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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중인 용사는 마왕과 함께 산다-28화 (28/149)

〈 28화 〉 항구도시 (4)

* * *

일주일간 몸을 맡길 곳을 찾아 헤매던 로덴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해변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지대에 지어진 숙소였다.

시설이나 방은 전반적으로 민박집 같은 분위기다.

방에 따로 샤워실과 화장실은 없었고, 공용 화장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남녀별로 구분된 샤워실이 전부였다.

일반적인 숙소와 비교하면 금액은 살짝 비싸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해안가의 경치와 숙소의 보안 체계 덕분에 돈 값을 충분히 한다.

각 방에는 보안과 관련된 마법의 각인이 새겨져 있고, 관광객의 안전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만큼 여관 사람들의 시민 의식도 상당히 높았다.

다시 말해, 짐보따리를 내려놓은 채 외출해도 어느 정도의 안전이 보증된다는 뜻이다

"뭐, 일단 귀중품이랑 지갑만은 챙기고 나가야겠지만. 자자! 아저씨, 얼른얼른 일어나~ 야시장이나 구경해야지."

외출 준비를 끝마친 메림이 창가 앞에서 편안히 드러눕고 있던 로덴의 다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끄으… 벌써 저녁이야?"

경치를 감상하던 중 쏟아져 오는 노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가 막 일어나게 된 로덴은 나른한 하품을 내뱉으며 주변을 살펴봤다.

당장 옆에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있는 메림이 있었고, 문 앞에는 잔뜩 들떠있는 얼굴이 된 마릴과 록시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밤바람에 대비해서 원래 입고 있던 옷에 더해 얄팍한 겉옷을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로덴 또한 방구석에 놓여있는 배낭들로 저벅저벅 걸어가 얕은 겉옷을 걸친 뒤, 그녀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자고 일어난 사이 상당히 어둑어둑 해진 하늘을 감상하며 민박촌에서 내려가 도심지 구역을 향해 산책하듯이 걸어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네. 운치도 있고."

"주변에 있는 건물도 저희가 지내는 곳이랑은 완전히 달라서 신기해요. 삼촌."

"뭐랄까~ 이 도시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느낌이지."

"응, 응. 조명도 유난히 밝아서 풍취도 있고."

바르멜라 영지의 밤에 비교하면 이곳은 상당히 밝았다. 시야에 담기는 대부분의 건물마다 주황빛 등불이 매우 밝게 켜져 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잠 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로덴은 뒤늦게나마 메림과 록시아가 머리에 고깔모자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오밤중에 말이다. 두 사람을 지목한 로덴은 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근데, 너희는 왜 여기서까지 그걸 쓰고 있는 건데?"

하도 자연스러워서 몰랐네.

"귀찮은 상황을 미리 피하려는 거지. 마법사한테 쓸데없는 수작 부리려는 사람은 좀처럼 없거든."

"얘네가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마법사인 사람이랑 아닌 사람을 알기 쉽게 구분해주는 물건이기도 해요. 로덴 씨."

사근사근한 말투로 설명을 덧붙인 마릴은 마법을 시전 하는 것 자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함부로 마법사를 사칭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해줬다.

"완전히 장식품 모자는 아니었구먼."

"하핫, 이런 관광지에서 우리 같은 초절정 미녀들이 돌아다니면 수시로 헌팅당할게 뻔하니까 말이지."

심심하면 초절정 미녀라는 수식어를 남발하는 메림에게 완전히 적응해버린 나머지 세 사람은 그녀에게 뭐라고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보니 어느새인가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야시장에 도착하게 됐다. 사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온다.

주황빛 등불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천막과 노점들이 다종 다양한 음식들과 술,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햐~! 이거, 이거 뭘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되는데."

"메림, 저 사람이 들고 있는 닭꼬치는 어때?"

야시장에는 꼬치구이를 질겅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아냐 아냐, 모처럼 바다까지 왔는데. 처음은 무조건 해산물이지."

쌍둥이 자매는 사이좋게 인파 사이로 뛰어들어서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시작했고, 로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록시아는 까치발을 든 채로 인파의 너머를 확인하려 했지만… 영 쉽지 않았다.

"우으으으…."

덜 자란 키 때문에 까치발을 들어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버렸는지 록시아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은 로덴은 록시아의 정수리를 톡톡, 하고 건드리더니 그녀의 앞에서 자세를 낮췄다.

"너만 괜찮다면 여기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다니지 않을래?"

"어, 어떻게요?"

"그러니까 말이지…"

간단한 설명을 들은 록시아는 주인에게 그런 폐를 끼쳐도 괜찮을지 한동안 망설였으나, 야시장의 분위기에 휩싸였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곧장 로덴의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듯이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흔히들 말하는 목말이다.

"꽉 잡아."

흣차!

"우와우와우와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로덴이 다시 일어나는 순간, 그의 키에 머리 부분을 빼고, 록시아의 앉은키를 더하니 그녀의 눈높이가 2미터는 아주 그냥 우습게 넘어버렸다.

순식간에 높아진 눈높이에 겁에 질려버린 소녀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로덴의 머리통을 아예 끌어안은 상태로 꽉 매달렸다.

"내가 확실히 붙잡아주고 있으니까, 안 떨어져.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봐봐."

"네…, 네, 네…."

와아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제 아래에….

부드럽게 달래주고 있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질끈 감은 눈을 서서히 뜬 록시아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서게 된 소감은 좀 어때?"

"괴, 괴, 굉장해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어요. 주인님!"

조금 전까지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야시장의 풍경이 온전이 시야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되니 왠지 모를 정복감 마저 느끼게 됐다.

높이가 살짝 무섭기도 하고 적지 않은 시선이 그녀에게 쏠려버린 탓에 상당히 쑥스럽긴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본다.

"자, 이제 가볼까?"

"네!"

록시아가 완전히 균형을 잡게 되자 로덴은 그 상태로 천천히 야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2미터가 넘는 눈높이로 주변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 록시아와 마찬가지로 로덴도 상당히 흥이 났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휴가 계획이었음에도 이렇게나 즐기고 기뻐해 주는 귀여운 소녀가 있지 않은가. 그가 이렇게나 들뜨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목말을 유지한 상태로 야시장을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생선 꼬치구이를 여러 개 들고 있는 쌍둥이 자매와 다시 마주쳤다.

꼬치를 우물거리고 있던 메림은 록시아를 올려다보며 히죽 거리더니, 그녀를 향해 꼬치구이 하나를 내밀어줬다.

"이야~ 잠깐 못 본 사이에 우리보다 더 커져버렸네? 자, 록시아도 하나 먹어봐 봐."

"아하하, 잘 먹을게요. 언니."

"로덴 씨도 이것 좀 드셔 보세요."

"고마워."

록시아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느라 양손을 쓰지 못하고 있던 로덴은 마릴이 건네준 꼬치구이를 입으로 받아내어 우물거렸다.

"… 꽤 맛있네?"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아저씨도 맛있지? 록시아는 어떠니?"

"맛있…."

곧장 대답하려다가도 잠시 입을 꾹 닫은 록시아는 해맑게 웃으며 메림이 좋아할 만한 대사를 다시 꺼냈다.

"개존맛이에요. 메림 언니!"

"크흐흐, 그렇지. 그렇지. 개존맛은 딱 이럴 때 쓰는 거지."

그 대화를 가만히 듣던 로덴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마릴은 멋쩍은 듯 웃었다.

다시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네 사람은 한동안 야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배를 채운 뒤에 밤의 해안가로 향했다.

* * *

"후우~! 물놀이를 즐기지 못한 걸 빼면, 첫날부터 나쁘지 않네.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되는데?"

"저도 벌써 기대돼요. 메림 언니."

해안가에서 가볍게 산책한 뒤에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한 일행은 상당히 어두워진 항구 방향을 빙도는 루트를 골라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엇……."

"왜 그래?"

"저기, 저쪽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그러던 중 으슥한 골목길 사이에 엎어져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한 록시아는 그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 보려 했지만, 로덴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까이 가지 마."

"네? 네…."

평상시와 달리 굉장히 단호한 목소리를 낸 주인에게 록시아는 무어라 되묻지 못했다.

그녀를 쌍둥이 자매에게 맡기고서 혼자서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간 로덴은 그의 상태를 확인해 봤다.

"에헤헤…, 으헤헤헤헤… 헤…."

"쯧!"

혀를 차고 일행에게 되돌아온 로덴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고, 록시아는 물론 쌍둥이 자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록시아, 여기 지내는 동안은 지금처럼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함부로 가까이하지 말거라."

"그… 뭐냐, 여기 사람들은 술버릇이 많이 나빠서 가까이 가면 위험할 수 있거든."

"그렇나요…? 알겠습니다."

록시아는 덧붙여서 설명해준 메림의 말을 듣고 나서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은 알겠다며 얌전히 대답했다.

조금 더 걷고 있다가 로덴의 옆에 자연스럽게 다가간 쌍둥이 자매가 록시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아저씨, 조금 전에… 단순한 취객은 아니었지?"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아."

"…마약이군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인만큼 완전히 깨끗하진 못하겠지만, 항구도시 라드비의 어두운 면의 일부를 직접 목격해버린 그들은 조금 전과 비교해 상당히 가라앉은 기분이 돼버렸다.

…잠시 후, 간단히 씻은 뒤에 방으로 돌아온 로덴 일행은 내일을 맞이 하기 위해 이불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방에 침대는 따로 없는 관계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 한다.

당연스럽게도 유일한 남자인 로덴만이 맨 구석자리에 떨어진 상태로 이불을 깔았고, 쌍둥이 자매와 록시아는 서로 살짝씩 떨어진 자리에 이불을 깔아두었다.

"다들 잘 자."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보자~!"

"로덴 씨, 안녕히 주무세요. 너희도 잘 자고."

각자 한 마디씩 인사말을 끝마친 네 사람은 하나 둘 씩, 조용히 잠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에 빠져든 야심한 새벽이 되었을 때, 어둠 속을 더듬거리는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인 메림은 로덴이 누워있는 자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에 저절로 눈을 뜬 로덴은 메림과 눈을 마주쳤고, 그녀는 로덴을 '아저씨'가 아닌 단 둘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오빠, 우리 요즘에 못한 지 꽤 됐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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