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72화 (72/149)

〈 72화 〉 흡혈귀 (8)

* * *

동굴 안에서 튀어나오는 마물과 모기들을 썰어내고 태워가며 막힘없이 쭉쭉 내려가던 로덴과 리자드맨 모자 일행.

현재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벽이나 천장에 모기의 알이 가득히 들어찬 덩어리가 다 씹은 껌처럼 다닥다닥 들러붙어있다.

덕분에 주위의 풍경은 동굴 속보다는 거대한 생물체의 내장에 더 유사한 느낌을 하고 있기에 본능적인 혐오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으으으…"

후방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 쌍둥이 자매와 록시아는 종양 덩어리 같은 모기 알 주머니가 시야에 담길 때마다 닭살이 돋아났다. 세 여자 모두 나름대로 비위가 좋은 편이라고는 하나, 이건 인간적으로 선을 많이 넘었다.

횃불을 들이밀어서 알 주머니를 지져내면 필연적으로 풍겨 나오는 단백질 타는 냄새 덕분에 얼굴이 저절로 구겨진다.

자잘한 알 주머니들은 고치와는 달리 핵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돈이 한 푼도 되지 않는다.

하아아.

쌍둥이 자매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같은 타이밍에 한숨을 내뱉었다.

"쩝, 돈이 될만한 게 없어서 많이 아쉽지만 이딴게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이번에 제대로 찾아온 듯."

"그러게. 이번 탐사를 끝으로 모기들을 그만 보게 됐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록시아는 좀 괜찮니?"

"괜찮아요. 마릴 언니. 이제 장벽을 돌리는 것도 제법 능숙해져서 마나는 아직 여유롭게 남아있어요."

"아하하… 그런 의미보다는 이렇게 깊은 동굴에 들어오게 된 건 처음일 텐데, 많이 힘들지는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거지. 아무튼 괜찮다니 다행이네."

안색이 밝은걸 보니 괜한 걱정이었네. 가만 보면 얘도 은근히 체력이 좋은 편인 거 같아.

일행은 알 주머니가 눈에 보이는 족족 모조리 불태우면서 계속 전진하다가 널찍한 공동으로 진입했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물들과의 전투를 끝마친 뒤에 공동의 구석자리에 있던 고치로 다가갔다.

"이 동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고치로군."

후웅!

샤르나르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끼를 가볍게 휘둘러서 고치를 주욱 베어냈다. 거대 모기의 알들과 그 사이에 숨겨진 핏빛의 핵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으나, 이 고치의 내용물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샤아아악!!"

"?!"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마치 벌레가 어설프게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 같은 외형의 괴물이 모기의 주둥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길쭉한 코를 날카롭게 세우면서 족장을 덮쳤다!

퍼벅! 퍽! 으직!

하지만, 놈의 기습공격이 무색하게도 재빠르게 반응한 족장이 괴물의 코를 우악스럽게 붙잡아서 뚝! 부러뜨리고, 면상에 후속타를 꽂아 넣어 순식간에 제압했다.

"끼리이익…."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져 버린 괴물은 고치와 함께 베여버린 가슴팍의 상처에서 피를 콸콸 뿜어내다가 온 몸을 바들거리면서 숨이 끊어졌다.

"괜찮으십니까?!"

"어오 깜짝 놀라라…. 괜찮네, 괜찮아."

로덴 일행과 큰아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피가 묻은 주먹을 훌훌 털어낸 샤르나르는 괴물의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아 놈을 자세히 관찰했다.

가느다란 팔과 네 개의 다리, 비쩍 마른 체형을 하고 있는 괴물의 눈은 벌레의 그것처럼 동그랗게 툭 튀어나와 있어서 상당히 혐오스러웠다.

뒷면을 보면 엉덩이에 해당하는 부분에 피주머니까지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라온 늪에서 이런 괴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네. 자네들은 바깥에서 이렇게 생긴 놈을 본 적이 있나?"

"저희도 이번에 처음으로 보게 된 괴물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일행은 이 괴물의 외형을 본떠서 모기인간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로 했다. 모기인간을 조사하던 족장은 녀석의 배 언저리에 연결되어 있던 핵을 쑥 뽑아냈다.

"정황상 이 핵은 고치에 있는 모기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모양일세. 비유하자면 노른자 같은 개념이지."

"이게 아직 남아있다는 건, 이 놈은 덜 자란 불안한 상태로 억지로 꺼내졌다는 뜻이겠군요."

"뭐, 그렇지. 만약에 놈이 충분히 자랐더라도 그렇게 대단한 괴물이 될 거 같아 보이진 않네만… 부화하기 전에 발견해서 여러모로 다행이지. 하여간에, 이걸로 확실해졌어.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번 사태의 원흉과 마주할 수 있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샤르나르는 핏빛 핵을 로덴에게 넘겨줬다.

"어차피 우리 부족은 이번 일이 무사히 해결되기만 하면 더 바라는 것도 없어. 이 동굴에서 얻게 되는 핵은 자네들이 모두 가져도 좋네."

로덴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상대방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편, 바로 옆에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메림은 입이 아주 귀에 걸렸다.

"으흐흐, 족장님. 최고! 사랑해요."

"으음? 같은 암컷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아이를 볼 수 없으면 곤란하다만… 마음만 고맙게 받도록 하겠네."

종족과 문화가 인간과 많이 다른 리자드맨 족장은 메림의 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해 버렸지만 호감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무튼, 로덴 일행과 리자드맨 모자는 때마침 탁 트인 공간인 공동에서 긴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 * *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곱절로 늘어나는 모기 떼를 일일이 상대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됐다. 상상 이상으로 깊은 동굴이다.

"후우우… 마릴 언니. 고맙고… 죄송해요."

"이 정도 가지고 뭘. 가볍기만 해서 록시아를 업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걸."

동굴 속에서의 장기전으로 인해 체력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마나를 소비해 버린 록시아는 마릴의 등에 업혀 있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록시아가 활약해준 덕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주렴."

"…네. 삼촌."

소녀의 방전으로 인해 파티의 진형은 리자드맨 모자가 전방을, 로덴이 후방의 세 여자를 지키는 방향으로 변형되었고, 그 이후로 진행 속도가 다소 더뎌졌지만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현 시각, 일행이 있는 장소는 지금까지 지나친 공동과 달리 평평하게 깎여있는 돌바닥과 벽돌이 내부 공간을 지탱하고 있다.

꿈틀꿈틀.

이곳에는 사람의 심장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모기인간의 고치가 무려 세 개 씩이나 쭈르륵 세워져 있다. 당연히 저걸 당장이라도 파괴해야겠지만 일행의 시선은 고치 너머에 있는 생물체에게 쏠려있다.

"오오, 오오오! 가증스러운 원쑤들이 감히 여왕님의 어전 앞에 그 더러운 발을 들이밀었구나."

스스로를 여왕이라 칭하고 있는 생물은 지금까지 봤던 모기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사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덩치와 지네의 다리를 떠올리게 하는, 다리가 여러 개 붙어 있는 길쭉한 하반신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직은 완전히 자란 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도다. 나오너라! 나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이여."

여왕이 소리치자,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있던 고치가 일제히 갈라졌고. 안에서 모기인간들이 튀어나왔다. 기이하게도 놈들은 태어나자마자 방어구와 검을 착용하고 있다.

"돌연변이 벌레 주제에 왕처럼 지껄이기는…. 이보게 타이터스. 자칭 여왕에게 쌓인 게 아주 많으니 내가 직접 상대하겠네. 자네는 내 아들을 포함한 다른 이들과 함께 잡것들을 맡아주게."

"……."

로덴은 족장과…

[이름 : 샤르나르 카트릭]

[종족 : 리자드맨]

[직업 : 검은 비늘 부족 족장, 도끼 전사]

[기능 : 도끼 전투 LV3, 격투 LV3, 지휘 LV1]

[레벨 : 54 / 62]

[나이 : 28]

……

……

모기여왕의 상태창을…

[이름 : 뷔네 마루루슈]

[종족 : 모기/인간]

[직업 : 모기의 여왕, 흡혈귀]

[기능 : 충술 LV4, 산란 LV2]

[레벨 : 46 / 86]

[나이 : ???]

……

……

번갈아 비교하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건투를 빕니다. 족장님."

레벨의 높낮이가 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은 모기 여왕보다 족장의 스펙이 훨씬 좋은 편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모기들에게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건 검은 비늘 부족원인만큼, 족장의 손으로 직접 끝장을 보게 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쟈하하! 가장 커다란 사냥감을 양보해줘서 고맙네. 부락으로 돌아가면 성대한 축제를 벌여야겠군."

호탕하게 웃으며 자세를 잡은 샤르나르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모기 여왕을 향해 뛰어들었다.

"어딜 감히!"

진노한 여왕이 손짓하자, 조금 전에 탄생한 세 마리의 모기인간이 족장을 제지하려 했지만.

퓨욱! 퓩!

파지직!

촤악!

궤루브의 화살, 메림의 전격, 로덴의 검격이 모기인간들을 덮쳤다.

결과적으로 족장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모기 여왕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노리는 부위는 여왕이 머리와 몸을 이어주고 있는 목. 길게 끌 것 없이 오러가 담긴 일격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다.

썩뚝!

샤르나르의 공격은 훌륭하게 적중했고, 그 증거로 모기 여왕의 대가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공중에 붕 떠올랐다.

하지만 족장은 평소처럼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공중에 떠오르고 있는 여왕의 목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여유로운 표정마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개한 도마뱀 원시인답게 생각이 참으로 단순하도다. 머리만 베어낸다고 해서 여의 고귀한 목숨을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우우우ㅡ! 우우우웅!

공중에서 나불거리던 모기 여왕의 머리와 몸통은 자그마한 모기 떼로 분열되어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뒤, 족장의 온몸에 다닥다닥 붙었다.

모기 여왕은 유일하게 남겨둔 입으로 크게 소리쳤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고 태워낸 원쑤의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내 주마!"

여왕의 호령과 함께 족장의 온몸에 달라붙어 있던 모기들의 피주머니가 그녀의 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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