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흡혈귀 (9)
* * *
조금 전까지 하나의 생물체였던 모기의 여왕은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2개로 나뉘었고 수 천 마리의 모기 떼가 되어 리자드맨 족장의 피를 탐하고 있다.
"크하아아악! 이 벌레들이!!"
온몸에 붙은 모기들에게 피를 빨리고 있던 샤르나르는 놈들을 떨쳐내기 위해 팔다리, 꼬리를 거칠게 휘두르거나 바닥을 대굴대굴 굴렀지만 일부의 모기들이 터져나갈 뿐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못했다.
쪼오오옥ㅡ!
족장의 피를 가득히 빨아낸 모기… 아니, 여왕의 분신들은 한 곳으로 모여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왕의 머리가 허공에 둥둥 떠올라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 아… 비록 저능하고 역겹기 짝이 없는 원쑤 도마뱀이지만 피의 숙성도 만큼은 일품이로다. 이게 얼마 만에 실컷 맛보는 강자의 피인지…."
피를 충분히 빨아낸 모기가 자리에서 물러가면 주변을 배회하던 다른 모기가 빈자리를 메우면서 다시금 피를 빨아낸다. 온몸으로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던 샤르나르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고 있다. 순식간에 피를 많이 빨려버린 영향으로 현기증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촤아아악!
"끼에에엑!!!"
한편,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기 인간들을 막 처리한 참인 나머지 일행이 모기 떼에 뒤덮여 버린 족장의 모습을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
"이런…!"
잘게 분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 전사한테는 최악의 적이군.
"어머니!!"
로덴은 어머니에게 다가가려고 하던 궤루브의 손목을 붙잡았다. 당연히 그는 로덴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것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기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네가 가까이 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맨 손이나 칼을 휘둘러서 저것들을 쫓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지금 당장 다가가 봤자 나란히 피를 빨리게 될 뿐이다."
"……알았다."
궤루브는 무어라 반박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할 뻔했다.
로덴은 냉정을 되찾은 그의 눈빛을 확인하고서 손목을 놓아준 뒤, 메림을 바라봤다.
내가 검풍을 사용하면 족장까지 토막 나거나 크게 다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메림! 화염계든, 전격계든 뭐든지 좋으니까 마법으로 족장님을 공격해."
"그, 그래도 괜찮으려나…?"
"저대로 미라가 돼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마법으로 한번 공격당하고 마는 게 백배 천배 나으니까 서둘러!"
"나도 부탁하겠다. 어머니를 향해 주술을 사용해다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이것 왜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한 메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태프로 족장을 가리키며 재빠르게 주문을 영창 했다.
"라이트닝 웨이브!"
짧은 고민을 통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전격계 마법. 파직 파직, 스태프 끝에 모여든 푸르른 전류가 족장의 몸을 순식간에 덮쳤다.
"……!!!"
그러자 전격을 허용한 샤르나르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던 모기들 또한 바짝 타들어가거나, 재빠르게 도망쳤다.
"크읍! 여왕의 식사를 방해하다니…! 예절도 모르는 것들!!"
모기들이 완전히 물러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족장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로덴과 궤루브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둘이서 함께 쓰러져 있는 족장을 재빠르게 옮겼다.
전신이 모기에게 물린 자국으로 조금씩 부어올라 있는 것과 동시에 샤르나르는 약간 그을려져 있는 상태다. 그 와중에도 정신줄은 똑바로 붙잡고 있었다.
"으윽… 전사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도움까지 받아버렸구먼…."
"상성이 안 좋았던 것뿐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나머지는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지금까지 부족 내의 전사들이나 침입자를 상대하면서 일대일만이 아니라 다대일의 상황에서 조차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족장은 몹시 분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허나,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모자라 동료에게 도움마저 받아버린 이 상황을 패배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정의해야겠나?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으로 직접 끝을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군. 저런 부류의 마물은 긴 시간 방치하면 필연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 것이네. 지금 여기서 끝장을 내야 할 걸세."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자기 몸을 잘게 분열 할 수 있는 타입의 적을 수월하게 상대하려면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로덴은 메림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를 맨 구석자리에 물러나게 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너도 마나를 꽤 많이 사용한 거 같던데. 체감상 어느 정도 남았지?"
"으ㅡ음. 삼분의 일정도?"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주문을 미리 만들어 두다가 모기로 분열한 녀석이 내 몸에 달라붙으려는 낌새가 느껴질 때만 곧바로 견제해줘."
"알았어. 오빠."
로덴과 메림이 간단한 대책을 짜는 동안, 조금 전에 착취한 족장의 피를 음미하던 모기 여왕이 두 남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블러드 스피어!"
여왕의 외침과 함께 그간 꾸준히 모아두었던 혈액의 일부가 자그마한 창의 형태로 뒤바뀌어 화살처럼 날카롭게 쏘아져 나갔다.
원거리 공격까지 할 수 있었나? 날아오는 각도를 보아하니 나하고 메림만이 아니라 뒤에 있는 일행들까지 노리고 있군.
"후우."
진작에 자세를 잡아두고서 짧게 심호흡한 로덴은 눈을 번쩍 뜨고 날아드는 혈창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걱스걱! 마치 여러 개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재빠르면서 정확하다. 검의 희미한 잔상이 허공을 스쳐 지날 때 마다 수십을 넘어선 수백 단위의 혈창들이 공중에서 매가리 없이 소멸해버렸다.
"맙소사! 달랑 검 한 자루 만으로 여가 만들어낸 피의 창을 모조리 막아내는 전사라니…."
예상했던 것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침입자의 모습에 모기 여왕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로덴이 검을 휘둘러서 여왕의 허리를 절단했다.
적의 몸뚱이가 칼날에 베이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승리의 사인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애애앵ㅡ! 애애앵!
"뭐, 어차피 이럴 거 같긴 했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모기 여왕의 절단면이 자그마한 모기의 형태로 꾸물꾸물거리고 있다. 검에 베이기 직전에 육체를 잘게 분열시킨 거겠지.
눈에 핏발을 세운 여왕이 모기의 주둥이처럼 길쭉한 코와 날카로운 송곳니를 과시하면서 로덴의 피를 맛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고, 로덴은 본성을 드러낸 여왕의 안면을 향해 비어있던 손을 휘둘렀다.
퍼석!
마치 몽둥이에 얻어맞은 무른 과일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진 여왕의 머리 파편이 앵앵거리는 소리를 내는 모기들로 변이 하여 로덴을 감싸려고 했다.
"라이트닝 웨이브!"
그러자, 미리 주문을 장전시켜 놓은 메림의 전격이 모기 떼를 통쾌하게 지져댔다. 로덴에게도 전격의 영향이 조금은 흘러들어 갔지만 이 정도쯤은 괜찮다고 미리 말해뒀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모기 떼로 잘게 분열하면 내구도가 한없이 약해진다. 한 번에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게 특기인 전사에게는 극악의 상성인 능력이지만 광역기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에게 쉽게 공략당한다.
"과, 광대와 다를 바 없는 저열한 마법사가 감히이이이이!!"
모기 여왕은 피해를 막기 위해 본모습으로 돌아와 메림을 노리려고 했으나.
"어딜 지나가려고."
쇄애애액!
애인에게 함부로 손을 대려는 것을 가만히 둘리 없는 로덴이 검을 세로로 휘둘러서 여왕의 몸을 반으로 쩌억 갈라냈다.
"크야하아아아악!!!"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절단 부위만을 모기로 분열시킨 여왕에게서 반으로 갈라진 비명이 울려 퍼진다.
직접 베어낸 것과 비교하면 한없이 미미한 데미지지만 이렇게 베어내기만 해도 여왕의 분신인 모기들이 썰리면서 데미지가 누적된다.
완전히 몸을 분열시키면 후방에 있는 메림의 전격에 타버리고, 그렇다고 본모습을 유지하면 로덴에게 썰리는 악순환의 무한한 반복 속에서 모기의 여왕은 조금씩, 확실하게 죽어가게 됐다.
…그렇게 대략 10분이 지나가고, 본래는 성인 남자 셋을 묶어둔 크기의 덩치를 자랑하던 모기의 여왕은 머리통만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게 될 정도로 상당히 초라해져 버렸다. 이제 내버려 둬도 알아서 말라죽으리라.
"한 번에 죽이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놈이 죽을 때까지 계속 공격하면 될 뿐이지. 메림, 견제하느라 수고 많았어."
"후아아… 오빠도 수고했어. 나도 이제 마나를 거의 다 써버려서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하네. 돌아가는 길에는 오빠가 좀 업어줘."
"그래, 그래."
전투가 얼추 마무리되자 긴장이 확 풀려버린 메림은 로덴에게 몸을 기댔고, 그는 메림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리면서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모습을 줄곧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도 그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처음 봤을 때랑 같이 움직일 때도 범상치 않은 수컷이라 내내 생각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니 상상 이상이로군. 우리 부족을 대신해서 저 괴물을 처리해준 것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네."
샤르나르 뿐만이 아니라 옆에서 부축하고 있던 궤루브도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아, 자네들이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입안에 넘긴 식량으로 피를 보충한 덕에 많이 나아졌지."
"그나마 다행이군요."
로덴은 리자드맨 모자와의 대화를 끝내고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릴과 록시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긋지긋한 모기 사태도 이걸로 안녕이네. 기다리는 동안 록시아를 지켜줘서 고마워, 마릴. 그리고 록시아도 오늘까지 밖에서 지내느라 고생 많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요."
"삼촌도 메림 언니도 정말 멋졌어요!"
기다리고 있던 사이에 기력을 회복한 록시아는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그의 허리를 가볍게 안고는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로덴은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는 소녀의 정수리에 저절로 손이 올라갔고, 평소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순간.
"아…! 아아아…! 아아, 아아아!!"
드디어 찾아냈어…!
머리만 남겨진 상태로 로덴 일행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모기 여왕이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듯이 소리를 지르다가 피가 섞인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여왕의 시선은 록시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 아니… 마아… 니… 마와… 님…!"
마왕님! 마왕님! 마왕님! 마왕님! 마왕님!
반년 전부터 미약하게나마 지속적으로 느껴지던 마왕님의 기운 덕에 겨우겨우 눈을 뜨게 됐던 건데…
어찌하여 그런 열등종에게 머리를 숙이고 계십니까… 드디어 저를 찾아오신 게 아니셨나이까…
아아, 찬란했던 대제국이여….
록시아에게 풍겨지는 마왕의 기운을 가까이하고 나서야 겨우 알아보게 된 여왕은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으나, 이미 목소리를 내뱉을 기운도 나지 않았다.
모기 여왕의 머리는 록시아를 보면서 피눈물을 쏟아내며 서서히 메마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쩍 마른 미라 같은 상태가 되어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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