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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58화 (58/149)

〈 58화 〉 신세대 마왕 (4)

* * *

"나랑 같이 자고 싶다고?"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마족 소녀를 문 앞에 세워둔 로덴은 다소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항구도시의 숙소에서도 얘랑 붙어서 잤던 전적은 있지만 그때는 같은 방에 쌍둥이 자매가 있던 상황이라서 허락한 거였지. 단 둘만 있는 지금은 모양새가 좀 그런데….

록시아의 보호자인 로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아이라고만 취급할 수도 없는 나이 때의 여자가 건장한 남자의 방에서 단 둘만의 동침을 요구하고 있으니 심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자기 방에서 혼자서도 잘만 자던 소녀가 어째서 자기랑 같이 자달라고 하는지 대강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무서워서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니? 조금 전에 지하에서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불안해했던 게 아직 덜 풀렸나 보구나."

"네… 조금 전에 주인님이 달래줘서 괜찮아지긴 했지만 저 혼자 있는 방에서 막상 자려니까… 주인님한테 버려지고 혼자만 남게 되는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그려져서 너무 무섭더라고요."

말을 하면서도 주인에게 버려지는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버린 소녀의 몸이 다시금 사시나무처럼 달달 떨렸다.

"그러다가 문득, 항구도시에서 주인님이랑 나란히 잠들었던 날의 무척이나 안심되던 느낌이 떠올라서 이렇게 오게 됐는데… 방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저리도 불안해하고 있는 몸짓과 아기 사슴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 있는 소녀가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남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여자라도 이 소녀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로덴도 마찬가지였으니 결국에 그는 록시아를 자기 방으로 들이고는 곧장 불을 끄고 함께 침대로 향했다.

로덴이 먼저 침대에 드리 누워서 조금 더 안쪽으로 몸을 움직인 뒤에 그를 뒤따른 록시아가 옆자리에 다소곳이 누웠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는 매끈한 발을 옆에 있는 커다란 발과 밀착시켰다.

그 상태로 까치발까지 동원해서 정면을 마주 보면 시야에 담기는 것은 가벼운 옷을 걸치고 있는 주인의 가슴 부분밖에 없다. 고개를 높이 올리고 나서야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소녀는 새삼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이렇게 맨 발로 나란히 붙여보니까 주인님의 체격이 정말 큰 편이라는 게 체감이 확 드네요. 아니면 저의 키가 너무 작은 게 아닐지…."

앞으로도 키가 자라지 못한다면 주인님께서는 언제까지고 저를 한 명의 여자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여길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걱정이 드는데요.

현재 로덴의 방은 불이 완전히 꺼져있어서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지만 창문을 가린 커튼 사이로 세어 나오고 있는 은은한 달빛 덕분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 정도는 문제없이 구분할 수 있다.

그렇기에 로덴의 시야에도 나란히 누워있는 상태에서까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록시아의 자존감을 채워주기 위한 응원의 말을 건네본다.

"너는 아직 한창 자라는 중이잖아. 지금만 해도 맨 처음 나랑 만났을 때랑 비교하면 많이 크기도 했는걸."

얘가 분명 처음에 봤을 때는 150센티가 조금 안 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짧은 사이에 4센티 씩이나 자라났구먼. 역시 애들은 뭐든 잘 먹이면서 자라게 해야 한다니까.

로덴의 응원이 통했는지 순식간에 얼굴에서 그늘이 사라진 록시아는 몸을 꿈틀꿈틀 움직여서 주인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누위 있는 위치를 조정했다.

"그렇다면 아직은… 더 자랄 수 있겠죠? 큰 욕심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160은 넘었으면 좋겠는데요. "

……음. 그거 큰 욕심 맞아.

눈앞에 있는 소녀가 이제 와서 160센티를 넘길 수 있을 가능성은 꽤나 낮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냉정히 판단한 로덴이지만 괜스레 기를 죽일만한 발언은 하지 말기로 하고 최대한 좋은 말로 포장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꾸준히 하면 쑥쑥 자랄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저도 다 자란다면 쌍둥이 언니들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요…?"

"록시아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예쁘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주, 주인님은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지."

록시아의 미모는 단언컨대 평범하지 않다. 단순히 마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미(美)에 관한 개념이다.

그녀가 누군가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낸다면 아니, 그저 무표정이라도 남자의 마음을 손쉽게 흔들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풋풋하며 사랑스럽다. 또한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을 일으켜낸다.

예쁘다는 칭찬을 싫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기에 로덴은 포장되지 않은 진실된 말을 건네줬다. 그러자 록시아의 얼굴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붉은 눈동자만큼이나 발그레졌다.

로덴은 무척이나 귀여운 소녀의 반응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서 머리를 살살 쓰다듬다가도 너무 오래 떠들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곧장 록시아랑 서로 마주 본 자세로 얇은 이불을 나란히 걸쳤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 잘 크기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지?"

"네, 주인님."

그럭저럭 넉넉한 사이즈의 침대라서 두 명까지는 여유롭게 누울 수 있지만 록시아는 로덴과 숨결과 살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은 채로 지긋이 눈을 감았다.

힐끔, 소녀는 중간에 눈을 떠서 주인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힐끔, 다시 주인의 모습을 흘겨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 것이 반복된다.

조금 전에 혼자서 잠들려고 했을 때는 너무나도 불안했는데 주인과 같은 침대에 누운 채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두근거리기는 마음이 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전날 새벽에 엿보기용 구멍을 통해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제 이 시간쯤부터 주인님은 여기서 메림 언니… 아, 아니지 마릴 언니랑 …섹스를 했었죠.

로덴이 마릴의 처녀막을 뚫어내자마자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몸과 허리를 들썩거리며 신나게 박아대던 장면을 머릿속에 재생시키니 아랫배가 찡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앗, 아아앙…! 하으긋, 으극, 하으으읏♡

마릴 언니… 주인님의 자지님에게 찔릴 때마다 그렇게나 기분 좋아 보였는데….

그리고 지금 주인과 함께, 단 둘만 이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뿐, 손을 조금만 뻗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주인의 자지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록시아는 이런 목적으로 주인에게 동침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의식하기 시작하니 망상이 멈추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자지를 향해 점차 손을 가까이하던 록시아의 수상쩍은 움직임은 나직이 들려오는 주인의 목소리에 의해 제지당했다.

"록시아, 계속 몸을 꼼지락 거리는 걸 보니 잠이 잘 안 오나 보네?"

"아…, 네. 제가 부탁한 주제에 막상 단 둘이서 자려니까 조금 낯설어져서 그런가 봐요."

"뭐, 나도 너랑 마찬가지라서 아직 잠을 못 자고 있었어."

사탕을 훔치려다가 들켜버린 아이처럼 황급히 손을 회수한 록시아는 고개를 앞으로 쑤욱 내밀어 주인의 눈 앞에 뿔을 과시했다.

"생각해 보면 오늘 주인님은 제 뿔을 전혀 만져주시지 않았었는데 벌써 질리셨나요?"

"그런 건 아니야. 오늘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다 싶어서 건드리지 않았던 거지. …뿔, 만져줬으면 좋겠어?"

"네, 그래 주시면 잠도 더 잘 올 거 같아요. 주인님이 뿔을 만져주실 때의 느낌이 너무 좋거든요."

로덴 또한 록시아의 뿔을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절묘한 매끈매끈함과 딱딱한 감촉에 완전히 빠져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서서히 소녀의 뿔을 어루만졌다.

"흐으으응… 거기잉…"

뿔을 더듬거리듯이 어루만지다가도 중간중간에 손톱으로 주름과 주름 사이에 오도독, 하는 소리가 울리도록 적당한 힘으로 긁어내 준다.

"주인닝… 조금만 더 위쪼옥… 아흐으응♡"

혀가 풀려버린 소녀가 원하는 위치를 살살 긁어주면 흐느끼듯이 새어 나오는 달콤한 숨결이 로덴의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무아지경으로 록시아의 뿔을 만지작 거리던 로덴은 조금 전에는 그녀를 안심시키느라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아참, 록시아."

"…네엥?"

"아까 중얼거렸을 때 방을 엿보지 않겠다는 건 대체 무슨…"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아니 분명히…"

"잘못, 들으신, 거예요."

"으음… 워낙에 정신이 없던 상황이라서 내가 착각했나 보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목소리를 딱딱 끊은 록시아의 단호한 대답에 상당한 압력을 받은 로덴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하고 그녀를 가볍게 안은 상태로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그러면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내일 날이 밝는 데로 정해진 인원들을 움직여라. 늦은 시간까지 다들 수고했다."

한편, 완전한 새벽시간이 찾아올 때까지 고위 마족들과 한참 동안 의견을 나누며 내전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도시를 최우선으로 복구할 인원과 각 경계 구역마다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마물에 대응할 병력들을 적절히 분배한 에스카로스는 겨우겨우 회의를 끝마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내전을 끝내자마자 이래저래 바쁘게 움직여서인지 상당히 지친 기색이다. 허나, 그 순간마저도 사람 위에 서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잠들기 직전, 잠시 의자에 몸을 맡겨서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로 했다.

"후우우우…!"

차라리 전장에 몸을 맡기는 게 훨씬 편할 지경이군. 오늘의 회의로 병력을 분배한 것도 급한 구멍을 틀어막는 수준이야. 어디보자, 내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항은…

똑! 또옥! 똑!

생각에 빠지려는 순간, 개인실의 침묵을 깨뜨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새벽 시간에 에스카로스가 쉬고 있는 방의 문을 개인적인 용무로 두드릴 수 있는 마족은 한 명뿐이다.

"…멀린, 들어와도 좋다."

"늦은 시간이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에스카로스는 겸손한 자세로 방에 들어온 멀린을 보자마자 핀잔을 줬다.

"오늘은 네가 옆에 없어서 다른 마족들과 회의를 하는 동안 제법 애먹었다."

"허허허, 앞으로 마계국을 옳게 다스리려면 때로는 조언자 없이도 아랫사람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하는 법이죠. 이것도 다 값진 경험의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주군을 향해 넉살 좋게 웃고 있는 외팔이 노마법사는 평소에 늘 쥐고 있던 지팡이 대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수정구를 들고 있었다.

"아무튼, 손에 쥔 것을 보아하니 다른 고위 마법사들까지 싹 동원해서 시간과 마력을 투자한 보람은 있는 모양이군."

"예. 간신히 지배자의 수정을 축소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 주기적으로 대량의 마력을 불어넣어야 축소화가 유지됩니다."

노력의 결과물을 보며 지긋이 웃은 멀린은 수정구를 에스카로스의 손에 쥐어주고는 다시금 계획을 말한다.

"이제부터는 그것을 사용해서 에스카로스님보다 어린 마족들을 본격적으로 조사해보겠습니다. 마왕의 힘을 가진 마족을 찾기 위해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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