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흡혈귀 (5)
* * *
애앵ㅡ애애애앵ㅡ!
고막을 직접 간지럽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날갯소리.
짝!
잠을 자던 중 눈을 움찔움찔거리던 로덴은 반사적으로 스스로의 뺨을 찰싹거리면서 강제로 눈을 떴다.
"쓰으읍."
눈을 비비적거리던 로덴은 스위치를 더듬거리며 마력등을 켰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망할 모기 새끼….."
세스코 마렵게 하네.
역시나 손바닥에는 찌부러져 있는 모기와 녀석의 뱃속을 채웠던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것이라고 치기에 썩 유쾌한 그림은 아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밝은 태양이 언덕 너머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체감상 로덴이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일찍 일어나 버렸다.
손바닥에 묻은 모기의 잔해 때문에 이대로 다시 잠들기는 영 찝찝했던 로덴은 곧장 욕실로 향하여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잠시 혼자서 지하실의 물품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식구들 중에 로덴 다음으로 일찍 일어나는 록시아의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고양이처럼 눈을 부비적거리던 소녀는 주인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꾸벅 인사를 건네 왔다.
"…주인님, 안녕히 주무셨나요?"
"록시아도 잘 잤니?"
"네…."
잠에서 막 깨어난 록시아의 목소리는 약간 늘어져 있다. 아침 인사를 나눈 뒤에 찬물 세수로 정신을 바짝 차린 소녀는 주인과 함께 아침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아암ㅡ 다들 좋은 아침."
"으으읏ㅡ! 두 사람은 늘 일찍 일어나네요."
아침상이 거의 다 차려질 때쯤,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란히 나온 쌍둥이 자매도 순서대로 인사를 건네며 간단히 씻고 나서 식탁에 합석했다.
그렇게 모인 네 사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한 손으로는 식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나머지 한 손은 각자 모기에게 물린 부위를 살살 매만지고 있었다.
아무리 가려워도 한창 식사를 하는 중이라 대놓고 긁지는 못하는 상황. 어깨 주변을 더듬거리던 마릴은 식기를 내려놓고 로덴을 바라봤다.
"로덴 오라버니, 바르면 시원해지는 그 약… 한 병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여유분은 아직 남아있으니까 괜찮아. 조금 이따가 건네줄게."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참, 요즘에 모기들이 점점 더 심각하게 들끓고 있네요."
"그러게 말이다. 특히 오늘 아침은 모기 때문에 강제로 일어나 버렸어."
최근에 들끓고 있는 모기들은 놈들에게 적지 않은 증오심을 품고 있는 모험가들의 꾸준한 토벌 작업에도 불구하고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이제는 바르멜라 영지만이 아니라 인근 영지에 쭉쭉 퍼져나갈 정도가 되었다.
바깥은 물론이오 집안에서 잠을 청해도 창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일부 모기에게 당하기 일쑤.
입을 우물거리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메림은 내용물을 꿀떡 삼키고는 맞은편에 자리한 로덴과 록시아를 순서대로 가리켰다.
"흐음, 모양새를 보아하니 오빠랑 록시아도 자는 사이에 물려버렸나 봐?"
"이번에는 발목을 당한 상태야."
"저는 중지하고 약지 사이를 당해서 약을 발라도 괴로워요…."
"으엑, 하필이면 그쪽을 물려버렸어?"
서로 모기한테 어디를 물렸는지 이야기하던 네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를 끝낸 뒤, 각자의 짐과 장비를 챙겨서 나갈 채비를 갖췄다.
모든 장비를 빠짐없이 착용하고서 거실에 나와 투구를 뒤집어쓴 로덴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모기들… 이번 기회에 아주 그냥 끝장을 보던가 해야지."
"가게를 며칠 닫으면서까지 모기들을 몸소 조지려는 걸 보니까, 오빠도 이번엔 제법 꼴 받았나 보네."
"말도 마. 이제는 모기의 ㅁ자만 들어도 온몸의 털이 곤두 솟을 지경이야."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초인의 육체라도 모기들의 마수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것은 과거에 용사라고 불렸던 로덴도 마찬가지.
이론적으로 온몸에 오러나 마나를 둘둘 말아서 모기의 공격을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고, 로덴의 경지라면 수면 중에도 그것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허나, 그러한 수단을 취하면 피곤함이 나날이 중첩되고 기운도 저절로 빠진다. 쉽게 말하자면 수면의 질이 확 떨어져 버린다는 소리다.
로덴은 결국 푹 자는 쪽을 택했지만… 그 대가로 매일 밤마다 팔과 다리를 조금씩 물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쌍둥이 자매랑 록시아도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에 모기한테 피를 헌납하고 있어서 네 사람 모두 스트레스가 제법 쌓여있는 상황.
지금까지는 모기의 출처를 파악하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지만, 모기 사태의 진원지가 남동 방향의 늪지대라는 확실한 정보가 들어온 이상, 속전속결로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기로 했다.
물론, 모험가 길드에서 모기들의 근원지를 완전히 없애라는 내용의 의뢰를 사전에 받아두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왕 움직인다면 보수가 있는 편이 더 좋으니까.
돈은 언제나 옳다.
슥슥.
바스타드 소드를 가볍게 닦아서 칼집에 꽂아 넣은 로덴은 주문 연습을 하고 있던 소녀에게 다가가 마지막 확인을 하기로 했다.
"록시아, 정말로 따라올 생각이니?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다녀오는 동안에 집을 지켜주고 있는 것도 괜찮은데."
이번에는 반나절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며칠간 가게문을 닫고서 원정을 떠나는 것이다.
심지어 목적지는 주변에서는 제법 험한 지형에 속하는 늪지대. 보호자의 입장에서 같이 데려가기 영 꺼려지는 장소다.
쌍둥이 자매도 로덴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녀를 바라봤다.
"나름대로 고민해보긴 했는데, 역시 집에 혼자 남아있는 것보다는 삼촌하고 언니들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모두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할 테니까…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좋아. 네가 스스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거라면 더 이상 뭐라고는 안 할게. 그 대신, 이번 원정은 평소보다 험하고 위험할 수 있으니까 언제 어느 때든 우리들 옆에 꼭 붙어도록 하렴. 알았지?"
"네!"
그렇게 해서 로덴과 록시아, 쌍둥이 자매. 이렇게 네 사람은 모기 사태를 종결시키기 위해 가게문을 완전히 잠그고, 남동 방향의 늪지대를 향해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시간이 되어갈 때쯤, 늪지대를 향해 쭈욱 걸어가고 있던 로덴 일행은 수풀이 울창한 삼림과 늪지대를 연결시켜주는 중간 지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더 나아가면 리자드맨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진입하겠군. 이쯤에서 조금만 쉬었다 가도록 하지."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하게 말한 로덴은 인벤토리에서 널찍한 천을 꺼내어 수풀에 쫘악 펼쳤고, 네 사람은 그 안에 다닥다닥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깔린 천의 넓이는 네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편히 앉아서 쉴 공간 정도는 나온다.
벌컥벌컥.
메림의 도움을 받아서 절반 정도 얼려있는 물이 들어찬 수통을 시원하게 들이켠 로덴은 늪지대의 간단한 지형이 그려진 약도를 다시금 바라봤다.
약도의 중심에는 [검은 비늘 부족의 부락]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써져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자그마한 얼음덩어리로 찜질을 하고 있던 메림은 로덴이 들고 있던 약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저기. 로덴 오빠는 리자드맨… 본 적 있어?"
"예전에 여행할 때 어쩌다가 몇 번 마주치긴 했었지. 너희는?"
쌍둥이 자매는 나란히 고개를 저었다. 로덴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록시아랑 눈을 마주쳐봤으나 그녀도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늪지대에 갈 일이 딱히 없었다면 리자드맨과 인연이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면, 리자드맨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 정도는 알고 있나?"
이번 질문에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린 쌍둥이 자매가 한 마디씩 아는 사실을 말했다.
"응. 우리가 사는 북부 대륙에 있는 리자드맨은 주로 늪지대처럼 습한 위치에만 자리를 잡는다는 거랑, 인간들과의 관계는… 딱 중립인 위치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일단은 수인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온몸에 털 대신에 단단한 비늘로 뒤덮여 있다고 하더라고요."
"둘 다 맞는 말이야. 조사해보니까 우리가 곧 있으면 만나게 될, 검은 비늘 부족의 경우에는 인간 상인들과 물물거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군. 리자드맨 쪽에서 먼저 공격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쓸데없이 자극하지 말도록 해."
"알았어."
"그럴게요."
"네, 삼촌."
로덴 일행은 몇 분 정도 더 휴식을 취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갈 생각이다.
길을 나아가는 중간중간에 거대 모기를 동반한 모기 떼와 여러 번 맞닥뜨렸지만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익숙해진 그들에게 있어 조금 귀찮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 잠시 후. 하늘 위로 푸르른 달이 차오르려고 할 때, 로덴 일행의 시야에 거대한 호수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빛보다는 주변의 이파리들처럼 녹빛을 더욱 내뿜고 있는 가로세로 약 15킬로미터 돼 보이는 호수가 잔잔하게 출렁거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런 호수의 끝자락,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늪의 한 복판에 모여있었다. 나무로 만든 집의 토대는 늪지 안에 완전히 잠겨 있었다. 그야말로 수상생활을 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리자드맨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얼핏 보면 거칠어 보이면서도 상당히 효율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와… 생각 이상으로 잘 지어진 건물들이네요. 삼촌, 리자드맨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원래 이런 느낌인가요?"
"아니, 여기보다는 조금 더 야생적인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건물을 짓는 게 특기인 인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아니면 여기에 사는 리자드맨이 유난히 건물을 잘 만든다거나… 뭐, 일단은 정문으로 가보자."
리자드맨의 부락에는 예전에 봤던 고블린 부락에 지어진 울타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정교하고, 촘촘하게 제작된 나무벽이 2M 높이로 세워져 있다. 어지간한 마물은 리자드맨의 생활 터전에 침입할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로덴에게는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베어 넘기거나 하는 등의 선택지가 있지만, 그는 리자드맨의 마을에 깽판을 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네 사람이 정문으로 서서히 다가가자, 늪지대의 주민인 리자드맨 경비병이 로덴 일행을 향해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어서 경계음을 냈다. 그들의 손에는 수렵생활에 몹시 효율적인 무기인 창이 쥐어져 있다.
검푸른 빛이 반사되는 비늘이 온몸을 감싸며, 육체와 꼬리에 담긴 근육이 전사 특유의 육체미를 보여주고 있는 리자드맨의 모습은 파충류와 인간의 특징이 적절히 섞인 외양을 하고 있다.
경비병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양손을 가볍게 들고 있던 로덴이 입을 열기 직전, 리자드맨이 먼저 목소리를 냈다.
"…혹시 너희들도 피를 빠는 벌레들의 둥지를 없애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