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흡혈귀 (3)
* * *
로덴 일행은 붉디붉은 노을빛이 하늘을 물들일 때까지 마주치는 모기떼를 학살했다. 대장과 부대장의 대갈통으로 가죽 자루를 꾸역꾸역 채운 뒤에 산을 내려가 농장으로, 회관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삼삼오오 모여든 농민들과 아침에 봤던 회장이 보는 앞에서 거대 모기의 머리통을 땅바닥에 후두둑 쏟아냈다.
벌레의 머리가 자그마한 산을 이루고 있는 현장은 비위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무심결에 눈을 돌려버리지 않을까 싶다.
"오오오…!"
하지만 로덴 일행을 둘러싼 농민들의 눈에는 수북하게 쌓여있는 모기 대갈통이 제철에 수확한 열매들로 비치는지 기쁨과 통쾌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모아 왔구먼. 이 정도로 많이 처리해줬다면 한동안 모기 놈들 걱정은 덜어도 되겠어."
"후후, 저희도 모기 놈들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단번에 풀어서 상당히 즐거웠거든요."
히죽 웃고 있는 메림이 건네준 말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틀림없는 진심이었다.
"그래, 그래. 내 믿고 일을 맡긴 보람이 있구먼. 다들 수고했네."
젊은이들을 시켜서 모기의 머리수를 모두 확인한 회장은 메림에게 보수금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건네줬다. 모두 합쳐서 은화 두 닢, 대동화 여덟 닢이다.
이걸 사 등분하면…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한 보수가 일 인당 대동화 일곱 닢이 되는 셈인가.
평소에 포션 가게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이는 액수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수입이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은 동네 뒷산을 돌아다니는 모기 새끼들을 잡은 대가로 벌은 액수라고 생각하면 이게 마냥 적은 돈도 아니다.
모험가의 수입은 대체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어서 크게 한탕 벌고 싶다면 그만한 위험을 동반한 의뢰를 하거나 미발견 유적 혹은 어비스를 탐사해야 한다.
…아니면 강도놈들의 주머니를 역으로 탈탈 털어내거나.
어차피 로덴과 록시아의 경우에는 딱히 돈벌이를 목적으로 쌍둥이 자매와 사냥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 액수가 적든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로덴 또한 오늘의 사냥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모기들을 학살하면서 상당히 통쾌했다.
가장 커다란 모기의 머리통을 박제하기 시작한 농민들의 모습을 뒤로한 로덴 일행은 해가 서서히 떨어지면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로덴은 일행은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나 없나 예의 주시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하지만 운영하지 않는 날에 가게로 들어가는 수상한 모습을 보이면 투구를 쓰고 있는 검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꼴이 되니까.
끼익, 가게문을 닫자마자 투구를 벗어재낀 로덴은 상당한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록시아를 슬며시 바라봤다.
"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산을 오르기도 했고,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모기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바람 마법을 유지한 탓에 티는 내지 않더라도 피곤한 기색이 영력했다.
만약에 지금부터 로덴이 식사를 차리려 한다면 저 헌신적인 소녀가 제 몸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상관없이 주인을 돕겠다고 말할 것이다.
"후우… 다들 수고했어.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자."
그렇다면 차라리 다 같이 밖에서 먹는 게 정답이겠지.
네 사람은 순서대로 간단히 씻고 나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도심지의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식당에 방문했다. 곧장 빈자리에 착석한 그들은 이래저래 적당히 주문하고서 점원을 돌려보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마릴이 먼저 목소리를 냈다.
"오늘 저희가 다녀온 농장 주변 일대는 한동안 잠잠해지겠지만… 모기들의 근원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원상태로 돌아가겠네요."
"지금까지의 기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지. 너희가 길드에서 활동하는 동안 접하게 된 특별한 소문은 달리 없나?"
"요 며칠 전부터 놈들의 둥지를 찾고 있다는 길드의 의뢰서가 게시판에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어. 대충 읽어보니 수색능력이 좋은 사람들을 위주로 모집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쥬노아도 그거 때문에 상당히 바쁜 모양이야."
"아아, 수인의 수색능력이 더해진다면 머지않아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겠군. 그나마 다행이네."
원인이 없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오늘 하루 산속을 뒤지며 망할 모기들을 직접 사냥하면서도 무언가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던 로덴은 하루라도 빨리 이번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랬다.
앵앵거리는 날개 소리를 듣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모기들 자체는 작전만 잘 짜면 강철 등급의 모험가 파티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야. 우리들처럼 마법사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고.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무언가도 이 영지에 있는 모험가들과 경비병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종류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에는….
딱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새인가 커다란 쟁반을 들며 돌아온 점원의 분주한 손길로 인해 풍족한 고기 위주의 식사, 시원한 술과 주스가 테이블을 점령했다.
"건배!"
어차피 탐색은 로덴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당장의 고민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한 그는 쌍둥이 자매 하고 록시아와 각자의 잔을 짠! 하고 부딪히며 당장 눈 앞의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 사냥을 겸한 등산을 하느라 땀을 쭉 빼고 와서 그런지 네 사람 모두 술과 음식이 잘도 넘어갔다.
다만, 아직 술을 마실 나이가 아니라서 일행 중에 유일하게 주스를 홀짝 거리고 있는 소녀는 주인과 언니들이 맥주잔을 기울일 때마다 부러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품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껌뻑 껌뻑 거리던 록시아의 붉은 눈동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맞은편의 스승에게 돌아갔다.
"저기… 메림 언니."
"으응?"
꿀꺽!
술과 고기를 복스럽게 먹고 있던 메림은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내용물을 꿀떡 삼키고 소녀를 바라봤다.
"오늘 같이 사냥했을 때 저희 둘 다 주문을 제법 많이 사용했잖아요."
"뭐, 분명 그랬었지. 날벌레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할 때는 네 바람 마법이 효율적이었고, 단번에 쓸어버릴 때는 나의 전격 마법이 가장 효율적이었으니까."
"사용한 주문의 위력을 모두 합치면 메림 언니가 마나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 거 같은데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나한테 이 정도는 약간 나른한 정도야. 우리 록시아는 조금 전부터 안색을 보아하니까 꽤나 지친 모양이구나?"
록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녀가 궁금해하는 게 뭔지 단번에 파악한 메림은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마나의 총량은 기본적인 재능도 많이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쌓는 게 더 중요하거든. 록시아, 여유가 있을 때마다 명상은 틈틈이 하고 있지?"
"네. 메림 언니가 알려준 방법대로 꾸준히 하고 있어요."
"후후, 기특하기도 하지."
자신 있게 대답하는 소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은 메림은 마치 어머니가 딸에게 지을법한 자애로운 미소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희한해. 나는 애들을 막연히 귀찮다고 생각하는 편인 줄 알았는데, 이 아이가 얌전하고 말도 잘 들어줘서 이런 걸까나…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져.
음… 록시아를 보니까 나중에 로덴 오빠하고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아들보단 딸이 더 좋겠네….
어쩌다 보니 그런 상상까지 해버린 메림은 점차 붉게 물드려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후에 네 사람은 자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음식이 쌓인 테이블을 비워냈다.
* * *
"으으음냐…."
식사를 모두 마치고 겸사겸사 길드에 의뢰 완료 보고를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안 그래도 나른한 상태에서 배까지 불러지니 끝내 졸음을 견디지 못한 소녀는 주인의 널찍한 등에 업힌 채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말 그대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고 있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텐션 높은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 로덴은 얼굴이 살짝 벌게진 메림과 그녀가 부축하고 있는, 두 눈이 핑핑 돌아가고 있는 마릴을 번갈아서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쉈다.
"하아ㅡ 너는 예전에도 그러더니… 동생한테 술 좀 적당히 먹여. 일단은 애들이나 좀 눕혀두자."
"네에, 네."
그렇게 두 사람은 각각 마릴하고 록시아를 각자의 침대에 사뿐히 눕혀준 뒤에 비어있는 방으로, 로덴의 방으로 나란히 들어갔다.
메림은 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치고 있던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으흐흐, 생각해보니까 우리 맨 처음에 했을 때도 거의 이런 상황 아니었어?"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원래 오늘은 내가 너희들의 방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잖아. 메림, 너… 설마 노린 거냐?"
"흐흥? 그을ㅡ쎄?"
술기운에 몸을 맡기고 있어서 눈과 발음이 약간 풀려있는 메림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로덴은 그녀를 보며 참 요망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으나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력적이다.
쌍둥이 자매와의 난교는 그야말로 최고지만 가끔은 이렇게 일대일로 하는 것도 이것대로 좋아하고 있다.
평소처럼 인벤토리를 뒤적거려서 능숙하게 피임 포션을 찾아낸 로덴은 그것의 뚜껑을…
"로덴 오빠… 잠깐만."
따려고 했지만 옆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메림이 그의 손을 붙잡아 동작을 멈추게 했다. 그녀는 술의 힘을 빌려서 과감한 말을 꺼냈다.
"우리하고 할 때마다 오빠가 매번 그걸 챙겨주는 건 정말 기쁘긴 한데. 설마 평생 아이 가질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서로한테 곤란하지 않나 싶어서."
로덴은 쌍둥이 자매 하고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그녀들이 자신의 아이를 품게 되는 망상을 여러 번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무게감 때문에 상상으로만 그쳤었다.
"아이ㅡ씨! 오빠 나이가 벌써 몇인데? 이제 서른여섯이나 먹었잖아."
오러를 완벽하게 깨우친 로덴의 육체의 나이와 외관은 이십 대 중반의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실제 나이는 무려 서른다섯. 다른 건 몰라도 나이 얘기만큼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하는 법. 로덴은 메림의 말에 토를 달았다.
"아니, 아직은 서른다섯인데?"
분명히 아직 두 달 정도 남았지.
"…그거나 저거나 충분히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구만 뭘."
눈을 가늘게 뜬 메림은 로덴이 들고 있던 피임 포션을 재빠르게 낚아채서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아무튼간에 오빠는 슬슬 위기감이라던가 느껴지지 않아? 만약에 지금부터 애가 생긴다고 치면 걔가 열 살이 될 때 오빠는 무려 마흔다섯이라고?"
"……."
저렇게 듣고 보니 새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게 저절로 실감이 갔다.
더군다나 지금의 로덴은 조금 전에 메림과 함께 술을 실컷 부어마시면서 머릿속에 취기가 살짝 돌고 있는 탓에 은근히 감정적인 상태다. 그는 메림의 아랫배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로덴의 심경변화를 놓치지 않은 메림은 자신의 아랫배를 유혹적으로 살살 문지르더니 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여서 음탕하게 속닥속닥거렸다.
"로덴 오빠, 임신 섹스. 해보고 싶지 않아? 이번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쫀득쫀득하고 뜨끈뜨끈하고, 띠동갑인 젊은 여자의 보지 구멍에 피임 준비 안 한 위험한 자지 꽂아 넣고 좆물 퓻퓻 싸지르면서 아기 만들기 하면… 아, 아, 존나게 기분 좋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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