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39화 (39/149)

〈 39화 〉 항구도시 (15)

* * *

맨 처음으로 열어봤던 방은 백발이 성한 노인네가 자기 손녀뻘되는 창녀의 몸을 마구 희롱하면서도 조각용 칼로 몸에 붉은색 그림을 새기고 있었다.

두 번째로 열어봤던 방은 겉은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몸에 바늘 여러 개가 꽂힌 수인 창녀를 삼각 목마에 앉힌 채 자위에 푹 빠져 있었다.

세 번째로 열어봤던 방은 각 손에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색 양초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찍을 들고 있는 뚱뚱한 아줌마가 자기보다 젊은 창녀의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며 갖고 놀기 바빴다.

사람을 마음껏 고문하고 싶은 위험한 성벽을 가진이들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은 방음이 완벽했기에, 그들은 모두 로덴이 방문을 열기 직전까지 이 창관이 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구제불능뿐이네."

방을 확인하면서 역겹기 짝이 없는 장면을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로덴은 이 쓰레기들을 처리하면 얼마나 귀찮아질지의 여부만을 가늠한 뒤, 모조리 검으로 베어냈다.

전날부터 시작해서 피를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의 로덴의 행동력은 거침이 없었고, 저놈들의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에헤…, 헤헤헤……."

남겨진 창녀들은 하나같이 조금 전까지 상대한 손님이 먹인 약에 잔뜩 취해서 눈이 까뒤집혀 맛이 간 상태로 힘없이 웃고 있었다.

어디 보자… 약도 대충은 구비돼 있는 건가.

가학적인 놀이를 즐기는 창관인 만큼 각종 고문도구들이 널려있던 공간 옆에는 치료에 사용되는 도구와 포션들도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창녀들은 약에 취해서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말귀는 어떻게든 알아먹긴 했으니, 인간 된 도리로서 필요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고 난 뒤에 그대로 기다리라며 방치했다.

탐색을 재개한 로덴은 빈방을 몇 번 더 열어보며 허탕을 여러번 친 다음에야 비로소 페트로그가 있는 방의 문을 열어젖히게 됐다.

문을 열자마자 로덴이 듣게 된 건 고기와 고기가 부딪히는 소리.

철퍽! 철퍽! 철퍽! 철퍽!!

"후욱! 후욱! 후우욱!"

문자 그대로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창녀를 안고 있던 살덩어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는지, 녀석은 격한 운동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등짝에서 기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번들거리는 기분 나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사실 대부분은 주먹질을 하면서 흘렸던 땀이지만.

아무튼, 방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페트로그는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하아, 씨발놈이…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쳐들어오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터졌길…?!!"

당연히 조직원이 들어왔겠거니 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가면 쓴 남자가 있었다. 침입자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뜬 페트로그는 화들짝 놀라며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기 시작했다.

"똘마니의 말대로 비계덩어리가 따로 없네. 네가 페트로그라는 깡패 두목이구나?"

로덴은 일단 녀석이 옷을 다 입어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저런 살덩어리의 알몸을 계속 보는 것도 고문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그는 조금 시선을 돌려서 침대 위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돼지를 상대하고 있던,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버린 창녀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특히 얼굴이 엉망이었는데, 집요한 구타에 의해 퉁퉁 부어버리고 피가 터져버려서 살색보다는 붉은색이 더 많았다. 본래는 나름대로 고운 편인 얼굴이었겠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끔찍한 몰골이 돼버렸다.

지금까지 먼저 방문한 방에 있었던 창녀들의 상태가 차라리 양반으로 보일만큼의 처참한 모습에 로덴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 너, 너…!"

한편, 아랫도리와 출렁이는 뱃살을 겨우 가려낸 페트로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마음을 분노로 감추면서 정체모를 남자를 향해 다가가 통통한 검지 손가락을 세웠다.

"대체 뭐하는 새끼길래 여길 함부로…!!"

"너 같은 짐승이 사람한테 함부로 삿대질하면 안 되지."

사악!

로덴은 그 말과 동시에 조금 전에 헛걸음질 했던 방에서 챙겼던 조각칼을 가볍게 휘둘러 페트로그의 검지 손가락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닥에 툭 떨어져 버린 손가락을 뒤늦게 인지하고 나서야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게 된 돼지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끄아아아아?!!!"

본능적으로 피가 철철 나오는 절단면을 틀어막은 페트로그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소중한 손가락을 주워야만 한다는 생각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절단된 신체부위를 잘 보관하기만 하면 효능이 좋은 포션이나 치료 마법을 통해서 어찌어찌 붙일 수 있으니까.

콰직! 지익직!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침입자가 잘려나간 손가락을 짓밟아서 터트리니 손가락이었던 것이 시뻘건 고깃덩이가 돼버린 게 문제지만.

실수로 짓밟아버린 애벌레를 바닥에 닦아내는 듯한 동작으로 신발을 비비적거린 로덴은 줄곧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은근히 답답하기도 했고, 어차피 상대방을 살려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얼굴을 보여줘도 상관없다.

"끄흐으으윽…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거 같아?!!"

손가락이 잘린 고통을 뒤덮을 정도의 격렬한 분노로 인해 머리가 뜨겁게 달구어진 페트로그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상대방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봤다.

이, 이 새끼는 분명… 그년들이랑 같이 있던 연금술사 놈 아니었나? 설마 위장한 용병인가? 아니, 이놈의 정체가 뭐든 간에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지!

"감히… 감히! 나에게 이딴 짓을 저지르다니! 내 부하들을 모두 동원해서 네놈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연인까지 남김없이 능욕하고 갈가리 찢어버리겠어!!"

그리 외치며 로덴의 옆을 급히 지나친 페트로그는 문 밖의 복도로 뒤뚱뒤뚱 뛰쳐나갔다. 그의 생에서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로덴은 얼마든지 녀석을 따라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굳이 말리지 않은 것뿐이지만….

늘어진 뱃살을 위아래로 출렁출렁 거리며 정신없이 로비로 뛰어간 페트로그는 로비에 있는 녀석들 뿐만 아니라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돼버린 조직원들의 살점과 피로로 색칠된 흉흉한 광경을 보게됐다.

"허억… 허어어억…!!"

돼지는 감히 그곳으로 지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더 이상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방으로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부터 설마설마하는 의혹이 들었는데, 막상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괴물 같은 실력을 자랑하던 이국의 용병. 샤흐바트마저 맨 구석자리에 축 늘어져있지 않은가?

정확히는 기절한 것뿐이었으나 피에 물들여진 주변의 풍경 때문에 돼지의 눈에는 단순한 시체로만 비쳤다. 당장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는 어느 쪽이든 똑같긴 하다.

"원래는 뚝빼기만 깨부수고 후딱 끝낼 생각이었는데, 네가 방에서 저지르고 있던 짓을 보니까 편하게 보내주면 안 되겠더라고."

그러는 동안 소리 없이 다가온 로덴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에게서 도망갈 수 없음을 직감한 페트로그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봤다.

"자… 잠깐만…! 너! 용병이지? 돈, 돈을 원하는 거라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창고가 있어! 거기서 원하는 만큼 줄테니까…!"

"말이라도 고마워. 근데, 난 마약으로 모아들인 찝찝한 돈은 딱히 손대고 싶지 않아서."

로덴이 휘두른 조각칼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두 개의 궤적을 그렸다.

뒤늦게 돼지의 양쪽 귀가 뜨거워지더니 뜨듯 미지근한 피가 새어 나오면서 두툼한 고깃덩이 두 개가 바닥에 떨구어졌다.

콰직! 콰직!

이번에도 조금 전처럼 살덩이를 짓밟은 로덴은 살점이 남지 않게끔 완전히 으깨버렸다. 그리고는 재차 조각칼을 여러 차례 휘둘러 페트로그의 남은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내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직!

그럴 때마다 창관에는 고통과 공포로 인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돼지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걸 듣는 이는 로덴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귀가 없어진 머리와 완전히 동글동글해진 돼지의 양손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떠오른 로덴은 덤으로 녀석의 숱 없는 머리카락을 말끔히 베어내, 대머리로 만들고는 키득거렸다.

"크흐흐흐…, 이거 완전 도라에몽 실사판이 따로 없네? 온몸을 파란색 페인트로 칠하고 고양이수염도 그리면 완벽하겠어."

"어흑, 으흐으윽… 이 미친 개씨발 또라이 새끼…!! 돈도 필요 없는 거면 나한테 왜, 왜 이러는데…?!!"

"모처럼의 휴가를 망치고, 내 단골손님과 종업원의 몸에 상처를 낸 벌이야. 이만하면 개인적인 화풀이는 대충 다 했고… 잠깐 그대로 있어봐."

촤아악!

"끄하아아악?!!!"

이번에는 조각칼에 오러까지 담아내며 페트로그의 두 발목을 나무토막처럼 잘라낸 로덴은 포션을 꺼내 들어 피가 철철 나오고 있는 상처부위에 골고루 뿌렸다.

포션이 발라진 상처부위에서 절단면이 용접된 것처럼 새살이 돋아 올랐다. 아픔이 어느 정도 가셔지고, 피가 완전히 멎게 됐다. 돼지가 과다출혈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내린 응급조치다.

차라리 단번에 죽이라고 외치는 돼지의 말을 무시한 로덴은 가면을 다시 착용한 뒤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잘 생각해 보니까… 너는 이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게 가장 어울릴 거 같더군."

…몇 분 뒤, 로덴은 창관에 남아있는 창녀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을 찾아낸 뒤에 그녀들을 데리고 페트로그에게 돌아왔다.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창녀들의 손에는 각종 고문도구들과 날붙이가 쥐어져 있었다.

"히이익!! 가까이 오지 마! 이 썅년들!! 네년들이 가, 감히 주인한테, 나한테 이빨을 들이대?!!"

살의로 가득한 창녀들의 눈빛을 마주한 돼지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단번에 깨닫고는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팔을 위협적으로 휘둘렀지만, 그녀들의 화만 부추길 뿐이다.

"잘 가, 도라에몽."

로덴의 작별인사를 시작으로 페트로그를 둘러싼 창녀들이 돼지를 단어 그대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랑 똘마니 새끼들 때문에 지금껏 이런 꼴을 당했어!!!"

집게를 들고 있던 창녀가 돼지의 눈깔을 뽑아내고, 이빨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뽑아냈다.

"망할 살덩어리 새끼!!"

자그마한 망치를 들고 있던 창녀가 돼지의 뼈마디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부수어냈다.

"죽어어!!!"

날카로운 톱칼을 들고 있던 창녀가 돼지의 혀를 거칠게 잘라낸 뒤, 복부를 슬금슬금 갈라내니 두터운 지방에 보호받고 있던 순대 같은 내장이 이리저리 튀어나오고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러자 창녀들은 녀석의 내장을 쭈우욱 잡아당겨서 정신없이 뽑아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그것을 이빨로 물거나, 칼로 잘라내거나, 송곳으로 쑤셔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주었다.

"커어어… 허어어억…."

일말의 자비조차 없는 창녀들의 외침 소리와 배가 찢어질 거 같은실제로 찢어졌지만고통이 페트로그에게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속삭이고 있다.

지옥과도 맞먹을만한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던 페트로그는 살려달라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의식이 흐릿해졌다.

항구도시 라드비에서 제법 오랜 기간 마약 사업과 창관을 운영하며 부를 쌓았던 졸부는 결국 창녀들의 손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마약과 창관, 때때로는 고리대금 사업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렸던 인간에게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최후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