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항구 도시 (16)
* * *
지상에 있을 조직원들이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아직 어느 정도 여유는 있는 상황. 로덴은 완전히 해체된 돼지의 시체를 마구 찌르거나 걷어차고 있는 창녀들을 진정시켰다.
숫자는 모두 합쳐 아홉 명. 그중 여섯은 페트로그파 조직원들이 싸게 팔거나 처음에는 공짜로 주겠다는 마약을 함부로 건드리기 시작했다가, 끝내 빚쟁이가 되어버려 이 창관에 몸을 팔게 된 여자들이다.
수인 창녀를 포함한 나머지 셋은 페트로그가 나름대로 엄선해서 사들인 노예들이었다. 그녀들의 몸에는 노예 전용 각인이 새겨졌었지만 이제 주인이 죽었으니 효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들은 페트로그와 창관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가학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줘야만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이외의 것에게도 안기는 순간도 있었다.
끝내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된 순간에는 처분당하거나 조직원들의 성욕을 받아내는 고깃덩어리가 될 운명에 놓인 신세였다.
별 다른 설명 없이 로덴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고 있던 창녀들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페트로그를 포함한 조직원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상당히 후련해하면서도 자신들도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의 손에 의해 저렇게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기… 혹시 이 창관에 보관된 돈과 마약을 노리고 습격하신 건가요?"
그녀들 중 여기서 가장 오래 지낸 창녀가 로덴에게 그런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봤다. 상대방이 원하는 걸 내어준다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테니까.
마침 적당한 핑곗거리라고 생각한 로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렇지. 혹시 보관된 장소를 알고 있나?"
"우연히 비밀공간을 여는 모습을 몰래 본 적이 있어서 원재료가 보관된 장소를 알고 있긴 한데… 돈이 보관된 장소는 저도 잘 몰라요."
"그거면 충분해. 앞장서."
창녀와 말을 이어가면서도 약재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흥미가 동한 로덴은 일단 원재료가 무엇일지 확인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그녀에게 길안내를 받았다.
"여기에요."
복도의 중간에서 멈춰 선 창녀는 벽돌을 더듬거리다가 살며시 튀어나와 있는 두 개를 동시에 꾹 눌렀다.
그러자 바르르 떨리던 벽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며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려줘서 고마워. 너는 움직일 수 있는 여자들과 함께 창관에 있는 돈이 될만한 물건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로비에 대기하고 있어. 위에 조직원들이 바글거리니까 괜히 너희들끼리 올라갈 생각 말고."
"네."
창녀에게 지시를 내리고 혼자 남은 로덴은 즉시 창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 봤다.
모두 합해서 일곱 개가 있는 크고 작은 포대 안에는 하얀 잎과 붉은 잎이 교차되어 있는 신기한 느낌의 꽃과 줄기, 씨앗이 한 가득히 보관되어 있다.
이건 분명… 마약 재료로 악용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재배 및 거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식물인 아샤스 꽃이군. 이놈들이 이걸 어떤 루트로 구했는지는 뭐…, 이제 와서 알아봐야 별 의미 없겠지.
만약에 여기에 있는 물건들이 이미 조제가 끝난 마약이었다면 남김없이 태워버렸겠지만 원재료인 꽃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이런 식물들은 음지에서 즉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답시고 꽃 부분을 마약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게 문제지. 조제 방법에 따라 진통제나 비상약품의 재료로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고, 안전한 농도로 조절해서 딱 정당한 흥분감을 일으켜주는 미약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덤으로 맛 좋은 술을 담글 때도 요긴하게 쓰이고, 마약성분이 없는 씨앗들은 질 좋은 기름을 추출하거나 고급 식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로덴에게는 이걸 충분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관계로 아샤스 꽃과 줄기, 씨앗이 들어있는 포대들을 모조리 인벤토리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창고에 있는 포대를 남김없이 털어내고서 로비로 돌아갔다. 로덴의 지시대로 계산대에 있는 돈 주머니라던가, 보석, 페트로그와 조직원들의 시체에서 털어낸 지갑을 한 군데 모아둔 창녀들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담으로 페트로그를 상대하던 창녀 이외에 조금 전에 손님들을 상대하던 세 명은 어느 정도 제정신을 되찾은 상황이었다.
특히 수인 창녀는 평균적인 신체능력과 재생력이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종족답게 언제 약에 취했냐는 듯이 상당히 쌩쌩한 상태다.
"마침 자루도 준비했군. 이제부터 지상으로 올라갈 거니까 두 명은 이 물건들을 적당히 나눠 들면서 따라오고, 나머지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도우면서 뒤따라와. 마지막으로 거기 수인은… 저 녀석을 옮겨줬으면 하는데, 다소 거부감이 들려나?"
로덴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인물은 아직도 기절해 있는 샤흐바트다. 그는 어느새인가 머리에 두르던 터번도 벗겨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역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흐물흐물한 초록색 머리카락의 소유자였다.
"…아뇨. 그 사람은 이 건물에 있던 인간들 중에 유일하게 저희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았고, 쓰레기 보듯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샤흐바트를 둘러업은 수인 창녀가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을 때, 계단 너머에서부터 이곳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조직원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허어엇?!! 이봐! 다들 모여!! 아래층이 습격당했다!!!!"
거의 다 내려온 녀석들은 피범벅이 된 현장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서둘러 위에 있는 나머지 조직원들을 불러들여 우르르 몰려들었다.
"딱 좋은 타이밍이네. 너희들은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멀찍이서 따라와."
다시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어 칼자루를 불끈 쥐어든 로덴은 이번에는 검풍을 사용하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직접 뛰어들어갔다.
촤아악!
연장을 챙기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조직원들이 화들짝 놀라 다가오는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무기째로 검에 베이면서 목이 달아나거나 몸이 양단당한다.
"그하아악!"
"어어어억!!"
"흐끄으으윽…!"
수확철에 농부가 휘두르는 낫처럼 로덴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다 익은 벼를 베어내듯이 조직원들의 목과 가슴팍을 썰어내며 위로 올라가는 길을 뚫어냈다.
"히이이익!!"
타다닷!
"이, 이 겁쟁이 새끼들!! 도망가지 마! 적은 한 놈뿐이라고!!!"
로덴이 피의 길을 만들어내며 계단을 반 이상 올라가고 있으니 멀찍이서 몰려오고 있던 조직원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 다니기 바빠졌다.
결국에는 도망치지 말라고 소리치던 간부까지 가면을 쓰고 있는 로덴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등을 돌리고 아지트에서 황급히 빠져나갔다.
지하에서부터 이렇게 올라왔다는 게 본진이 싹 털려버렸다는 뜻이다. 기사도나 의리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보스를 잃어버린 깡패들이 싸움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로덴은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녀석들은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자기네 일행들에게 헛수작을 부리려 했던 페트로그를 죽이고 놈의 조직을 와해시킨다는 목적은 진작에 달성했다. 일단 당장 뒤에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고.
바깥에는 여전히 굵직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새끼 오리들처럼 로덴의 뒤를 따라다니던 창녀들은 그나마 목만 달아난 조직원들이 걸치고 있던 옷을 챙겨 입었다. …지갑은 덤이다.
잠시 후. 창녀였던 여자들을 동원한 채 뒷골목의 외곽 구역까지 함께 빠져나간 로덴은 어느새인가 그녀들의 대표가 돼버린 수인 여성을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너희들끼리 행동해. 난 따로 가보겠어."
"아… 네, 잠시만요. 금방 건네드릴게요."
그러자 수인 여성은 조금 전에 돈과 보석이 들어있는 자루를 나누어서 챙겼던 두 명을 바라봤고,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들이 서둘러 로덴의 앞에 자루를 내밀었다.
로덴은 내용물을 잠시 뒤적거리다가 조금 전에 창관에 입장하기 위해 지불했던 은화 주머니만큼의 금액만을 챙겼다.
"…나머지는 너희끼리 알아서. 업고 있는 그 용병도 적당히 안전한 곳에 내려주던가, 같이 데리고 다니던가 마음대로 해."
마약으로 벌어들인 더러운 돈에 손을 댈 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로덴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서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뒷골목에서 서서히 떠나갔다.
이만하면 나름대로의 선의는 충분히 베풀었다. 이제부터는 다시 마약에 빠져들어서 마약중독자나 창녀로 살아가든, 저 돈으로 어찌어찌 인생을 다시 시작하든 온전히 그녀들의 몫이다.
"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를 지옥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한 여자들이 로덴이 떠나가고 있는 길목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몇몇은 절까지 하고 있다.
그녀들은 로덴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 * *
휴가 마지막 날.
일어나자마자 각자의 짐을 바리바리 챙기고 방을 비운 로덴 일행은 마지막으로 시장을 한번 더 들르고, 주변 해안가를 걸어 다니며 바닷가만의 특별한 풍경을 다시금 눈에 새긴 뒤에야 항구도시에서 미련 없이 떠나가게 됐다.
상단과 같이 이동하는 마차를 타고 항구도시까지 이동했을 때와는 달리, 바르멜라 영지로 돌아갈 때는 중간중간에 자그마한 도시나 마을로 이동하는 마차를 여러 번 갈아타며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안정된 승차감을 포기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간절했다.
놀러 갈 때는 조금 오래 걸려도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돌아갈 때 마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니 끔찍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후우~! 마지막에는 다소 안 좋은 일도 터지긴 했지만, 아무튼간에 즐거운 일주일이었어. 안 그래?"
"일주일간 재밌긴 했지…."
인근 마을로 향하는 마차가 서서히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고, 쌍둥이 언니인 메림과 나란히 앉아 있던 마릴은 넷이서 같이 행동하는 내내 로덴의 모습을 흘끔흘끔 바라보기 바빴다.
이거, 잘 썼어. 오래 쓰다 보니까 귀가 좀 당기더라.
야시장에서 파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나저나, 달리 묻은 것도 없고, 생각보다 깔끔하게 썼네?
가면에 튀겼던 피는 말끔히 닦았거든.
으엑….
전날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로덴과 메림이 나누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언니가 자신보다 로덴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저기, 메림은 로덴 씨에 관해서 얼마나,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거야?"
"아…, 결국에는 물어보는구나.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동생의 질문에 어색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거리며 고민하던 메림은 어젯밤에 로덴과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던 데로 어설픈 거짓말보다는 일부의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 한 뒤, 작은 목소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반년 전에 어비스에서 죽을뻔했을 때, 구해준 사람이 로덴 아저씨였어."
"…로덴 씨가 러스트라고?"
"응. 여태껏 너한테만 숨기는 모양새가 돼서 미안해."
눈을 동그랗게 뜬 동생의 옆에 바짝 붙은 메림은 그녀와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말을 이었다.
"나도 많이 아는 건 아니고, 로덴 아저씨는 저 아이랑 같이 변두리 영지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해서 주변에 괜히 떠벌리지 않기로 약속했었거든. 그 당시에 나도 내 나름대로 조사해서 알아냈어. 그리고 여기까지 들었으면 당연히 알거라 생각하지만…"
"비밀로 하라는 거지?"
"응. 그런 조건으로 너한테도 알려주기로 한 거야."
"…알았어."
당연하지만 메림은 로덴과의 육체관계에 대해서까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말하기는 상당히 창피하니까.
한편, 마릴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골목에서 로덴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직접 본 입장으로서 한때 바르멜라 영지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던 검사인 러스트와 그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실에 납득하게 됐다.
그리고는 위기의 순간에 무력하기만 하던 자신의 모습과 위기의 순간마다 검 한 자루로 적들을 물리치던 로덴의 모습을 비교했다.
어비스에서도 그렇고, 그저께도 내가 너무 약해서 메림하고 록시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었는데… 혹시 저분한테 검술을 배워볼 수는 없을까….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마릴은 자기도 모르게 로덴의 모습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