으로 가면 우리가 수배해둔 마차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이 친구랑 함께 움직이면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챙기는 데로 출발하게나건투를 빌지.”
부마스터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의 끝은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족 모험가율리드를 향하고 있다
“하아아….”
율리드가 귀찮아하는 기색이 영력한 표정으로 쌍둥이 자매를 번갈아 보며 몰아 쉰 깊은 한숨은 그와 두 여자의 불편한 동행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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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설명은 율리드에게 들으라는 부마스터의 말을 마지막으로 면접실에서 나가게 됐다
곧바로 마족과 함께 길드 1층으로 내려간 쌍둥이 자매는 그대로 접수대로 가서 파티 등록을 한 다음이번 사냥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고 나서야 남쪽 성문 앞으로 나왔다
조금 전에 이야기 들었던 대로 마차가 하나 대기하고 있는 상태세 사람이 올라타자마차가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차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의 풍경이 지나가고 있는 한편쌍둥이 자매는 맞은편에서 턱을 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마족을 바라봤다
특수한 마물의 가죽을 소재로 한 검은 코트 형태의 방어구허리춤에는 붉은 채찍과 소검을 소지하고 있다다소 색다른 조합의 장비다
그녀들도 로덴과 핀에게 미리 들은 게 있었기에 어째서 이 마족… 조금 다르게 말해서 은 등급 모험가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다
쌍둥이 자매처럼 은 등급 승급 시험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공헌도를 쌓았다는 것은 여태껏 제법 많은 의뢰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것을제법 유능한 모험가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반대로 마물에게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모험가 길드의 입장으로서는 승급 시험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이에게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기 마련
경험 많은 은 등급을 따라붙게 해서 안전요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방침을 세웠다
즉이 마족 혼자서 트롤 두 마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뜻 하며그가 쌍둥이 자매를 지원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시험은 바로 불합격 처리가 된다
요약하자면 율리드는 안전요원 겸시험감독이라는 소리덤으로 시험비로 치르는 금액은 일종의 호위 비용이다
덜컹덜컹…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어느덧 삼 십분 가량이 흘러가는 동안 마족은 아무 말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그의 첫인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메림은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으으….”
계속해서 이어지는 어색한 공기중간에 버티지 못한 마림이 건너편의 마족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과 함께 손을 건넸다
“저어… 율리드 씨라고 하셨죠? 다시금 인사할게요. 제가 동생인 마릴이쪽이 언니인 메림이에요잘 부탁드려요.”
“…그래.”
그러자겨우 시선을 율리드가 마지못해 대답하면서 짧은 악수를 나누었다이마저도 무시당하면 많이 무안했을 뻔했는데 다행이다
마릴은 이 기세를 몰아 어색한 공기를 몰아내기 위해 뭐든 생각나는 대로 말을 꺼내봤다
“여행하다가 마족분들을 종종 보긴 했어도 모험가는 이번에 처음 보게 됐는데모험가 일을 한지 몇 년이나 된 건가요?”
“5년.”
“참참그러고 보면 무기로 채찍을 선택한 사람도 처음 보네요어지간히 잘 다루시나 봐요?”
“그럭저럭.”
단답형 이 씹새야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메림은 이 마족의 태도와 눈빛이 썩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까 전에 부마스터 아저씨가 자세한 설명은 당신한테 들으라고 했었는데…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아무래도 좋은 쓸데없는 건 묻지 말고 핵심만 간결하게 물어봐줬으면 좋겠군.”
편하게 다리를 꼬며 마족을 똑바로 쳐다본 메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질문을 건넸다
“걱정 마댁하고 길게 떠들고 싶지 않으니 중요한 것만 물어볼 거야우선 제한 시간의 개념은 정확히 어떻게 돼?”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한 이후로 12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시험을 보는 동안 마법 도구라던가 포션의 허용 범위는?”
“아티팩트든독이든체력 포션이든 아무래도 좋지만 사용자의 신체나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등의 도핑(Doping)은 아웃.”
“댁이 우리를 지원하게 되면 불합격 처리인 걸로 알고 있어그러면 돕게 되는 기준은?”
“너희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함께 시험을 치르는 거니까… 두 사람 모두 전투를 치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하거나 나한테 직접적으로 도와달라고 말할 때다.”
“오케이어떤 방식인지 대충 윤곽이 잡히네그러면 마지막 질문.”
메림은 눈을 가늘게 치켜뜨더니마족에게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 당신우리한테 내뿜고 있는 기분 나쁜 적대감을 거둘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더라? 아무리 우리가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라지만 비싼 돈 내면서 시험 치르고 있는 입장인데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사실 조금 전부터 메림이 율리드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던 진짜 이유는 단순히 언행 때문만이 아닌 그가 쌍둥이 자매에게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적대심달리 말하면 살기
모험가 생활을 계속하며 셀 수 없는 실전을 치른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감지할 수 있게 된적의의 감정이다
동생 마릴은 어떻게든 참으면서 넘어가고 있지만언니 메림은 이유 없는 시비가 걸린다면 그다지 오래 참지 못하는 성질머리의 소유자적어도 이유라도 알아야만 속이 풀린다
휘유~
율리드는 가위 눈을 하고 있던 메림을 바라보며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살기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골빈년들은 아닌 모양인데? 거기 전사 아가씨도 눈치채고 있었나?”
“네…저도 이걸 직접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긴 했어요.”
‘흠거짓말을 하는 눈빛은 아니네.’
“둘 다 기본은 돼있어서 다행이군덤으로 알고 있었으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마족은 너무나도 순순히 살기를 거두었다그리고는 한껏 부드러워진 말투로 다시 목소리를 냈다
“너무 화내지 말라고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기본조차 되지 않은 얼간이인지 아닌지 확인 좀 하고 싶었거든.”
“단순한 확인 치고는 살기가 은근히 묵직한 거 같던데….”
“뭐최근 들어 흉흉한 소문도 돌아다니다 보니까 외지에서 들어온 녀석들은 예외 없이 경계 대상이었어반은 진심이긴 했지.”
살기를 거둔 순간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는 마족은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투와 몸짓이 가볍게 변했다
한편‘흉흉한 소문’이라는 단어에 관해 짚이는 바가 전혀 없던 쌍둥이 자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흉흉한 소문? 여기 온지는 하루밖에 안됐지만 그런 소문이 퍼진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율리드 씨괜찮다면 무슨 소문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흠? 보아하니 너희들이 활동하고 있는 도시까진 아직 소문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애초에 나 같은 마족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서 도시 분위기 자체가 바뀌지 않은 건 당연해잠깐만….”
주섬주섬품속을 뒤져 연초를 꺼내 든 율리드는 그걸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하려던 말을 이어서 해나간다
“후우우…얼마 전부터 어떤 미친놈들이 인간의 도시에 겨우 적응하고 있는 내 동족들을… 마족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다니고 있다는 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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