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항구도시 (9)
* * *
몰래 운영하고 있는 창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독 잘 꾸며진 커다란 방 안의 화려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하나같이 최고급의 재료로 만들어진 가구에다, 아름다운 여성의 조각상, 호화로운 장식이 여기저기 달려있다.
…이 방을 사용하고 있는 인물의 품행이 영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몹시 커다란 흠이지만.
테이블에 있는 음식들을 탐욕스럽게 목구멍에 쑤셔 넣고, 술을 퍼마시면서 간간히 트림을 하고 있는 장면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으적으적, 꿀꺽꿀꺽, 꺼어어어어억!
양옆에 끼고 있는, 약기운 때문에 눈빛이 쾡한 창녀들에게 먹이를 받는 아기새처럼 음식을 주는 데로 받아먹고 있던 페트로그.
그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에 시장에서 마주한 보석 같은 미모의 여자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특히 그 보라색 머리의 얼굴이 잊히지가 않는단 말이야. 언젠가 한번 봤던 거 같은 얼굴인데…, 영 기억이 안 나. 그런 미소녀의 얼굴이면 이 몸께서 잊었을 리 없을 텐데.
우둔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인 페트로그는 소녀의 얼굴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며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뭐, 됐어."
어차피 곧 있으면 손에 넣을 여자를 언제 만났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지.
고민을 그만두기로 한 돼지는 맨 먼저 자색 머리카락의 미소녀를 어떻게 길들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다시 음식들을 꾸억 꾸억 처먹기 시작했다.
똑똑! 다시 시작된 페트로그의 만찬 시간을 방해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도리어 기뻐하면서 얼른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문을 열면서 고개를 가볍게 숙인 애꾸눈의 조직원이 페트로그에게 다가왔다.
"보스가 말씀하신 특징과 일치하는 네 명의 남녀가 머물고 있는 숙소가 어딘지 알아냈습니다. 여기 보시죠."
애꾸눈이 돼지에게 보여준 약도에는 항구도시 라드비에서 고지대에 속하는 민박촌 구역 중 한 곳에 X 표시가 되어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좀 귀찮게 됐네. 관광객들이 주로 머무는 숙소가 몰려있는 이곳은 남작이 꽤나 신경 쓰고 있는 구역인데."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페트로그라도 영지를 관리하는 귀족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마냥 무시할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멀찍이서 감시만 하고 있다가 얘네들이 남작의 관리구역에서 멀어지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시켜."
"아, 인원을 보내시기 전에 보스가 미리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이건 그 일행들이 머무는 숙소를 조사하다가 알게 된 정보입니다만…."
잠시 뜸을 들인 애꾸눈은 종이 한 장을 내밀어서 빼곡하게 적힌 글씨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쌍둥이 자매가 바르멜라 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 등급의 모험가이며 마법사와 전사의 조합이라는 정보와 그녀들과 같이 있는 로덴이 같은 도시에서 가게를 차리고 있는 연금술사라는 정보도 담겨있었다.
"덤으로 소녀도 마법사로 추정되던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어. 그 대신, 실력 좋은 녀석들로만 엄선해서 이 녀석들이 한 명이나 둘로 나뉘어서 행동하는 순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오게 해. 남자는 죽여버린 다음 '처리'해서 바다에 뿌려버리고."
"예."
만약에 로덴 일행 중에 귀족이 섞여 있었다면 페트로그도 어쩔 수 없이 포기했겠지만, 일개 모험가와 연금술사 나부랭이로 구성된 그룹 정도는 그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애꾸눈이 인원을 편성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돼지는 방의 구석에서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를 쓱 쳐다봤다.
"혹시라도 댁이 움직여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거 같은데, 어때? 내 수고비는 넉넉히 줄테니까…"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뜬 까무잡잡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가를 가리고 있던 천 너머로 얼음처럼 차갑고도 딱딱한 목소리를 내며 페트로그가 하던 말을 뚝 끊었다.
"관심 없다. 내가 계약한 것은 신변의 보호와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뿐. 더군다나 네놈의 추잡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굳이 움직이고 싶지도 않다."
너무나도 단호한 말에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 페트로그는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끄응… 뭐, 돈이 싫다면 됐어. 내 호위나 똑바로 해."
"그건 걱정마라. 역사 깊은 우리 일족의 무투술 앞에서 이 나라에 사는 전사들의 단조롭고, 폭이 좁은 검술은 어린애 장난과 다름없으니."
"그래, 그래. 어련하시겠어."
흥! 재수 없는 깜둥이 새끼 같으니… 다른 조직 놈들을 썰어버렸던 괴물 같은 실력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내쫓았을 텐데.
항구도시에서 암암리에 마약을 거래하고 있는 범죄 조직은 돼지의 이름을 앞세운 페트로그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의 행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는 페트로그는 실력이 뛰어난 호위 용병을 원했고, 옆에 있는 남자가 바로 그런 실력을 갖춘 용병이다.
이국에서 건너온 용병, 샤흐바트는 고용주가 똥 씹은 표정이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다시 제자리에 앉아 침묵을 유지했다.
* * *
야심한 밤이 찾아오자, 숙소에서 편히 쉬고 있던 로덴 일행은 여관 주인에게 허가를 받아 잠시 빌린 요리 도구와 식기를 챙기고 뒷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흣차차~! 이렇게 세워두면 되지?"
"딱 맞아. 이제 냄비를 올려두고……."
여기서 지내며 남는 시간 동안 로덴이 직접 만들어둔 받침대를 그의 요구에 따라 알맞게 세팅한 쌍둥이 자매는 다시 한번 로덴의 지시대로 그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붓고, 불을 피웠다.
보글보글보글…
냄비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로덴은 록시아랑 함께 손질한 생선과, 잘게 썰은 무, 양파, 콩나물(이랑 비슷한) 등의 채소와 버섯을 냄비에 부어 넣었다.
마무리로 새빨간 가루를 골고루 뿌린 로덴은 곧장 냄비를 덮었다.
"이 도시의 시장에서 쌀이랑 매운 향신료도 팔고 있던 덕에 오래간만에 매운탕을 다시 맛보게 되네."
"삼촌, 지금 준비하시는 요리의 이름이 매운탕이라는 거예요?"
"응. 너희들도 분명 마음에 들걸."
로덴은 오래간만에 맛볼 매운탕을 기대하며 중간중간 국자를 휘휘 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덴표 매운탕이 완성됐다. 냄비 앞에 쪼그려 앉은 로덴이 뚜껑을 열어서 내용물을 보여주니. 매콤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 나왔다.
로덴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처음으로 맡게 된 종류의 매운 냄새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를 내버렸다.
"매운 냄새인데도 그렇게 싫은 느낌이 아니네요. 뭔가 자극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와 씨, 냄새 한번 죽여주네. 아저씨, 이런 요리는 어디서 배운 거야?"
"옛날에 여행을 좀 많이 했거든. 그때 배운 거야. 록시아, 슬슬 밥도 다 됐을 테니까. 가서 떠와주렴.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네, 삼촌."
록시아는 로덴의 지시를 듣자마자 옆자리에 세워둔 냄비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고, 구수한 냄새가 그녀를 반겨줬다. 안에는 뜨끈뜨끈한 쌀밥이 지어져 있었다.
그녀가 수제 주걱으로 밥을 뜨는 동안 로덴과 쌍둥이 자매도 매운탕을 푸거나 식기들을 준비해서 전망이 좋은 자리에 세워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잘 먹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로덴 일행은 어두워진 항구도시의 풍경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매운탕을 먹기 시작했다.
세 여자는 맨 처음에는 매운맛에 깜짝 놀라 혀를 내밀면서도 자기들도 모르게 계속해서 숟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원한 국물 맛에 점차 눈을 뜬 것이다.
"이거 대박이네."
아삭아삭한 채소와 함께 국을 들이켜거나 안에 있는 고기들을 쏙쏙 발라 먹는 과정은 상당히 즐거웠고, 갓 지은 뜨끈한 밥도 같이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후~우! 후~우!"
어느새인가 로덴은 한 그릇을 다 해치운 상태였다. 그는 냄비에 걸쳐둔 국자를 휘적거리며 빈 그릇을 다시 채워냈다.
씩 웃으며 로덴의 옆자리로 슬금슬금 다가온 메림은 그의 귓가에 작게 속닥거렸다.
"오빠, 벌써 한 그릇 뚝딱했어? 새벽이랑 오전에 많이도 싸질러서 그런지 잘 먹는…"
딱!
"아앜!"
로덴은 메림의 이마에 가벼운 딱밤을 날렸다.
"인간적으로 식사할 때는 그런 얘기 꺼내지 말자?"
이마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메림을 무시하며 매운탕을 마저 먹어치운 뒤, 자리에서 일어난 로덴은 다음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꾸물꾸물 거리는 기이한 생물을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이 생물은 구워 먹어도 맛있고, 회로 먹어도 맛있고, 삶아 먹어도 맛있고, 튀겨먹어도 맛있는, 이른바 만능 해산물이라 불리는 오징어다.
"윽, 시장에서 골라올 때 설마설마했지만… 그런 것도 먹을 수 있는 거야?"
"조금 징그럽게 생겼네요."
"……."
록시아는 별 말 안 하고 있긴 하지만, 움직이고 있는 오징어를 보면서 살짝 찡그리고 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쌍둥이 자매랑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들의 반응을 지켜본 로덴은 식칼을 들면서도 콧방귀를 뀌었다.
"하! 이런 맛알못들 같으니… 너희가 이걸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그런 말이 아주 쏙 들어갈걸?"
이걸 생으로 먹어도 안전한지의 여부는 정보를 통해 미리 확인했었고….
손질을 시작하기 직전, 새끼손가락을 세운 로덴은 짧게 정신을 집중하여 푸르른 오러를 둘렀다. 그리고는 오징어의 머리와 다리의 신경을 한 번씩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찔러서 파괴했고, 오징어의 줄무늬가 새하얗게 변했다.
기사로 인정받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조건인 오러를 고작 오징어의 신경을 파괴하는 데 사용했다.
만약에 기사 지망생이 봤다면 '이게 무슨 지거리야?!'라고 소리 지를 만한 장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