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66화 (66/149)

〈 66화 〉 흡혈귀 (2)

* * *

얼마 전부터 바르멜라 영지 인근에 서서히 창궐하기 시작한 모기 떼는 단순히 숫자만이 아니라 덩치까지 점차 답도 없이 커져갔다.

본래 시선을 집중해야만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있던 평범한 크기의 모기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가니 모기들 속에서 각다귀만 한 놈들이 출현했고, 그 속에서 극히 일부가 성인 남성의 주먹 크기와 맞먹는 괴악한 사이즈로 변이 했다.

그리고 현재, 모험가 길드의 게시판에는 하수도를 청소하라는 내용의 의뢰서, 인근 숲이나 굴속에 자리 잡은 고블린 무리를 토벌해 달라는 내용의 의뢰서, 신출귀몰한 산적단을 소탕하라는 내용의 의뢰서… 등등 언제나 있을법한 의뢰서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들끓고 있는 대형 모기들에게 현상금을 걸고 있는, 이례 없는 내용의 의뢰서까지 붙어있다.

결국에 대형 모기는 신종 마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길드에 다녀온 쌍둥이 자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대대적으로 모기들을 수배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해 들은 로덴과 록시아는 최근 들어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방에서 들끓고 있는 모기들을 상상하면 그럭저럭 이해가 가면서도 어처구니 없어지는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허참, 내 살다 살다 모기한테 현상금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최근에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기르는 가축이나 개가 모기들한테 습격을 받아서 생기는 피해가 만만치 않다고 해요. 종종 피가 다 빨려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달각, 달각….

따로 볼일이 없다면 가게 하고 도심지에서만 조용히 활동하고 있던 로덴과 록시아의 입장에서는 모기에 대한 여파가 요 며칠 사이에 이 정도로 크게 번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오고 가는 손님들마다 모기가 극성이라는 말만 들었지, 저렇게까지 자세한 상황은 듣지 못했었다.

"…현상금은 어떻게 책정하고 있는데?"

"의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저희가 받아온 의뢰서를 보자면… 각다귀만 한 모기의 머리통은 동화 둘, 주먹만 한 모기의 머리통은 대동화 하나씩 준다고 써져있어요."

"저번에 나갔을 때 잡았던 놀이 한 마리당 동화 다섯이었는데, 모기가 두 배씩이나 하네요."

"큰 놈들이 모기 떼의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래. 자잘한 놈들까지 모두 상대해야 돼서 훨씬 성가시다고 하더라."

"흐음… 일단 아침 먼저 먹고 움직이자. 오늘은 특식으로 준비했어."

모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면서도 어느샌가 조리를 끝낸 로덴과 록시아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음식들이 담긴 그릇들을 식탁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건조한 뒤에 한 달 넘게 숙성시킨 슬라임, 일자로 얇게 썰어낸 오이와 당근, 양배추에 톡 쏘는 양념을 버무려서 만든 슬라임 냉채다.

본래는 젓가락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문화의 차이로 인해 쌍둥이 자매는 포크를, 주인에게 젓가락질을 배운 록시아와 로덴은 젓가락을 집었다.

"오오, 파스타 같은 건가?"

"면이 투명하네요."

생소한 음식을 보게 된 쌍둥이 자매는 이게 뭘까 궁금해하면서도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냉채를 맛보기 시작했다.

후루루룩, 후ㅡ룩!

꼬들꼬들하면서도 탱글 거리는 식감과 시큼한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슬라임 냉채는 네 사람 모두의 입맛에 맞았는지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식사를 끝마치고서 밖에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쌍둥이 자매와 록시아는 이게 뭘로 만든 음식인지 한 번씩 질문을 던졌지만 로덴은 끝내 대답해 주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원재료는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괴악한 식성을 가진 슬라임인 만큼 지금만은 진실을 모르는 게 그녀들에게 약이다.

아무튼, 나갈 채비를 끝마친 네 사람은 모기 떼 토벌을 의뢰한, 도보로 충분히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있는 농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애애앵… 애앵….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에도 사방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모기들의 날카로운 날개소리가 일행의 귓가를 끝없이 간지럽혔다.

* * *

모기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작전을 짜면서 도시 인근에 붙어있는 농장에 도달한 로덴 일행은 곧장 회관으로 들어섰다.

회관 내부는 모기들을 향한 끝없는 증오를 표출하기 위해 놈들의 시체를 박제한 표본들과 거대한 모기의 머리통이 한쪽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로덴조차 간담이 서늘해지는 흉흉한 풍경이다.

모기들의 표본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뭉뚝한 지팡이를 짚으면서 다가와 쌍둥이 자매에게 아는 체를 해왔다.

"으음? 메림 양과 마릴 양이군."

"안녕하세요ㅡ! 영감님."

"안녕하세요. 회장님."

"흠흠, 두 사람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지. 우리가 내건 의뢰를 받아줘서 고맙네. ……뒤에 있는 덩치 큰 검사랑 어여쁜 아가씨도 자네들 동료인가?"

이 지역 유지로 추정되는 노인은 쌍둥이 자매와 구면인 모양이다. 로덴과 록시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간단히 인사한 뒤에 회장에게 짤막한 설명을 들었다.

"자네들도 오는 길에 봤겠지만 요즘에 사방팔방에서 미친 듯이 날아다니고 있는 괴물 모기 놈들 때문에 농가 사람들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세."

잠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앉은 회장은 지팡이를 끝으로 산을 가리켰다.

"여기를 자주 습격하는 녀석들의 경우에는 밭 너머의 산에 자리를 잡아놓은 듯하더군. 거기 있는 놈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서 대갈통을 가져와주게나. 그러면 의뢰서에 적은 만큼의 보수를 지급하겠네."

"맡겨만 주세요!"

파티장인 메림은 삐뚤게 쓰고 있던 고깔모자를 고쳐 쓰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회장이 가리킨 밭 너머의 산을 향해 앞장섰다.

잠시 후, 일행은 언제나처럼 로덴이 선두, 마법사인 메림과 록시아는 중열, 습격을 대비해 마릴이 최후방에 따라가는 식으로 진형을 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웅웅 거리는 모기들의 날개소리가 점차 크게 퍼져갔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던 로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특이한 시체들이 널려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피 한 방울 남지 않아서 비쩍 마른 가지처럼 앙상해진 야생동물의 시체들을 내려다봤을 때, 로덴이 머릿속으로 곧바로 떠올린 단어는 '미라'였다. 미라 이외에는 이 시체들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다.

"…이런 시체는 난생처음 보는군."

"저랑 삼촌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네요. 며칠 전에 저희끼리 모기에 대해서 떠들었을 때는 그냥 모기들이 많아졌다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산을 조금 더 올라간 일행은 미라가 돼버린 고블린과 놀들의 시체까지 드문드문 보게 됐다. 모기들이 산속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모양새다.

위이이잉…!

애애앵!!

마물의 시체를 살펴보려던 순간, 로덴 일행을 에워싸고 있는 새까만 점들이 신경을 긁어내는 소리를 울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의 모기 떼다.

거대 모기가 출현하고 있다는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놈들의 사이사이에 각다귀만 한 크기의 부대장 모기와 주먹만 한 크기의 대장 모기가 지휘하듯이 화려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윽."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징그럽네.

거대화한 모기들이 어찌나 혐오스러웠는지 로덴이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 종종 목격했던 '팅커벨'들이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었다.

녀석들을 지휘하고 있던 대장과 부대장들이 로덴 일행을 향해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뾰족한 주둥이를 세운 모기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허나, 완드를 치켜들고 있는 록시아가 만들어낸 거센 바람의 벽에 가로막혀버린 모기들의 주둥이는 눈 앞에 있는 인간들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예상이 적중해서 다행이네. 록시아, 잘했어. 너는 그대로 장벽을 유지하는데만 집중해주렴."

"네, 삼촌."

록시아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무기를 빼든 로덴은 바람 장벽을 비집고 들어온 극히 일부의 모기 떼를 포함한 대장과 부대장 모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 모기들의 머리 형채를 남겨놓기 위해서는 상당히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지만 그에게 이 정도 페널티는 아무것도 아니다.

촤라라락!

로덴이 휘두르는 검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끊임없는 연계를 이어나가며 그의 주변 공간을 완벽히 장악했다. 점차 가속도가 붙은 칼날에 자비란 없다.

한편, 수비를 맡고 있는 마릴은 로덴을 우회해서 마법사들을 공격하려고 하는 거대 모기들을 하나하나 침착하고 확실하게 베어 넘겼다.

애앵…! 위이이잉!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자들을 모두 잃어버린 모기 떼가 도망갈 낌새를 보였다.

"이 망할 모기새끼들… 피 값은 얌전히 치르고 가야지!"

그것을 놓치지 않은 메림은 록시아에게 바람 장벽을 해제하라고 지시한 뒤, 스태프를 높이 들어 모기 떼를 향해 지금까지 모아놓은 번개 구체를 쏘아냈다.

처음에는 파란색을 내뿜던 구체는 점차 커지며 샛노란 색깔로 변한다. 그리고는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주변에 있는 모기들에게 자그마한 벼락을 선사했다.

파지지직! 파즈즈ㅡ즈!

메림이 만들어낸 번개 구체는 검은 안개처럼 뭉쳐있던 모기 떼의 절반가량을 지지고 볶고 나서야 완전히 소멸했다. 나머지는 산속으로 도망가버렸지만 모기가 번개에 지져지는 장면을 감상한 로덴 일행은 하나같이 속이 뻥 뚫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ㅡ 그간 모기들에게 피를 빨렸던 원한이 한 번에 풀린 기분이 들어."

까놓고 말하자면 도망치는 잔챙이 모기 떼를 처리한다고 해서 보수가 더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놈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단번에 해소할 수 있었으니 자잘한 효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들 아직 할 만하지? 머리만 회수하고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돌아다녀보자."

로덴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쌍둥이 자매 하고 록시아와 함께 주변에 널브러진 대장, 부대장 모기의 머리들을 가죽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 * *

"원쑤! 원쑤! 원쑤!"

한편, 지하 깊숙한 곳.

벌레와 사람이 반반씩 뒤섞여 있는 듯한,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쭉하게 솟아오른 기괴한 외형의 생물체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오오, 오오, 오오오, 오늘도 증오스러운 원쑤들이 나의 아이들을 무참히도 죽였도다!"

위이이이잉…!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미친듯이 발작하고 있던 괴생물은 먹이를 가져온 모기 떼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팔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모기 떼들은 자신들의 여왕에게 피를 아낌없이 바쳤다.

여왕은 피맛에 흠뻑 취하면서도 아직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냉철히 판단했다.

"피가 턱없이 모자라! 나의 주인님! 드디어 나를 찾아와 주신 마왕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피를 더 많이 모아야만 한다! 덤으로 힘을 충분히 모은다면 사방팔방에서 내 아이들을 도륙하고 있는 원쑤들의 심장을 남김없이 파먹으리라!"

피를 모두 헌납한 모기 떼는 다시 여왕에게 바칠 신선한 피를 모으기 위해 지상으로 떠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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