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발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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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밀스럽고도 음탕한 비밀을 어김없이 토해낸 소녀는 부끄러워서 미칠 거 같았다. 도저히 주인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허벅지 사이에 두 손을 모아서 꼼지락거렸다.
"으, 읏, 우우우…."
흔적은 완벽하게 숨긴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들켜버렸어…! 주인님이 나를 얼마나 천박하고 야한 아이라고 생각하실까….
내면에서 자기 머리를 꽁꽁 때리고 있던 록시아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각인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일전에 주인에게 들었던 제안대로 각인을 지우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스쳐갔다.
"내 명령 때문에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연달아서 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나쁜 짓을 해온걸 주인님께 쭉 숨기고 있던 게 문제인걸요."
불행 중 다행은 주인님의 목소리 속에 경멸이나 혐오의 기색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리어 자상함마저 느껴진다.
그 자상함 때문에 창피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어서 난감하지만.
로덴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소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래를 향하고 있는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록시아. 우리 같은 인간과 마족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번식을 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어. 그러한 번식 욕구…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자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절대로 나쁘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게 아닌,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딱히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도 너만 할 때는 꽤나 많이 해봤단다. 말 그대로 틈만 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었어."
스스로 과거의 치부를 드러내 주고 있는 주인의 위로 덕분에 부끄러움이 일부라도 희석된 록시아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가는 촉촉했다. 극도의 수치심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찔끔 나와버린 모양.
로덴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소녀의 눈을 마주하게 되자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려 했지만, 어떻게든 말을 이어나갔다.
"어지간하면 이런 일로 참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네가 뚫어놓은 이 구멍을 통해 남녀 간의 은밀한 행위를 몰래 훔쳐보면서 자위를 하는 게 버릇이 돼버렸다면… 보호자로서 마땅히 주의를 줘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더구나. 내 말 이해하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하고 쌍둥이 자매가 하는 걸 보고 있으니 말이지.
"네. 충분히 이해해요. 구구절절 맞는 말씀인걸요."
"옳지, 일단은 벽 앞에서 계속 떠들기도 좀 뭐하니 위치를 바꾸는 게 좋겠구나."
벽에 뚫려있는 구멍도 똑똑히 보여줬으니 조금 전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마저 하기로 정했다.
으레 그렇듯, 침대에 먼저 걸터앉은 로덴이 바로 옆의 공간을 팡팡 두드려서 록시아가 나란히 앉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자리에 앉는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주인님의 눈을 마주 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여기에 앉으면 안 될까요…?"
록시아의 시선은 주인의 튼실한 허벅지를 향하고 있었다.
"안될 건 없지만 은근히 딱딱할 텐데."
"그래도 상관없어요."
"알았어, 이리 와."
"감사합니다."
성을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만큼,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소녀의 감수성을 충분히 이해해준 로덴은 자신의 무릎 위에 그녀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몸을 조금 더 뒤로 빼냈다.
팡팡.
혹여나 주인님에게 먼지를 묻혀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엉덩이를 가볍게 털어낸 록시아는 그의 무릎 위에 조신하게 앉았다. 소녀는 좋아하고 있는 남자의 품에 온 몸을 맡기게 되니 상당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로덴 또한 허벅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덕분에 미묘한 무게감을 망각하게 됐고, 소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라벤더 향기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자세가 자세다 보니 그는 엄한 부분을 함부로 만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양손을 침대 시트 모서리에 고정시킨 채, 인자한 목소리를 냈다.
"록시아. 타인의 방을… 특히 남녀의 성행위를 몰래 훔쳐보는 게 잘하는 행동이 아닌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지금 나누는 대화에서 명령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녀를 굳기 신뢰하고 있는 만큼 강제적인 게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저도 이게 정상적인 취미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깨닫고 나면 스스로에게 '딱 한 번만 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며 주인님이랑 언니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정신없이 훔쳐봤어요. 그리고는 흥분해 버린 제 몸을 달래고 있었고요."
"여태까지 너 혼자 그런 고민거리를 안고 있느라 많이 힘들었겠구나."
"죄송해요. 주인님.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죠?"
"아냐, 아냐. 조금 놀라기만 했지, 딱히 실망은 하지 않았어. …다만, 너한테 지나치게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줘 버린 게 아닐지 걱정이야."
로덴은 지금까지 쌍둥이 자매와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냈을 때를 떠올렸다. 하나 같이 끈적끈적하고 격렬한 섹스 투성이다.
주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된 소녀는 그것만으로 아랫배가 움찔거림과 동시에 얼굴이 발그레졌다. 주인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자세라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침대에 걸치고 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서 록시아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로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우리 둘 만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앞으로 몰래 훔쳐보는 건 그만뒀으면 해. 약속할 수 있겠니?"
"네… 주인님. 앞으로는 몰래 훔쳐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래, 약속해줘서 고맙구나. 나는 널 믿고 있으니까 굳이 명령은 하지 않으마."
"……네. 믿어줘서 고마워요."
이런 취미를 알게 됐다면 주인님 성격상 말리는 게 당연한 거겠죠….
록시아는 주인에게 엿보기 구멍을 발각된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긴 했지만, 진짜로 관음을 그만두라고 하니 내심 속상해지는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몰래 훔쳐보는 짜릿한 느낌을 앞으로는 받을 수 없다니….
현대인의 감성으로 표현하자면 열심히 모아두었던 10TB짜리 야동 컬랙션을 부모가 강제로 지워버리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박탈감이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매우 침울해하는 느낌이 단번에 전달된 로덴은 소녀를 위해 대안을 꺼냈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마탑 인근에 위치한 책가게 기억나지?"
"기억하고 있어요. 어제도 언니들하고 방문했는걸요."
"거기서 판매하는 책중에는 그… 남녀 간의 깊은 사랑에 대해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한 책도 있어."
그는 소위 말하는 야설을 추천해줬다. 외설적인 책을 접하는 것 정도는 허용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관음증에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야설이 건전하지.
주인의 의도를 곧바로 파악한 록시아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최대한 돌려서 주인의 눈을 마주 봤다.
"훔쳐보는 것 대신 글이나 보면서 만족하라는 말씀이군요."
"행위를 직접 보는 거랑 비교하면 많이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글은 글 나름대로 상상하는 매력이 있으니까 읽다 보면 너도…"
"훔쳐보는 걸 관두는 대신, 주인님에게 안길 수는 없을까요?"
"……."
당돌하기 짝이 없는 말을 갑작스럽게 듣게 된 로덴은 석화 마법이라도 걸린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말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금까지는 거절당하는 순간이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고백하지 못했지만, 여기서 더 미루다간 주인님과 영영 이어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록시아는 머리 위에 멈춰있던 주인의 손을 붙잡아서 뿔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고해성사를 하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인간인 주인님과 다른 종족인 마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님은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저를 소중히 대해주셨죠. 마치 딸처럼요. 처음에는 그것만으로 무척이나 행복했어요."
여전히 주인의 손을 붙들고 있던 록시아는 뿔에서 뺨으로 옮기고는 자신의 뺨으로 주인의 손을 문지르면서 오늘까지 참아왔던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님과 함께하는 시간과 추억이 계속해서 쌓이고 나니까 어느새인가 저는 주인님에게 여자로서의 애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돼버렸어요. … 보잘것없는 노예 주제에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만 저는 주인님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돼버렸는걸요."
"록시아… 네가 아직 어려서 하는 착각이야. 호감을 애정으로 여기고 있는 거라고."
로덴의 눈에 한없이 지켜줘야 할 소중한 존재로 비치고 있던 록시아는 여자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제 감정이 단순한 착각이라고요?! 있잖아요, 저는 주인… 아니, 당신을 볼 때마다 심장이 마구 뛰면서 감정이 솟구쳐요. 살아있음을 느껴요. 이건 분명히 사랑한다는 증거겠죠! 구체적인 예를 한번 들어 볼까요? 언제나 저를 쓰다듬어 주는 이 듬직한 손도 사랑하고 있어요."
쪼오옥, 쪼옥.
뺨을 비비고 있던 로덴의 손을 향해 입맛을 다시던 록시아는 엄지 손가락을 예쁜 입술에 머금고는 젖병을 빨아버리는 것처럼 입안에서 쪽쪽거렸다.
손가락이 바깥공기에 다시 노출되었을 때는 투명한 타액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소녀는 엄지만이 아니라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다섯 개의 손가락을 순서대로 맛봤다.
또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바닥까지 혀로 싹싹 핥아냈다. 누가 본다면 로덴의 손에 달콤한 꿀이라도 발라둔 줄 알겠다.
"주인님이 바란다면 손이 아니라 발가락, 겨드랑이, 그리고 우람한 자지까지… 모든 부위를 싹싹 핥아줄 수 있어요. 저는 그만큼 주인님의 모든 걸… 전부 다…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말 이외에는 주인님에 대한 저의 마음을 달리 표현하지 못하겠어요."
진실이 담겨있는 고백을 계속 듣고 있으니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딸아이 같던 록시아가 점점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곤란하다. 고개를 세차게 저은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질타했다.
야이 좆병신새꺄, 정신 안차려?
"…너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고."
"마계국이었다면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예요. 어리거나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사랑을 하는 것 자체에 큰 문제는 없지 않나요?"
"…더군다나 나에겐 이미 메림하고 마릴이 있어."
"이미 두 분과 사귄다면 세 명도 괜찮지 않나요? 저는 아무 상관없어요. 저는 사랑의 찌꺼기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요."
로덴이 들이미는 변명거리는 소녀의 언어로 인해 기왓장처럼 와르르 격파당한다.
그가 새로운 기왓장을 떠올리는 동안, 소리 없이 품속을 뒤적거린 록시아는 하늘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꺼내 들었다.
얼마 전에 소녀가 시간을 내어 혼자서 창고를 정리했을 때 찾아냈던, 몰래 한 병 보관하고 있는 로덴표 수제 미약이다.
꿀꺽, 꿀꺽… 때마침 등을 보이고 있었기에 주인이 눈치채기 전에 미약을 모두 들이켜는 데 성공한 록시아는 그것을 입안에 머금고 있는 상태로 몸을 획! 돌렸다.
"흐읍…?!"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주인의 머리를 잡아당겨서 입술을 겹쳤다. 록시아는 첫 키스를 통해 타액만이 아니라 입안에 머금은 미약의 절반가량을 로덴의 몸속으로 침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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