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항구도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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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라드비는 상당히 이색적인 풍경을 한 도시다.
평상시에는 보지 못한 둥글둥글한 건축물만이 그런 분위기를 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와의 연결 고리가 되는 항구 도시는 하론 공국의 영토이면서 옆 나라의 풍경이 살짝 뒤섞여 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 중에는 저 바다 너머에 위치한, 서남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사막 특유의 옷이나 장신구를 두른 사람이 지나쳐 가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뒤섞인 분위기가 합쳐져 이 도시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풍경을 볼 때면 원래 있던 세상보다 이쪽이 훨씬 좋아 보인단 말이지.
가는 길마다 쓰레기가 줄줄이 널려있어서 눈살을 찌푸리던 지구의 휴양지랑 비교해 훨씬 더 보기 좋은 이쪽 세상의 휴양지를 기분 좋게 감상하며 걸어가던 로덴은 드디어 도착한 해변가에 발을 뻗었다.
샌들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부드러운 모래알을 밟게 되자, 그는 바다에 오게 됐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파도가 일렁이면서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라서 그런지 불어져 오는 바람도 유난히 시원하다.
휴양지로 유명하다는 도시답게 이곳 해변가에는 제법 많은 선객들이 있었고, 인간만이 아니라 수인의 모습도 아주 드물게 보였다.
대부분은 해수면에서 정신없이 수영과 공놀이를 즐기거나 같이 놀러 온 사람끼리 물을 뿌리면서 놀고 있는 중이다.
모래밭은 뜨거운 태양빛으로 살을 그을리고 있는 성인남녀와 자기만의 특별한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여기나 그쪽이나 사람 사는 동네는 늘 비슷한 법이구만.
"그나저나 얘들은 대체 어디쯤에서 놀고 있는 거야…."
로덴은 먼저 해안가에서 놀고 있을 쌍둥이 자매와 록시아의 모습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해안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저편에서부터 메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평소에 알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
목소리가 큰 건 똑같은데 평소처럼 텐션이 높다기 보단… 상당히 드물게도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있는 종류의 큰 목소리다.
"그러니까! 우리는 댁들한테 관심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 아앙? 사람이 좋게 좋게 말하면 좀 알아들어!!"
메림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로덴이 본 것은 해안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여섯 명의 모습이다.
그중에 세 사람은 당연히 쌍둥이 자매와 록시아였다. 그리고 나머지 셋은…
"아잉~ 너무 매몰차게 그러지 말고, 아가씨들이랑 우리들이랑 조금만 놀자니까? 분명히 재밌을 거야~"
로덴과 같은 금발 염색인데, 피부까지 구릿빛으로 그을려진 데다 끈적하게 늘어진 말투 때문에 경박함이 유난히 과장된 남자.
"음, 음."
위풍당당히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하는, 실눈을 하고 있는 과묵한 문신남
"우효오옷~!!"
마지막은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피어싱이 박힌 혀를 길게 내빼고 있는 비쩍 마른 남자.
허어, 헤어지기 전에 헌팅이 어쩌고 하더니 그 사이에 진짜로 당해버렸냐….
로덴은 세 여자와 대치하고 있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양아치 삼인방의 모습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안 좋은 의미로 거를 타선이 없네.
셋 다 하나같이 삼각팬티 같은 수영복만 입고 있는 데다가 음흉하게 웃고 있는 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상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물놀이를 즐기고 있던 만큼 평상시에 목에 달고 있는 모험가 인식표는 물론이고,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고깔모자도 쓰고 있지 않던 탓에 귀찮은 파리가 꼬여버린 모양새다.
"와~! 진짜 미치겠네!!"
"그러게, 계속 이러면 우리도 슬슬 곤란한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메림은 머리를 쥐어 잡기 시작했고, 옆자리에 있는 마릴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주인님….
이런 상황을 난생처음 겪은 탓에 무서워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한 록시아는 쌍둥이 자매의 뒤에서 몸을 숨긴 채 듬직한 주인님이 다시 돌아와 줬으면,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해변가에서 놀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한 로덴은 저 상황을 최대한 무난하게 중재하고자 일행들을 향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기 전, 끈질기게 추파를 던지고 있던 금발 태닝남이 같이 놀자면서 메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말을 거는 것 까진 그렇다 쳐도, 허락도 받지 않고 타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려고 하시면 상당히 불쾌한데요."
…고 했지만 옆에 있던 마릴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며 금발 태닝남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태닝남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능글맞은 목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살려보려 한다.
"아하하~ 미안, 미안~ 진도가 좀 빨랐으려나~?"
아니, 이 계집에 무슨 힘이….
남자는 주절거리면서도 은근슬쩍 마릴이 붙잡고 있는 손목을 풀어보려 했으나, 마릴의 손은 오래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기, 아가씨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좀 놔주지 않을래에~?"
"제가 놔주는 데로 다 같이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약속한다면요."
이년들이 좀 좋게 말하면서 꼬시려니까 진짜…!
참을성과는 거리가 먼 성격인 태닝남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뻗친 나머지, 비어있는 반대쪽 손을 공격적으로 휘둘렀다.
뭐, 그 손까지 마릴한테 순식간에 붙잡혀 버린 게 문제지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죠…? 이제부터는 정당방위예요."
"끄어어어!!"
상대방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뜬 마릴은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손목을 잡고 있는 양손에 힘을 바짝 쥐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진 태닝남은 서서히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태닝남이 제압당하는 모습을 본 문신남이 뒤늦게나마 마릴에게 덤벼들었으나, 그녀는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혀서 공격을 간단히 피하더니 문신남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휘이익!
"…어?"
그대로 허리를 비틀어서 유도식 업어치기를 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굉장히 깔끔한 동작으로 문신남은 고스란히 모래판에 내동댕이 쳐졌다.
마릴이 두 명을 제압하는 동안 손바닥 위에 작은 불덩어리를 만들어낸 메림이 비쩍 마른 남자를 위협하고 있었다.
"화염구 맛 좀 볼래?!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꺼져!!"
"우…, 우, 우효오옷!!!"
작업을 걸려고 했던 여자들이 맨손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전사와 마법사임을 알게 된 피어싱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 뒤를 따라 문신남이, 그리고 다시 그 뒤를 따라 태닝남이 나란히 달렸다. 말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니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됐다.
"재미는 좀 보고 있었어?"
도망가고 있는 삼인방의 뒷모습을 감상하며 불덩어리를 훅! 꺼트린 메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히 말을 걸면서 다가오고 있는 로덴의 모습을 보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저것들이 들러붙기 전까지는 재밌었지. 헌팅당하기 전에 냉큼 오라고 했잖아. 아저씨."
"가만 보니까 너희들끼리도 알아서 잘 해결하더구먼."
"뭐, 그건 그렇지만… 원래 이런 상황은 남자가 파바박! 하고 멋지게 해결하는 장면이 나와줘야 한다고."
"책을 너무 많이 읽었군."
쌍둥이 자매는 주로 마물들이랑 싸워서 먹고사는 모험가. 그것도 중견급 수준에 해당하는 동 등급이다. 그저 그런 양아치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로덴은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가득 채워온 수통을 꺼내 들었다.
"완전히 얼리지는 말고, 딱 시원할 정도로만 얼려줘."
"아니, 이 아저씨는 남의 마법으로 무슨 얼음물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
투덜거리면서도 로덴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준 메림은 막 얼려낸 시원한 물을 들이켠 뒤에, 옆에 있는 동생들에게도 순서대로 넘겨줬다.
"캬아앗~!"
갈증을 해소한 세 여자는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감탄사를 동시에 내뱉었다.
사박사박, 평소보다 유난히 신나 보이는 걸음걸이로 바짝 다가온 록시아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로덴은 자세를 낮추어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록시아, 바다에서 놀게 된 소감은 좀 어때? 재밌었어?"
"네! 언니들이랑 같이 노니까 너무 재밌어요! 삼촌도 저희랑 같이 놀아요."
록시아는 해맑은 얼굴로 로덴의 손을 붙잡고 바닷물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웃고 있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모래판 위에 배낭을 내려두고는 자리를 잡았다.
"제안은 고맙지만 물놀이는 취향이 아니라서, 난 그냥 여기서 좀 누워있을 테니 쟤네들이랑 마저 놀고 있으렴."
"엇…."
30대 중반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저 사이에 끼어들어서 나란히 물장구를 치기에는 뭔가 모양새가 아니라고 생각한 로덴은 모래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역시 해변가는 편히 눕는 게 최고라니까.
"아, 맞다. 배낭 안에 입가심 할만한 간식도 챙겨왔…"
뒤늦게 생각난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한 로덴은 말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쌍둥이 자매가 각각 다리와 팔을 붙들고는 거대한 물고기를 포획한 어부들 마냥 양쪽에서 로덴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닥쳐! 여기까지 왔으면 물에 한 번은 뛰어들어 봐야 하는 법이지. 이게 해변가의 전통이야, 전통. 모래밭에 드러누워서 여자들 수영복이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아저씨."
"후후, 이번에는 저도 메림이랑 같은 의견이에요. 실례 좀 할게요."
"사, 삼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록시아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로덴을 해수면으로 옮긴 쌍둥이 자매는 하나, 둘 , 셋, 호흡을 맞추어서 그대로 물속에 집어던졌다.
풍덩! 시원한 소리와 함께 강제로 입수하게 된 로덴은 쓰게 웃으며 물기를 털어내고는 양손을 사용해 쌍둥이 자매에게 물을 뿌리며 보복을 가했다.
촤라라락!
"꺄하핫?!"
"아하핫!!"
"저, 저도 같이 놀래요!"
본격적인 물놀이가 시작되자, 뒤늦게나마 끼어든 록시아도 로덴에게 물을 뿌리거나 그가 뿌린 물에 의해 흠뻑 젖게 되면서 조금 전에 쌍둥이 자매 하고만 놀았을 때보다 훨씬 즐거운 기분으로 바다를 즐기게 됐다.
여담으로, 네 사람 중에 지금의 상황을 가장 즐기고 있는 인물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혼자서 내빼려고 했던 로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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