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스승과 제자 (1)
* * *
휴가를 떠날 때는 상단 무리에 끼어서 이동했을 때와 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차 하나만 달랑 있어서 상당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종종 마물들이 덤벼들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한창 달리고 있는 마차의 속력을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재빠른 마물은 이 주변에 흔치 않았다.
로덴 일행이 도시에서 마을을, 마을에서 마을을, 마을에서 도시를… 사이사이에 마차를 갈아타며 나름대로 정비되어 있는 가도로 빠르게 이동한 지 3일째 되는 날.
히이이이잉!
"워! 워! 워!!"
가도를 쭉쭉 나아가던 중, 돌연 마차가 멈춰 서게 됐다. 흥분한 말들을 진정시키던 늙은 마부가 로덴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보게, 젊은이들. 저 녀석들 꼬락서니를 보니까 노상강도들 같네만."
마차 하나만으로 이동하는 빠른 여행이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멀찍이서 로덴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를 발견했던 소규모 노상강도들이 노리기 딱 좋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숫자는 6명.
무장 상태는 군데군데 찢어진 가죽 갑옷, 검과 창, 후방에 있는 두 녀석은 활을 들고 있다. 무기를 쥔 폼은 완전 초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련자도 아니다.
마차를 탔을 당시, 쌍둥이 자매가 마부에게 모험가 인식표를 보여주며 호위도 겸하는 조건을 내밀어서 좀 더 싼 가격으로 올라탔던 입장인 만큼 로덴 일행이 강도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하아암~! 돌아갈 때라도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일단 마부 아저씨는 숨어 있으세요."
"알겠네."
귀찮다는 듯한 어조로 말한 메림은 쿠션처럼 깔고 앉았던 고깔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맞은편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던 로덴은 강도들의 면상을 대충 확인하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무섭게도 생겼네. 도와줄까?"
"이 정도 놈들은 우리 둘 끼리도 충분해. 그렇지?"
자신감 있게 대답한 메림이 옆에서 무기를 꺼내고 있던 마릴의 옆구리를 콕 찌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희 둘이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더군다나 마차를 타면서 호위를 겸하겠다고 자처한 것도 저희잖아요."
표면적으로도 나랑 언니는 모험가, 로덴 씨랑 록시아는 일반인이니까 계속해서 로덴 씨한테 도움을 받으면 면목없기도 하고….
"알았어. 둘 다 잘해봐."
"조심하세요. 메림 언니, 마릴 언니."
"오야~"
쌍둥이 자매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며 밖으로 나왔다.
마차에서 내린 쌍둥이 자매의 얼굴을 확인한 강도들은 카지노에 입장하자마자 잭팟이 터진 도박사가 지을법한 표정을 하면서도 마법사의 존재 자체에 경계심을 내비쳤다.
퓨우웅!
딱히 대화로 회유할 생각은 없었는지, 활을 들고 있던 강도가 문답 무용으로 화살을 날린 뒤에 나머지 녀석들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날아드는 두 개의 화살은 마법사인 메림을 노리고 있다.
직선으로 날아온 화살은 마릴이 버클러로 쳐내어서 막아내고, 높은 각도에서 날아온 화살은 공중에 얼음을 만들어낸 메림이 방어했다. 본인이 맞을 각도는 아니었지만,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라이트닝 볼트!"
파지지직!!!!
미리 준비해둔 공격 마법을 시전한 메림의 스태프에서 쏘아진, 푸른 섬광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강도들의 틈새를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란 녀석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한눈에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에 아무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려 했으나, 놈들의 뒤편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흐끄아아악!!!"
"아갸악!"
푸른 섬광은 저 멀리 있는 궁수들 앞에서 두 개로 갈라지며 날카롭게 쏘아졌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동료를 보며 다급해진 강도들은 전방에 있는 마릴에게 시퍼런 칼날을 휘둘렀다.
"흐읍!"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침착하게 회피하면서도 일부는 버클러로 막아내며 반격을 가한 마릴은 뒤에 있는 언니의 보조를 받아 적들을 한 놈 씩 확실하게 처리했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어설프게 살려둬 봐야 다른 양민들한테까지 피해를 줄게 뻔했으니 손속에 정을 둘 이유 따위는 없다.
마릴의 공격과 메림의 마법에 제대로 반응을 하는 놈이 하나 없으니 6대 2의 전투는 상당히 싱겁게 끝났다. 중견급의 모험가 정도 되면 일반인들 기준으로는 실력자의 범주에 속하니 당연한 결과긴 했다.
여하튼, 강도들의 시체를 뒤적거린 쌍둥이 자매가 가벼우면서도 돈 될만한 물건들을 알뜰살뜰히 챙긴 뒤에야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로덴 씨가 보시기에는 어땠나요?"
덜컹거리고 있는 마차의 흔들림에 적응하고 있던 로덴의 모습을 간간히 흘끔거린 마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강도들이랑 싸우던 거?"
"예."
"흠…."
실력에 관한 평가를 바라는 건가.
적지 않은 실전 경험이 엿보이는, 침착하면서도 노련한 솜씨… 라면서 아낌없는 칭찬의 말을 건네주고 싶긴 했지만 로덴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허점투성이에 불필요한 동작도 너무 많이 보였다.
녹빛을 띄고 있는 마릴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던 로덴은 무책임한 칭찬이 아닌, 냉철한 조언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조금 전에 지켜본 전투 상황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해봤다.
"일단,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 팔을 너무 뒤로 젖혔어."
"네!"
"그리고 첫 번째 공격을 피했을 때는 방향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졌지, 속도도 좀 아쉬웠고."
"네."
"그 직후에 창을 막아냈을 때는 조금만 더 잘 반응하면 몸으로만 회피할 수 있는 걸 굳이 방패로……."
처음에는 한 두 개만 말해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이 열리기 시작하니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독한 시어머니 조차 허를 내두를 만큼 어머어마한 지적질이 로덴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체감시간은 약 20분가량.
"……."
"특히 마지막에도 그래. 거기서는 찌르기가 아니라 수직 베기가 더 깔끔…… 어…… 마릴?"
로덴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건 울먹거리고 있던 마릴이었다.
"으흐읏…!"
마릴은 로덴과 눈을 마주치자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옆자리에 있던 언니의 품에 몸을 숨기듯이 안겨들고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상상 이상으로 신랄한 평가에 그만 자신감이 확 꺾여버린 데다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거리고 있는 모습까지 보여줘 버리니 여러 가지 의미로 너무 창피했다.
어깨를 떨고 있는 동생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없이 위로하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로덴을 날카롭게 노려본 메림은 맞은편에 자리한 그의 정강이를 가볍게 찼다.
"윽!"
사실은 하나도 아프진 않지만 뭔가 그렇게 반응해야 할 기분이 들었다.
"흥…! 적당히 했어야지. 바~보."
로덴에게 삐쭉 혀를 내민 뒤,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메림은 고개를 못 들고 있는 마릴을 달래주면서 실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언니 역할을 수행했다.
이상하다… 난 분명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만 꽉꽉 눌러 담아서 해준 건데.
걷어 차인 정강이를 매만지던 로덴은 멋쩍은 듯 옆자리에 있던 록시아를 슬며시 바라봤지만,
"아. 하. 하, 바깥의 풍경이 참 예쁘네요."
소녀는 상당히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잉, 쯧쯔쯔쯔…."
심지어 마차를 몰면서 일행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부까지 영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로덴의 편을 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
"……."
"……."
"……."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공기 속에서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속력이 가해지는 마차가 가도를 빠르게 가로질러가니 지나가는 길은 점차 익숙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후우, 다 도착했다네."
나직이 말하는 마부의 목소리와 함께 내내 덜커덩거리던 마차가 멈춰 섰다. 아직 햇빛이 쨍쨍한 시간대에 네 사람은 바르멜라 영지의 땅을 밟게 됐다.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마차에서 뛰쳐나온 로덴 일행은 어째 바다에 도착하게 됐을 때 보다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감격스러웠다.
아무리 물좋고 공기좋고 경치도 좋아서 놀기 좋은 휴양지라도 거주지로 삼은 땅보다 더 편안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마차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게 더 기쁘던가.
깔개로 사용했던 모포를 돌돌 말아서 대충 정리한 로덴은 슬그머니 쌍둥이 자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가게는 내일 모레부터 운영할 예정이니까 일단 지금은 너희도 같이 쉬었다가 천천히 돌아가. 아까 싸우느라 찝찝할 텐데 씻기도 해야지."
"알았어, 조금만 더 신세 질게."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계속 이동하느라 적지 않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그녀들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네 사람은 머지않아서 외곽에 있는 포션 가게 앞으로 한달음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자리를 비운 동안에 별 다른 일은 없었나 보네."
"여행도 재밌었지만, 다시 가게로 돌아와 보니까 무척 안심이 되면서도 정겨운 느낌이 들어요. 삼촌."
"너도 그렇지?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록시아와 함께 건물에 새겨져 있는 각인들도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로덴은 문을 활짝 열고나서 일행과 같이 안으로 쭈르륵 들어갔다. 한동안 사람이 지내지 않아서 그런지 집안의 공기가 유난히 삭막한 기분이 들었다.
곧장 거실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두고서 테이블에 나란히 엎드린 네 사람은 잠시 동안 해변가의 해초처럼 축 늘어졌다. 여행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니 힘이 쫙 빠졌다.
"쓰읍… 좋은 시간 다 가버렸네."
흔히들 여행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대 배경의 문제로 그들에게 남겨진 건 수영복과 선글라스, 그리고 항구도시의 시장에서 챙겨 온 식재료들이다.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뒤, 유일한 남자인 로덴이 지하를 정리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나머지 세 여자는 순서대로 몸을 씻고서 옷을 갈아입었다.
"…후우."
마지막으로 몸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로덴이 자리에 돌아가 보니 테이블에는 그의 몫의 차까지 준비돼있었다. 듣자 하니 마릴이 끓여줬다고 한다.
"로덴 씨가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주방을 좀 사용했는데, 실례가 됐으려나요?"
"아냐, 오히려 고맙지. 잘 마실게."
차를 후후 불며 천천히 들이켠 로덴은 평소에 자기가 끓였을 때보다 훨씬 산뜻한 느낌에 내심 감탄했다.
그 이후로는 다 같이 차를 홀짝 거리며 이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다가 슬슬 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 쌍둥이 자매가 배낭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볼게. 덕분에 일주일간 재밌게 놀았어. 로덴 아저씨도 미녀들을 끼고 다니면서 여행하는 내내 우월감 느끼고 있었지~?"
"단어 선택을 해도 꼭 그렇게 하냐."
"크흐, 부정은 안 하네."
장난스럽게 웃은 메림은 옆에 있는 동생의 등을 떠밀면서 인사할 차례를 넘겼다.
마릴은 언니와 반대로 정중히 신세 많이 졌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마차에서의 일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심정 변화를 알아챈 로덴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뭐냐… 조금 전에는 참견이 다소 지나쳤으려나."
"아, 아니에요. 로덴 씨가 기껏 신경 써서 세세하게 대답해 주셨는데, 저야말로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면목 없네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마릴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실력이 생각 이상으로 형편없다는 생각에 빠져버려서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여행하는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봬요."
"마릴."
"네?"
모험가이면서 전사되는 사람이 자신감이 결여되면 앞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자신감을 깎아버린 로덴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아까 전에 그런 질문을 건넸던 걸 보아하니 전투 기술을 향상하고 싶어 하는 거 같던데… 혹시, 관심 있으면 서로 시간이 남을 때 효율적으로 공격을 회피하는 요령이라던가, 검을 다루는 자세 같은 걸 좀 알려줄까? 서로 시간이 남을 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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