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93화 (93/149)

〈 93화 〉 두 사람(7)

* * *

나자리의 모험가 길드에 금방 도착했다. 바르멜라에 설립된 지부와 비교했을 때 건물의 규모 자체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출입문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쌍둥이 자매를 반겼다.

“어우야, 점심때인데도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거 봐라….”

“도시의 규모랑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밀도도 그렇고 확실히 여기가 일거리가 많긴 한가 봐.”

두 사람은 귀찮고 쓸데없는 관심이 자기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진작에 후드 형태의 로브를 푹 눌러쓴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직접 말을 거는 게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본래 이방인에게 어느 정도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여자끼리로 이루어진 조합이라면 더더욱.

“딱 보니까 저쪽이 대기줄인 모양이네. 가자!”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며 잠시 길드 내부를 둘러보던 쌍둥이 자매는 접수처 앞에 세워진 줄에 조용히 합류했다.

의뢰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험가, 보고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험가, 의뢰를 내걸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의뢰인. 저마다 전혀 다른 이유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줄은 애매하게 길었다.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증명서를 만지작 거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주변의 모험가들이 떠드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요즘에는 인근 숲의 놀과 드라이어드가 영역 다툼을 하고 있어서 말썽이라던가, 새로 발견된 유적을 중심으로 모험가들이 벌 때처럼 몰려들고 있다던가, 신종 마수에 대한 소문 등등…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기 충분할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자, 다음 사람.”

주변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덧 줄이 팍 줄어들더니 그녀들의 차례가 되었다.

온몸에 기름이라도 바른 것 마냥 전체적으로 구릿빛으로 번들거리는 피부를 가진 상당히 건장한 체격의 대머리 중년 접수원이 쌍둥이 자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길드의 경우 어여쁜 여성 대신, 건장한 남성이 접수원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은근히 흔하다.

우락부락한 마초가 대화 상대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분고분히 절차에 따라주게 돼 있으니까.

“흠?”

접수원은 메림과 마릴의 똑같은 얼굴을 번갈아 봤다.

“처음 보는 아가씨들이군. 그것도 쌍둥이라… 여긴 무슨 일로?”

쌍둥이 자매는 대답 대신, 은 등급 승급 시험 증명서를 접수원에게 내밀었다. 의외라는 표정을 보인 그는 한동안 눈앞의 증명서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분명 바르멜라 지부의 인장인데…. 허, 아가씨들도 모험가였다니. 게다가 벌써부터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걸 보면 재능도 제법 있는 모양이구먼. 승급 시험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저희가 알기로는 심사겸 면담을 한 다음에 여기서 지정한 마물을 사냥하는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대충 비슷해. 덕분에 길게 설명할 수고를 덜었군. 작성해야 하는 게 있으니 아가씨들의 인식표를 잠깐 건네주게.”

고개를 끄덕인 쌍둥이 자매에게 구릿빛의 인식표를 건네받은 접수원은 인식표와 증명서에 적힌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흐릿한 갈색의 양피지와 뾰족한 은 펜을 꺼내 들어 글자를 슥슥 채워 넣었다.

마무리로 양피지에 증명서를 끼우면서 큼지막한 도장을 쾅! 찍어 내렸다.

“이름은 메림과 마릴. 게다가 한 명은 마법사였나… 증명서랑 인식표 양쪽 모두 별 문제없더군. 우리도 여러모로 준비해야 하는 게 있어서 당장은 힘들고, 내일부터 치를 수 있는데. 어떡하겠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내일 보는 걸로 할게요.”

“알았네.”

팔락.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들은 접수원은 인식표를 돌려주는 것과 동시에 조금 전에 도장을 찍은 양피지를 쌍둥이 자매에게 건네줬다.

“두 사람 모두, 내일 이 시간쯤에 다시 찾아오게. 그 종이도 잊지 말고 챙겨 오도록 하고.”

“이거 말고 따로 준비해야 하는 게 따로 있나요?”

“시험비. 심사에서 통과한 뒤, 사냥 시험을 할 때 내야 하는 은화 3닢… 두 사람이니까 6닢을 준비하게.”

쌍둥이 자매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접수원과의 대화를 끝내고는 길드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크으~ 이쪽은 은화 3닢씩 받는구나. 그간 모아둔 돈이 있어서 부담될 정도는 아니어도 역시 좀 비싸긴 하네.”

“여기까지 빨리 오기 위해서 말까지 빌렸는데 이제 와서 안 할 수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뒷말을 흐린 메림은 이번 여행으로 빠져나가게 된 돈이 내심 아쉬웠다. 내일 시험비까지 낸다면 벌써 은화 10닢은 거뜬히 넘겨버리는 셈.

은화 10 닢이면 로덴의 가게에서 중급 포션 두 개를 구매하거나,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수준의 여관에서 한 달 정도 편하게 놀고 지낼 수 있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뭐, 그걸 감안하더라도 은 등급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투자긴 하다.

승급만 하면 이전 등급과 비교할 수 없이 대우가 좋아진다.

더 수준 높은 의뢰를 자유롭게 수주할 수 있는 것은 기본, 장거리 의뢰를 수행하는 경우에 모험가 길드에서 이동 수단을 지원받는다던가, 길드에서의 신뢰가 쌓인 만큼 여차하면 대출도 가능하다.

권위의 상징인 귀족들도 은 등급 이상의 모험가는 막 대하지 못한다.

‘귀족. 귀족이라… 그래. 그 망할 년이 우리를 모험가 나부랭이가 됐다면서 무시하지 못하게 하려면 최소한 은 등급 이상은 돼줘야겠지. 어차피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림. 메림?”

“으응? 불렀어?”

“중간부터 입을 꾹 닫은 채로 너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길래. 뭔 생각을 그리 하고 있나 싶었지.”

메림은 동생의 비아냥 섞인 말을 듣자마자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다음, 가볍게 헤드락을 걸었다.

“하! 이 지지배가 언니를 대놓고 무시하네. 난 언제나 엄격, 근엄, 진지한 사람이라고. 이제 투기장이나 실컷 구경하러 가자.”

“구경하는 건 좋은데, 괜히 돈은 걸지 마. 또 그때처럼 돈을 허무하게 날려먹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마릴은 언니와 같이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같이 투기장을 구경했던 날의 일을 생생히 떠올렸다.

순수하게 관전만 했을 때는 족집게처럼 승패를 맞춰서 도박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언니였지만, 돈을 내거는 순간부터 무언가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계속 틀린다.

쉽게 말하자면 메림은 지독한 똥손이다.

“으으… 알고 있어. 진짜 순수하게 구경만 할 거야.”

“후우, 좋아. 일단은 믿어 볼게.”

투기장에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마릴은 그대로 언니와 함께 타원형으로 건축된, 콜로세움을 축소화한 듯한 모양새의 건물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 * *

투기장에서 죄수와 마물, 마물과 마물, 검투사와 죄수, 검투사와 마물, 검투사와 검투사 간의 시합을 원 없이 감상한 쌍둥이 자매.

두 사람은 이후에 도시를 쏘다니며 쓸만한 장비와 보급품, 기념품 등을 물색하면서 하루를 보낸 뒤, 모험가 길드를 재차 방문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날의 마초 접수원이 그녀들을 상대했다.

“오, 왔군. 심사 자체는 기본적인 개념 차원에서 확인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대답하게. 이후에 치를 사냥 시험까지 단번에 합격하길 빌어주지.”

““고마워요. ””

현장직에서 은퇴한 모험가 출신인 접수원은 쌍둥이 자매에게 도장이 찍힌 양피지를 받으며 간단한 응원을 해준 뒤, 쌍둥이 자매를 2층에 있는 면접실로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쳐 면접실 앞에서 짧게 심호흡한 쌍둥이 자매는 문을 열어재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비 없이 늘어져버린 길드의 제복을 입고 있는 배불뚝이 길드 직원과,

“…뭘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봐?”

푸르스름한 피부와 끝이 뾰족한 귀, 양 옆으로 쭈욱 솟아오른 뿔을 가진… 방의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푸른 장발의 마족 남성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쌍둥이 자매를 향해 톡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나 같은 마족을 처음 보기라도 하는 거냐?”

쌍둥이 자매가 마족을 보게 된 건 이번이 마냥 처음은 아니다.

우선 록시아는… 그녀들도 인간으로 알고 있으니 예외로 치고, 크로이츠 공국에서 지내던 시절이나 여행 중에 인간 세상에 녹아든 일부 마족들과 마주했었다.

딱 보아도 그다지 좋은 성격 같지는 않은 마족의 목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마족을 본 게 처음은 아니지만… 모험가 마족은 처음 봤어요.”

“분명히 심사에서 은 등급 입회인을 낀다고 알고 있는데, 설마 그쪽이?”

“그래. 재수 없게도 이번에 내가 걸려버렸지. 시간 아까우니까 빨리빨리 앉기나 해. 촌뜨기 계집들.”

빠직!

계속해서 시비조로 입을 나불거리는 마족의 태도 때문에 메림은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직전이었지만, 지금은 심사를 보기 위해 여기에 들어온 것이라서 일단은 참기로 했다.

그리고 메림 대신,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뚱뚱한 직원이 한 마디 했다.

“율리드. 입회인도 엄연한 일이다.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말도록.”

“네, 네. 본부대로 합죠.”

“하여간… 미안하게 됐군. 메림 양, 마릴 양. 이 친구가 영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이 많이 좀 거칠어.”

다소 어색한 공기 속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직원의 정체는 길드의 부마스터였다. 한눈에 봐도 현장직은 아니다.

“그러면 각설하고,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이제부터 묻는 질문에 잘 대답해주게.”

““네.””

이후로 부마스터가 쌍둥이 자매에게 건넨 말들은 기초적인 상식을 확인하는 수준의 질문과 심리테스트와 유사한 질의응답이었다.

거의 형식뿐인 면접은 불합격하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할 수준.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운전면허를 딸 때, 실기 전의 필기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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